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려면 둘이서 가라

2015-01-29     불광출판사

어떤 것에 대해 미운 마음을 품거나 자기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해서 꼬치꼬치 캐고 들거나 속상해하면서 세월을 보내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은 거란다.
- 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 중에서

| 끌림, 결혼, 이별
“빨리 가려면 혼자서 가고, 멀리 가려면 둘이서 가라”는 말이 있다. 요즘 들어 부쩍 인생길을 둘이서 함께 가겠다고 소식을 전하는 친구들이 있다. 아무리 애쓴다 해도 누군가에게로 향하는 마음은 막는다고 해서 막아지는 게 아닌 모양이다. ‘마음 가는 곳이 곧 인연’이라더니, 인간의 끌림이란 자신의 모든 것을 상대에게 주게 만드나보다. 그래서인지 결혼을 앞둔 신부는 마냥 아름답다. 사랑함으로써 점점 더 성숙해지더니, 사랑받음으로써 자기 안에 잠들어있던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 장점이 깨어난다. 한동안 축 쳐져있었는데, 이제 보니 사랑만이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가보다.

청첩장을 받은 지 며칠 후, 대구 은사스님 절에 행사가 있어 가게 되었다. 내려가는 길에 역에서 택시를 탔는데, 초췌한 기사님이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사연인즉, 몇 달 전 사랑하는 아내가 떠났다는 이야기다. 아내를 간병하기 위해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5년 8개월 동안 곁을 지켰지만, 결국 아내는 저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평소 워낙 사이가 좋았던지라 아내를 떠나보낸 뒤, 그냥 따라 죽고 싶은 심정뿐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자식들 생각해서 살아야지 싶어 겨우 정신 차리고 택시 일을 시작했는데, 이 일조차 손에 잘 안 잡혀 그날 내가 두 번째 손님이라고 했다. 벌써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시간이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자제분에 대해 물어봤다. 딸만 둘인데, 하나는 결혼을 했고 하나는 직장을 다닌다고 했다. 너무 외롭고 힘들어서 혼자 사는 둘째 딸에게 들어와서 아빠랑 같이 살자고 전화를 했더니, “아빠, 나도 사생활이 있잖아.”라고 했다나. 전화를 끊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며 말씀을 하면서도 기사님은 울먹였다. 자식들 키워도 다 소용 없다면서 크게 내쉬는 한숨이 몹시 속상한 눈치였다. 듣고 있던 나도 혀를 찼다. “쯧쯧, 저런 저런. 각자 사정이야 있겠지만, 그래도 아버지한테 그렇게까지 말하는 건 아니지.” 안타까운 마음 가득했지만, 부디 다시 힘내서 열심히 살아가시길 부탁드리고 택시에서 내렸다. “스님, 부끄러운 얘기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마지막 말이 뭉클하게 가슴 한 구석에 남았다. 

사랑하는 이들이 보금자리를 이루고 함께 살다보면 서로에게 힘이 되는 건 부부뿐이란다. 오래 살고 보면, 자식도 소용없다는 얘길 어르신들께서 곧잘 하신다. 『본생담』에서는 “부부 사이야말로 인간관계의 기본이다. 그 기초 위에서 자식과의 관계가 성립되고, 이어서 형제, 상하관계가 성립된다. 그러므로 그 기초가 올바르다면 나머지 인간관계는 잘못될 것이 없다.”고 했다. 부부관계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타는 듯한 격정으로 서로 사랑하여 결혼했어도 살면서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존엄함을 놓친다면, 그들은 함께 살면서도 이별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사랑하는 마음이 존재한다면, 또 그것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 편안한 관계유지의 비밀
결혼에 관한 농담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50년을 행복하게 살아온 부부에게 그 비결이 뭐냐고 묻자,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결혼생활이 얼마나 많은 인내를 요하는 것인지 잘 알려주는 얘기다. 처음 이 얘기를 듣고 한참을 웃었으나, 말한 사람의 표정을 보니 왠지 농담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혹시 이거 본인 얘기 아니세요?” 그러자 눈을 지그시 감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서 더 웃었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강연을 끝내자 보살님 몇 분이 인사하며 다가왔다. 상담요청이었다. 자신에 대한 집착이 심각한 남편 때문에 괴로워하는 분, 병든 자식을 키우는 일이 너무나 힘들어 포기하고 싶다는 분, 남편의 외도를 속상해 하는 분 등등. 각각의 사연이 참으로 기구하고 안타까워 상담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지만, 대개의 트러블이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 경우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소한 감정싸움을 제대로 풀지 않고 시간을 끌다보니, 작은 상처 위에 다시 상처가 덧씌워지고, 그것이 채 아물기도 전에 또다시 다른 상처들이 생기면서 점점 엉킨 실타래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어디서부터 치료하고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 모르는 지경에서야 사람들은 도움을 청했다. 

출가한 내가 결혼생활에 대한 조언을 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우습지만, 그래도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있어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수준에서 얘기해주곤 한다. 그 가운데 편안한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두 가지 정도만 여기서 말해볼까 한다. 

첫째, 결혼생활에서도 사회생활과 같이 ‘황금률’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황금률이다. 배우자를 하인처럼 대하면 자신도 하인이 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누구나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기를 꿈꾸며 결혼했다. 특히 결혼 전에 배우자를 고를 때,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켜줄 상대를 찾느라 정신없다. 하지만 옷장에 수많은 옷들이 걸려있어도 입을 만한 게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처럼, 결혼적령기의 사람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도 내 맘에 드는 짝을 찾기 힘들다고 말한다. 다행히 자신을 아껴줄 만한 배우자를 골라 결혼한다 해도 너무 많은 기대와 의지로 실망은 커져가고, 환멸과 불평불만만 늘어간다. 잠깐 사이에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왕처럼, 왕비처럼 대접받고 싶다면 내가 먼저 배우자에게 그렇게 대해야 한다. 

둘째,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니체는 “결혼생활은 긴 대화다.”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결혼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라고 한다. “늙어서도 이 사람과 대화를 잘 나눌 수 있을까?” 사람들이 결혼하고 한 둥지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긴 대화라는 것이다. 부부 사이의 침묵은 가정의 행복을 조금씩 갉아먹는 좀벌레와도 같다. 처음엔 별로 티가 나지 않지만, 알아채고 나면 이미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다음이다. 손쓸 방법이 없다. 그러니 대화하고 또 대화해라. 그래야 서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어떻게 살아갈지 둘만의 인생을 그릴 수 있다. 


| 괜찮아, 뭐가 문제야
아무리 사랑해서 결혼해도 사람은 누구나 고독하다. 이렇게 깊은 겨울엔 더욱 그렇다. 혼자 살아도 둘이 살아도 고독하긴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리고 출가자로 일생을 홀로 사는 사람도, 결혼해서 가족을 이루고 살던 사람도 노년기엔 누구나 혼자가 된다. 노년의 고독은 젊은이의 고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다 들었다. 그럴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인간은 다 혼자인 것을. 부처님 말씀처럼, 태어날 때도 혼자서 오고 죽을 때도 혼자서 가며, 괴로움도 혼자서 받고 윤회의 길도 혼자서 간다. 모든 인간이 생로병사를 혼자서 겪어야만 하는 운명이다. 

아내를 먼저 보낸 운전기사님처럼, 어느 한쪽이 먼저 떠난 사람은 가슴에 큰 구멍이 생기고, 구멍은 머지않아 인생의 늪이 되고 만다. 발버둥 치면 칠수록 빠져나오기는커녕 더 깊이 빨려 들어가는 그런 고립의 늪 말이다. 홀로 있음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고통은 더욱 커져만 가고,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삶은 무력해지고 파괴되어 가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선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영혼에 상처가 나 가슴에 구멍이 생길 때, 바로 그 구멍을 통해 빛이 들어옵니다.”라고. 아픔이나 상처로 인해 난 구멍을 통해 우리는 다시 인생을 배우고 희망의 빛이 그곳을 통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인간의 고독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혼자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성찰할 때, 오히려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어쩌면 고독은 자기만의 인생을 살기 위해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감정일지 모른다. 세계적인 등반가 라인홀트 매스너는 이런 고독을 ‘흰 고독’이라고 불렀다. 낭가파르파트에서 동생을 잃은 후 그는 히말라야 8천 미터가 넘는 산을 혼자서 넘었다. 홀로 떠나기 전날 밤, 그는 호텔 방에서 장비를 점검하며 울었다. 무서워서 울고 외로워서 울었다. 몇 년 전, 산에서 잃은 동생이 생각나서 울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이기에 짊어져야 했던 절대고독의 상태에서 그는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회고했다. 

“지금은 혼자 있는 것도 두렵지 않다. 이 높은 곳에서는 아무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지탱해준다. 고독은 더 이상 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고독 속에서 분명 나는 새로운 자신을 얻게 되었다. 고독이 정녕 이토록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지난날 그렇게도 슬프던 이별이 이제는 눈부신 자유를 뜻한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체험한 흰 고독이었다. 이제 고독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닌 나의 힘이다.”

혼자 있는 시간들이 더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고, 삶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혼자인 것을 두려워하고 외로워한다. 스스로 불행해지는 원인으로 만들어버린다.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2015년이 또다시 시련과 고독의 시간을 선사한다 해도 자신의 내면에 얘기해주어야 한다. ‘괜찮아, 혼자면 어때. 뭐가 문제야.’


원영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아사리(계율과 불교윤리 분야). 운문사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선원 안거 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2008년 「대승계와 남산율종」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대승계의 세계』, 『계율, 꽃과 가시』, 『인생아, 웃어라』 등이 있다. 현재 BBS불교방송 ‘아침풍경’을 진행하고 있으며, 중앙승가대학교 외래교수로서 강의와 다양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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