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이란 누구인가?

2014-12-30     불광출판사

‘이웃’은 특수한 관계다. ‘나’ 혹은 ‘우리’에 속하지 않으면서 가까이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웃은 협동·협력을 통해 상생하는 관계일 수도 있고 때로는 가장 심각한 현실적・잠재적 위협일 수도 있다. 사르트르의 희곡 「빈 방」에 등장하는 대사 중에 “타인은 지옥”이란 말은 인간이 ‘나’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해 느끼는 가장 적나라한 감정을 드러낸 말이다. 즉, 이웃은 가장 친한 ‘친구’일 수도 있지만 또한 가장 적대적인 관계일 수도 있다. 



| ‘나’는 관계로서 존재한다

이웃관계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세계관의 문제다. 그간 인류의 역사가 이를 실증한다. ‘제국주의’적 세계관에서 ‘이웃’이란 욕망의 대상이었고 그 욕망은 침략과 식민지화로 실현되었다.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이웃은 교화와 선교의 대상일 뿐이다. 문명론적 세계관에서만이 아니라 개인의 세계관에서도 마찬가지다. “타인은 지옥”이라는 언급 또한 타인을 자신의 자유와 실존을 위협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세계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상생相生과 ‘모두 함께의 행복’은 누구나 바라는 현실이다. 인간의 탐욕을 과장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만 잘 살면 된다’거나 ‘나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이기심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기심도 인간의 본성이지만 이타심 또한 인간성의 일부다. 이기심이 작동하고 타인을 자신의 욕망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유일하게 자신의 생존과 행복을 보장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타인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고 타인의 생존이 나의 생존을 보장한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또 경험한다면 타인과 이웃을 대하는 인간들의 행동은 이타적이 될 것이다. 상생과 ‘모두 함께의 행복’만이 서로의 지속가능한 생존과 행복을 보장해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불교가 바라보는 세계의 실상은 연기緣起의 세계다.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은 우리에게 이웃이란 적대적 관계이거나 ‘제로섬 게임’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친구이자 동반자라는 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연기란 모든 존재가 서로 연관되어 존재함을 의미한다. 연기의 세계에서 나의 존재는 다른 존재에 의존해 있으며 다른 존재가 없으면 나의 존재도 없다. 나는 고립적 개체가 아니라 다른 존재와 연결되어 있는 관계로서 존재한다. 무한한 관계의 그물망에서 모든 존재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 연기의 세계에서 반목과 대립은 바람직한 생존의 방식일 수 없다. ‘저것’을 부정하는 것은 ‘이것’을 부정하는 것이요, ‘남’을 부정하는 것은 곧 ‘나’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내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남을 인정해야 하며 나를 이롭게 하기 위해서는 남을 이롭게 해야 하는 것이 연기적 세계에서의 살아가는 방식이다.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에서 이웃이란 단지 인간끼리의 관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나’ 아닌 모든 것에 의존해 있으며 그 모든 것과의 관계로부터 나의 존재가 가능하다. 나는 인간을 포함하는 모든 다른 생명에 의존하고 있으며 산, 강, 나무, 풀 등 자연세계에 마찬가지로 의존하고 있다. 또한 연기의 세계에서 내 존재가 의존하고 있는 이웃은 ‘지금’의 이웃만이 아니다. 과거 그리고 미래의 이웃이 모두 나의 이웃이 된다. 현재란 과거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지속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은 나의 이웃을 시공간으로 무한히 확장하여 바라보게 해 준다. 


연기적 세계관을 아름답게 형상화 한 것이 바로 화엄세계의 인다라망(因陀羅網, Indra’s net)이다. 인다라망은 본래 천신天神 인드라Indra의 궁전에 드리운 주렴을 말한다. 이 주렴을 엮고 있는 수천수만의 구슬들은 서로가 서로를 비추면서 그 비추어진 것이 또 다시 다른 것을 비추고 있다. 그리하여 하나의 구슬에 모든 구슬이 들어 있고 다시 모든 구슬에 그 하나의 구슬이 들어있는 모습이다. 화엄의 세계에서 인다라망은 우리 존재가 서로서로 연관 되어있는 ‘관계의 그물망’을 의미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에서 보자면 각 개별 존재는 본원적으로 평등(相卽)하며 상호의존(相入)하고 있다. 또한 인다라망은 개별 존재와 전체와의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하나의 구슬에 모든 구슬이 들어 있는 것처럼 개별 존재는 전체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전체이다.  



| ‘나’는 곧 세계이며 세계는 곧 ‘나’이다

연기적 세계관 그리고 이를 형상화하고 있는 인다라망의 세계는 불교적 관점에서 바라 본 존재의 실상實相이며, 불교가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인간들이 서로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함께 조화로운 공존과 상생을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불교적 해답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불교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우리 모두는 서로 연관된 존재일 뿐 아니라 서로를 비추고 있는 거울이다. 내가 우주 전체를 담고 있듯이 상대 또한 우주 전체를 담고 있다. 나와 상대가 다른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 인연의 차이일 뿐이다. 각자의 다른 인연이 만들어 내는 다양성은 ‘있는 그대로’ 세계의 실상이며 아름다움이다. 바로 이러한 세계관이 불교가 이웃을 이해하는 관점이며, 이웃과 관계 맺기를 원하는 방식이다. 


불교에서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는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출발한다. 개인은 전체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은 곧 전체이며, 전체를 대표한다. 개인의 소멸은 곧 전체의 소멸을 뜻한다. 마찬가지로 공동체란 자유로운 ‘나’, 개인의 임의적 결사체일 뿐, 그 자체 별개의 독립적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를 일종의 유명론唯名論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불교의 이러한 입장은 극단적인 개인주의적 관점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불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자유로운 개인’이다. 개인은 공동체의 부분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이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요컨대 개인을 공동체의 이념과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전체주의적 입장을 거부하는 것이다. 부처님 당시의 출가 공동체인 상가조직을 보더라도 전체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불교의 입장은 매우 분명하다. 불교적 관점에서 ‘공동체’란 인다라망의 각 구슬이 상징하듯이 개인에 앞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개인들의 집합 혹은 연결망 전체를 가리키는 하나의 ‘이름’일 뿐이다.


‘나’와 ‘이웃’의 관계가 연기적이라고 하는 데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나는 고립적 개체가 아니라 다른 존재와 연결되어 있는 ‘관계’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 존재 자체가 다른 모든 존재에 의존해 있다. 타자他者가 없으면 ‘나’도 없으며 타자의 존재로 인해 내가 존재할 수 있다. ‘나’는 소위 인다라망이라 일컫는 관계의 무한한 그물망 속에서 모든 다른 존재와 연계되어 있다. ‘관계’로서 존재한다는 점에서 ‘너’와 ‘나’의 구별은 인연에 따른 차이일 뿐, 본원적인 것은 아니다. 모든 존재는 본원적으로 평등한 존재(相卽)다. ‘나’와 ‘너’라는 구별은 인연에 따른 차이일 뿐이며 ‘나’와 ‘너’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相入)하고 있는 존재다. 나아가 하나의 구슬이 모든 구슬을 다 비추고 모든 구슬에 그 하나의 구슬이 들어있는 것처럼 ‘나’는 곧 세계이며 세계는 곧 ‘나’이다. 


‘무아’ 그리고 ‘연기적 존재’가 바로 ‘나’ 그리고 ‘이웃’의 실상이다. 이러한 실상을 자각할 때 나는 비로소 ‘나’이며, 자유의 존재이며 주체적이며 자율적인 존재다. 이러한 자각의 실천적 모습은 끊임없는 자기 향상의 노력으로 나타난다. 무아적 실천에서 볼 때 이기심은 나의 본성이 아니다. 이타심과 자비가 본래 나의 본성이다. 이와 함께 나는 ‘나’ 아닌 모든 존재와 관련되어 있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임을 자각하고 실천해야한다. ‘나’는 온 우주적 생명활동의 일부이며 또한 온 우주 그 자체이기도 하다. 우주적 생명의 관점에서 볼 때 ‘나’는 모든 다른 생명과 평등한 하나의 생명일 뿐이다. 생명 그 자체에 어떠한 차별도 없다. 모두가 연관되어 그 자체가 온 생명을 이루는 하나이며 각각의 생명은 그 자체로서 온 생명이다.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 고려대 영문과 및 동국대 대학원을 졸업하고(석사, 인도철학), 미국 UC버클리대학원을 졸업했다(박사, 불교학). 미국 스토니부룩 뉴욕주립대 교수, 「불교평론」 주간, 학술진흥재단 인문학단장, ‘우리는선우’ 상임대표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철학연구」 편집장과 실천적 인문공동체 ‘시민행성’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주요 저서와 논문으로는 『불교와 불교학』, 『퇴옹성철의 깨달음과 수행』, 「‘깨달음의 사회화’에 관련한 몇 가지 고찰」, 「초기불교사 ‘재구성’에 관한 검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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