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를 명상하다_세월호는 나와 우리, 그리고 불교에게 무엇인가?

좌담. 재마 스님(조계종 노동위원, 중앙승가대학교 박사과정), 이지성(김도언 학생 어머님), 강정훈(안산온마음센터 정신과 전문의)

2015-05-04     불광출판사

세월호 1년을 맞는다. 1년의 시간은 사람들에게 세월호를 기억의 저편으로 흘려보낸다. 세월호를 수많은 사건의 하나로 보기 때문이다. 다른 사건과 함께 시간으로 지나간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보길 사회적으로 강제했는지 모른다. 우리 사회의 치부를 감추고 싶은 욕구가 작동된 것이다. 사회적 회피인 셈이다. 세월호는 우리 사회의 모든 무지와 무명이 얽히고 압축된 곳이다. 세월호 참사는 이런 얽힘을 화두처럼 우리 눈앞에 던져주었다. 


불교는 세계를 관계의 존재로 본다. 상의상관相依相關이다. 서로 의지하고 관계된 것이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핵심이 이것이다. 세월호가 그들의 사건이 아닌, 나의 사건, 우리의 사건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오늘 기획좌담을 연 것은 이를 말하고자 함이다. 세월호는 지금 여기에서 나와 우리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세월호를 불교의 눈으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답을 위해 3월 10일 좌담을 마련했다. - 편집자 주




사회자  불교계에서 세월호를 주제로 좌담을 연 것은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곧 세월호 1년을 맞이하는데요.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 가장 먼저 진도 팽목항으로 달려갔던 종교가 불교이고 많은 스님들이 참여하기도 했지만, 지속적인 참여와 관심이 부족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재마 스님  저는 16일날 몰랐어요. 그 다음날 알았어요. 제가 그때 연구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 일이 손에 안 잡혔어요. 빨리 팽목항에 가봐야겠다, 우리가 안 가면 누가 가겠나, 그랬어요.(스님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팽목항에 간 호스피스 스님들은 시신안치소에서 부모님하고 만나고, 저희는 유가족 분들과 만나는 것을 자중하고 법당에 주로 있었어요. 그때 정말 관세음보살을 부른다는 게 이런 마음이겠구나, 싶었습니다. 팽목항 법당이 그때 생겼어요. 저희들이 기도를 하면 아이들이 살아서 나올 거 같은 거예요. 그때 전국에 있는 비구니스님들이 거의 다 와서 며칠씩 돌아가면서 기도하고 했거든요. 



어머님  광화문에 가면 종교인 천막이 있는데, 스님도 계시고 목사님도 계시고 신부님도 계세요. 종교하고 상관없이 한 마음으로 움직였죠. 학부모들 얘기 들어보면 4월 16일 사고 이후로 ‘신神이란 없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그리고 ‘내가 믿는 종교가 나를 배신하고 내 아이를 버렸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유가족들이 광화문에 왔을 때 각 종교계가 우리와 함께 움직여주셨어요. 그때 유가족들이 개인적으로 신앙을 다시 찾은 경우도 많으세요. 



사회자  유가족 분들은 지금 어떤 상황인가요? 도보 행진도 하시고, 지역 간담회도 계속 하시고 계시죠?


어머님  예, 저는 전국 간담회를 다니고 있고, 또 도보 행진을 했어요. 도보 행진 하면서 많은 힘을 얻었어요. 저 같은 경우는 20일 동안 완주했어요. 사실 유가족 힘만으로 움직일 수 없는 일들이에요. 종교를 떠나서 국민들의 지지를 얻었고, 팽목항에 도착했을 때는 깜짝 놀랐어요. 5천명 가까이 오셨거든요. 정말 감사하더라고요. 요즘에 유가족 인터뷰집 『금요일엔 돌아오렴』이 나와서 북콘서트 다니고 있어요. 또 미국 동부와 서부에도 잡혀 있어요. 해외 동포들에게도 세월호 진상을 알리려하죠. 



사회자  개인적으로는 어떤가요? 도언 학생 오빠가 있는데요. 



어머님  도언이 오빠가 작년 6월 16일 군에 입대 했어요. 많이 후회가 됐어요. 왜냐면 도언이 보내고 전국서명 다녔거든요. 그래서 아들은 못 보듬어준 게 너무 후회가 돼요. 저도 한번씩 분노가 올라오는데…. 도언이 오빠를 한 번도 제가 안아주지를 못했어요.(눈물) 군대 가고 난 다음에 학부모들한테는 얘기 했죠. “우리 유가족 형제자매를 챙겨야 되겠다.” 생존자도 힘들지만 형제자매도 힘들어요. 형제자매들은 형제를 잃은 상실감 때문에 분노 조절이 더 안 되잖아요. 생존자들은 체계적으로 관리하지만, 형제자매들은 아직까지 그런 게 없어요. 그리고 애들이 ‘내 형제가 세월호 희생자다’라고 밝히는 걸 꺼려해요.  형제자매들을 잘 관리 안 하고, 치유 안 해주면 사회문제로도 부각될 수 있거든요.



강정훈  어머님을 오늘 처음 뵀는데요, 유가족 어머니들이 어떻게 지내시는지 얘기 들어보면, 주로 세월호 참사를 알리는 일에 열심히 다니시거든요. 그리고 형제자매와 남아있는 아이들 걱정을 하시는데요. 정작 내 자녀를 잃은 슬픔이나 그런 감정들에 대해서는 얘기 안하세요. 저는 그게 지금 어머니들이 겪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제일 고통스러워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아이가 마지막이 어땠을까.’ 그런 상상을 계속 하시면서 고통스러워하시거든요. 마치 자신이 배 안에 있는 것처럼 느끼시고, 고통스런 연상들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런 심리상태에서 주변 사람들이나 언론에서 배・보상 문제를 툭툭 던지며 물어보면 쉽게 상처를 입죠. 그 슬픔을 겪어가는 과정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유가족 분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 지금 가장 중요합니다. 이건 제가 전문의라고 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어디서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냥 편하게 얘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만 만들어 준다면 어디서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종교계, 특히 불교가 그런 정신적 내면적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는 종교잖아요. 



어머님  지금 어머니들 중 10% 정도는 안산온마음센터에서 치료받고 계세요. 대부분 치료 대상이지만, 엄마들은 세월호 진상 규명이 돼야지만 우리 심리치료가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진실이 안 밝혀졌는데 어떻게 치료가 되겠어요. 진실이 밝혀지면, 100% 밝혀지면 진짜 좋겠죠, 100%가 아니라 한 80%만 밝혀진다고 해도 엄마들 가슴에 애들을 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회자  스님 어떠신가요? 세월호 관련해서 계속 활동하시고, 타종교인들이 활동하시는 것도 옆에서 지켜보셨는데요. 


 
재마 스님  작년 6월달에 KCRP(종교인평화회의)에서 각 종교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발표를 하는데 (불교계를 대표해) 저보고 해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 때 자료 수집하는데 불교는 (다른 종교계에 비해) 너무 하는 일이 없는 거예요. 부끄럽게…. 물론 팽목항 현장에서 죽을 드리고, 떡을 드리고, 법당도 운영하죠. 그런데 세월호 참사를 알리고, 진상을 규명하게 하는 일들은 잘 안하는 거예요. 발표장에서 한 수녀님을 만나면서 ‘우리가 4.16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 어렵겠다.’ 생각했어요.(눈물) 아, 저는 왜 이렇게 세월호 얘길 하면 자꾸 눈물이 나죠. 그 이후 저는 광화문 법당에서 아침저녁으로 108배, 아니면 주말에 삼천배를 했어요. 세월호 어머님들 만나서 함께 리본 만들고, 주변 스님들한테 알려서 같이 광화문 법당에 가고요. 그런데 스님들이 다 바쁘셔서 계속적으로 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수녀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천주교는 매일 돌아가면서 광화문 성당에 오는데, 왜 우리 불교는 안 되나…. ‘우리 불교’ 하기 전에 나는 왜 안하고 있나.’ 이런 마음이 들면서, ‘혼자 뭐라도 해야 되겠다, 아니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그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머님  저희들이 광화문에서 단식 시작할 때 어느 종교도 나서질 않는 거예요. 그래서 불자인 제가 ‘정의구현사제단’을 먼저 찾아갔어요. “도와주십시오, 우리가 지금 의지할 데는 정의구현사제단 밖에 없습니다.” 하고요. 신부님들이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사제단이 광화문에서 활동을 시작한 거예요. 지금 1년이 지나면서 많이 잊혀지고 있는데요. 정부는 잊길 바랄 겁니다. 사실 ‘힘든 건 빨리 잊자.’ 그런 마음이잖아요.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느냐.” 이런 말들이 제일 가슴 아픕니다. 



사회자  세월호가 우리에게 던져준 문제의식은 돈이 우선인 사회, 비리가 일상화된 사회, 탐욕이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는 상황들일텐데, 우리의 부끄러운 치부들이 드러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재마 스님  저는 세월호라고 하는 대참사는 인간보다 돈이 우선인 소비사회, 이것 때문에 편리함에 너무 익숙해져서 이런 사건을 만났다고 생각해요. 또 참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 계속 이런 사건은 다시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왜 아직까지 세월호 리본을 붙이고 다니느냐?” 근데 이 질문 속에는 이제 그걸 외면하고 싶은, 잊고 싶은 심리가 있어요. 스스로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거죠. 그런데 한편으로 세월호 리본을 달면서 ‘혹시 내가 세월호 문제에 참여하는 것보다 더 과장되게 평가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상상도 들면서, 제가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 바라보게 되요. 참 미약하다, 이런 마음이 있어요. 



사회자  사람들이 세월호를 잊고 싶어하는 심리랄까요? 이 분들한테 어떤 얘기를 해줘야 할까요?



강정훈  어떤 얘기를 해도 안 들으려고 할 텐데요.(웃음)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생존자 분들이나 유가족 분들을 만나면 인사도 하기 전에 “배・보상 어떻게 됐냐?” 하는 말을 서슴없이 합니다. 그런 쪽으로 초점을 맞춰서 얘기를 하는 거죠. 언론에서도 유가족들이 마치 진상규명보다 배・보상 문제에 관해서 요구하는 것처럼 쓰고 있으니 말이죠. 마치 세월호 문제가 우리 사회의 질서를 흐리고, (세월호 같은 사건이) 사회적으로 위협적인 것처럼 느끼는 심리가 있는 것이죠. 이런 심리에는 어떤 무서움이 있거든요. 



사회자  그 무서움이란 건 어떤 겁니까?



강정훈  ‘우리 사회가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당할 수 있다.’ 이런 것이죠. 죽음에 대한 공포감이랄까요. 미국에서 9.11테러가 일어났을 때에도 그 피해자를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어요. 9.11 피해자인 미망인들에게도 “남편 먼저 보내놓고 지금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도덕적으로 인격적으로 상처주고 모욕주는 일들이 있었어요. 그 심리 밑에는 ‘이 사람들하고 얘기하는 것만으로, 이 사람들에 노출되는 것만으로, 나는 겁이 난다.’는 마음이 있어요. 누구나 인간이면 죽음에 대한 공포감은 갖고 있고, 불안할 수밖에 없거든요. 심리적으로 보면, 세월호 얘기를 딱 접했을 때 들으려고 하지 않고, 이제 그만 하자, 이런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죠. 

우리 어머님들이 그런 사람들과 만나서 모진 이야기를 들었을 때 덜 아팠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4월 16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뒤 팽목항에서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그 얘기들을 들어줄 의무가 있어요. 그 얘기를 못 들어준다는 건 우리 사회가 아직 이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이런 일을 내가 겪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공포감을 갖기 싫은 거죠.



사회자  우리 불교계가 주변에 어떤 고통이 일어났을 때 고통을 받아 안는 일상적 체험, 습관이랄까, 이런 것들이 타종교보다 잘 안 돼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세월호뿐만 아니라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도 유사한 종류의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좀 들었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신행생활을 하고 있지 않은지 반성하게 되는데요.



재마 스님  저도 그 원인이 뭘까 짚어봤어요. 우리가 불교를 떠올리면 기복 종교라고 하는 게 떠오르잖아요. ‘깨달음의 종교’라고 하는 것은 약간의 식자들이 하는 말이고요. 평범하게는 복을 빌러 가는 거다, 그 복 중에는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특히 내 자식들이 잘 되고 하는 그런 신행이 만연해 있지 않은가 싶어요. 엄청 창피한 얘긴데요. 불교 교리가 훌륭하고 불자들도 그것을 다 배우는데요. 실제 삶으로, 몸으로 내려오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우리 출가자들이 스스로의 몫을 유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어쩌면 고통에 둔감하기보다 고통을 싫어하는 거죠. 도성제道聖諦라는 것은 고통을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전혀 아닌데요. 오히려 고통을 더 직시해야죠. 



사회자  왜 불교계가 다른 종교와 달리 사회적 고통에 상대적으로 불편하게 된 것일까요? 



재마 스님  제가 보기에 한국불교는 약자의 삶을 살았어요. 조선시대 5백 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지금 불교계가 자리를 잡은 지 사실 얼마 안됐어요. 권력으로부터 항상 몸을 사려야 했죠. 아직까지 그걸 탈피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그런 부분 하나를 볼 수 있고요. 또 하나는 불교가 출세간과 세간을 지나치게 나누어 놓은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렇게 나누어 보니까 세간과 출세간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부조화죠. 그래서 한국불교, 스님들, 복을 구하는 불자들은 어쩌면 오늘의 세월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머님  저도 애기 사고 나기 전에 ‘사회운동’ 이런 거 모르고 그냥 열심히 산 사람입니다. 도언이 데리고 봉사도 다니고요. 도언이하고 절에 가서 108배 하고 했던 게 내 자식 잘 되길 바라는 거잖아요. 부모들은 내 자식 잘 되기를 바라고, 성공하길 바라고, 다 그러잖아요. 근데 사고 나니까 그게 아니었어요. 내가 살아온 방식이 틀렸더라고요. 



재마 스님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 ‘수행의 종교’라고 이름붙인다면 사회 고통에 눈감으면 안 됩니다. 사회 고통에 눈감으면서 ‘수행의 종교’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탐・진・치가 개인의 탐・진・치도 있지만, 사회적인 탐・진・치도 있어요. 사회적인 탐・진・치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회적인 수행이 필요한 거죠. ‘수행으로 삶이 어떻게 드러나는가.’ 하는 부분을 알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잠재된 선한 마음을 일어나게 하고, 일어난 선한 마음을 자라게 하고, 이것을 공동선으로 향하게 하는, 그런 것 말이죠. 


사회자  세월호 유가족들과 상담하고 같이 이야기를 많이 나눴을 텐데요. 유가족들이 가장 아파하고 있는 부분들이 어떤 부분인가요? 



강정훈  아직 너무 힘들어서 병원에 입원까지 하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건강하게 치유 과정을 겪고 계신 과정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 보면 아이에 대한 마음이나, 세상에 대한 마음, 세상이 나를 대하는 거, 이런 것에 대한 원망감이나 분노감 같은 것이 있죠. 어머니 중에 어떤 분은 세월호 노란 현수막 같은 거 보기 싫고, 아이도 생각하기 싫다, 하는 분들도 있어요. 왜 사람 심리가 무서우면 막 밀어내려고 하잖아요. 사실, 고통을 잘 다뤄 줄 수 있는 종교가 저는 불교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님  불교가 어찌 보면 한국정서에 가장 잘 맞아요. 이번 우리들 참사 일어나고 (불교계가)처음에는 계셨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불교는 빠지고 천주교가 확 스며들었어요. (천주교가)워낙 많이 활동하시니까요. 우리 한국정서에 맞는 불교는 빠지고 다른 종교들만 세월호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 주시니까 부럽고 또 안타까웠어요. 개신교에서도 처음에는 우리를 좋지 않게 평가하시다가 작년 겨울로 접어들면서 많이 활동해주세요. 천주교는 사제단부터 움직이시면서 모든 신자 한 분 한 분이 다 움직이셨어요. 
오늘 오전에 다른 곳에서 인터뷰를 했어요. 저한테 씩씩하대요. 진짜 씩씩해서 씩씩한 건 아니잖아요. 우리가 울고 있으면 지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씩씩한 척 하는 거죠. 그냥 어르신들 오셔서 “애기 엄마 힘들지.” 하시는 말 한 마디면 그간에 어떤 일도 다 잊어버리고 웃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재마 스님  이번 세월호 때문에 일반시민이나 단체, 타종교인들은 성찰을 많이 했어요. 우리 불교계가 세월호 1주년을 맞으면서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문제를 다시 안 보려고 하는 것은 괴롭기 때문에,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너무 부끄러워하지 않고, 너무 죄책감 갖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들과 세월호 얘기하면서 제 스스로 ‘맷집 좀 길러야 되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치지 말고 하나씩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죠. 



강정훈  처음 국가에서 유가족 분들한테 뭔가 심리적으로 치료하는 데 돈을 쓰겠다고 해서 다들 회의적인 분위기였거든요. 마치 이런 엄청난 고통을 겪는 분들을 어디 면담실에 죄다 모아두고 치료를 받게 하자는 얘기였어요. 이것은 우리 사회가 그분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다는 의미일 수 있는 것입니다. 유가족 분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것은 이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충분합니다. 


어머님  우리들이 흔히 “나만 잘하면 돼. 나만 아니면 돼.” 이렇게 말하잖아요. 저도 도언이한테 그랬거든요. “너만 잘하면 돼. 너만 선생님 말씀 잘 듣고, 학교생활 잘 하면 돼. 다른 거 하지 마.” 학교에서도 그렇게 키워요. 너무 잘못된 교육이었어요. 모두 같이 잘되어야 하는데, 나만 아무 문제없고, 나만 잘된다고 했던 것이…. 우리가 세월호 문제로 국회 가는데, 택시 운전사분이 이렇게 말씀하더군요. “세월호, 인자 고만 해라.” 그래서 우리가 “당신 자식이라면 그렇게 얘기할 수 있냐.” 그랬더니 발끈 하신 거예요. 왜 자기 자식 놓고 불길한 소리를 하느냐는 거죠. 본인은 자기 자식 얘기만 들어도 발끈 하는데, 왜 남의 문제는 그렇게 말씀하는지…. 지금 세월호 참사는 사회문제가 되었어요. 기성세대가 만든 업이잖아요. 그것만 생각하면 답은 나올 것 같아요. 250명이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것 같아요. 내 자식이라면….



사회자  세월호가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사회의 어떤 질서체계, 가치관, 윤리 이런 것들을 일시에 다 흔들어 놓았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재마 스님  세월호는 지금까지 있었던 사건, 사고들하고 전혀 다른 것이 아닌가 싶어요. 수많은 학생들이 눈앞에서 죽었거든요. 국민들의 마음이 이전과 다른 것이죠. 지금까지 (나만을 위해)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제는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생긴 것 아닐까 싶어요. 개인적으로도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성숙한 시민이거나 성숙한 종교인이거나 이 답은 결국 찾아야 하는 거죠. 내가 먼저 그 답을 찾는 것이죠. 내 업이고, 내 문제죠…. 



강정훈  이제 봄이고, 다시 새 학기가 시작되고, 교복을 입고 가는 아이를 보고 유가족 분들이 굉장히 아파하셨어요. 슬픔을 겪어내는 과정은 아직 시작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종교계에 계시는 분들이 우리 사회에 돈이 아닌 다른 가치들을 이야기해주셨으면 합니다. 세월호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 아직 진행되지 않은 많은 부분에 대해서요. 정말로 지켜야할 가치가 무엇인가를 많이 일깨워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님  우리 부모님들은 봄이 안 왔으면 좋겠습니다. 매년 3월 달이면 학년 올라가고, 한참 벚꽃 필 때 수학여행 갔잖아요. 벚꽃이 다 피기도 전에 싸늘한 시신으로 왔기 때문에 사실 봄이 오는 게 두렵습니다. 그 두려움을 이길 수 있도록 불교계에서 많이 도와주세요. 유가족들이 많이 힘든 거 보듬어 주시고, 한 분 한 분이 진실을 밝히고 세월호 인양하는 데 큰 목소리를 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재마 스님  많이 못 도와드려서 죄송합니다. ‘세월호를 어떻게 수행으로 가져갈 수 있을 것인가.’ 이 부분이 계속 고민입니다. 또 유가족 분들이 찾아오도록 기다리지 않고, 찾아가는 불교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그런 방법들이 뭐가 있을까 찾아보고 또 행동으로 옮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제가 숨통이 좀 트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마음은 그렇습니다.



사회자  세월호 1년을 맞이하면서 우리 사회가, 또 우리 불교가 바라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해봤습니다. 불교를 지혜와 자비의 종교라고 하는데요. 세월호 문제에 불교적인 지혜와 자비가 어떻게 나타나야 할지 이번 좌담회를 통해 널리 공유되고, 실천되길 바라면서 좌담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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