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크의 길, 사람의 길

강 린포체(수미산) 가는 길 – 둘

2015-02-27     만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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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사이에 흰 눈 펄펄 내려 
 
奇岩高聳白銀團
매화와 명월을 어찌 비교하리 
梅花明月何能比
첩첩이 거듭거듭 차갑고 또 차갑네 
疊疊重重寒更寒
- 나옹혜근懶翁惠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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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색 은빛이 된 황금평원

선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온통 흰 색, 가벼운 현기증이 몸을 흔든다. 잠시 눈을 감는다. 물소리, 바람소리, 눈을 밟는 소리, 야크의 방울소리, 그리고 까마귀 울음소리, 소리들만 평원에 풍성해진 느낌이다.

사진을 통해서 기억 속에 저장된 셀숑Sershong 평원의 풍경은 가운데 라 츄(La Chu, 神川)가 흐르고 녹색초원에 야크 떼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으며 순례자들의 유심을 무심으로 바라보는 환상의 공간이었다.

셀은 티베트어로 황금을 뜻하고 숑은 접시 혹은 병을 일컫는다. 황금접시 모양의 평원, 황금 같은 귀중한 가치를 지닌 장소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셸숑은 티베트 문화권에서 사원이나 지명에 널리 쓰이는 말이다. 셀숑 평원 안에, 비로소 성지의 입구임을 알리는 강니 초르텐Kangni Chorten, 해마다 부처님 오신 날이면 티베트인들의 염원을 담은 타르쵸를 높이가 24미터에 달하는 큰 기둥에 매달아 세우는 장소인 달포체Darpoche, 그리고 대성취자인 마하싯디들의 천장터天葬垈, 최초의 사원인 최꾸곰파Choku Gonpa가 있으니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황금보다 귀중한 성지라 할 만하다.

보통 황금은 깨달음을 성취한 붓다의 고귀함을 상징해서 붓다의 몸은 황금빛이고 모시는 곳은 금당이며 말씀은 금구성언이라 일컫는다. 수행의 제련과정을 거쳐 순정한 황금으로 탈바꿈한 존재를 붓다라 한다면 제련과정을 거치지 않은 금광석의 상태를 중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본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붓다나 중생이나 황금성黃金性을 지니고 있는 동질이형同質異形이다. 이분화된 가치의 관념체계–중생과 부처, 번뇌와 보리, 윤회와 열반 등–를 좀 더 제련한다면 부처와 중생이 차별이 없고 생사가 즉 열반이라는 공성空性을 얻을 수 있고 이것은 백색에 가깝지 않을까? 이 황금평원이 지금은 온통 백색 은빛 평원으로 바뀌었다.

풍경이 은빛으로 단순화되면서 시선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눈이 쌓이지 않아 선명한 풍경이 눈앞에 드러나 있었더라면 풍경에 초점을 맞추느라 마음이 부산을 떨었을 터인데 내려놓으니 여유가 생긴다. 성스러운 곳은 성스런 행위가 발현될 때 성聖이 유지된다. 성소이기에 성소가 아니고 제련의 불꽃이 발화되고 용광로가 되어 순금이 현시될 때 그곳이 성소이다. 따라서 살아있는 모든 존재의 치열한 삶의 현장이 성소이다. 역설적으로 성소 아닌 곳은 아무 데도 없다. 중생이 부처가 되고 본질적으로 중생과 부처가 차별이 없는데 삼라만상이 법신이고 성소가 아니겠는가.

직시하면 지금 나는 미망에 놓여 있는 중생이고 안목이 깊지 않아 성소라고 하는 곳을 봐도 깊은 울림이 없고 성자가 옆을 스쳐가도 알아보지 못한다. 성스럽고 위대한 것은 본다고 만난다고 바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평원의 성스럽고 위대한 존재들은 어차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그러한 경지에 다다르면 어느덧 곁하고 벗하고 있을 것이다. 가볍게 나를 달래고 풍경을 스쳐간다.

 

| 그 곳으로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눈이 쌓여 길은 미끄럽고 아직 진눈깨비는 내리고 성스러움은 가볍게, 발걸음은 진중하게, 마음 다지며 내딛는 걸음. 날씨와 길이 한 눈 팔지 못하게 한다. 흰 설원에 짐을 싣고 가는 야크의 느릿한 걸음과 색색의 순례자들의 옷 색깔이 길을 인도한다. 몇 사람을 앞지른다. 뿌연 하늘 멀리 천막이 몇 동 보이고 말과 오토바이 사람들이 어른거린다. 순례자들을 상대로 하는 첫 번째 쉼터다. 도착해서 수유차를 주문하고 점심을 꺼내 간단히 요기한다. 따뜻한 차 한 잔, 숨이 풀린다.

좌측으로 곰파가 보인다. 절벽이 순하게 각도를 바꾸어 흘러내리는 곳에 자리한 최꾸곰파다. 뒤에 있는 봉우리 이름이 넨리Nyenri여서 최꾸넨리곰파라고 늘이어 부른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잠시 생각을 점검한다. 사전에 최꾸곰파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알고 왔기 때문에 꼭 들러보고 싶은 곰파였다. 집중해 바라보니 곰파를 오르는 길에 누군가 있다. 천천히 눈 쌓인 길을 오르고 있다. 신심 깊은 이 지역 불자이리라. 가고 싶은 생각이 몇 번이나 일었다 앉는다. 결국 접기로 했다. 오늘 목적지까지 길의 상태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눈길을 걸을 때 평소보다 몇 배 힘이 든다. 갈수록 눈은 깊어지고 고도는 높아지고 걸음은 느려지고, 다음 기회에, 못내 아쉽다.

흔히 파콜이라고 하는 바깥 코라(Out Kora)는 거리가 53킬로미터에 달한다. 도중에 네 개의 사원이 있는데 첫 번째 사원이 최꾸곰파이다. 13세기에 까규바에 속하는 괴창빠 스님이 개창한 가장 오래된 사원이다. 최꾸곰파는 우리말로 하면 법신사法身寺다. 티베트 불교는 삼귀의 대신 사귀의四歸依를 한다. 붓다의 법통을 이은 스승, 즉 살아있는 붓다에 대해 제일 먼저 예를 올린다.

라마라 깝수치오 근본스승에게 귀의합니다
상게라 깝수치오 붓다에게 귀의합니다
최라 깝수치오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게둔라 깝수치오 승가에 귀의합니다

법을 뜻하는 최에 몸을 뜻하는 꾸를 합쳐 법신이 되는 것이다. 활불活佛을 뚤꾸라고 하며 뚤은 뱀이 허물을 벗어버리듯 중생에서 부처로 즉 완전체로 변화된 몸을 말한다. 최꾸와 뚤꾸, 티베트 불교의 비밀한 무엇이다.

최꾸곰파에는 세 가지 보물이 있다고 한다. 붓다의 말씀을 상징하는 은으로 장식된 소라 고둥, 붓다의 몸을 상징하는 구리 주전자, 그리고 붓다의 마음을 상징하는 법신불, 강 린포체를 순례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기억하고 참배하기를….

 

| 너는 내려가라, 나는 오른다

오늘의 목적지는 디라푹곰파Dira Phug Gonpa이다. 암 야크 뿔 동굴사원이란 뜻을 가진 디라푹곰파는 해발 5,000미터가 넘는 고지에 자리하고 있다. 가는 길, 발걸음이 무거워지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출발할 때 흐린 날씨에 진눈개비까지 내려 선크림을 바르는 둥 마는 둥 했더니 얼굴이 벌겋게 익어버렸다. 아예 선크림을 바르지 않은 가이드와 라싸에서 대학에 다니다 합류한 스님은 얼굴이 완전히 홍당무다. 그 스님은 나중에 설맹雪盲까지 와서 달첸에 내려와 병원치료를 받기도 했다. 비가 오더라도 눈이 오더라도 강 린포체의 강렬한 자외선은 비켜가지 않음을 명심.

야크 떼가 길을 따라 내려온다. 나는 암 야크 뿔 동굴사원을 향해 가는데 야크는 내려온다. 뭔가 조짐이 좋지 않다. 야크가 내려올 때는 야크도 생존할 수 없는 자연의 변화가 있음이 분명하다. 서식환경이 해발 4,000미터 이상이 되어야 하는 야크의 몸짓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둔중한 몸놀림, 지면만 보고 일생을 마친다는 야크에 대한 상식은 인간의 무지하고 가벼운 측량이다. 야크의 감각은 이 대지의 흐름과 궤를 함께한다. 그래서 무시할 수 없다. 여기 오기 전 내가 살고 있는 숲속에 친구들의 가르침이다.

생각의 늪이 생각보다 깊다.

그래! 가고 오는 것이 본래 없지만 너는 내려가라 나는 오른다. 너는 내려가도 다시 오를 것이고 나도 오르다가 다시 내려갈 것이다. 하나의 길 다른 방향, 나는 사람이고 너는 야크다.

 

만우 스님

계룡산 갑사로 출가했다. 해인사 강원에서 잠시 수학하고 월간 「해인」 편집위원과 도서관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미황사 부도암 한주로 머물며 히말라야를 여행하고 돌아와 낯선 곳에서 만난 낯익은 삶에 대한 특별한 기록들을 정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