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기행] 이 봄의 미나리

적문 스님과 함께 미나리 찾아 떠난 여행길

2015-05-04     박찬일
 
영천 가는 길, 차창을 여니 봄이다. 바람도 깊게 익어서 따스하다. 남쪽에는 이미 산수유와 개나리가 지천이라는 소식을 라디오가 전한다. 도회지에서 잊고 사는 건 계절감각이게 마련이다. 들에서 봄을 보면, 이미 그 따스함이 비친다. 녹색으로 물드는 물상이 싱그러워지는 것이다. 천지 만물이 제 날을 잊지 않은 것, 이 정교한 설계라니! 
 
| 미나리꽝을 아시나요?
긴 여행 끝에 해발 1,124미터인 보현산이 멀리 보인다. 경부–영동–중부내륙–경부선을 다시 타고 인적도 차도 드문 보현저수지 길을 에돌아 당도한다. 마라톤 코스로 개발되어 있다. 벚꽃이 가득 피어날 때, 마라토너들이 이 길을 뛴다고 한다. 보현산에는 천문과학관이 있다. 본디 마라톤 코스도, 천문과학관도 없던 이곳은 깊고 깊은 산촌이었다. 숯가마가 있던 곳. 예전에 숯가마 골은 가장 먼 땅을 의미했다. 영천 시내를 오가는 길이 저수지를 굽이쳐 돌아가는데, 숯 가지고 장에 가던 장꾼의 발길이 얼마나 멀고 아득했을까 싶다. 교행하는 차도 거의 없는 길을 멀리 보현산을 보며 차를 몰았다. 
 
오래 전 여래께서 보살을 두시되, 문수의 지혜요 보현은 발이라 했다. 그 자비로움이 두툼하고 길게 발을 뻗었다. 보석은 묻혀 있으면 드러나는 법. 절묘한 풍수와 아늑한 품이, 이곳을 두고 왜 사람들이 보현을 입에 올렸는지 알겠다. 숯쟁이도 없는 그 땅에 지금 미나리가 지천이다. 
 
“여기 산 이름도 보현입니다. 보통 인연이 아닙니다. 어서 오이소, 스님.”
 
영천 나리농원 작목반 김철섭 반장님이 합장으로 맞는다. 일 년에 딱 두어 달 수확하는 바쁜 미나리 철이라 고단함이 어깨에서부터 배어 있다. 그런데도 차를 부려가며 취재 일행을 위해 이리저리 분주하시다. 구석구석에 있는 밭으로 차를 몰아 구경시켜준다. 미나리는 2월부터 수확해서 시장에 내지만, 3월 중순부터 본격 출하가 시작된다. 날도 기막히게(?) 잡았다. 이미 가설 비닐하우스 안에서 동네 할매들이 모여 연신 미나리를 손질하느라 허리가 더 굽었다. 연세 지긋하신데, 일손은 날래다. 물 좋은 고장의 덕인가. 적문 스님(평택 수도사 주지)이 가득 쌓인 미나리를 보고 짧은 감탄사를 내신다. 

좋구만요. 이런 미나리, 대처에선 볼 수가 없어요. 봄에 이렇게 좋은 미나리 드시는 보살님들이 부럽구만요.”

스님이 미나리 줄기를 툭 꺾어 맛을 보는데, 향이 은근하다. 

“미나리라카는 기 환경이 좋아야 합니다. 보현산에서 계곡으로 물이 내려오고, 그게 지하수가 되어 미나리가 먹고 자랍니다. 맛이 없을 수도 없는기라.”

반장님의 여유로운 자랑이다. 귀경한 후 시장에서 미나리를 구해서 먹었다. 보현산 나리농원의 미나리와는 맛이 천지차이다. 아삭함도, 단맛도 떨어진다. 이곳 미나리의 맛을 필자는 비교체험한 셈이다. 미나리는 해독 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그래서 간이 안 좋은 양반들이 미나리즙으로 효험을 보았다는 얘기는 흔히 듣는다. 부처님 가피 입은 세상의 물성이 어디 불용한 것이 있겠느냐만, 이 봄의 미나리는 자못 각별하다. 도시 처사들이 주취를 푸는 복엇국집에서 정작 복어보다 미나리를 더 많이 먹는 일도 그런 맥락이다. 탕이면 탕, 무침이면 무침, 지짐이면 또 지지고 나물로 변하기도 하는 미나리의 쓰임새다. 미나리를 다시 청하는 건 이런 식당의 가장 흔한 주문이다. 

“미나리는 원래 밭둑이나 물가에 자라곤 했어요. 그거 꺾어다가 쓰기도 하고, 어렸을 때는 동네 미나리꽝 생각이 나는구만.”

스님의 기억이다. 미나리를 벼 추수하고 논에 씨를 뿌렸다가 봄에 수확하는 경우가 많았다. 논에 물을 대고 키우는 현장을 보통 ‘미나리꽝’이라고 부른다. 무논에서 키우면 훨씬 잘 자라기 때문이다. 

“청도 한재 미나리가 물미나리꽝 대신 주로 밭에서 기르면서 품질이 좋다는 걸 알았어요. 물에서 기르면 성장이 빠른 대신 향이나 맛은 밭보다 못했거든요, 우리 별빛마을 미나리작목반에서도 그 재배법으로 기릅니다. 그래야 향이 좋고 아삭아삭합니다.”

 

 
미나리가 이토록 다디달고 시원하다는 건 필자도 처음 알았다. 자꾸 맨입에도 손이 간다. 스님이 가져온 토종 된장에 찍어 먹으니 이런 별미가 있나 싶다. 미나리철인 요즘은 원조격인 청도는 물론 이곳 영천 일대에도 차가 꼬리를 잇는다. 미나리 맛을 보고 사가려는 사람들이다. 삼겹살 같은 고기를 사들고 와서 미나리에 곁들이는 게 유행이다. 경상도쪽 내륙의 특별한 봄철 행사인데, 아는 사람만 아는 지경이었다가 요새는 아주 유명해졌다. 그래서 주말에는 교통경찰차가 와서 일을 하지 않으면 심각해질 지경이다. 미나리가 불러온 이 지역의 특별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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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어서 영양을 취하되, 먹어서 덜어내는 일
“미나리는 수확하는 즉시 다 팔려 버립니다. 이렇게 한 5월까지 수확을 합니다.”

이곳 영천 미나리 재배는 특이한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밤에는 지하수를 끌어 밭에 대고는 낮에는 뺀다. 섭씨 13도인 지하수 온도가 밤의 추위로부터 미나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낮에 물을 빼는 건 과다 생육을 막아 맛을 좋게 하려는 의도다. 비료라든가 퇴비 같은 별다른 인공적인 조치 없이, 그저 물을 빼고 넣는 것만으로도 맛있어진다는 미나리는 얼마나 청정한 것이냐. 

청도와 영천 같은 경상도 내륙이 미나리가 잘 되는 이유가 있다. 물도 물이지만 일교차가 중요하다. 거개의 작물은 큰 일교차가 있으면 스스로 맛있는 성분을 몸 안에 응축한다. 시련이 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처럼. 용맹정진이 득도에 이르게 하는 것처럼. 결핍과 부족이 오히려 좋은 열매를 맺게 하는 건, 인간사의 이치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든다. 단련되고 깎인 인생에 복이 있으라. 

“미나리는 지금이 제철이지만, 과학이 발달해서 사철 수확을 할 수도 있습니다. 미나리는 밭에서 겨울을 나야 싹을 틔우는 작물인데, 씨를 냉동고에 넣어서 겨울인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농법도 있어요. 그나저나 이 미나리 좀 잡솨보세요.”
 
미나리는 웃자라면 향이 세지만 아삭한 질감을 잃고 질겨지고, 너무 어려도 향이 모자란다. 딱 제 몫을 하는 크기가 있는 것이다. 스님이 미나리를 섬세하게 고르신다. 요리를 하실 모양이다. 

“절밥에 미나리가 귀하게 쓰이지요. 맛이 좋은데 값도 싸니까. 삶고 날로 쓰고 끓이고.”

미나리 손질하는 스님의 손이 넉넉하다. 호방한 모습을 뵙고, 필자는 승병장을 떠올렸다. 아마 난리가 나면 승병장이 딱 저런 풍모이겠거니 싶었다. 그 큰 손으로 요리를 주무르는 손길은 뜻밖에도 섬세하다. 미나리를 데치고 유부주머니에 두부와 숙주 넣어 지진다. 미나리 한 점을 씹어본다. 은은하고 알싸한 향이 정수리까지 치고 올라간다. 식욕이 돋고 입안이 정갈해진다. 미나리의 덕성은 자못 꼿꼿하고 은근하다. 

“미나리는 추위도 더위도 다 잘 견딥니다. 병충해도 잘 안 앓으니 농약도 안 치고 기르지요. 가만 놔두면 사람 키만큼 자라는데, 지금 따는 건 결국 아주 여리고 어린 줄기인 셈이지요.”

스님은 일찌감치 대중강연과 서적 출판으로 사찰요리를 대중에게 소개했던 이력이 있다. 먹어서 영양을 취하되, 먹어서 덜어내는 일. 이 역설을 가진 대한민국 사찰음식의 역사에 그이가 있었다. 스님이 놓는 음식은 담박하되 길게 끌고 가는 맛이 있다. 뜻밖에도 남성적인 힘보다는 정갈하고 섬세한 쪽이다. 소박한 놓음인데 엄격한 균형이 느껴진다. 오랜 내공,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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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갛게 세수한 미나리의 싹싹한 맛

 

“농가월령가에 미나리를 다루는 내용이 있어요. 옛날부터 우리 생활에 아주 중요한 채소였어요.”

스님의 말씀이다. 찾아보니 과연 이런 기사가 나온다. ‘1월령’이다. 즉 양력으로 2월 정도에 해당한다. 

사당에 세배 하니 떡국에 술 과일이구나 

움파와 미나리를 무엄에 곁들이면
보기에 싱싱하여 오신채가 부러우랴

 

오신채가 부럽지 않다니. 미나리의 싹싹한 맛은 진하고 자극적인 오신채가 부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인연이 불가에서 미나리를 즐겨 썼던 까닭인 것 같다. 

“미나리 다루는 건 쉽지 않습니다. 질겨지니까 조리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하죠.”

낮은 온도로 천천히 익혀서 부드럽게 만들거나 아니면 살짝 익혀서 맛을 살리고 색을 북돋우는 요리법을 주로 쓴다고 한다. 물미나리보다 밭미나리 값이 두 배. 그 비싼 미나리를 할매들이 거의 다 손질해간다. 하루에 한 분 당 40킬로그램을 손질해서 출하한다.

 물미나리는 손질도 쉬운데, 밭미나리는 흙이 많이 묻어 있어서 세심하게 손질해야 한다. 손으로 티를 다 골라낸 미나리를 맑은 지하수를 퍼올려 씻는다. 말갛게 세수하는 미나리를 보니, 가슴까지 시원해진다. 

“안 해먹는 게 없어요. 라면에 넣어 먹어도 맛있고, 그냥 이렇게(맨입으로 드시는 시늉) 먹어도 좋아요. 입이 개운해지고.”

반장님의 설명이다. 미나리를 저렇게 드시고 살면 신선되겠다고 농을 던졌더니 “그게 봄 한 철이라 결국 신선이 못되는 모양”이라고 웃으신다. 

미나리는 씨를 뿌리지 않고, 그냥 베어낸 미나리가 그대로 줄기 번식을 한다. 그래서 일년 농사다. 하우스 재배가 일반적인데, 가온(불을 때서 온도를 높이는 것)은 하지 않는다. 지하수로 온도를 조절하는 정도가 사람의 할 일이다. 미나리를 꺾어 속이 꽉 차야 상품이라고 한다. 물만 먹고 추위를 견뎌내며 속을 채운 미나리의 마음이 여기 있다. 잔정 많은 반장님과 헤어질 시간이 왔다. 

“미나리 다 하면 뭐 하나구요? 토마토도 해야 하고, 곤달비도 하고. 촌에 일년 안 바쁜 철이 어데 있습니까.”

반장님 손마디가 굵다. 스님의 깊은 합장. 진짜 봄이 슬슬 멀리 보현산에서 줄을 지어 내려오고 있었다. 우리가 하루를 보낸 마을 이름이 놀랍게도 바를 정, 깨달을 각. 정각리다. 

 

 

박찬일
‘문학과지성사’가 운영하는 ‘로칸다 몽로夢路’의 헤드셰프이자 작가.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히트식당을 열었으며,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는 그가 최초이다. ‘글쓰는 요리사’로 『뜨거운 한 입』,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등 그만의 따뜻한 시선과 감성어린 문장이 돋보이는 책들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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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문 스님의 생기발랄 유부조림과 미나리무침

 

 
재료
유부조림 유부 12장, 당면 1줌, 삶은 숙주나물 한 줌, 표고버섯 8개, 두부 1모, 잣, 생강즙, 후추, 미나리 줄기 12개, 표고다싯물, 설탕 3T, 진간장 1T, 물, 소금
미나리 무침 미나리 1단, 소금, 참기름, 참깨, 잣
초간장 표고다싯물, 진간장, 식초
 

Tip_

미나리는 음식과 함께 흡수된 중금속을 몸 밖으로 내보내 혈액을 정화하는 해독식품이다. 
굵기가 일정하고 잎이 깨끗한 것이 좋다. 
 
생으로 먹으려면 물에 30분 정도 담가 잎과 줄기에 묻은 잔여물을 깨끗이 씻어낸 후 사용한다. 신문지에 싸 비닐봉지에 넣은 후 냉장 보관하거나 살짝 데쳐서 수분을 머금은 채로 냉동 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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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법

1. 끓는 소금물에 집어넣은 유부가 둥둥 떠오르면 건져 내어 찬물에 씻은 뒤 하나씩 행주로 물기를 닦아 가운데에 칼집을 내어 주머니 모양으로 입을 벌려 놓는다.

2. 물에 불린 당면, 삶은 숙주나물, 표고버섯의 물기를 꼬옥 짠 후 볶아서 다져 놓고, 두부는 물기를 빼서 으깬 다음 여기에 생강즙과 후추를 약간 넣어 버무린다.
 
3. 미나리 줄기부분 12개를 끓는 소금물에 살짝 데치고, 나머지도 데쳐낸다.
 
4. 준비해 놓은 유부 주머니에 2의 속을 담는다. 이때 잣을 함께 넣으면 하나씩 톡톡 씹히는 맛이 고소하다.
 
5. 유부 주머니를 미나리 줄기로 묶고 설탕과 진간장을 넣은 표고다시물에 알맞게 조려낸다.

 

 
6. 데친 미나리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소금, 참기름, 참깨를 넣고 무친 다음 그릇에 담아 다진 잣가루를 뿌리고 유부조림과 함께 낸다. 기호에 따라 초간장을 찍어 먹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