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동자, 지계바라밀 찾아 삼만리

지계바라밀구법순례행기 持戒波羅蜜求法巡禮行記

2015-02-27     불광출판사

 
나는 선재동자다. 어느 날 부처님의 여러 공덕들을 듣다가 문득 참으로 고苦에서 벗어나 행복의 길로 나가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선재가 묻는다. “행복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행복을 찾으며, 어떻게 그 방법을 닦으며, 어떻게 마음을 원만케 합니까?” 한 스승이 대답한다.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수계식을 받고 계를 지켜 선업善業을 쌓는 것부터 시작해 보거라.” 선업을 쌓는 지계바라밀, 그 가르침을 찾아 구법행을 떠난다.


| 스님, 계란 무엇인가요?

선재동자는 남쪽으로 향하여 수계를 받기로 했다. 재가불자들은 계를 받음으로써 진정한 불자로 거듭난다. “나는 불자다.”라고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는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五戒를 수지하는 것이다. 때문에 불자로 거듭나면 ‘계를 지킨다.’는 의미로 지계持戒를 행한다. 오계는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 불망어不妄語, 불음주不飮酒이다. 

길을 떠나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었다. “수계식 때 무엇을 받으셨나요?” “법명法名을 받았습니다.” 또 물었다. “오계를 잘 지킬 수 있겠어요?” “글쎄요…. 자신이 없네요.” 멋쩍은 웃음만 짓는다. “오늘 수계식도 마쳤고, 부처님 제자도 됐으니 우리 기념으로 술 한 잔 할까?”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계를 지키지 않는 것인가, 지키지 못하는 것인가? 계라는 단어는 이름만 들어도 딱딱하다. 계율을 가르치는 원영 스님(조계종 교육아사리)을 찾아가 지계를 물었다.

“부처님 가르침에서 말하는 계戒는 좋은 습관을 말해요. 지계는 어려운 것이 아니에요. 좋은 습관을 지키는 것, 내 삶의 이야기입니다. 인간으로서 살아가면서 기본적으로 가지고 가야하는 도덕적인 양심을 의미해요.”

계라는 단어에는 거부감이 들었는데, ‘좋은 습관’이라니 의욕이 생긴다. 오계는 지금 시대에 보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도덕적으로 당연한 이야기다. 부처님은 재가불자들에게 자비로운 마음으로 당부를 건넨다. 

“선남자, 선여인아. 불자로 살아가면서,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최소한 이것만은 꼭 지키길 바란다.”


| 나쁜 행동으로부터 멀리하라
우리는 “~하지 마라.”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강제성에 지레 겁을 먹게 된다. 하지만 오계는 ‘강제적 금지’, ‘절대적으로 하지 마라.’, ‘계를 어길 시 처벌을 받는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자랑 박사(동국대 HK연구교수)는 한역경전의 ‘不’에 해당하는 부분이 초기경전에서는 타율적인 금지 형태가 아닌, 나쁜 행위로부터 떠나고 멀리하라는 조언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오계는 자신의 행동을 실질적으로 개선해나가도록, 좋은 방향으로 고쳐나갈 수 있도록 조언한 거예요. 하지만 ‘하지 말라’는 표현에서 오는 거부감이 있지요. 살다보면 벌레도 죽일 수 있고 거짓말도 할 수 있는데 하지 말라고 하니까요. 불교에서 말하는 계는 그런 것이 아니에요. 경전에도 ‘반드시 하지 마라.’라는 표현은 없습니다. 니까야를 읽어보면 그 행동으로부터 ‘떠나라pativirati’, ‘멀리하라veraman.ī’ 라고 표현해요. 나쁜 행위로부터 떠나고 멀리하라는 이야기죠.”

설명을 들으니 능히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이자랑 박사는 남방불교에서 말하는 오계를 들려줬다.

1. 저는 살아 숨 쉬는 존재들에 대한 공격을 삼가는 수행 계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
2. 저는 주어지지 않은 것을 취하는 것을 삼가는 수행 계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
3. 저는 감각적 쾌락과 관련된 비행을 삼가는 수행 계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
4. 저는 거짓된 말을 삼가는 수행 계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
5. 저는 부주의함을 일으키는 술과 마약을 삼가는 수행계율을 받아 지니겠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고통에서 벗어남을 목적으로 한다. 모든 고통은 탐貪·진嗔·치痴 삼독三毒에서 비롯된다. 모든 업은 신身·구口·의意 삼업三業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오계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신구의와 탐진치로 고통을 일으키지 말자는 것이다. 오계란 삼독으로부터 스스로 멀리 벗어나는 상세한 생활지침이자 결의가 담긴 발원문인 것이다.

선재동자는 계에 대한 참뜻을 깨닫고 기뻐 어쩔 줄 몰랐다. 선재는 스승에게 허리 숙여 절하고 다시 남쪽으로 넘어갔다.

 


| 지계바라밀은 ‘배려’다
선재는 남쪽으로 향하며 공부 길에 올랐다. 한 스승이 이야기했다. 

“계를 잘 지켜 지계바라밀을 행해야 한다.” 

지계바라밀은 또 무엇인가. 스승은 지계바라밀을 알려면 대승불교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 위로는 법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이롭게 하라. 대승불교의 큰 가르침이다. 불자로서 기본적인 계를 지키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데 힘써 애쓰고, 맑은 자신으로 타인을 돕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초기경전 『상윳따니까야』와 『맛지마니까야』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게 기쁘거나 유쾌하지 않은 상태는 그에게도 또한 그러할 것이 분명한데, 나에게 기쁘거나 유쾌하지 않은 상태를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겠는가?”

남을 돕는다, 남에게 유쾌함을 준다는 상태는 나의 유쾌한 상태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즉, 좋은 습관들을 지킴으로써 나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혀 이롭게 하고, 그런 내가 타인을 돕는 것이다. 계를 지켜 신구의로 짓는 삿된 행동들을 삼가면, 번뇌 망상을 일으키는 일이 줄어든다. 번뇌 망상이 줄어들면 내가 기쁘거나 유쾌한 상태가 된다. 유쾌한 상태가 되면 남에게 말 한 마디를 건넬 때도 따뜻하고 상냥하다. 그 따뜻한 말 한마디가 상대를 기쁘게 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 말 한마디 안에는 ‘자신을 위해서 하지 마라.’와 ‘자신을 위해서 해라.’, ‘타인을 위해서 하지 마라.’와 ‘타인을 위해서 해라.’의 의미가 동시에 담겨있다.

이렇듯 모두가 함께 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노력이 지계바라밀이다. 그렇기에 지계바라밀은 자신과 타인을 서로 배려하는 행위다.

남 탓만 하는 기사가 쏟아지는 요즘, 지계바라밀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그녀가 내 말을 무시했기에 인질극을 벌였다. 나도 피해자다.”라고 말하는 안산 인질극 사건의 가해자, “조직 문화와 회사의 잘못된 부분들이 만들어진 것은 모든 임직원의 잘못”이라는 대한항공 전무의 자기 반성문 등이 그렇다. 결국 나만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난 문제들이다. 원영 스님은 이 현상을 ‘무한이기주의’라고 보고 이렇게 말한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사회는 사람들이 자기를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자기 자신도 바꾸지 못하면서 남의 허물을 들춰내려는 생각이 더 큰 것 같아요. 사회가 잘못돼서 내가 이렇게 됐다고 하는 것이나, 내가 잘못돼서 사회가 이렇게 됐다고 하는 것이나 다 잘못된 인식입니다. 나의 문제가 먼저인지 사회의 문제가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와 같습니다. 어느 한 쪽이 먼저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바뀌면 우리 사회가 바뀌고, 사회가 바뀌면 나도 바뀝니다. 나와 타인, 사회는 그런 관계입니다.”


| 지계바라밀은 의도가 없다
‘지계바라밀은 무엇인가?’란 질문을 가지고 김호성 교수(동국대 인도철학)를 찾아갔다. 김 교수는 우리 사회에 다시, 지계바라밀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군인, 경찰, 변호사, 판사, 검사 등의 직업을 좇고 있지요. 역으로 그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은 결국 이 세상에 악한 사람, 처벌해야 할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윤리도덕이 잘 지켜지면 범죄가 줄지요. 그런데 윤리도덕이 잘 안 지켜지는 이유는 마음속에 삼독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오계는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기본을 행하자는 말입니다. 도덕적 소양이 갖춰지면 공감할 수 있는 능력, 자비심이 길러집니다.”

지계를 통해 자비심이 길러지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바라밀이 우러나오기 마련이다. 자연스레 상대방에게 자비의 마음을 내는 것, 그것이 지계바라밀이다. 지계바라밀에는 의도가 없다. ‘내가 저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어야지’라고 마음먹는 것이 아니라, 지키려는 생각 없이도 자연스레 행하게 되는 것이다. 오계를 지키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좋은 습관들이 스며든다. 스며든 좋은 습관은 내 안에 떠다니는 잡생각들을 걷어내고 정신을 맑게 해준다. 그리고 행복한 마음을 갖게 된다. 내가 행복하기 때문에 타인에게도 베풀 수 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이 자연스럽게 실천되는 것이다.

선재동자는 생활 속에서 행복에 이르는 법을 생각하며, 그 가르침에 엎드려 절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 새로운 자신만의 계를 만들어라
선재는 다시금 의문이 생겼다. 기본을 충실히 하자는, 사람답게 살자는 아무리 쉬운 ‘계’라도 지속적으로 지켜내기란 쉽지 않다. 굳게 다짐을 하더라도 시간이 흘러가면 의지는 약해진다. 기존에 살아온 ‘습관’의 힘이 강한 까닭에 ‘좋은 습관’을 새로이 가지려면, 자신도 모르게 예전의 습관이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도 있을까. 궁금해졌다. 어떻게 하면 좋은 습관을 기를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좋은 습관을 내 습관으로 만들어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지계바라밀을 이룰 수 있을까? 지계바라밀을 잘 하면 나도 모르게 행복해진다는데,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습관은 반복된 자극에 대한 자동화된 공정이다. 때문에 행동을 하는데 있어 생각과 판단의 에너지가 작동하지 않는다. 오래된 습관일수록 버리기 어려운 이유는 자동화된 습관회로가 그만큼 더 깊고 견고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잘 닦아진 고속도로 같은 길이다. 도로 밖으로 빠져 나오기 쉽지 않다. 그래서 굳은 결심으로 한동안 습관을 끊더라도 약간의 자극만 있으면 슬그머니 원래 습관, 늘 가던 고속도로 길로 다시 가게 된다. 그래서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내가 새로운 습관을 원하는 이유를 포착해 그 이유를 잘 부각시켜야 한다. 김호성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계는 자기 결단이고 실존적인 자각입니다. ‘나는 이렇게 살겠다.’ 입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핵심이 아닙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나는 이렇게 하겠다, 또는 그러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지요. 결단과 확신이 생기면 그것이 가능해집니다. 고에서 벗어나기 위한 스스로의 서원이자 스스로의 다짐이죠. 이는 현실에 접목시켜 이야기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오계를 지키겠다고 노력하며,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서 나름의 계를 세웠습니다. 나의 생활수칙입니다.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고민해서 규칙을 세웠고, 세운 규칙을 이행하니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규칙이 구속이라고 하면 이것은 ‘행복한 구속’입니다. 구속을 통해서 자유로운 마음을 느꼈습니다. 내가 그 규칙을 세우고 지킴으로써 자기 관리를 할 수 있고, 나의 행동을 미리 통제할 수 있습니다.”
김호성 교수가 스스로 세운 규칙은 다음과 같았다. 

1. 적게 벌고 적게 쓴다.
2. 휴대폰을 쓰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 발심한 서원을 1년 넘게 지키면서 삶이 더 행복해졌다고 말했다.


| 계는 행복을 보호하는 울타리
계戒가 몸에 배려면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새로운 습관이 만들어지는 데 3주가 걸리고, 그것을 반사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데 66일, 완전히 자신의 습관으로 만들어지는 데 100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렇기에 지극한 발심으로 세운 계를 어겼어도 실패한 것은 아니다. 계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각은 자신이 어떤 것을 행하겠다고 발원한 순간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방금 한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원인이 된 이유를 제거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계를 어기는 그 순간을 명확하게 알아차릴 때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지한 자기 성찰에 기반을 둔 행동의 반복으로써 달라진 나를 마주할 수 있다. 계가 완전한 자기 습관이 되는 순간, 우리는 오히려 계의 보호를 받게 된다.

스스로 고치고 싶다고 생각한 습관이 있다면, 지계바라밀을 떠올리며 실천하자.

오호 선재善哉라. 선재동자는 부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크게 엎드려 절하고 환희심으로 길을 나섰다. 떠나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그리고 이제 지계바라밀 큰 산 하나를 넘는다. 능선이 켜켜이 쌓인 끊임없는 오르막이지만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 골짜기마다 갖은 난관들이 숨어있지만 오히려 산이 깊어질수록 헤쳐 가는 일이 능숙하다. 굽이굽이 산을 넘자 저 멀리 수미산이 보인다. 당신은 저 산까지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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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다
이창원 (36. 만나주오 템플스테이 참가자)
“우리는 이만큼 보여줄 테니, 참가자들은 올 때 가져왔던 마음을 보면서 정리를 하세요. 자신의 마음은 누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님께서 하셨던 말이 가슴 깊이 남습니다.

나태하고, 일을 뒤로 미루며, 나를 홀대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계기를 통해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찻잔 속에 있으면 찻잔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는 것이에요. 제가 게으르고 나태할 땐 내가 왜 그렇게 나태한 줄도 모르고, 잘 살고 있는지, 내가 가고픈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잘 알지 못했어요. 그런데 한 발짝 나와 저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드니,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행복한 길인지 알아차리게 됐습니다.

사실, 아직 옛날에 미루던 습관과 지금의 모습 사이에 크게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어떻게, 얼마나 열성적으로 지금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냐를 깨닫게 됐어요. 내가 나태함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니, 그 시간들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만의 다짐을 세워 나를 바꾼다는 것이 정말 재미있습니다. 30년간의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좋지 않은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더 좋은 습관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어요. 내가 노력한 만큼 달라질 수 있잖아요. 조금씩 노력하면서, 내가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게 되니 행복을 느낍니다. 마음속으로 어떤 좋은 습관을 행하겠다고 다짐한 순간부터 제 삶은 더 행복해졌습니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단장 진화 스님)은 20·30대 청년들에게 좋은 습관을 기르는 방법을 알려주고자 ‘2030 만滿. 나娜. 주珠. 오吾 템플스테이’를 열었다. 자신을 망치는 아름답지 못한 습관들, 몸을 해롭게 하는 유혹을 털어버리는 방법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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