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주치의] 피로사회의 전염병, 소진증후군

2015-01-29     윤대현

어느 날 찾아오는 마음의 허무감, 정말 내 삶이 허무해서일까? 자꾸만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나 막상 떠나도 마음에 안식은 오지 않는다. 왜일까? 이럴 때 혹시 뇌의 감성 에너지가 방전된 것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 나도 소진증후군일까?

마음의 에너지가 다 방전된 상태를 ‘번아웃 신드롬burn-out syndrome’이라 한다. 뇌의 에너지가 다 타버렸다는 것이다, 우리말로 소진증후군이라 한다. 소진된 개인이 모이면 피로사회가 된다, 역으로 피로한 사회는 개인을 소진시킨다. 개인과 사회시스템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다 보니 소진된 마음이 전염병처럼 늘어나고 있다. 소진된 마음은 근사한 사람에게서 근사한 마음을 빼앗아간다.

소진증후군이 찾아오면 세 가지 문제가 뚜렷하게 찾아온다. 먼저 의욕이 떨어진다.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의지를 동원해서 애써 봐도 동기 부여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성취감이 떨어진다. 노력해서 무언가 목표를 달성해도 만족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감 능력이 현저히 결여된다. 공감은 남을 위로하는 능력이면서 내가 남에게 위로받는 능력이기도 하다. 내가 지쳤을 때 상대방에게 따뜻한 감성 에너지를 받아 충전을 해야 하는데 주는 것은 고사하고 받는 것도 잘 안 되는 마음 상태가 되는 것이다.

‘다 때려치우고 어디로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스트레스성 뇌 피로증의 2단계 합병증이다. 요즘 전보다 사람들을 만나는 대신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이 많고, 주말에도 집에 틀어박혀 시체놀이를 주로 하고 있는가? 회사든 사업이든 정리하고 조용한 곳에 내려가 쉬고 싶은가? 심리적 회피 반응이 온 것이다. 사람은 스트레스 원인에서 멀어져 자신을 지키려는 방어기제를 갖고 있는데 이를 심리적 회피 반응이라 한다. 단기적으로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것이 장기화될 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요인과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두 가지 컬러의 한 객체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실연을 크게 한 여성이 심리적 회피 반응으로 스트레스 요인인 남자를 멀리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상처 치유와 마음 안정에 도움이 되나 이것이 1년 이상 길어지면 이성과의 관계에서 사랑받는 느낌을 다시 느끼기 어려워진다. 이처럼 장기간의 회피 행동은 행복을 주는 요소와의 결별을 의미한다. 행동하지 않으면 그 행동이 주는 행복을 느낄 수 없다.

회피 행동이 길어지면 3단계 합병증이 나타나니 바로 행복에 대한 내성이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스트레스성 뇌 피로증은 현대인에게 암 이상으로 아찔한 문제이다. 이전에 즐거웠던, 행복했던 일들이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행복 과학의 연구 결과는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소소한 것에도 잘 반응하는 뇌를 가진 사람들이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진된 뇌는 일상의 행복은 잘 못 느끼게 되고 계속 ‘큰 것 한 방’만을 찾게 된다. 그런데 강도 큰 자극은 더욱더 내성을 일으켜 점점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뇌 상태를 만들어 버린다.

 

| 뇌의 충전시스템을 발견하라

소진된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뇌 안에 있는 충전 시스템을 활성화해야 한다. 열심히 살라 채찍질 하는 스트레스 시스템과 더불어 뇌에는 연민 시스템이라는 충전 시스템이 있다. 스트레스 시스템이 “아직 멀었어. 더 달려가. 아직은 쉴 때가 아니야.”란 메시지를 준다면 연민 시스템은 “넌 이미 근사해. 좀 쉬어가.”라는 메시지를 준다. 균형이 깨져 스트레스 시스템만 작동하면 소진이 오게 된다.

연민집중치료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뇌의 연민시스템을 활성화하자는 내용이다. 그런데 들어보면 그 방법이 허무하다, 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나를 촉촉하게 위로해 줄 수 있는 좋은 관계 자주 갖기,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시간 갖기 그리고 좋은 문화콘텐츠와 만나기. 다 아는 이야기고 심심한 내용들이다. 그런데 막상 내 삶을 보면 이런 것들과 멀어져 있다.

열심히 살다가 지쳐 병원을 찾아오신 분들께 “스트레스 관리 어떻게 하세요?”라 물으면 우물쭈물 대답 못하시는 분들이 대다수이다. 고민하다 “전 술도 못 먹습니다.”라 이야기하는 남자 분들도 있다. 그럼 말을 바꿔 다시 물어 본다. 어떤 취미를 갖고 있는지를. 대답하시는 분들이 정말 없다.

취미란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젊은이들은 소개팅 할 때 묻는 말이라 생각하고, 앞만 보고 살기 바쁜 직장인들은 팔자 좋은 소리, 또는 시간적・경제적 여유만 있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열심히 살며 경제적・사회적 여유를 가진 분들 중에도 취미가 전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취미는 돈과 여유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삶의 목표의 반은 취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취미는 어떤 활동 이전에 하나의 능력이다. 취미의 사전적 의미와 같이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취하는 능력 말이다. 집에 비싼 홈씨어터를 설치하지 않아도 문화콘텐츠에 대한 취미력이 개발만 되어 있다면 우리는 쉽게 문화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인생의 반이 성취를 위해 열심히 달리는 것이라면 나머지 반은 취미여야 한다. 열심히 달릴 때 뇌의 에너지는 방전된다. 그래서 뇌에 에너지를 다시 충전시켜야 한다. 운동에 지친 근육세포는 가만히 두면 회복이 되지만 뇌는 가만히 두는 것으로는 잘 충전이 되지 않는다. 뇌의 충전은 뇌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세상에 있는 아름다움에 뇌가 즐겁게 반응하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진정한 취미의 역할이다.

그런데 취미를 담당하는, 뇌 안의 ‘노는 시스템’을 잘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뇌 안에 있는 ‘일하는 시스템’이다. 뇌를 이완시키고 즐겁게 하려 하면 불안을 증가시킨다, ‘네가 이럴 때냐? 이래서 성공하겠나?’라며. 그러나 성공의 중요한 한 축인 창의성은 노는 뇌에서 나온다. 성공을 위해서라도 즐겁게 ‘취미’ 해야 한다.

디지털 세상을 주도했던 실리콘밸리의 경영자들 사이에 ‘disconnect to connect’, 즉 ‘연결을 위한 단절 훈련’이 유행이다. 마음에 자유를 주는 마인드 바캉스 훈련인 것이다. 바캉스의 어원을 보면 ‘자유를 찾는다.’라 되어 있다. 마음의 자유를 정신의학적으로 설명하면 ‘detachment’, 즉 ‘거리를 둠’이다. 맹렬히 작동하던 전투 시스템의 스위치를 잠시 끄고, 한 발짝 치열한 삶에서 거리를 두고 떨어져, 뇌를 이완시키고 충전시스템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밀려오는 외부 정보와 전투를 벌이는 스트레스 시스템이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있는 것이 현대인의 뇌 상태이다. 스트레스 시스템만 계속 작동되면 충전 없이 뇌의 에너지만 소진이 되어 버리고 결국 번아웃 증후군이 찾아오게 된다. 그래서 하루에 10분이라도 외부 정보와의 연결을 끊는 단절 훈련을 하는 것이다. 외부 정보와의 전투를 잠시 내려놓을 때 내면의 감성충전 시스템의 스위치가 켜지게 된다. 뇌는 충전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Tip 1.

소진증후군 체크 리스트

1. 맡은 일을 수행하는 데 정서적으로 지쳐 있다.
2. 일을 마치거나 퇴근할 때 완전히 지쳐 있다.
3. 아침에 일어나 출근할 생각만 하면 피곤하다.
4. 일하는 것에 심적 부담과 긴장을 느낀다.
5. 업무를 수행할 때 무기력하고 싫증을 느낀다.
6. 현재 업무에 대한 관심이 크게 줄어들었다.
7. 맡은 일을 하는 데 소극적이고 방어적이다.
8. 나의 직무 기여도에 대해 냉소적이다.
9.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쾌락을 즐긴다.
10. 최근 짜증, 불안이 많아지고 여유가 없다.

이 중 3개 이상 해당되면 소진증후군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Tip 2.

마음 충전법 | 연결을 위한 단절 훈련

세 번 깊게 호흡하며 그 호흡의 흐름을 느끼기 : 출근해서 컴퓨터 켜지는 동안, 회의 시작 전, 또는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호흡의 흐름을 느끼며 마음을 느껴본다.

조용한 곳에서 밥 음미하며 먹기 : 음식의 색깔, 향, 그리고 밥알의 움직임을 느끼며 먹는 ‘slow eating’도 내부세계에 집중하는 데 좋다.

하루 10분 사색하며 걷기 : 여유롭게 몸의 움직임을 느끼는 경우 뇌의 긴장감을 이완시키고 내 마음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긴다.

일주일에 한 번 벗과 힐링 수다하기 : 지치고 불안한 마음은 스스로를 바라볼 여유를 가지지 못한다. 공감 수다만 한 위로가 없다.

슬픈 영화나 슬픈 작품 주 1회 감상하기 : 즐겁고 재미있는 내용으로 마음을 조정하는 것을 기분전환이라 하는데 기분전환만 주로 쓰다 보면 내 마음의 슬픈 콘텐츠를 바라보는 능력이 줄어들게 된다.

일주일에 3편의 시 읽기 : 마음은 논리보다 은유에 움직인다. 은유에 친숙해지는 것은 내 마음을 바라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스마트폰 집에 두고 당일치기 기차 여행하기 : 기차 창문을 멍하니 보다 보면 명상 효과가 일어나고 내 마음을 바라보는 힘이 자라난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한국자살예방협회 대외협력위원장을 역임했다. 출근 시간대에 MBC 라디오 ‘윤대현의 마음연구소’를 진행하고 있으며 「중앙일보」에 ‘윤대현의 스트레스클리닉’ 칼럼을 연재중이다. KBS TV ‘아침마당’에서는 정신건강에 도움을 주는 도서를 제안하는 고정패널로 출연하는 등 다양한 매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