[사찰음식기행] 보리밭이 바람에 흔들린다

선재 스님과 함께 보리 찾아 떠난 여행길

2015-06-13     박찬일
 
 
| 이 음식이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인가
고창으로 차를 모는 동안 잊힌 것들의 기억이, 그 밥상의 망으로부터 이어진다. 보리밥 한 그릇의 미덕, 잊고 살았다는 각성. 한여름, 꿀 같은 보리밥에 된장과 풋고추의 정서 말이다. 돌아가신 고모부 생각도 났다. 촌에서 힘써 농사지어 먹고살기 힘든 우리집에 보리쌀 한 가마니를 보냈다. 그 보리쌀자루가, 오랫동안 우리집 건넌방에 식구처럼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 자루에 몸을 기대면, 곡물이 주는 여유 있는 응원이 느껴졌다. 배곯지 않으리라는 희망 같은 거였다. 알알이 보리쌀의 감촉이 등에 닿던 촉감을 스님과 내려가는 차 안에서 내내 생각했다. 
 
“사찰음식이 뭐예요?”
 
내게 물으시는 건가. 그러시더니 “무맛이요, 무맛.” 하고 스스로 답한다. 맛을 내는 게 이상한 거지…. 혀를 차지는 않았지만, 스님 말씀 사이의 조용한 간격. 시속의 음식 문화에 대한 직설이다. 참된 미각을 잃어버린 세상. 나조차 그러하다. 매일 간사한 맛에 길들여지면, 참맛을 모르는 게 당연한 일. 생각해보면, 오늘 악행을 하면 내일 더 큰 악행을 하듯, 음식과 맛도 몸이 길들여진다. 매일 고농도의 맛이 혀에 퍼부어지니, 순수한 맛을 달게 여길 수 없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 
 
“이미 우리 혀가 다 망가졌어요. 마음으로 먹지 않으니. 이 음식이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인가, 그 과정에 대해 무시하거나 무지하거나.”
 
사람과 물건의 내력은 그리도 챙기면서, 내 몸으로 들어오는 음식에 대한 무감각이 당대의 식문화가 가진 가장 큰 문제라는 말씀이다. 
 
“몸에 좋고, 맛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 이 세 가지가 충족되어야 해요. 정말 그런가, 반문해봐야 해요. 음식이 내 앞에 놓이면.”
 
맛있다는 것에 대한 복잡한 정의가 남아 있다. 무맛과 쾌감, 그 멀고도 먼 거리가 사찰음식이 메워야 할 공간인 듯도 하다. 이런 문제의 깊은 근원에 스님의 생각이 닿아 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맛을 배워야 합니다. 스님은 세 가지 장으로 요리를 해요. 그게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자연스러운 맛, 자연의 맛, 자연으로 돌아가는 맛.”
 
간장, 고추장, 된장을 이름이다. 스님의 활동 중에 가장 스스로 좋다 하시는 게 있다. 바로 학교 장독대 만들기 운동이다. 순간, 마음 한 구석에 찔러 들어오는 스님의 말씀. 
 
“최소한 장이라도 만들어야지요. 장도 모르면서 무슨 음식을 해요. 무엇을 먹어요.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너 아니? 음식이 생명인 거.’”
 
우리는 근본과 기본을 잊고 산다. 천연덕스럽게 그리 산다. 다들 그리 사니까, 바빠서, 그거 알아서 뭐하게? 음식에서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스님의 생각이 학교에 닿았다. 학교는 근본을 배우는 마당, 거기에 장독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 이유다. 장을 만들고 익는 냄새를 아는 미각이 선한 미각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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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하고
고창은 들이 넓고 기운이 기름지다. 호남의 곡창지대에 속하며, 산물이 풍부해서 음식문화가 발달한 고장이기도 하다. 스님이 말씀하시길, 고창은 부자 고을인데 소금이 크게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과거, 소금은 황금처럼 비싼 상품이었고, 고창에서 많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선운사는 백제의 검단 선사가 창건했다. 그는 가난한 양민과 유민, 도적들에게 소금 굽는 법을 가르쳐 잘 살게 해주었고, 지금도 지역의 소금회사에서는 매년 소금이 산출되면 선운사에 보내는 전통이 이어진다. 이를 두고 은혜 갚는 소금, 즉 보은염이라고 부른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고창, 꽤 먼 땅이다. 지도를 보니, 전라북도에서도 가장 남쪽에 있다. 우리가 찾아가는, 보리밭으로 유명한 학원농장은 그 고창에서도 남쪽에 있다. 보리가 패서 키가 자라고 바람에 흔들릴 때가 되면 축제가 열린다. 고창 청보리밭 축제라고 부른다. 올해는 4월 18일에 시작해서 5월 10일까지 열렸다. 본래 그 즈음에 가려했던 일정인데, 늦추어졌다. 가서 보니, 늦게 와야 할 것이었다. 보리밭 사이로 난 길이 반들반들한 것을 보고 나는 알았다. 아, 사람이 참 많이도 왔었겠구나. 아닌 게 아니라, 아주 유명한 축제다. 보리가 내는 소리를 듣고, 천천히 관조하기에 그 시기는 불가능할 것이었다. 
 
“보리가 이 즈음에는 좀 쓰러집니다. 색깔도 누래지고요. 알곡이 익으면, 당연한 일인데 보기에는 덜합니다. 지금 와서 보는 보리밭도 좋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청보리축제로 널리 알려져 있으니 손님들도 그때들 오십디다.”
 
이 보리밭 농장은 우리 국민들 중에 기억하는 이가 많다. 바로 청백리의 표상이었던 진의종 전 국무총리가 관직에서 물러나 일군 밭이기 때문이다. 부인 이학 여사와 함께 1963년부터 이미 가꿔오다가 퇴직 후 아예 농부로 눌러앉았다. 1992년부터는 장남 진영호 선생에게 이어져 울울창창하게 줄기가 굵어진 농장이다. 그는 농부로, 신지식인으로 이 농장을 키워왔다. 이른바 경관농업이라고 하여, 농사지어 수확을 얻되, 그 현장이 보기 좋은 경치를 자아내는 것의 가치를 같이 얻어내는 것을 말한다. 보리는 귀중한 음식이고, 또한 가슴이 확 뚫리는 멋진 경치가 되기도 한다. 바로 이 학원농장이 국내 대표적 경관농업 현장이라고 한다. 
 
보리밭에 들어서자, 스님이 환하게 웃는다. 보리에 향이 나지 않아요? 하신다. 향을 맡고 이삭을 쓰다듬는다. 필부의 코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하고. 보리알을 훑어내어 씹어보니, 풋내의 뒤에 고소한 곡물의 맛이 촉촉하게 온다. 이 단맛이 인간을 살렸고, 이것으로 보시하는 이에게 덕이 있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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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처럼 푸르고 풋풋했던 기억
“경전에 말씀이 있어요, 부서지지 않게 잘 씻어서 빻은 후 삭혀 먹어라. 몸에 좋다는 거죠. 이 청보리, 예전에 볶아 먹으면 참 맛있었는데.”
 
청보리 풋바심을 말하신다. 보릿고개가 이어지고, 아직 덜 익은 보리에 달려들던 때가 있었다. 허기와 고통의 시기였을 텐데, 스님의 소녀시절엔 그렇게 보리처럼 푸르고 풋풋했던 보리밭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은 스님의 출가사연으로 이어진다. 알려진 대로 스님은 가톨릭신자였고, 아주 열렬했다고 한다. 어느 날, 부모은중경을 읽고 효도하기 위해 불문에 들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가슴 먹먹한 사연이 이어진다. 
 
“제가 출가하고, 어머니가 날 만나러 절에 오셨다가 크게 상심하였다고 해요. 제게 그때부터 존대하셨는데, ‘스님이 나를 보고도 못 본 척, 다른 손님에게 밥상을 내가는 모습을 보고 크게 울었습니다.’고 하시는 겁니다. 마음이 너무도 쓰리고 아팠지요. 어머니 마음 아프게 해드리지 않으려고 애를 많이 썼어요.” 어머니 손맛이 좋으셨는데, 조리법을 별로 전수받지 못했다고 한다. 전화 걸어 여쭈어보면, 딸이 밥 하느라 고생한다고 여기실까 저어했던 것이다. 
 
“절에 동치미가 맛이 없었어요. 어머니께 맛있게 담그는 법을 여쭤보려고 하는데, 속상해 하실까 해서 다른 방법을 썼어요. 엄마, 동치미 맛있어? 그거 담그는 거 어렵나? 이렇게 말이죠.”
 
에둘러가는 그 마음이 고왔던 것이다. 스님은 보리의 효능으로 말씀을 옮겨간다. 
 
“성인병이란 게 몸에 열이기도 하잖아요, 보리가 성인병에 좋다는 것도 그런 이치일 겁니다. 경전에도 있는 말씀인데, 겉보리를 갈아서 먹으면 당뇨병이 왜 걸리겠어요. 감기에도 좋고. 또 보리죽처럼 해독에 좋은 음식이 없어요. 열을 내려주고 나쁜 걸 배출하게 도와주니까요.”
 
스님은 어려서 보리밥을 못 먹었다. 거친 음식을 잘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물 종류도 곤드레처럼 거친 것은 사양했다. 
 
“그래서 스님이 사찰음식에 열중하게 된 것이지요. 내 몸을 고쳐보겠다, 이런 생각이 있었어요.”
 
고창의 옛 이름이 모양현이다. 모麰가 바로 보리를 뜻한다. 즉 보릿고을이었다. 그만큼 보리가 잘 되는 땅이다. 끝도 없는 거대한 보리밭에 바람이 들어 일렁이니 장관이다. 겨우내 눈 밑에서 숨죽여 있다가 봄에 쑥쑥 자라 알곡을 맺는 보리가 고맙다. 
 
이 밭은 이모작을 한다. 진영호 사장은 보리를 베어내면 8월초에 메밀을 심어 수익을 내고, 메밀꽃 축제도 연다. 가을이면 ‘팝콘을 뿌려놓은 것 같은’ 장면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축제는 9월 중순부터 10월 상순까지 열린다.
 
스님이 보리밥을 짓는다. 기름 한 방울, 양념 하나 없이 호박이며 버섯을 볶고 딱 된장 한 가지만 넣어서 고명의 간을 하는데, 이게 진짜 별미다.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이라기보다 천천히 젖어드는 오묘한 맛이다. 보리밥의 청신하고 푸근한 맛과 합쳐지니 더욱 산뜻하고도 고요한 맛이 된다. 참기름도 뿌리지 않고, 재료가 가진 맛에 순전히 기대어 비벼본다. 한 숟갈 뜬다. 이 맛이야. 멀리 보리밭이 바람에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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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문학과지성사’가 운영하는 ‘로칸다 몽로夢路’의 헤드셰프이자 작가.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히트식당을 열었으며,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는 그가 최초이다. ‘글쓰는 요리사’로 『뜨거운 한 입』,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등 그만의 따뜻한 시선과 감성어린 문장이 돋보이는 책들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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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 스님의 정직한 여름의 맛 
보리된장비빔밥
 
재료
보리쌀 1컵, 쌀 1컵, 취나물 100g, 콩나물 100g, 상추 100g, 당근 1개, 새송이버섯 1개, 표고버섯 2장, 애호박 1/2개, 풋고추 2개, 홍고추 1개, 된장, 간장, 소금
 
 
만드는 법
1. 보리쌀은 미리 삶아 놓고 삶은 보리와 불린 쌀을 섞어 보리밥을 짓는다.
2. 취나물은 다듬어 데쳐 물기를 제거하고 콩나물도 익힌 다음 각각 간장을 넣고 무친다.
3. 상추는 씻어 채 썰고, 당근은 채 썰어 팬에서 약간의 물과 함께 볶다가 소금 간을 한다.
4. 애호박, 새송이버섯, 표고버섯, 풋고추, 홍고추는 깍둑썰기로 잘게 썰어 준비한다.
5. 팬에서 약간의 물과 함께 표고버섯을 볶다가 애호박, 새송이버섯, 고추 순으로 넣어 볶는다.
6. 잘 익은 채소에 된장을 넣고 고루 섞은 후 불을 끈다.
7. 그릇에 보리밥을 푼 다음, 취나물, 콩나물, 상추, 당근을 돌려 담고 채소된장볶음을 올려 낸다.
 
Tip_
여름에는 미끈미끈한 음식을 먹어 열을 내리는 것이 좋은데,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보리이다. 보리밥을 지어 비빔밥을 해먹거나 보리차를 상복하면 좋다. 몸이 냉한 경우에는 열을 내는 고추장이나 열무와 함께 비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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