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전하는 부처님 마음

광림사 주지·사회복지법인 연화원 이사장 해성 스님

2015-01-29     불광출판사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면, 처처에 아나율과 주리반특이 있다. 부처님의 10대 제자인 아나율은 맹인이었고 16성 아라한인 주리반특은 한 문장도 외우지 못하는 지적장애인이었다. 허나 이들은 자신들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장애를 딛고 일어나 깨달음의 반열에 올랐고, 그 깨우침의 중심에는 부처님의 자애로운 말 한마디가 있었다. 서울 도심 속 법당 광림사에 가면 장애인들의 불편함에 귀 기울여 먼저 알아차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함께 할 수 있도록 법회를 열며, 직업재활교육으로 그들의 손 맞잡고 세상으로 나오는 길을 안내하는 해성 스님이 있다. 스님의 보시행에는 보시란 마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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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가 되고 눈이 되는 아름다운 손

“특별히 장애인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귀가 들리지 않든, 눈이 보이지 않든, 몸을 마음대로 가누지 못하든 우리는 모두 부처님 제자이니까요. 모두 부처님 제자이니 부처님 법문도 함께 공부해야 하지 않겠어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상구보리 하화중생,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이기에 그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했다는 해성 스님. 1992년 도심포교당 광림사를 세우고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장애인들을 위한 포교와 복지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스님의 열정어린 활동을 바라보면, 보시바라밀행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의 보시를 받게 된다.


재물로서 타인을 돕는 재시財施, 법을 전하는 법시法施, 그리고 두려움을 나누고 거두어가는 무외시無畏施. 그 중에서도 스님의 무외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듣지 못하는 이에게는 귀가 되어주고,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눈이, 걷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다리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매주 일요일 목탁 대신 북의 진동을 가지고 집전하는 수화법회를 진행하며 스님이 직접 수화로 법음을 전하고, 한 달에 한 번은 법당에 안내견 도우미 보살과 함께 앉아 시각장애인 법회를 진행한다. 혼자서 움직일 수 없는 지체장애인들과는 시간을 맞추어 자원봉사자와 자원봉사차량과 함께 주기적으로 성지순례법회를 다녀오기도 한다.


“어느 날 TV를 보는데 수화로 노래하는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수화를 배워 스님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수화를 시작했어요. 배우다가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 때 청각장애인분들이 노래 하나라도 더 배우고 가라며 직접 과외까지 해주시더라고요.”


굳이 개인지도까지 해주며 스님을 잡았던 것은 자신들 곁에 부처님 가르침이 함께 하기를 바랐던 마음. 청각장애인을 위한 법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분들의 이야기는 스님의 마음을 두들겼다. 그렇게 1993년 첫 수화법회가 봉행됐고, 한참동안은 청각장애인만을 대상으로 법회가 진행됐다. 하지만 맞닿을 인연은 언젠간 반드시 만나게 되는 법. 도움을 주는 사람 없이 흰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서 광림사를 찾아온 한 분의 발원이 2011년부터 한 달에 한 번,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법회를 열도록 인연을 이끌었다. 고귀한 인연은 또 다른 인연을 만들어, 시각장애인 법회를 봉행할 때마다 법산 스님이 마음을 내어 법문을 해주셨다.


한 번 시작한 일에는 무섭게 몰두하는 해성 스님의 열정은 그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스님의 원력을 담아 또 한 번 빛을 발했다. 2014년 11월, 점자 금강경을 세상에 나오게 해 시각장애인들에게 한 권의 빛이 되어 준 것이다. 청각장애인들은 눈으로 책을 읽으며 법회를 따라갈 수 있지만, 시각장애인들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빌려서 음성으로 듣고 외워 독경할 수밖에 없던 현실에 끊임없이 고민하던 스님의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이제는 시각장애인들도 스님이 작년에 발간한 점자 법요집과 교리집으로 법회 의식을 수월하고 여법하게 진행하고, 손끝으로 직접 점자 금강경을 봉독하며 부처님 가르침을 함께 배울 수 있게 된 것이다. 법회에 함께하는 불자들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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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길을 열어준 스님의 원력

스님의 활동영역은 비단 법회만이 아니다. 스님의 명함에 적혀있는 스님의 직함만 해도 광림사 주지, 사회복지법인 연화원 대표이사, 서울시북부노인병원법당 지도법사, 연화직업재활원 원장, 수화 통역사로 다섯 가지나 된다. 불교가요 음반을 두 장이나 낸 가수이기도 하다. 스님이자 한글 선생님, 수화 선생님, 운전면허・꽃꽂이・압화 강사, 호스피스 활동 등등. 슈퍼우먼이 따로 없다.


“청각장애인들과 함께 법회를 하다가 한글을 같이 공부하게 됐어요. 수화를 모르면 대화를 하기 어려워 가족들과 사이가 서먹한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가족에게 편지를 써보자고 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문자로는 한글 문장을 잘 구사하지 못하더라고요.”

 

수화는 명사와 동사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조사와 존칭어에 대한 개념들이 명확하게 인지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부처님 가르침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사회에서 편안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광림사를 세운 이듬해 1993년부터 청각 장애인의 배움터 연화복지학원을 개원하고 한글교육부터 운전면허취득 등 사회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교육들을 함께 하기 시작했다.


“운전을 하는 청각장애인 중 50% 이상이 무면허라고 해요. 한글 실력이 부족하다보니 이론 시험에 나오는 ‘틀린 답을 고르시오’ 같은 문제들에 대한 이해도가 낮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운전하는 차에 타보면 그렇게 편안할 수 없어요. 방어 운전이라고 하지요. 아주 기가 막힙니다. 경적소리는 진동으로 전부 알아차리고요. 면허증을 딸 수 있게끔 도와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길로 연습용 자동차를 사러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큰스님들을 찾아가 자동차를 마련하는 데 도움을 부탁드리기도 하고, 일일찻집을 열어 모은 기금으로 차를 장만했다. 그리고는 장만한 차를 송파구청에 그대로 기증했다. 타종교인이라도, 스님과 연이 닿지 못한 더 많은 청각장애인들도 청각장애인 운전 교습용 차량으로써 운전면허시험에 도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둔 것이다. 면허가 생기니 일자리의 폭이 넓어진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점차 직업재활학교에 대한 생각도 확장하게 됐다. 머릿속은 온통 ‘좁은 공간에서도 할 수 있는 일과 어느 단체에 소속되지 않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라는 생각뿐이었다. 이런 원력들을 모아 2003년에는 사회복지법인 연화원을 개원하게 됐고,연화원을 개원하면서부터 직업재활에 대한 아이디어에 더더욱 박차를 가했다.


“오늘 배워서 내일 쓸 수 있는 상업적인 것을 해보자고 했어요. 그래서 꽃꽂이를 직업재활에 적용시켰습니다. 학교 입학식, 졸업식, 어버이날 할 것 없이 꽃다발을 만들어 같이 팔러 다니기도 했어요. 이제는 연화원에서 전국 꽃 배달 서비스 ‘소리플라워’를 운영하며 전국적으로 꽃 배달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꽃꽂이를 가르쳐 상품을 만들고, 정상적으로 면허를 취득해 운송을 하는 시스템. 일자리를 창출하고 생활 능력을 키워 사회활동을 할 수 있게 한 것이었다.


꽃꽂이를 하고 자잘하게 남는 꽃도 허투루 버리지 않았다. 꽃을 가공해 압화 엽서, 압화로 장식한 인테리어 상품, 소품, 식기 등을 만들어 판매를 하고,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장애인들이 연화원을 나가서도 자립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길을 열어주었다.


스님은 화두같이 항상 떠올리던 고민들로 큰 자본 없이도 능력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었고, 장애인들의 일자리 영역을 넓혔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스님의 원력으로 시작된 일들이 ‘장애인도 할 수 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에게 심어주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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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려와 사랑에서 출발하는 보시바라밀

“사실 장애인 불자들이 신행활동을 하기란 쉽지 않아요. 요즘은 많이 개선되고 있지만,지체장애인들이 사찰 화장실을 가려면 한 사람당 4명이 휠체어를 붙들고 들어가야 할 때도 있었어요. 기 독교만 해도 장애인 전용 교회나 장애인 목사님들이 많이 계세요. 하지만 한국불교계에는 아직 장애인을 위한 단체들이 열악한 것이 현실입니다. 특수교육시설도 타종교에서 위탁받아 운영하는 것 외에는 불교계에서 운영하는 곳이 한군데도 없어요. 부처님 법과 함께하는 특수학교가 생기면 좋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장애인 불자들이 신행활동을 하는 데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스님이 직접 활동하면서 느껴온 고충의 깊이가 여실하게 드러났다. 불교계에 장애인 불자들을 위한 단체와 교육시설이 부족하다는 점을 비장애인으로서 크게 관심을 갖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시작하지 못했다는 사람들도 있다.


스님은 내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 드는 일이면 어떤 일이든 쉬운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했다. 길 가는 할머니의 짐을 들어드리거나, 폐지 줍는 어르신들 리어카 한 번 밀어드리는 일. 병원 법당 같은 곳에 찾아가 아픈 환자들 손 한 번 잡아주고 경전을 읽어주러 가거나, 점자책을 만들기 위해 책의 원문을 타이핑해주는 일 등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모두 보시행이라는 것이다.


『금강경』에는 삼천대천세계의 칠보로써 보시를 하는 것보다 사구게의 경 한 줄만이라도 남에게 읽어주는 것이 더욱 공덕이 크다는 구절이 있다. 진정 함께 하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편견의 시선을 내려놓고 눈 한 번 마주치는 일, 따뜻한 마음으로 손 한 번 잡고 온기를 나누는 일이 중요하다는 해성 스님. 누구보다도 사람을 사랑하는 스님을 보며 삶 속에 녹아있는 보시바라밀이란 타인을 향한 배려와 사랑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비로운 손, 환한 미소를 지닌 스님이 전한 말이 가슴에 일렁거렸다.


“이웃과 항상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부처님 제자의 역할이지요. 보시란 거창한 것이 아니에요. 어려운 것도 아니고요. 집에서 가족들에게 따뜻한 말과 표정을 짓는 것이 보시입니다. 그리고 이웃들에게도 부드러운 말을 건네는 것이 보시지요. 있는 자리에서 항상 마음을 내어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보시바라밀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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