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空이란 무엇인가?

공空(1)

2015-05-04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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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과학이 발달하면서 우리 사고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아직도 초상집에 섣불리 가면 액운이 붙는다는 속설을 믿는 사람들이 더러는 있다. 이 속설은 초상집에는 액운이 있다는 고정관념의 표현이다. 그래서 초상집 가기를 기피한다.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한다면 액운이 붙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방편을 쓴다. 초상집에서 돌아와 자기 집 현관에 들어서기 전에 몸에 소금을 뿌리는 것도 액운을 쫓기 위한 것이다.



| 초상집에 가면 액운이 붙는다?
이런 속설에 근거하면, 초상집의 액운은 내가 가든 가지 않든 변함없이 늘 있다. 내가 가면 액운이 붙고, 가지 않으면 액운이 붙지 않는다는 식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초상집뿐만 아니라 ‘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초상집에 가고 가지 않음에 상관없이 여전히 나는 ‘나’로서 있다. ‘나’라는 고유의 본질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초상집에 가면 나에게 액운이 붙는다’는 생각은 마치 흰 종이(‘나’)에 검은 종이(초상집의 액운)를 붙여 놓은 것과 같다는 발상이다. 두 색깔의 종이는 서로 붙여지기 전에도 각각 흰 종이와 검은 종이였고, 떼어 낸 후에도 변함없이 각각 흰 종이와 검은 종이이다.

앞에서 ‘연기緣起’란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 생겨남’을 뜻한다고 했다. 또한 모든 것은 연기의 이치에 의해 생겨난다고 했다. 그 일례로 들었던 것이 물이 컵이라는 조건에 의존하여 컵 모양이 생겨난다는 것이었다. 

‘초상집에 가면 나에게 액운이 붙는다’도 ‘내가 초상집(액운)에 간다는 조건에 의존하여 나에게 불행이 생겨난다’고 풀어 쓸 수 있다. 말의 표현으로만 보면 ‘조건에 의존한 생겨남’, 즉 ‘연기’에 해당한다고 생각될 것이다. 따라서 연기를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컵 모양과 초상집의 예를 각각 간략하게 도식으로 표시해 보자.

물 + 컵 → 컵 모양의 물
나 + 초상집(액운) → 나의 불행

물과 컵이라는 조건에 의존하여 컵 모양을 한 물이 있고, 나와 초상집이라는 조건에 의존하여 나의 불행이 있다는 도식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연기의 정형구에도 잘 맞는 것처럼 보인다. 

초상집에 간 결과 불행이 생겨났다면 그 불행은 연기의 이치에 따라 생겨난 것이 맞다. 그러나 불행이라는 결과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가에 대해서 위의 초상집의 경우와 같이 생각하면 심각한 오류가 생기고 만다.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은 물론 열반涅槃의 정의에서도 큰 차이를 초래하게 된다.

왜 오류가 생길까? 앞서 연재한 연기(3)에서 컵 모양의 예를 들 때 이런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단단히 주의시킨 부분이 있다. 그 내용을 다시 보면 이렇다. 

“명심해야 할 것은, 물에 고정된 모습은 없지만 변하지 않는 물 그 자체는 있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라는 것이다. 물 자체도 조건에 의존해서 생겨난 것이며 조건이 다하면 소멸한다. 물도 온도가 올라가면 수증기가 되어 증발하고 만다. 물뿐 아니라 다른 모든 것도 마찬가지이니 주의해야 한다.”

이 내용을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도 초심자가 불교를 공부하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다. 이상의 내용과 지금부터 이야기할 공空은 깊은 관련이 있다.


| 공空은 연기緣起의 동의어 - 그 배경으로서 인도불교의 역사
공空이란 무엇일까? 공사상을 대성시킨 용수(龍樹, Nāgārjuna, 150-250경) 보살이 “연기緣起가 곧 공이다”라고 천명하고 있듯이, 공은 연기의 동의어이다. 그렇다면 ‘연기’라는 기존의 용어를 두고 왜 대승불교는 ‘공’이라는 또 다른 용어를 제시해야만 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석가모니의 깨달음의 내용이기도 하고, 불교의 핵심이기도 한 ‘연기’가 왜곡・오해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연기에 대한 오해의 전말을 알면 공에 대한 이해도 한층 명확해 진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인도불교의 역사부터 간략하게나마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80세의 생애를 마치고 입적하신 것이 기원전 5세기경. 그 후 약 100년의 세월이 흐르자, 교단도 확대되었을 뿐 아니라 계율에 관한 의견의 차이 등도 표면에 대두하여 불교교단은 상좌부와 대중부라는 두 부파로 분열되고 만다. 이것을 근본분열이라고 부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좌부와 대중부 내에서도 다시 지말분열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그리하여 기원 전후의 시기에 이르기까지 불교교단은 18개 내지 20개 부파로 분파되어 간다. 이들 부파 중 강력했던 부파로는 상좌부・대중부・설일체유부・정량부 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근본분열 이후부터 불교교단이 여러 부파로 나누어지면서 전개되어 갔던 불교를 부파불교・소승불교・아비달마불교 등으로 부른다. 각 부파는 오늘날의 종단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었다. 각각 독자적인 율장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승복의 색깔이나 착의법, 수행과 생활 규칙 등이 일치하지는 않았다.

부파불교의 공적은 역사상 처음으로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체계적인 사상으로 조직한 것이다. 석가모니는 그때그때마다 만나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어 대기설법을 하셨다. 따라서 그 설법을 모아놓은 ‘경전’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여기서 ‘경전’이라 하는 것은 지금 전해지고 있는 한역 『아함경』과 팔리어로 된 니카야의 모태가 되는 경전이다. 이러한 ‘경전’에서 각 부파는 독자적인 안목을 가지고 주요 교리를 추출하고 이를 조직했을 뿐 아니라 자신들만의 특유한 해석을 부가하여 장대한 사상적 건축물을 세웠다. 

각 부파가 자신들의 불교교리에 대한 이러한 독자적인 연구와 해석을 모아 놓은 것을 ‘논(論, 아비달마 abhidharma)’이라 부른다. 물론 여기서의 논은 소승불교의 논을 말한다. 부파불교에서 논이 이루어짐에 따라 마침내 경・율・논 삼장이 처음으로 성립하게 된다. 부파들의 논이 서로 달랐으므로 그들이 주장하는 교설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부파불교의 사상이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치우침이 없이 이해하고 계승・발전시켰다고는 할 수 없다. 종종 비판되고 있는 바와 같이 부파불교는 ‘경전’의 어구에 집착한 결과, 분석적・형식적 해석에 치우쳐 사상의 청신함과 발랄함을 잃어버린 면도 많다. 이러한 점이 석가모니의 말에 집착하여 석가모니의 정신을 잃어 버렸다는 비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파불교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기원 전후의 시기에 인도에서 새로운 불교 운동이 일어났으니 그것이 바로 대승불교이다. 대승불교가 흥기함에 따라 불교는 마침내 세계적인 종교로 발돋움하게 된다. 대승불교는 『반야경』 『화엄경』 『법화경』 등의 수많은 경전과 논을 출현시켰다. 인도 대승불교의 이와 같은 다양한 사상을 떠받치는 두 기둥이 공空사상과 유식唯識사상이다. 한편 대승불교가 중국에 전해져 중국적 토양 위에서 꽃을 피운 것이 화엄華嚴과 천태天台, 선禪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의할 점은 인도의 경우 대승불교가 흥기한 이후에도 강력한 부파는 오랫동안 존속했다는 사실이다. 대승불교와 부파불교는 각자의 교설을 주장하며 논쟁을 벌이기도 하면서 공존해 갔다. 그러다가 13세기 초에 이르러 힌두교의 융성과 이슬람 군대의 침입 등으로 인해 인도 땅에서 불교는 급격히 쇠퇴하고 마는 비운을 만나게 된다. 


| 꽃이 문제인가, 꽃에 대한 분별이 문제인가?
이제부터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연기에 대한 이해의 차이를 밝혀 가며 어디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대승불교의 주요 경전인 『유마경』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유마 거사의 집에 천녀(天女, 천상 세계의 여인) 한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유마 거사와 여러 보살들의 설법을 듣고 너무도 기쁜 나머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나타낸 다음, 유마 거사의 방에 모인 수많은 대승의 보살과 소승의 성문(聲聞, 부파불교의 출가승)들 위로 하늘의 꽃을 뿌렸다. 

그런데 대승 보살들에게 뿌린 꽃은 그대로 땅에 떨어지는데 소승의 성문들에게로 간 꽃은 성문들 몸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성문들은 신통력을 발휘하여 꽃을 떨쳐 내려 했으나 꽃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때 천녀가 장로 사리불에게 물었다. 여기서 사리불은 성문, 즉 부파불교의 출가자를 대표한다.

“대덕이시여, 이 꽃을 떨쳐 내어 어떻게 하시겠다는 겁니까?”

사리불이 대답했다.

“천녀여, 이 꽃으로 몸을 장식하는 것은 출가 자에게는 적당치 않습니다. 때문에 제거하려는 것입니다.”

천녀가 말했다.

“대덕이시여,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이 꽃은 진리 그대로입니다. 왜냐하면 이 꽃은 아무런 분별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장로 사리불 혼자만 분별하고 있을 뿐입니다. 대덕이시여, 출가하여 선설善說의 법과 율 가운데 있으면서도 분별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리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대덕께서는 요모조모 재면서 분별하고 계시는데, 헤아림이 없는 것이야말로 바른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보십시오. 사려思慮나 분별을 떠나 있기 때문에 이들 보살대사菩薩大士의 몸에는 꽃이 붙지 않습니다. 분별의 습習을 아직 끊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꽃이 달라붙지만 그것을 끊은 사람의 몸에는 붙지 않습니다. 때문에 습을 완전히 끊은 보살들의 몸에는 꽃이 붙어 있지 않는 것입니다.”

사리불은 몸에 붙은 꽃을 떨쳐 내려고 안달이다. 왜 그럴까? 우선 출가자가 꽃으로 몸을 치장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다. 또한 부파불교의 교리에 따르면, 꽃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일상사 모든 것은 무상하며 따라서 괴로움이므로 역겹도록 싫어해서 멀리 떠나야 한다. 간단히 말하면, 꽃은 출가자를 오염시키는 번뇌 덩어리라고 보기 때문에 떨쳐 내려 한 것이다. 

이에 대해 대승불교를 대변하는 천녀는 그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분별이며 잘못된 것이라고 질타하고 있다. 바로 그 잘못된 생각 때문에 대승불교의 보살들에게는 붙지 않는 꽃이 사리불에게는 붙어서 큰 장애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유마경』이 위의 구절에서 시사하는 바는 이러하다. 부파불교에서는 꽃 자체가 번뇌라고 보는데 반해, 대승불교에서는 꽃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꽃에 대한 분별과 집착 때문에 번뇌가 일어난다고 본다는 것이다. 

부파불교에 대한 『유마경』의 이러한 시각은, 부파불교의 대표 격인 설일체유부의 교리에 근거하면 세부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생략한다. 다만 꽃이든 무엇이든 번뇌 자체가 있다고 보는 점에서는 『유마경』의 부파불교 이해와 설일체유부의 교리 사이에 차이가 없으므로, 『유마경』의 위의 이해를 그대로 수용해도 지금의 논의에서는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 초상집은 훌륭한 스승이다
인용한 『유마경』의 핵심 내용을 도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부파불교: 꽃(번뇌) + 사리불 → 사리불의 번뇌
대승불교: 꽃 + 분별・집착 → 번뇌

여기서 우리는 부파불교의 사고방식이 앞에서 살펴본 “초상집에 가면 나에게 액운이 붙는다”는 생각에 깔린 연기 이해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꽃(번뇌) + 사리불 → 사리불의 번뇌
초상집(액운) + 나 → 나의 불행

부파불교의 연기 이해, 그리고 초상집의 예와 같은 우리들의 통상적인 연기 이해에는 오류가 있다. 대승불교에 들어와 이 오류를 시정하고자 ‘연기’라는 용어 대신에 ‘공’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기존의 부파불교에서 사용되던 ‘연기’라는 동일한 용어로는 올바른 연기를 나타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파불교의 연기 이해는 무엇이 문제인가? 꽃 자체가 번뇌라는 생각, 초상집 자체가 액운이라는 생각이 문제이다. 모든 것은 조건에 의존하여 생겨난다는 것이 연기인데,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꽃이든 무엇이든 번뇌 자체가 있다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꽃 자체로서 번뇌’, ‘초상집 자체로서 액운’이라는 사고방식 자체가 연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대승불교는 ‘공’이라는 이름으로 석가모니가 보여 주신 연기의 참뜻을 되살리고자 했다. 그렇다면 공으로 조망했을 때 꽃과 초상집은 어떻게 보아야 하나? 정성을 다해 부모님 가슴에 달아 드린 꽃 한 송이는 빛나는 보석이지만, 공연장 여기저기에 버려두고 간 꽃은 쓰레기이다. 초상집에 가면 액운이 붙는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면 불안을 초래하지만, 초상집 조문을 통해 삶이 짧다는 것을 깨달아 참답게 사는 계기가 되었다면 초상집은 훌륭한 스승이다. 

어느 것도 그 자체로서 무엇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 정해진 그 자체가 없이 단지 조건에 의해 생겨났다가 조건이 다하면 소멸할 뿐이라는 것이 ‘공’이다.




장휘옥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화학과 졸업. 동국대 불교학과로 학사 편입하여 석사 과정 졸업. 이후 일본 도쿄대학(東京大學) 대학원에서 화엄 사상으로 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동국대 사회교육원 교수로 재직. 『불교학개론 강의실 1, 2』, 『무문관 참구』(공저), 『새처럼 자유롭게 사자처럼 거침없이』 등 10여 권의 책을 썼으며, 『중국불교사』 등을 번역했다. 

김사업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 동국대 불교학과로 학사 편입한 뒤, 유식 사상을 전공으로 석사・박사 학위 취득. 일본에 유학하여 교토대학(京都大學)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동국대 사회교육원 교수로 재직. 『길을 걷는 자, 너는 누구냐』(공저), 『무문관 참구』(공저), 「유식설에서의 연기 해석」, 「선과 위빠사나의 수행법 비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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