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의 동남풍을 일으켜라

대불련 총동문회 백효흠 회장

2015-01-29     불광출판사

 

『삼국지』를 읽은 사람이라면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로 적벽대전을 꼽는 이가 많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제갈량이 한 순간에 바람을 바꿔 동남풍을 일으키는 장면은 적벽대전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라고 하겠다. 절대 불리했던 싸움의 분위기를 바꾸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여기, ‘제갈량의 동남풍’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있다.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이하 대불련) 총동문회 백효흠 회장이다. 

| ‘영맨’에서 사장까지 오른 현대차의 신화
대불련 총동문회는 1967년 ‘한국학사불교회’라는 이름으로 첫 발을 뗐다. 긴 역사를 이어오며 대불련의 자부심과 긍지를 자랑해왔지만, 몇 번의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던 것도 사실이다. 2013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끝이 보이지 않는 위기의 터널 속에서 해결사로 등장한 인물이 백효흠 전 현대자동차 사장이다. 그가 대불련 총동문회를 이끌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어느덧 취임 1년여가 다 되어가는 즈음, 백효흠 대불련 총동문회장을 만났다.

백 회장은 2014년 12월 말 현대자동차에서 정년퇴임했다. 알고 보면 그는 현대자동차의 영업사원에서 시작해 사장까지 역임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51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난 그는 경상대학교 축산학과를 졸업했다. 순전히 ‘농사지을 종자돈’을 만들기 위해 1977년 현대자동차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다고 한다. 지금은 ‘영맨’이라는 속칭으로도 불리는 가장 밑바닥 영업직. 하지만 백 회장은 현대자동차 국내영업부문에서 숱한 신화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 앞에는 늘 ‘판매왕’이라는 타이틀이 따라붙었다.

그가 승승장구할수록 현대자동차 내에서의 입지도 파격에 가까울 만큼 빠르게 상승했다. 밑바닥 영업직에서 시작해 국내영업본부 영업지원사업부장을 거쳐 상용국내사업부장, 베이징현대기차(北京現代汽車) 판매본부장, 베이징현대 총경리, 현대자동차 부사장에 이어 현대자동차 사장까지. 그는 현대자동차가 중국 내에서만 연 100만 대를 팔 수 있는 기틀을 잡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백 회장이 대불련 활동을 시작한 계기는 다소 독특했다.

“본래 불교와 인연이 깊었던 집안이었어요. 어머니께서 딸 넷을 낳고 아들 하나만 더 낳게 해달라고 기도하러 다닌 절이 고성 청련암입니다. 저도 그 절에 참 많이 다녔습니다. 그러다 재수하던 시절 해인사 약수암에서 대학생들이 3,000배 하는 모습을 봤어요. 얘기를 들어보니 대불련 학생들이래요. 그때 그 모습이 어찌나 부럽던지…. 그래서 대학에 합격하자마자 대불련에 가입했어요.”

그는 학창시절 대불련 활동을 참 열심히 했다. 특히 한국사학계의 대표적인 학자였던 故 김상현 교수와 막역한 사이였다. 대불련 활동을 같이 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성지순례도 참 많이 했다고 한다. 그 시절 다져놓았던 불자로서의 자부심은 그가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아주 큰 디딤돌이 됐다.

대불련에 대한 백 회장의 애정은 매우 깊었다. 대불련 총동문회가 총동문회와 전국동문회 두 쪽으로 갈려 위기를 맞은 시점에 그가 소방수의 역할을 맡은 것도 애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백 회장은 대불련 총동문회가 좋지 못했던 시기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기를 꺼려했다. 안 좋은 모습을 자꾸 들추기보다는 화합과 앞으로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러온다는 생각이다.


| 15만 동문의 가슴을 파고들어라
“2017년이면 대불련 총동문회가 창립 50주년을 맞아요. 면면히 이어오는 동안 우여곡절도 많았고, 똘똘 뭉쳐서 단합해 나아가는 시기도 있었죠. 반면에 모래알처럼 다소 분열이 있던 시기도 있어요. 오랫동안 활동을 이어오며 시대에 부응하지 못한 부분도 있고요. 하지만 대불련 동문들을 만나보니 모두에게 열정이 느껴졌습니다. 그 열정이 다른 이에게는 부정적으로 보이는 과정도 있었겠죠. 어쨌든 모두가 과정 아니겠습니까. 제가 총동문회를 맡고 나서부터는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대불련을 응집시키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불련 총동문회는 모든 코드가 ‘화합’에 맞춰져 있다. 그가 총동문회장 직을 맡고 가장 먼저 서두른 것도 양쪽으로 갈라진 총동문회의 통합이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결국 2014년 4월 불가능해보였던 통합을 성공시켰다. 하지만 백 회장은 더 이상 ‘통합’이라는 말을 쓰지 않기로 했다고 못을 박았다. 이미 둘이 아닌 하나인 까닭이다. 이제는 총동문회라는 우산 밑으로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대불련 출신들을 끌어 모으는 게 주된 목표다.

현재 대불련 총동문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회원 수는 1,600명 선이다. 그러나 전국에 흩어져 있는 대불련 출신 회원의 수는 15만 명 정도으로 추산된다. 이들을 모두 불러 모을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수면 위로 이끌어내는 게 총동문회의 과제다. 우선 당면한 목표는 회원 수를 3,000명까지 모아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분위기다. 대불련 총동문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상승세를 타고 3,000명의 회원을 모아내면 입소문을 타고 5,000명에 이어 1만 명까지 이어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게 백 회장의 생각이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빛이 나기 마련이다.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의 동남풍이 그랬던 것처럼 때가 되면 바람의 방향은 바뀔 것이다. 백 회장은 그런 미래를 그리며 만면에 웃음을 머금었다. 동창회 활동에 최적이라는 ‘밴드BAND’ 어플리케이션에 대불련 총동문회를 개설한 것은 동남풍을 일으키기 위한 방편 중 하나다. 이미 ‘밴드’ 개설 소식은 입소문을 타고 상승세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중국에서의 성공 경험은 대불련 총동문회를 이끌어가는 데에도 큰 자산이다. 

이렇게 모인 대불련 동문들은 1년 중 5~6차례 전국 각지로 성지순례를 다닌다. 성지순례는 대불련 동문들이 하나로 응집할 수 있는 단결의 장이 되고 있다. 올해도 종로 대각사, 부여 고란사, 논산 관촉사, 하동 쌍계사, 인제 백담사 등 6회에 걸쳐 성지순례를 떠날 예정이다. 과거 백 회장이 중국시장을 공략할 당시 사용했던 ‘13억 중국인들의 가슴을 파고들어라’는 슬로건은 이제 ‘15만 동문들의 가슴을 파고들어라’가 되어 조금씩 바람의 방향을 바꿔가고 있다.

“우리의 목표는 신행활동과 후진양성이에요. 한국불교의 문제 중 하나가 재가불자의 노령화잖아요. 젊은 불자 육성은 시급한 문제예요. 2007년에 ‘사단법인 대불’이라는 단체를 만든 것도 그런 이유죠. 체계적으로 자금을 만들어 젊은 불자를 양성하자는 겁니다. 4년째 상・하반기 1,200만 원씩 2,500만 원 정도를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주고 있어요. 또 군에 입대한 대불련 학생이나 군에서 맺은 인연으로 제대 후 대불련에 가입하는 학생들을 생각하면 군포교도 소홀히 할 수 없지요. 현재 대학 동문들끼리 총 32개 팀을 만들어서 전국의 군법당을 맡아 군포교를 하고 있어요.”


 


| 대불련의 재건을 위해 동문들의 힘을 모으다
대불련 총동문회를 움직이는 것은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어렵다. 백 회장을 중심으로 정용학 사무총장이 힘을 보태고 있으며 이은래 상임감사, 홍종표 수석부회장, 전명철 수석부회장, 일휴 구도위원장 스님, 김관태 기획위원장 등이 주축이 되어 운영위원회를 통해 총동문회를 운영 중이다.

현실을 바로 보고 조직을 재정비하는 일도 현재 총동문회 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주요한 사업이다. 현재 대불련 총동문회는 발전위원회를 만들어 20명의 소위원회를 가동하고 있다. 그 안에는 대불련 회장과 지도위원 2명도 포함된다. 최근의 대불련 회장단도 모두 포함시켰다. 이 자리에서 대불련 선후배들은 머리를 맞대고 대불련의 위상이 하락세인 원인을 분석하고 앞으로의 로드맵을 만든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가감 없이 토론하면서 대불련의 미래를 다시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다.

조직 재정비의 일환으로 대불련 지부・지회도 조정 중이다.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이름만 남아 있는 지부・지회를 정리하고 실질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곳들을 집중해서 지원하겠다는 의지의 일환이다. 지난 2014년 12월 초에도 5개 지부 27개 지회를 취하했다. 현재는 22개 지부 144개 지회만 운영되고 있다. 물론 앞으로도 지부・지회를 줄여가기만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지부장이 있거나 동문들을 통해 회생의 가능성이 있는 곳은 남겨두고, 취하된 지부, 지회라도 재학생들이 모여 다시 회생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현실에 맞는 활동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각 대학의 불자 교수들을 대불련의 활동 구심점으로 삼는 방안이나 동문들의 힘을 모아 대불련이 자립할 수 있는 구조로 체질을 바꾸는 방안은 그런 고민 속에 나왔다. 이제는 대불련 동문들이 주머니를 풀 수 있는 사회적 위치가 됐다. 굳이 여기저기 손을 벌리지 말고 십시일반 힘을 모으면 충분히 자립할 수 있다는 게 체질 개선안의 골자다. 2017년 총동문회 50주년을 즈음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동문회관을 만들 수 있는 방안도 추진되었으면 하는 게 백 회장의 구상이다. 넓은 기존 사무실은 세를 주고 현재는 작은 사무실로 옮겨 비용을 절감하고 있는 백 회장이지만 동문회관 안에서 대불련과 총동문회, 교수불자회까지 관련 단체들이 함께 도우며 사는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현재 진행 중인 동문 발굴과 참여 독려 등의 기반 조성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전국적인 동문 모임이 활성화되는 게 중요하다.”며 “활성화라는 전제가 성립되면 다양한 해법들을 진행할 수 있는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어렵고 먼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백 회장은 결코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순리에 따라 당장 해야 할 것과 멀리 내다보고 해야 할 것을 구분해 하나씩 성과를 내고자 했다. 대불련 총동문회 사무실에서 나오는 길, 왠지 조만간 동남풍이 불기 시작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 회장과 맞잡았던 손에서 느껴진 신뢰감 때문일까. 젊은 불자들의 화수분이었던 대불련의 재건, 요원할 것만 같던 그 일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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