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가공동체를 생각하면, 깊은 책임감을 갖게 됩니다.”

동학사 주지 유곡 스님

2015-02-27     불광출판사

 

 
 
꽃 같은 나이에 비구니로 1980년대를 통과했다. 세속은 민주주의 열망으로 가득했다. 경전에서 보았던 중생의 고苦는 눈앞에서 너무나 선명하게 휙휙 지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가난은 삶을 옥죄고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경전을 읽지만, 경전 밖의 또 다른 경전이 더 눈에 밟혔다. 거리는 낯선 경전이었다. 최루가스 자욱한 곳에서 집회에 참석한 대학생들보다 더 앞에 섰다. 누구는 그것을 ‘현실참여’라 했다. 그러나 스님에게는 체감된 문자반야文字般若다. 속제俗諦이지만, 진제眞諦인 것이다. 
 
 
| 세상을 연민했던 마음은 어떻게 흘러왔는가?
시간이 흘렀다. 2015년 1월 10일, 유곡 스님을 만났다. 승납은 30년을 훌쩍 넘겼다. 소임은 동학사 주지다. 사미니 교육도량인 동학사승가대학이 있는 곳이다. 25년 만에 돌아왔다. 세상을 연민했던 마음은 어떻게 흘러왔을까?
 
“아직도 그때 마음은 그대로 있습니다. 다만, 그 대상이 옮겨갔다고 할까요? 후학들입니다. 제가 동학사승가대학이 있는 절의 주지이기도 하지만, 주지를 오기 전에도 도반스님들을 만나면, 늘 화제는 후학들입니다. 우리가 출가하고 공부할 때는 수행자로서의 롤모델이랄까요? 닮고 싶은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느덧 제가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내 스승들처럼 후학들에게 롤모델이 되고 있는가? 나를 비롯해 우리들은 후학들에게 매력있는 수행자인가? 또 후학들에게 우리 승가공동체가 매력있는가? 또 매력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책임의식 같은 거죠.”
 
조용하며 단호하다. 동안童顔 때문인지 20대의 유곡 스님이 얼핏 보였다 사라진다. 비구니 스님 특유의 정갈함이 몸에 배어있지만, 거리에 의연하게 서 있었던 습習은 그대로다. 
 
출가 전 조계사 수선회修禪會에서 열심히 참선했다. 열심히 하니, 총무를 시켰다. 총무를 보면서 수선회 인원이 많이 모였다. 모두 원력이 높았다. 참선해 부처가 되겠다고 발심했다. 그 때 함께 참선했던 도반들 중 30여명이 2~3년 사이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출가했다. 
 
스님도 1982년 가을 출가했다. 유곡 스님은 부처가 되려면 중생의 고통과 아픔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배웠다. 생각하면 바로 실천이다. 하루 한 끼만으로 몇 달을 살았다. 배고픔을 알아야 배고픈 중생의 아픔을 알기 때문이다. 겨울 산속 사찰에서 내복없이 겨울을 보냈다. 추위의 고통을 알아야 중생의 고통을 알기 때문이다. 출가자는 대자대비하고, 중생의 고통을 알아야 한다. 수행자는 그러해야 한다고 믿었다. 21살, 연민의 나이다. 
 
 
| 매력있는 승가공동체가 되려면
지금 유곡 스님은 두 가지 생각으로 가득하다. 하나는 후학들이고, 다른 하나는 승가공동체, 비구니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이다. 오랜만이다. 후학, 공동체, 책임의식, 이런 단어들. 지금은 세속도 그러하고, 종교계도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가 아닌가. 제각기 살아나갈 방법을 꾀한다. 세속은 이미 우리 삶의 전체를 이 단어가 지배한다. 교계도 그러하다. 사찰의 공공성이 약화되고 있고, 스님들의 기본적 생활은 개인에게 떠넘겨져 있다. 사찰경제는 어려워지고, 공동체는 개별화로 팍팍하다.  
 
- 후학, 공동체, 책임의식 이런 단어는 요즘 스님들 사이에서는 잘 안 쓰는 단어죠.(웃음) 
 
“(잠시 생각하며) 음…. 우리 스스로 어느덧 개별적 삶을 살아온 결과죠. 스님들이 절에 소임을 맡으면, 잠시 머물다 가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함께 사는 공동체 이 현재의 공간이 중요한데….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 아니죠. 우리가 단 한 철을 소임자로 사는 것도 삶의 전부죠. 그럴 때에 책임감이 생깁니다. 그냥 소임살고 가는 곳이 아닙니다. 어디에 가든 그렇습니다. 현재가 삶 전체인 거죠.” 
 
스님은 비구니다. 공동체, 책임의식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은 비구니계에서는 드물다. 한국불교에서 비구니스님들은 승가공동체의 한 축이지만, 한편으로 역할과 위상은 설자리가 좁다. 그래서다. 유곡 스님의 이런 이야기는 낯설지만, 반갑다. 스님은 처음에 후학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후학 이야기를 하면 공동체를 말하게 되고, 공동체란 단어가 나오면, 책임의식을 꺼내게 된다. 모두 연결된 고리인 것이다. 떨어질 수 없다.  
 
- 여성불자들이 출가할 수 있는 매력있는 승가공동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최근에 출가한 행자와 학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 승가공동체는 답변할 수 있는 것이 아직은 별로 없어요. 부처님 법 하나 보고 출가하니 기특하고 대견하죠. 문제는 우리 승가공동체가 불자들에게 매력적이냐 하는 거죠. 승가공동체가 매력있어야 하는데…. 계속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죠. 도반스님들이 모이면 이런 이야기로 늦도록 토론합니다. 원인이 많으니까 영역별로 나누어서 계속 연구할 수밖에 없어요. 현재는 그렇죠. 다만, 제도적인 부분만 보면, 출가연령을 낮추는 것을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물론 부처님법이 평등하기에 출가를 막을 수는 없겠죠. 다만,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다른 방식의 출가제도를 도입해서 차이를 둘 필요가 있습니다. 수행, 봉사 등 별도의 출가수행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하고, 출가 연령을 대폭 낮추어 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현행과 같은 출가제도로는 새로운 승가공동체의 길을 제시할 수 없을 겁니다.”
 
 
3.png
 
 
| 우린 후학들에게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출가제도의 다양화는 지금도 계속 논의되고 있는 주제다. 말하자면 현재 50세까지 출가할 수 있는 제도를 고령자출가, 청년출가, 소년출가 등으로 다양화하여 출가수행자의 역할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이는 현실적인 측면이 크다. 종교의 권위가 사라지고, 성직자로 오는 이들은 불교뿐 아니라 타종교에도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었다. 승가공동체가 출가하는 이들에게 매력을 줄 수 있는 공동체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몇 년 전부터 교계 내외 안팎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청년출가학교’에서 강의했던 한 스님은 20대 청년에게 출가하라고 적극 권유하는 것이 때론 망설여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승단 내에서 청년의 초발심을 한 단계 더 성숙시켜줄 수 있는 문화가 정립되어 있는지 의문 때문이다.  
 
스님은 비구니 승가공동체를 말했다. 굳이 ‘비구니’ 승가공동체라는 표현을 쓴 것은 한국불교 교단에서 승가공동체는 곧 비구 승가공동체와 동일한 용어이기 때문이다. 한국승단에서 비구니스님들은 공론의 장에서 오랫동안 배제되어 왔다. 안타깝지만 그런 흐름이 꽤 오랫동안 흘러왔다. 이는 승단 자체의 시스템 문제이기도 하지만, 비구니스님들 스스로 이를 풀어가려는 노력을 해왔는지는 살펴볼 일이다. 제도 문제에는 제도 너머 또다른 문제가 존재한다. 특히 진리의 공동체인 승가에는 진리의 문제가 더 크게 자리한다. 비구니 승가공동체 문제도 제도와 함께 비구니 승가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가치, 이런 문제를 폭넓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는 것도 중요한 것 아닐까. 
 
“그렇죠. 후배들에게 참고 살아라. 우리가 이렇게 살았으니, 너희도 이렇게 살아가라, 이런 말을 언제까지 해야 하죠? 비구니스님들은 무엇을 해야 하나? 어쩌면 그것이 더 근본일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계속되고 있는가. (비구니스님들의) 무관심이 아닐까요? 우리 스스로 이런 일이 계속 변화없이 간다면 어떻게 (여성)후배들에게 출가하라고 권유할 수 있을까요? 현재 승가공동체에 비구니가 정서적으로 배제되어 있는 것도 문제죠. 먼저 우리 비구니스님들 스스로 이를 풀어가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왜 비구니 문제가 내 일이 아닌가요? 우리가 이런 디딤돌이 되어야하겠죠. 충분히 공론화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내려고 합니다.” 
 
 
| 비구니 승가공동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야기는 승가공동체로 넘어갔다. 교계 중진 이상의 비구니스님들은 비구니 승가공동체에 대해 깊은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 책임의식은 현재 비구니 승가공동체의 현실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 하나로 최근 전국비구니회와 열린비구니회모임의 갈등이다. 최근 교계 언론에 보도되면서 그 내용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드러난 현상은 조계종 제16대 비구니 직능대표 종회의원 선출 문제로 시작되어, 전국비구니회 집행부 불신임, ‘한국비구니의 청정성 회복과 승가상 확립을 위한 공청회’ 등으로 이어졌다. 이 문제는 한국불교에서 중요한 기점이다. 근대 한국불교에서 비구니공동체가 처음 본격적으로 공론화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갈등의 구조로 나타났지만, 그 본질은 “한국 비구니공동체를 어떻게 할 것인가?”란 문제의식이 저변에 있다.    
 
“겉으로 보면 갈등으로 나타났지만, 한국 승가에서 비구니공동체에 대한 논의가 거의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의미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비구니공동체가 한국 승가에서 어떤 지향을 가져야 하는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것이죠. 단순히 집행부를 바꾸고, 제도를 바꾸고 그런 것이 본질은 아니죠. 물론 전국비구니회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죠. 이것을 넘어 좀 더 본질적인 것이 있어요…. (잠시 숨을 고르며) 저도 어느 순간 승가공동체의 기성세대가 되어 있습니다. 후학들이 저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답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 어렵네요….”
 
스님은 도반들과 자주 만나 토론한다. 아직 찾지 못한 것을 찾기 위해. 한국사회는 종교가 절대가치가 아니다, 우리 비구니들은 앞으로 어떻게 할까,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이야기한다. 최근에는 『법화경』을 다시 읽고 있다. 그 중 마음을 치는 것이 있다. 자비慈悲, 인욕忍辱, 법공法空 이런 단어다. 출가수행자가 되어 대자비심으로 일하고, 설령 욕을 얻어먹는다면 인욕하고, 항상 공심公心으로 일한다는 것. 그렇게 노력하면 답은 거기에 들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지금, 동학사는 후학을 위한 불사가 진행 중이다. 35년만이다.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도 주지로서 꼼꼼하게 살림을 챙겼다. 갚아야 할 빚이 늘었지만, 오로지 후학만 생각했다. 올 가을에 불사가 마무리 되면 후학들은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공간에서 수행 정진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과 미래를 열어가는 승가교육의 혁신도량. 스님이 만들고자 하는 교육도량이다. “공부하고 싶은 분들은 동학사로 오세요.” 이 말씀을 꼭 전해달라고 했다.  
 
10년 후 유곡 스님 모습은 어떤가요? 하고 질문을 던지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계속 이런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어디에 있든. (웃음)”
 
 
 
ⓒ월간 불광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