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등신 꽃미남 호법신장의 등장

불광사 신중탱화에서 새로운 창의성을 보다

2015-05-04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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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 불광사가 새로운 불화를 봉안하여 눈길을 끌고 있다. 롯데 왕국의 초대형 빌딩 바로 앞에 위치한 도시형 사찰, 불광사는 지하 5층, 지상 5층의 현대식 빌딩으로 우뚝 서있다. 빌딩의 옥상에 전통방식의 대형(약 264.5㎡, 80평) 법당을 신축했다. 이 대웅전에 신중탱화를 새로 조성하여 근래 점안식을 거행했다. 신중탱화 한 점을 모신 것이 뭐 그렇게 대단하냐고? 아니다. 이번 ‘작품’은 ‘화가’의 야심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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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의 신중탱화, 새로운 세계로의 도전
기왕의 불화들은 ‘화공畵工’이라고 비칭卑稱되었던 전통 장인匠人의 그림이 대부분이었다. 화공과 화가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몇 가지의 장치가 있겠지만, 단 하나의 단어로 구별한다면 바로 창의성의 문제이다. 화가는 자신의 독창적 예술세계를 펼치고자 주력한다. 그래서 창의성이 없는 화가는 제대로 된 화가라고 볼 수 없다. 화공은 전통 형식의 단순 복제에 커다란 비중을 둔다. 전통방식의 기법과 형식의 재현 실력은 탁월할지 몰라도 새로운 감각의 창의성 구현에는 취약하다. 물론 예외는 있는 법. 일부 화공 가운데 불모佛母라는 경칭이 어울릴 정도로 우수한 불화작품을 제작하기 때문이다.

불광사 신중탱화의 작가는 채색화가 이화자(73세, 1943년생)이다. 이화자는 채색의 대가였던 박생광 화백의 제자였고, 뉴욕에서 사제지간의 ‘2인전(2001)’을 개최하여 주목 받기도 했다. 그는 대학 교수를 역임하면서, 또 다양한 작가활동을 하면서, 후진 양성과 더불어 채색화의 진흥에 열정을 바쳤다. 이 말의 다른 표현은 전통 채색화에 대한 역사와 이론 혹은 재료와 기법에 대한 나름대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실천했다는 의미와 상통한다. 그동안 불교 소재의 창작품을 적지 않게 발표했던 바, 바로 새로운 세계에의 도전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작품이 수록된 이화자 도록, 불광사 회주 지홍 스님의 손길에까지 닿게 되었다. 이런 인연은 결국 불광사에 새로운 화풍의 불화 봉안으로 이어졌다. 화가는 생애 처음으로 봉안용 불화를 제작했다. 하여 봉안용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존중하면서, 부분적으로 새로운 창의성을 가미하는 형식을 선택했다. 드디어 불광사 신중탱화는 완성되었다.

불광사 신중탱화는 구름으로 구획하여 상하 2단 구성법을 보이고 있다. 상단은 악기를 든 악사들과 권속들, 하단의 중앙은 동진童眞보살을 중심으로 여러 권속들이 포진해 있다. 동진보살은 천진난만한 꽃미남과 같은 모습, 정말 아름답다. 두 손은 합장하고 기다란 칼을 두 팔로 감싸 안고 있다. 이렇듯 화려한 옷차림의 동자가 있을 수 있는가. 일반적으로 동진보살은 갑옷 입고 무기를 든 신장장군神將將軍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닭 날개 모양의 투구를 쓰고 팔뚝에 삼지창을 표현하기도 한다. 원래 위타천韋陀天, 위태천신韋汰天神 등으로 불렸으나 조선시대 후기에 들어 동진보살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동진보살은 불법佛法 수호신이다. 동진보살을 중심으로 팔부신장, 십이지신장 등을 묘사하기 때문에 신장神將탱화라고도 부른다. 아, 아름답다. 동진보살. 천진난만한 동자의 모습, 그래서 대중적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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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당에 펼쳐진 동화 속 어떤 세계
신중탱화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불교의 호법신護法神을 그린 불화를 일컫는다. 대개 법당의 좌우 벽면에 부착한다. 신중탱화에 등장하는 존재들은 불교 고유의 호법신 이외 재래의 여러 토속신앙을 수용하여 성립된 독특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원래 화엄신중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39위를 표현했으나 104위로 확대하기도 한다. 신중탱화는 4가지의 유형으로 나누기도 하는 바, 금강신 중심의 대예적금강신大穢跡金剛神, 제석천/대범천/동진보살 중심, 제석천/대범천 중심, 그리고 동진보살 중심 등이 그것이다. 원래 신중탱화는 3단 구도를 지니고 있다. 상단의 대예적금강, 8대 금강, 4대 보살, 10대 광명을 배치하고, 중단에 대범천, 제석천, 사대천왕, 용왕 등을 두며, 하단에 호계신, 토지신, 가람신, 방위신 등을 배치하기도 한다. 융복합의 도해圖解와 같다. 불교적 존재 이외 여러 지역의 민속적 신까지 두루두루 포용했으니, 이 얼마나 장엄한 세계관인가.

다시 불광사로 돌아가 보자. 여기 신중탱화의 첫인상은 밝고 명랑하다는 느낌을 준다. 기왕의 전통불화처럼 오방색에 의한 농채濃彩를 배제했기 때문에 화사한 인상을 우선적으로 제공한다. 젊은이들의 감각과 통하게 배려한 이유이다. 따라서 등장인물의 신체적 비례감에 현대적 감성을 불어 넣었고,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는 구도를 지향했다. 무엇보다 동진보살을 크게 표현하여 화면의 중심으로 삼았다. 그러면서 재래의 6등신 표현을 7등신으로 바꿔 시원스러움을 담았다. 꽃미남 모습이다. 어린이들도 좋아할 인상이다. 동진보살 이외 다른 인물들도 멋쟁이들 모습, 한결같이 출중한 인물에 표정과 눈동자가 살아 있다. 한마디로 불광사 신중탱화는 동화 속의 어떤 세계와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그림 속에 어린이가 다수 등장하는 것과 연결되기도 한다.

불광사 신중탱화의 특징은 인물 표현 이외 구도와 더불어 조역助役의 과감한 활용이다. 예컨대 화면 좌우의 푸른 나무의 숲 표현이다. 사실적 묘사의 나무 표현은 화면의 공간감을 확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은 표현은 화면 꼭대기의 수미산 표현과 더불어 푸른 창공으로 여백 처리한 점을 주목하게 한다. 기왕의 불화들은 여백의 활용보다 화면을 꽉 채워 ‘숨 쉴 공간’을 주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불광사 불화는 대소 강약의 리듬을 바탕에 깔면서 전체적 구성과 색채감각 그리고 공간감을 배려했다. 비슷한 그림으로 하동 쌍계사의 신중탱화와 비교할 수 있겠지만, 위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차별상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전통의 현대화 작업에서 갈 길은 아직 멀다고 느끼게 한다. 복식의 한국식 혹은 현대식의 과감한 변화, 그리고 도식적 구름 문양의 탈피, 등장 소도구의 현대식 전환 등 좀 더 새롭게 시도해야 할 부분은 적지 않다. 아무리 봉안용 불화라고 하지만 향후의 창작 불화는 좀 더 과감한 변화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우리 시대의 엄숙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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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이번 작품의 제작 기법은 순닥지 바탕에 아교와 황토를 입히고 백반을 사용하여 색깔을 선명하게 했다. 그러한 다음 부드럽게 스며들게 하기 위해 분채를 사용했고, 마무리 단계에서 석채를 사용했다. 부분적으로 순금박을 활용하기도 했다. 물감은 변색이 없는 영국제를 비롯 독일제, 중국제, 일본제 그리고 국산 등 최고품을 사용했다. 이는 전통 물감 제조기법의 단절이라는 현실에서 선택한 차선책이기도 했다. 아마 이와 같은 재료와 회화기법의 불화는 국내 초유의 사례로 꼽힐지 모르겠다. 그래서 불광사 신중탱화의 의의는 적지 않다고 믿는다. 새로운 시도, 이는 부족한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수를 두려워하는 자는 끝내 아무런 성공도 보장 받지 못한다. 이 대목에서 고귀한 말씀 하나, 그것은 바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다. 옛 것을 거울삼아 새 것을 만드는 시도, 이것보다 고귀한 정신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화자의 불교 소재 작품들. <석별>(1984)은 열반에 든 석존과 그 아래에서 슬픔에 잠긴 제자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벽화의 재현 형식을 취하면서 유려한 선과 2차색에 의한 부드러운 색채감각을 기본으로 삼았다. 이와 같은 화풍상의 특징은 이화자 회화세계로 가는 첩경이다. <동자불>(1987)은 2불 병좌상 같이 나란히 앉아 있는 여래형식의 동자를 묘사한 작품이다. 역시 부분적으로 불교의 소재를 따와 화면 구성을 새롭게 시도했다. 이와 같은 형식은 <벽>(1985), <하오의 산사>(1983), <정>(1990), <부석사>(1995) 등의 작품에서도 비슷한 특징을 보게 한다. 

불교를 소재로 선택했다하여 불교미술이라고 무조건 부를 수 없다. 소재주의라는 병폐가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소재보다 주제의식이 더욱 중요하다. 물론 예술적 격조를 기본에 깔고 있다는 전제 아래의 이야기이다. 예술작품이라는 용어의 다른 함의는 창의성이란 개념과 상통한다. 창의성을 기초로 하지 않은 그림은 진정한 그림이라고 볼 수 없다. 

이제 사찰에서 시행되고 있는 그 많고도 많은 불교적 미술품들, 불사佛事라는 이름 아래 시행되고 있는 그 많고도 많은 조형물 사업, 이제 새로운 면모를 지향해야 할 때이다. 이 대목에서 강화도 전등사 무설전의 신축불사를 참고해 보길 권한다. 우리 시대에 맞게 현역 미술대 교수들이 합작한 무설전 프로젝트, 시사하는 바 적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창작이 대우 받는 사찰 환경이 되기를 간절히 빌어 본다. 토함산 석굴암도 8세기의 실험작이었고, 물론 창작품이었다. 창의성이 존중 받는 사회가 그립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질문 하나를 던지고자 한다. 현재 한국의 사찰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걸작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윤범모
가천대학교 예술대 교수. 미술평론가. 호암갤러리, 예술의 전당 미술관, 이응노미술관 개관의 주역이었으며, 월간 「가나아트」 편집주간을 지냈다. 한국근대미술사학회 회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미술과 함께, 사회와 함께』, 『한국근대미술・시대정신과 정체성의 탐구』, 『평양미술기행』, 『미술본색』, 『오대산 통신・아하! 절에 불상이 없네』 등이 있으며, 시집으로는 『불법체류자』,『노을씨, 안녕!』, 『멀고 먼 해우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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