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를 들어 달을 건지다

강 린포체(수미산) 가는 길 – 여섯

2015-06-13     만우 스님

땀이 흐른다. 눈물도 흐르고 콧물도 난다. 걷는다는 것은 나를 흐르게 하는 것이다. 탁한 호수 비워내고 맑은 물 고이는 호수 하나 만드는 일이다. 끝 모를 깊이로 투명해져 상처 난 모든 흐름 다 받아들여도 더 이상 흐려지지 않고 오랜 저 달의 그림자를 안고도 출렁거리지 않는 호수처럼 되는 것, 욕欲하지 않고, 노怒하지 않고, 명明이 되고 공空이 되고 마침내 어떤 세상에 그 무엇이 되어도 그 무엇으로 가장 환하다가 어두워지는 것, 이렇게 살아 내는 것.

 

| 그대 마음 나와 같다면

코라는 완전히 한 바퀴를 돌아 출발선으로 다시 돌아올 때 코라다. 탑이든 절이든 산이든 그 주위를 시계방향으로 돌아 동선이 원의 형태가 이루어져야 코라의 완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강 린포체 순례는 코라의 관점에서는 쉼표하나 찍은 것이다. ‘다시 돌아와 마침표를 찍으리라.’ 하는 원을 남겨 놓고 강 린포체를 떠난다.

신장공로를 따라 구게 왕국을 가는 길에서 강 린포체는 더 우아하게 보인다. 주위의 산들을 굽어보며 우뚝 솟은 신비한 자태는 대지의 생명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무릎 꿇고 우러르는 경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겠다. 특히 모든 존재를 신과 결부시키는 힌두의 인식론과 결합하여 이 세상의 운행을 좌지우지 하는,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시바신의 거처로 강 린포체를 지목한 인도 사람들, 그들의 존재론은 정당성을 확보할 만하다. 이 세계에 존재하되 신들의 거처이기 때문에 이 세계와는 차원이 다른 공간으로 인식해서 오늘도 강 린포체를 향한 순례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히말라야의 조종이면서 우주의 중심축이 되는 이 산을 멀리서 바라본다. 눈을 감아도 어느덧 내 안에 와 있다.

코라의 일정은 3박 4일이었는데 눈 때문에 중단되어 2박 3일로 줄어들었다. 하루가 비어 구게 왕국을 돌아보고 일정에 없었던 마나사로바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인간의 탐욕과 오만함이 빚어낸 폐허 구게 왕국의 성터에서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 가늠해 본다. 험준한 히말라야를 넘어 크게 풍요롭지 않은 이 작은 왕국을 침략한 욕망의 실체는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옛날 사람들은 지금 사람들보다 순박하고 무위의 삶에 가깝게 살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더 잔인하게 살육하고 더 철저하게 파괴했다. 지금처럼 도구가 발달하지 않은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한 파괴의 흔적과 살육의 상처는 상상을 뛰어 넘는다.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기원전 200년 이전 통일 왕조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중국의 역사는 현대의 어떤 잔혹사보다도 진한 핏물이 배어있다. 여기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녹은 물에 의지해서 농경과 목축으로 소박하게 살고 있었던 변방 소국에 탐욕을 부르는 무엇이 있어서 목숨을 걸고 히말라야를 넘어와 이렇게 완벽하게 파괴를 했는가, 그들이 가져간 것은 무엇인가, 그들의 욕망은 채워졌을까?

자리에서 일어나 허물어진 벽에서 이 왕국의 흥망성쇠를 지켜보았을 작은 돌을 두 개 주워 배낭에 넣고 마나사로바로 향한다.

되돌아가는 길, 다시 강 린포체와 마주 한다. 다시 보아도 보석 같은 산이다. 린포체 그 자체다. 다른 차량들도 멈춰 서서 사진을 찍고 한참을 바라보다 간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한산의 싯귀가 생각난다.

 

“그대 마음 나와 같다면

문득 한산에 이르리라.”

 

| 이보다 경이로운 호수 있으랴

강 린포체를 뒤로 하고 마나사로바를 향해 출발한다. 도착해 보니 많은 순례객들이 이미 숙소를 점하고 있다. 같은 사정으로 일정이 변경된 순례자들이 한꺼번에 몰린 것이다. 다행히 우리 일행은 세 명뿐이어서 쉽게 숙소를 구했지만 일행이 많은 다른 팀들은 숙소를 구하지 못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다른 팀의 여성 가이드가 결국 울음까지 터뜨린다. 강 린포체를 여섯 번 왔다는 그 여성의 울음소리가 달빛이 환하게 번지는 호수 속으로 깊이 잠긴다.

마나사로바manasarova는 힌두의 가르침에 의하면 브라흐마가 자신의 마음을 내어 만든 호수다. 마나mana는 마음이고 사로바sarova는 호수를 뜻한다. 그래서 힌두교도들은 여기서 목욕을 하고 물을 마시면 죄업이 정화된다고 믿는다. 벌써 호숫가에서 벌거벗고 목욕을 하는 사람이 보인다. 물차를 동원해서 이 호수의 물을 인도까지 싣고 간다고 하니 그들에게 있어 마나사로바가 얼마나 성스러운 대상인지를 알 것 같다.

티베트어로는 마빰윰초mapamyum-tso라고 하는데 마빰mapam은 ‘정복되지 않는’이라는 의미이고 쵸tso는 호수이니 외부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파괴되지 않고 변질되지 않는 부동의 진리, 여여한 마음자리를 상징한다. 윰yum은 들어 올린다는 말인데 밀라레빠가 뵌교의 사제 나로뵌충과 신통력 대결을 하면서 마빰쵸를 들어 올리는 데서 유래했다.

밀라레빠의 십만송에는 다끼니의 화신인 래충마가 네 소녀를 데리고 와서 밀라레빠를 시험하는 대목이 있다. 거기서 밀라레빠는 마빰윰초를 이렇게 노래한다.

 

“마빰 호수는 명성이 드높아

세상 사람들은 멀리서 칭송하네.

마빰호는 초록색 옥구슬 만다라이도다!

가까이 다가가 구경하면

청량수가 언제나 흘러넘치네

붓다께서 예언하셨네.

마빰은 더위를 몰아내는 청량호라고

마빰은 사대 강의 근원이요

물고기와 수달들이 노니는 낙원이네

여덟 용왕들은 호수에 사네

때문에 마빰은 여의주의 만다라 같도다

천상에서 떨어지는 청량수는

성유聖乳의 방울인 양 감로수의 빗물 되네

일백 천신들이 목욕하는 마빰호는

팔공덕수의 시원한 감로수이네

호수 둘레 아름다운 초원과 바위틈은

작은 용들이 노니는 곳

장려한 잠부띠샤 숲은 무성하나니

남쪽 대주大洲를 이름 하여

염부제閻浮提라 하도다

이보다 경이로운 호수 있으랴

이보다 아름다운 호수 있으랴”

 

| 마음에 가두려 했던 달과 별 그리고 강 린포체

석양이 하늘가를 붉게 물들이고 강 린포체는 그 빛을 받아 은빛으로 장엄하다. 마나사로바에는 보름달이 떠올라 초록색 옥구슬 만다라에 더 깊고 환한 빛을 더한다. 호숫가 모래밭에 앉아 석양에 물든 강 린포체와 달빛에 젖은 마나사로바를 함께 응시한다. 하나는 산, 하나는 물, 산은 불변, 물은 수연-외연은 정반대의 질감이지만 내연으로는 불가분의 관계, 근원적 동질성, 현상적 이질성. 어지럽다. 이 만다라에 무슨 가당찮은 망상을 더한다는 것인가.

생각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호숫가를 걷는다. 달빛이 짙게 퍼질수록 호수의 빛깔은 더 푸르게 변한다. 달과 별들이 촘촘히 호수에 내려앉고 밤새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의 모닥불이 물위에 일렁인다. 깃 접은 물새들의 나래치는 소리가 가끔 이 적요를 흔든다. 어디서 하늘 북이 울리고 하늘이 열리고 하늘 사람들이 강 린포체에서 날아와 호수위에 내려 앉아 달과 별을 주워 건네줄 것만 같다.

호수 안에서 보면 강 린포체도 거기 내려와 있지 않을까, 환幻같은 생각들이 다시 끝이 없다. ‘모습으로 음성으로 여래를 보려는 자 결코 여래를 보지 못할 것이다.’ 마음에서 큰 울림이 들려온다. 마음의 호수에서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고 너무 출렁거렸다. 쉼표만 찍고 마침표를 찍지 못했으니 나의 코라는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마음에 가두려 했던 달과 별 그리고 강 린포체를 슬며시 마나사로바에 풀어 놓는다.

 

 

만우 스님
계룡산 갑사로 출가했다. 해인사 강원에서 잠시 수학하고 월간 「해인」 편집위원과 도서관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미황사 부도암 한주로 머물며 히말라야를 여행하고 돌아와 낯선 곳에서 만난 낯익은 삶에 대한 특별한 기록들을 정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