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주치의] 우울증, 왜 약으로 낫지 않을까?

2015-02-27     강용혁

우울증은 정말 마음의 감기일까? 감기에 감기약을 먹듯이, 그냥 우울증 약만 먹으면 낫는 병일까. 그렇다면 이렇게 쉽고 간단한 병인데, 왜 그토록 수많은 현대인들은 우울증으로 힘겨워하는 것일까. 그야말로 모순이다.

 

| 마음의 감기 vs 마음의 도피행각

“10년째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는 40대 여성 A씨. 상담 결과 시댁과의 갈등이 원인이었다. 빠듯한 남편 수입에 시어머니와 시동생의 돈 요구를 감당하느라 매번 머리가 아프다. 장남인 남편은 ‘착한’ 아들과 형 노릇을 한다는 생각에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최근에는 최신형 냉장고를 갖고 싶다는 노모의 말 한마디에, 남편은 A씨가 반찬값을 아껴 모은 비상금을 줘버렸다.

그러나 남편이 이렇게 잘 해주고도 늘 돌아오는 것은, 왜 더 못해 주느냐는 원망이다. 남편 또한 만성두통과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있었다. 또 수년전부터 시동생은 그나마 하던 일마저 힘들다며 아예 놓아버린 채 형에게 의존한다. 시어머니는 일찍 사별한 남편 대신 큰 아들을 의지하며, 재물을 많이 얻어내는 것을 사랑으로 착각한다. 대신, 이에 힘겨운 며느리는 눈엣가시 취급이다.

그러나 A씨는 성정이 여려 적극적으로 힘겨움을 표현하고 해소하질 못했다. 대신 우울증으로 도망쳐버린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고 여긴 순간부터 우울증이 자기 삶의 주인자리를 꿰차버린 것이다. ‘차라리 아파 몸져 누워버려야, 이 꼴 저 꼴 안 본다.’는 무의식이다. 결국 A씨는 “아픈 곳이 하나 둘 늘기 시작해 지금은 안 아픈 부위를 찾는 것이 더 빠를 정도.”라고 말한다. 10년째 약을 먹어도 마음의 감기라던 간단한 병이 낫지 않았던 이유다.

무엇보다 시급한 치료는 자신들의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는 것이다. A씨는 ‘나는 우울증이 있어서….’라고 결론내린 채, 약으로만 도피해왔다.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남편은 ‘나는 가족에게 희생적이고 착한 사람인데, 주변에서 모두들 나를 힘들게 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울증은 약만 먹는다고 치료되지 않는다. 잠시 약기운에 취해 있을 뿐이다. 또한 밝은 음악을 듣거나, “마음을 긍정적으로 가지세요.”라는 단순 지지만으로는 본질적 치료가 안 된다. 정확한 원인을 알아야 치료가 가능하다. 원인을 모른 채 ‘그냥 우울증이니까’라고만 덮어버린 채 약만 먹고 살면, 알코올중독이나 약물중독과 무엇이 다른가.

쇠에서 생긴 녹이 쇠를 먹어 들어가듯, 우울증이 내 삶을 통째로 녹슬게 한다. 현명한 우울증 치료는 “지혜로운 사람은 은세공이 은에 묻은 때를 벗기듯이 차례차례 자기 때를 벗긴다.”라는 법구경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

 

| ‘나는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불러오는 착시현상

A씨도, A씨 남편도 모든 문제와 괴로움이 외부로부터 들어온 것이라 착각한다. 다른 우울증 환자들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상대나 세상이 나에게 상처 줬다.’라는 분노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곤 ‘상대와 세상이 바뀌어야 내 우울증도 낫는다.’는 착시현상이 일어난다. 그런데 ‘상대와 세상은 아무리 기다려도 하나도 바뀌지 않으니, 결국 내 우울증도 낫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여기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 채, 그저 우울증 약만 붙들고 지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대나 세상은 결코 내 입맛대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편리와 이익을 좇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바뀔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자신 뿐이다. 내 안에 이미 그런 능력은 존재한다. 문제는 선입견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이다.

A씨 부부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주변이 아닌 바로 나 자신부터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내 마음의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A씨의 경우 마음의 때를 벗기는 것은, 한마디로 ‘착하게’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교를 비롯해 동양의 현인들이 말한 ‘착함(善)’이란 무엇일까. 상대방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고 맞춰주는 것일까. 착하다는 것은 ‘적절한’ 것이고, 악惡하다는 것은 ‘모진’ 것을 의미한다. 가뭄에 농작물에 물을 주는 것은 착한 것이고, 장마철에 물을 더 주는 것은 뿌리마저 썩게 만드니 모질고 어리석은 짓이다.

단순히 ‘물을 준다.’는 행위 자체가 착한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중용의 미덕에 부합하느냐가 착하고 악한 것의 기준이 된다. 남편의 행위는 시와 때의 구분 없이 무조건 물만 주면 착한 행위라고 착각한 것이다.

남편은 착한 사람이라는 자기만족과 위안에 취해있었던 것이다. 아내인 A씨의 힘겨움도, 동생의 지나친 의존심도, 노모의 노욕도 모두 다 자신의 모진 마음에서 비롯된 일임을 몰랐던 것이다. A씨의 남편 입장에선 이런 평가가 섭섭하고 억울할 수 있다.

그러나 선현들이 제시한 선악의 관점에서 이것이 과연 착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상대의 탐욕은 오히려 내가 죽을 각오를 하고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이 진정 선하고 현명한 것이다. 그래야 나도 편하지만, 상대도 탐욕이 덜해진다. 이 부부야말로 ‘사즉생死卽生 생즉사生卽死’의 각오가 해법이다.

A씨 부부가 단호하게 대처했더라면, 시동생은 오히려 자립적 태도를 취하고 노모의 노욕 역시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빼앗기듯 100을 주면 상대는 100에 감사하기는커녕, 왜 200은 못 주냐며 적반하장과 탐욕을 내보이기 쉽다. 법구경에도 “황금이 소나기처럼 쏟아질지라도 사람의 욕망은 다 채울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차라리 ‘10밖에는 못 준다’며 애초에 단호하게 임하다가 꼭 필요해 보일 때 10을 더 주면 ‘감사하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를 모른 채 끌려 다니기만 했으니 A씨는 우울증으로 도피하게 된 것이다. 또 남편은 희생하고도 가족 모두로부터 섭섭하다는 소리만 듣게 된 것이다.

 

| 우울증, 놓쳐버린 마음자리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오직 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불가의 가르침처럼, 우울증의 근원 역시 나로부터 비롯된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기처럼 상대와 세상 때문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결국 내 마음이 게을러질 때 내 마음 안에서 자라나오는 것이다.

A씨 부부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화의 근원은 A씨 부부에게 존재하고 있다. 다행히 3개월 정도의 한방치료만으로 10년간 복용하던 우울증약도 끊을 수 있었다. 한약이 좋아서라기보다 그동안 자신들의 모질었던 태도를 돌아보는 노력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는 것이 어찌 불가의 가르침뿐일까. 사상의학에서 우울증은 지독한 마음의 게으름이 빚어낸 결과라고 말한다. 자신이 놓쳐버린 마음자리를 되찾으려는 노력이 게을러질 때, 우울증은 우리 삶을 잠식한다. 이제마 선생은 “자기 마음을 책하는 자는 맑아질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탁해질 것(責之者淸 不責者濁).”이라며 “무릇 질병 또한 내 성정의 치우침을 바로 보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는 사상의학의 핵심을 전했다.

공자 역시 “군자는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불가에서도 “거짓된 나를 죽여서 더 큰 나, 참 나(眞我)를 얻는다.”는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동서고금의 현인들의 한결같은 메시지다.

우울증! 참 쉽지 않은 병이다. 치료방법이 없어서가 아니다. 환자 스스로가 내면에 갖고 있는 선입견과 착시 때문이다. 주변에 안 좋은 일 때문에 우울증에 빠진다는 착각이다. 그래서 밖에서만 원인을 찾기에 제대로 낫질 않는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현대인의 병폐를 3가지로 꼽았다. 첫째, 종일 말을 하지만 진리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것, 둘째, 호기심이 많아 종일 돌아다니지만 진리는 한 번도 보지 못하는 것, 마지막으로 형이상학으로부터의 전락이다.

현대인의 우울증 치료 현실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정신과 마음이라는 형이상形而上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몸과 물질 차원에서만 접근한다. 진짜 원인을 분석하기보다 항우울제라는 물질의 소비 대상으로 인간의 신체가 존재한다. 감기약 먹듯이 우울증 약을 마구 소비해달라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간절한 바람이 담긴 선동적 문구가 바로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는 슬로건이다. 이것이 마치 진리인양 퍼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러나 우울증은 몸과 약의 문제 이전에 정신과 마음의 문제다. 또한 삶의 자세와 기세의 문제다. 상대나 세상이 아닌 나 자신의 마음에서부터 원인을 찾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극복될 문제다.

 

강용혁

마음자리한의원 원장. 한방성정분석연구회장. 前 「경향신문」기자, 現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낮에는 한방정신과 환자들을 진료하고 밤에는 환자들에게서 전달받은 삶의 과제를 선현들의 지혜로 풀어보는 글을 쓰는 한의사. 저서로는 『사상심학』, 『닥터K의 마음문제 상담소』, 『체질, 척보면 안다?』, 『마음을 스캔하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