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기행] 냉이 밭에서 만난 냉이 보살들

대안 스님과 함께 냉이 찾아 떠난 여행길

2015-03-31     박찬일
누이들의 뒷모습
 
봄 아지랑이, 버짐. 낡은 합성섬유 ‘쉐-타’를 입은 누이들의 뒷모습. 바지런한 호미질. 내가 기억하는 냉이의 이미지다. 정작 그 나물의 향과 기운보다는 어린 누이들의 닳아버린 소맷부리가 더 생각난다. 그리고는, 온 집안에 가득히 퍼진 냉이 향이 코를 간질이던 기억들. 
 
냉이인지 쑥인지 모르겠지만, 그걸 캐러 갔던 길에 보았던, 마을 뒷산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던 생각도 난다. 나른한 봄날, 바람은 여적 차가웁고 아지랑이 피는 동산에 누이들을 따라갔지. 서산에 차를 내리니, 후각이 잊지 않고 그 어린 시절의 동산으로 이끈다. 봄에 냄새가 있다면, 막 이 즈음이 아니고서야. 흙이 기운을 차려서 뱉는 호흡, 번식을 준비하는 온갖 생명들의 보금자리의 따사로운 냄새, 멀리 바다에서 불어오는 훈풍의 다정한 냄새. 
 
“아지랑이인 줄 알았더니 안개일세.”
 
일행이 말한다. 서산은 바다에 잇닿아 안개가 심하다. 안개는 먼 바다에서 서산의 너르고 참한 땅으로 들어왔다. 울긋불긋한 색깔의 사람들이 서산의 들에 보인다. 어느 아낙들이려나, 나물 캐러 가던 누이들은 아니겠지. 하긴 그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그리 냉이를 캤을 것이다. 냉이 캔 역사가 쉰 해, 예순 해를 넘겼으리라. 
 
“시방 해미서 왔슈. 여그 다 먼 데서도 오구 그래유.”
 
밭에 달라붙어 냉이 캐는 보살들이다. 서산군 음암면은 국내 냉이의 최대 산지 중 하나다. 서산 전체가 국내 냉이 소요량의 80퍼센트 정도를 일군다고 한다. 냉이 캐는 시기가 대개 정해져 있어서 서산, 홍성에서 손 쉬고 있는 아낙들이 다 몰려들어 캐는 것 같다. 냉이는 억세어지면 맛이 떨어지고, 무엇보다 도시의 수요가 이삼월에 몰려 있는 까닭이다. 
 
“냉이야 11월 20일께부텀 캐구 3월 20일께 그만두쥬. 그래두 지금이 젤 바뻐유. 밥두 대먹음서 캔다니께유.”
 
보살들이 호미질을 멈추지 않으면서 대꾸해주신다. 마침 대안 스님 팬도 있으시다. 
 
“스님이 봄이니께 테레비에서 냉이루 뭘 만드실려나 봐유?”
 
내게 물으신다. 그럼요. 스님이 만드는 건 살리는 음식이니까. 뭐든 제 목숨 일구는 음식이니까. 봄에 냉이 안 하면 뭘 하겠어요.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텔레비전은 아니구요, 「불광」이에요. 
 
아마도 냉이에 대한 가장 극적이고 진중한 표현은 소설가 김훈의 것이다. 소설 『남한산성』에서 그가 묘사한 냉이는 지금 서산에서 보는 냉이보다 더 질실하고 아프다. 한 대목 옮겨본다. 
 
‘묵은 눈이 갈라진 자리에 햇볕이 스몄다. 헐거워진 흙 알갱이 사이로 냉이가 올라왔다…언 땅에서 뽑아낸 냉이 뿌리는 통째로 씹으면 쌉쌀했고 국물에서는 해토머리의 흙냄새와 햇볕 냄새가 났다. 겨우내 묵은 몸속으로 냉이 국물은 체액처럼 퍼져서 창자의 맨 끝을 적셨다.’
 
 
 
| 찬 겨울을 견디며 뿌리에 영양을 더하는 냉이의 마음
냉이는 방석식물의 일종이다. 봄동이나 민들레와 비슷하다. 잎이 위로 솟지 않고 방사형으로 펑퍼짐하게 퍼진다. 그래서 방석식물이라고 한다. 이런 식물의 공통점은 겨우내 자란다는 것이다. 추우니, 얼지 않으려고 잎이 납작 엎드려 성장한다. 잎의 조직도 억세다. 겨울을 겨우 난 이 땅의 민초들이 냉이와 봄동을 먹고 기운을 차린다는 것은, 그야말로 절묘한 설정이다. 함께 힘겨운 겨울을 난 생명의 돌고 도는 역정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 냉이는 겨울에 이미 자라고 있다. 이르게는 11월에도 캔다. 봄이 냉이 제철이라고 하는 건 생산량과 관계가 있다. 겨울에 더디 자라던 냉이가 훈풍을 업고 이파리를 풍성하게 하고, 아무래도 봄이 되어야 땅도 녹아서 쉬이 캐지기 때문이다. 냉이는 겨울 날씨가 작황을 예견하게 한다. 
 
“날씨가 좀 춥구 매웠다가 좀 따뜻허다가 해야 냉이가 잘 되유. 그래야 냉이란 늠이 뿌리가 강해져서 향이 좋아유.”
 
세상 이치, 냉이라고 다르지 않다. 단련되지 않은 생은 온실 화초와 같다. 일본 규슈지방에 쌀을 취재하러 간 적이 있다. 규슈는 더운 지방이라 좋은 쌀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일본 전국 쌀 품평대회에서 규슈 쌀이 1등을 했다. 다들 놀랐다. 비결은 다른 게 없었다. 보듬어주고 영양을 충분히 공급하는 대신, 오히려 가혹한 환경에서 벼를 길렀다. 땅에 영양분이 적었고 물도 조금 주어서 벼가 늘 목말랐다. 그러자 벼는 제 몸에 들어오는 제한된 영양을 최대한 몰아서 낟알에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인내와 고통의 열매를 달다고 했던 건 벼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낟알이 정말 맛있게 영글었다. 가혹한 겨울을 나야 냉이 맛이 진짜인 것은 세상의 이치이며, 부처님이 말씀하신 진리의 일부다. 
 
올해는 날씨가 덜 추워서 냉이 맛이 평년작이라고 한다. 냉이를 서산에서 많이 기르는 건 우선 땅 때문이다. 구릉이 적당하고 배수가 좋은데다가 해풍이 늘 불어서 온도가 잘 조절된다. 매운 해풍도 불어오고, 어쩔 때는 따사롭기도 하다. 냉이는 뿌리 맛인데, 더운 지방은 잎이 웃자라 상품가치가 떨어진다고 한다. 냉이 잎은 별로 향도 없다. 영양은 뿌리에 응축된다. 겨울을 나면서 꾹 참고 뿌리에 영양을 몰아서 보내주는 냉이의 마음을 알겠다. 그리하여, 그 냉이뿌리가 들어간 된장국의 기운을 알겠다. 감사한 마음으로 한 술 뜨겠다. 나무관세음보살. 
 
대안 스님은 냉이로 많은 요리를 한다. 그중의 냉이 차 얘기에 귀가 솔깃하다. 몸의 독을 빼고 부기를 내려주는 특효약이란다. 냉이뿌리를 잘 손질해서 찐 후 말려서 차로 먹으면 된다. 말린 것을 가루 내어 먹어도 좋다. 그렇다면 일 년 내내 냉이가루로 국을 끓일 수도 있겠다. 나 같은 냉이귀신에게는 절묘한 조언이시다. 내가 얼마나 냉이를 좋아하면서도 바보 같았는가 말씀드렸다. 일행이 모두 웃는다. 제철 냉이를 한 보따리 받아다가 모두 데쳤다. 그것을 꼭 짜서 냉동했다가 국을 끓이니 향도 적어지고, 무엇보다 냉이가 까매졌다. 냉이는 그리 보관하는 게 아닌 것이다. 나물로 즐기자면 데쳐서 물기를 짜지 말고 그대로 냉동하는 게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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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이 밭에서, 장작불에 냉이 전을 부치다
보살들이 힘겹게 쭈그려 앉아 냉이를 캔다. 한 자락씩 다 캘 때까지는 휴식도 쉽지 않다. 스님의 보따리가 열린다. 보살들 드시라고 떡이 한 상자다. 다시 요리도구가 나온다. 무얼 해주실까. 
 
“여기 보살님네들 몸 녹이라고 장작 피워놨으니 이 불 위에 요리합시다.”
 
스님 표정이 밝다. 소녀 시절의 추억일까. 밭에 불 피우고 요리를 한다니. 막 스님이 손수 캔 냉이 손질이 내 몫이다. 아직 수돗물은 얼음장이다. 물은 더디 차가워지고 더디 달궈진다. 그 물에 냉이를 씻는다. 손이 빨갛게 언다. 그래도 꼼꼼하게 씻는다. 
 
“냉이를 캐면서 흙은 다 떨어야 해유. 안 그라믄 상품이 안되유. 그놈을 세척장에 가져가서 일곱 번을 씻어유. 다시 기계로 씻어야 시내에 나갈 수 있슈.”
 
우리가 마트에서 집어서 가져오는 냉이 한 봉지에는 이 같은 수고가 겹겹이다. 인간의 인연이 깊어서 냉이가 아니라 노고의 총합이며 삶의 존재다. 보살들의 살점이다. 세척장에 가면 거대한 수조에 냉이를 넣고 흙을 씻어내는데, 온몸에 방수복을 입은 일꾼이 수영하듯 들어가서 씻어내야 비로소 깨끗한 냉이가 된다. 직접 캐보니, 흙이 반이고, 게다가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 냉이 이파리가 억세고 촘촘하며, 뿌리도 골이 있어서 흙이 쉬이 씻어지지 않는 까닭이다. 이런 노고로 만든 한 그릇의 냉잇국, 어찌 무심하게 뜰 수 있으랴. 
 
“세상의 음식은 당신에게 가장 큰 위로입니다. 음식이란 동시에 비폭력적이어야 하지요. 그 원칙이 바로 절밥의 위대함입니다. 그게 요즘 말하는 힐링이지요.”
 
스님이 막 장작불에 팬을 얹으면서 하시는 말씀. 불티가 아름답게 튀어 올라 팬 안으로 떨어진다. 기름을 바르고 전을 부친다. 막 손질한 싱싱한 냉이가 전 안에 고스란히 제 몸을 편다. 아아, 이 향이란!
 
보살들께 한 점씩 드린다. 이들이 진정 냉이를 즐길 자격이 있음에야. 예부터 냉이는 누구나 사랑하는 음식이었다. 겨울을 이겨낸 자격으로 냉이를 먹었다. 아픈 이들도 냉이로 몸을 달랬다. 오래 전 신문에서 냉이 기사를 찾아본다. 
 
“마을 처녀들은 연두저고리에 분홍치마, 옆에는 보구니를 끼고 버들피리불면서 삼삼오오 짝지여 냉이와 소르쟁이를 캐러 다니는 조선의 봄에는 미구에 진달네와 개나리가 피어날거니 아름답다 그 입체미여! 겨울내 알턴 병자도 약 대신에 냉이국을 먹으면 날거같고(후략)”
 
동아일보 1938년 3월 4일자 기사다. 우리 땅의 냉이 캐고 먹는 모양은 백 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다만 연두저고리 분홍치마 누이들 대신 보살들이 일당을 받고 그 일을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냉이 전을 나눠먹고 보살들과 헤어질 시간. 그네들의 엉덩이에 스티로폼 방석이 붙어 있다. 쪼그려 일하니, 허리가 아프고 그 대안으로 몸에 붙들어 매는 방석이다. 눈물이 핑 돈다. 할매 보살들, 허리는 그렇게 굽어왔던 것이다. 겨우내 살려고 방석식물이 되어 납작하게 대지에 싹 띄우는 냉이와 그것을 캐기 위해 허리 굽어가며 방석 앉는 할매 보살들이라니. 
 
돌아오는 찻길, 자욱하던 안개가 걷히고 봄 햇살이 슬금슬금 퍼진다. 아직 찬바람에도 차창을 열었다. 봄이로구나.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스님을 돌아보니, 먼 산을 보신다.
 
 
박찬일
‘문학과지성사’가 운영하는 ‘로칸다 몽로夢路’의 헤드셰프이자 작가.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히트 식당을 열었으며,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는 그가 최초이다. ‘글쓰는 요리사’로 『뜨거운 한 입』,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등 그만의 따뜻한 시선과 감성어린 문장이 돋보이는 책들을 냈다.
 
 
대안 스님의 봄 마중 
냉이표고버섯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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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냉이, 건표고, 우리밀가루, 집간장, 들기름
 
Tip_
냉이는 뿌리가 너무 굵고 질기지 않으며 잎이 짙은 녹색을 띄는 것이 좋다. 잎과 줄기가 자그마하며 향이 진한 것이 좋은 맛을 낸다. 뿌리 쪽의 껍질을 칼로 살살 긁어 벗겨 낸 다음 흐르는 물에 여러 번 헹궈서 요리한다.
 
만드는 법
 
1. 표고버섯을 먹기 좋은 크기로 쪼개 물을 붓고 밀가루와 간장을 넣는다.
 
2. 반죽을 골고루 섞어준다.
 
3. 깨끗이 씻어놓은 냉이를 3~4cm 길이로 잘라넣는다.
 
4. 팬에 들기름을 살짝 두르고 노릇노릇하게 부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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