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은 어둡지 않다

강 린포체(수미산) 가는 길 – 넷

2015-05-04     만우 스님

 

1.png
 
2.png
 

거센 바람에도 흔들림 없고

濫風吹不動

겁화에도 더욱 견고하네

劫火洞逾堅

무위진인은 머무는 곳 없는데 머무나니

無位眞人住無住

흰 구름만 부질없이 문 앞을 서성이네

白雲徒自訪門前

 

돌집(石庵) - 태고보우太古普愚

 

| 타르쵸가 되고 타르쵸가 타르쵸를 장엄하고

멀리 눈 때문에 다시 돌아가는 순례객들의 행렬이 움직이는 타르쵸 같다. 다양한 색깔의 복장, 배낭들이 수묵의 이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은 곳곳에 배치되어 이미 오래된 풍경으로 자리한 타르쵸나 룽다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인적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지 어김없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깃발들, 삶의 시작부터 죽음의 순간까지 함께하는 오색의 깃발들은 본질적으로 몸의 사대가 우주의 사대와 잇닿아 있다는 표식이며, 단순히 공간에 대한 결계를 넘어 마음에 대한 결계를 의미한다. 공간의 결계가 마음의 결계로 이어지고 청정성을 회복한 마음이 다시 우주의 빛으로 하나 될 때 각각의 존재는 이 우주를 장엄하고 변화시키는 타르쵸가 되고 타르쵸가 타르쵸를 장엄하고…. 중중무진의 우주적 연동성이 깃발에 있다. ‘마음이 움직이는가, 깃발이 움직이는가.’ ‘마음이 움직인다는 마음과 깃발이 움직인다는 마음이 다른가, 같은가.’ 깃발을 보면 육조 혜능의 데뷔 무대라 할 수 있는 인종 법사의 법석이 항상 떠오른다. 슬며시 생각을 접는다. 너무 많이 나갔다.

어쨌든 티베트 문화의 키워드는 깃발–타르쵸, 룽다–임에 분명하다.

디라푹dira phug 곰빠 주위에도 어김없이 타르쵸가 겹겹이 둘러쳐져 있다. 낙석을 방지하기위한 곰빠 뒤의 돌담 위에도 하얀 탑들이 늘어서 있는 탑전 주위에도 타르쵸는 펄럭인다. 붉은 색으로 외벽을 치장한 본당건물과 돌을 쌓아 지은 부속건물이 전부인 해발 5,010m에 자리한 곰빠, 다시 숨을 고르고 되돌아보니 달첸을 향해 하산하던 순례객들이 빠진 개울건너 풍경은 수묵화로 다시 돌아와 있다. 여전히 강 린포체는 구름에 가려져 있고 진눈깨비 내렸다 그치다를 반복한다.

디라푹은 암 야크 뿔 동굴이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야크는 수컷을 말하고 디di 혹은 디모dimo는 암 야크를 뜻한다. 라ra가 뿔이니 동굴인 푹phug과 합성하여 암 야크 뿔 동굴이 되는 것이다. 암 야크가 강 린포체 입구에서 괴창빠 스님을 이 동굴로 인도하고 암 야크는 동굴 안으로 사라졌는데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야크 뿔과 발자국만 어지럽게 널려있었다고 하여 디라푹이라 명명된 곰빠. 이 또한 문화혁명의 광풍을 비켜가지 못하고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다시 복원되었다고 하니 옛 곰빠의 고풍스러움을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곰빠의 지붕에는 태양광을 이용하여 발전하는 집광판이 설치되어 있어 제한적이나마 전기를 사용할 수 있다. 내부는 파괴되기 이전과 비슷하게 복원했는지는 몰라도 본래 모셔져 있던 고색창연한 마르빠, 밀라레빠, 괴창빠의 상들은 이미 파괴되어 사라지고 근래에 조성된 세 성자의 상이 동굴 안에 자리하고 있다. 참배를 마치고 사람 소리가 들리는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난로가 지펴져 있는 주방 식탁에서 티베트라마와 젊은 청년들이 수유차를 마시고 있다. ‘따시뗄레’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권하는 수유차를 한 모금 마시니 몸과 마음이 훈훈해진다. 거울을 보니 자외선에 그을려 검붉게 변한 얼굴, 씩 웃음을 지으니 검은 미소다. 강 린포체는 언제쯤 하얀 미소를 보여주려나.

 

| 동굴안의 고독 속에 무엇이든 바꿀 수 있는 장터가 있으니

티베트 문화의 키워드가 깃발이라면 티베트 불교, 특히 까규파의 키워드는 동굴이다. 티베트 전역에 걸쳐 수행자들이 거처로 삼은 수많은 동굴이 있지만 강 린포체는 까규파 동굴 수행자들의 본산이라 할 수 있다. 틸로빠, 나로빠, 마르빠, 밀라레빠, 감뽀빠로 이어져 현재 17대 까르마빠인 오갠 틴래 도제로 전승되어지고 있는 까규파의 전통은 철저한 무소유와 고행, 치열한 명상에 의해 깨달음을 얻어 지금 붓다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동굴은 그들의 수행을 완성시켜줄 최적의 장소로 스승들은 가르쳐왔다. 스승은 단순히 붓다의 보고서인 경전을 가르치고 전승하는 것이 아니고 붓다의 마음을 얻도록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제자들을 가르친다.

까규파 스승들은 우리의 선사들과 거의 흡사하다. 가르침의 방법과 깨달음의 세계 또한 그렇다. 주된 가르침의 내용은 고행을 통한 인내와 스승에 대한 절대적 귀의이다. 고행을 통해 마음 낮춤과 절대적 에고의 해체가 이루어질 때까지 스승은 제자를 혹독하게 다룬다. 일체의 분별로부터, 이원성으로부터 해방될 때 스승은 비로소 마지막 일구로 제자를 제압한다. 권위가 아닌 법으로써 굴복시키는 것이다. 삼귀의 앞에 스승에 귀의한다는 ‘라마라 깝수치오’를 먼저 둔다는 것은 그들이 스승의 가르침에 절대적으로 따른다는 증좌다.

성취자가 되어 스승을 떠날 때에도 스승은 제자가 머물러 명상할 곳을 일일이 알려준다. 마르빠가 밀라레빠를 떠나보낼 때에도 명상하기 좋은 여러 곳을 지명하면서 “템촉불이 거주하는 티세tise 봉우리(강 린포체)는 부처님 자신도 위대한 산이라고 말했듯이 명상에 적합하니 거기서 명상 하거라.”라고 하면서 헤어지는 장면은 정말 가슴 뭉클하다. 법의 제자와 이별, 눈물의 별리는 이런 것이다.

 

이때 마르빠는 이렇게 노래한다.

 

“눈물짓는 슬픔에 찬 세상을 떠나서

고독한 동굴을 네 아버지의 집으로

정적을 네 낙원으로 만들라”

 

“동굴안의 고독 속에

무엇이든 바꿀 수 있는 장터가 있으니

거기서 혼란스러운 삶이

영원한 지복으로 바뀌고”

 

임제 스님과 법을 나란히 했던 보화 스님은 항상 요령을 흔들며 이렇게 노래했다.

 

“밝음이 오면 밝음으로 치고

어둠이 오면 어둠으로 친다.

사방팔면으로 오면 회오리 바람으로 치고

허공으로 오면 도리깨질 하듯 친다.”

 

| 나는 진정 어두울 수 있을까

동굴은 어두움과 동일어다. 단순히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격리된 시끄러움과 대비되는 한적한 공간이 아니고 가장 어두워질 수 있는 곳이 동굴이다. 깊은 어두움으로 들어가 마음의 어두움-무명-을 직접 대면하여 어둠의 실체를 보고 밝아지면, 더 밝은 빛이 되어 밝다는 것의 실체와 대면하는 곳이 동굴의 묘용이다. 어두움을 어두움으로 치고, 밝음을 밝음으로 치어 동굴 밖의 진정한 어둠을 간파하는 것이 동굴 수행자들의 행적이다. 동굴의 어두움은 어두움이 아니다. 밝은 태양 아래 무명의 삶들이 더 큰 어둠이다. 동굴 수행자들은 어둠속에서 어둠(무명)의 끝을 보았으며, 동굴 밖의 어둠을 밝히기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다. 동굴에서의 괴창빠의 어둠과 거리에서의 보화의 어둠. 나는 진정 어두울 수 있을까, 지금의 어둠을 쳐부술 진정한 어둠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정말 눈앞이 캄캄하다. 강 린포체는 아직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내려오는 길에 토끼만한 마모트들이 굴 밖으로 나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경계한다. 숲이 없으니 동물들이 많지 않고 초식성인 야크나 마모트 등이 산을 지킨다. 눈이 쌓여 먹이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옴 마니 반메 훔’이 새겨진 바위들 사이가 그들의 터전이다. 그 진언이 너희들의 삶도 보호해주기를…. 짧은 대면을 마치고 걸음을 재촉한다. 계곡물이 좀 불은 것 같다. 날씨가 풀리어 눈이 녹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멀리 야크 떼가 보이고 말을 타고 한 무리의 인도 순례객들이 올라온다. 그들은 코라를 마칠 수 있을까? 날씨가 좋아지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는 일정상 날씨가 좋아져 바깥 코라 길이 열려도 다시 갈 수 없다. 바깥 코라를 열세 번 돌아야 비로소 안 코라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하는데 바깥 코라를 한 번도 돌지 못하고 안 코라를 돌려고 하니 개운하지가 않다. 어쩌겠는가. 안을 다지고 밖으로 나오는 수밖에…. 내일 안 코라를 돌 때는 부디 강 린포체를 볼 수 있기를 숙소가 있는 달첸으로 돌아와서 마음에 기원의 깃발을 세워본다.

 

만우 스님
계룡산 갑사로 출가했다. 해인사 강원에서 잠시 수학하고 월간 「해인」 편집위원과 도서관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미황사 부도암 한주로 머물며 히말라야를 여행하고 돌아와 낯선 곳에서 만난 낯익은 삶에 대한 특별한 기록들을 정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