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에서 묻다] 다시 돌아올 길

2014-12-30     만우 스님
 

같이 앉고 함께 가도 세상은 몰라         共坐同行世莫知
몇 사람이나 문득 그대를 만났던가       幾人當面便逢伊
보고 듣는 그 자리 본래 분명하니         俯仰視聽曾不昧
어찌 밖을 향해 그대 갈 곳 묻는가        何須向外問渠歸
- 소요逍遙 스님

 

새벽공기가 매섭다. 짐을 꾸리고 텐트를 걷는다. 평소보다 두 시간쯤 일찍 갈 길을 서두른다. 차 한 잔, 여유가 감돈다. 의식이 천천히 제 자리를 찾는다. 멀리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설산이 아침 햇살에 생기가 돈다. 햇빛은 고봉에 먼저 앉아 점점 낮은 곳으로 번진다. 이 자리까지 당도하려면 한참 걸리겠다. 햇살이 오기 전에 길을 나선다. 올려다보니 멀리 햇살이 내려오고 있다. 가파른 길. 햇빛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잠시 숨을 고른다. 문득 햇살이 무심히 나를 지나친다. 따뜻하다. 순한 마음이 인다. 몸이 가벼워진다. 밖에서 오는 빛에 마음이 밝아지니 밖을 향해 갈 길을 물어도 되겠다.

 

| 걸어온 길과 가야할 길

처음 히말라야 트레킹을 시작할 때 랑탕계곡을 거쳐 강자라(5,130m)를 넘는 코스를 걸었다. 야크존의 운영자인 대원 스님이 선택한 이 코스는 아직 한국사람 중에는 아무도 가 본 적이 없는 길이라고 했다. 가이드도 이 길은 초행이었고, 다행히 포터 가운데 강자라를 넘어본 경험자가 있어 길잡이 노릇을 했다. 길은 험했다. 급경사의 잡목과 초지를 통과하니 너덜바위지대가 펼쳐져 있다. 황량하다. 여기서부터 길은 따로 없다. 멀리 강자라를 기준으로 가늠해서 걸을 뿐이다. 기준점이 있으니 헤매지는 않겠다. 눈을 녹여 요리팀이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멀리 설산과 눈을 맞춘다. 이제 강자라를 넘으면 며칠 사이 친숙해진 이 풍경과도 이별이리라. 랑탕리룽(7,225m), 체르고리(4,984m), 나야강가(5,844m) 등 제법 익숙해진 산봉우리 이름들도 멀어지고 강진 곰파에서 밤새 잠 못 들게 했던 야크와 말들의 방울소리,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 히말라야의 강렬한 햇살이 고운 주름으로 새겨져 있던 찻집 여인의 모습도 희미해질 것이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긴장감이 다시 상념들을 밀어낸다.

점심을 마치고 다시 걸음을 옮긴다. 한 걸음의 거리가 무한하다. 닿지 못할 곳이 없다. 스스로를 정비한다. 드디어 눈길에 들어섰다. 아이젠을 준비했지만 그냥 걷기로 하고 조심스레 오른다. 주위에 짐승 발자국들이 이리저리 흩어져있다. 눈 표범의 발자국이라 한다.

설표雪豹는 고지대에서만 서식하는 동물로써 지금은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하니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멀리 타르쵸가 나부끼는 것을 보니 강자라다. 먼저 도착한 포터들이 아득하게 보인다. 길의 흔적은 없다. 자갈과 눈이 섞인 낙석들이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가파른 경사면만 보일 뿐이다. 갑자기 낙석 때문에 미처 오르지 못한 포터가 짐을 팽개치고 황급히 피한다. 위험천만이다. 낙석을 피해 절벽 아래쪽을 따라 조심스럽게 오른다. 식은땀이 더 많이 솟는다. 뒤에 프랑스 부부팀이 10m쯤 떨어져 가이드와 함께 따라온다. 낙석과 내 발밑에 돌들이 계속 흘러내리기에 충분한 거리를 두어야 안전하기 때문이다. 길이 없어 발 디딜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 가며 겨우 고개 가까이 다다르니 깊이 골진 구간이 다시 걸음을 붙든다. 이 구간은 얼어붙어 위험도가 더 하다. 건너편에서 포터가 건네준 스틱을 붙잡고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우리 뒤를 따라온 프랑스 부부팀은 이 구간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는지 로프를 준비해서 바위에 걸치고 안전하게 통과를 했다. 긴장을 많이 했는가 보다. 머리가 약간 아프다. 5,130m의 강자라를 뒤돌아보니 아찔하다. 이 길을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대원 스님도 히말라야의 많은 길을 걸어봤지만 이렇게 험한 코스는 처음이란다.

잠시 휴休, 이 고개에서 올라온 길과 내려갈 길을 동시에 바라본다. 현재 나는 강자라에 서 있다. 지나온 길은 이미 과거가 되었고 가야할 길은 미래의 시간이다. 과거・현재・미래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어느 시간도 머물지 않는다. 머물지 않기 때문에 이름할 수 없고 구분할 수 없고 오지도 가지도 않는다. 지나온 나의 자취 어디에 있는가. 가야할 저 길에 나는 또 어디에 있는가. 마지막으로 눈 맞추는 설산, 여전히 흰 빛이다.

 

| 히말라야의 또 다른 모습

강자라 남면을 따라 하산하는 길은 완전히 다른 풍경이다. 남향이라서 일조량이 많아서인지 만년설과 빙하의 크기가 북면에 비해 빈약하다. 설산보다는 석산石山이라 함이 맞겠다. 가파른 돌길의 연속, 평면이 그립다. 수평이 주는 편안함, 평화, 평등, 평범 등 편차 없는 단어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평평한 그대가 보고 싶다. 문장 하나가 완성된다. 몇 사람이나 그대를 만났던가. 소요 스님의 시가 칼날처럼 다가온다.

강자라를 넘은 지 이틀째 되는 날 야영지를 찾지 못해 열두 시간을 걸었던 때가 있었다. 물이 있는 곳을 찾지 못해서이다. 물이 없으면 취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멀어도 물이 있는 곳까지 가야한다. 보통은 네시 전후로 하루 걷는 일정을 마감하는데 이 날은 랜턴을 들고 야간 산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예정된 일정을 벗어나면 예상 밖의 상황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다.

히말라야의 일몰. 석양빛을 받아 붉게 변한 히말라야의 연봉들과 산의 나무들보다 더 촘촘하게 빛나는 별들을 보며 걷는 느낌은 특별하고 경이로웠다. 에베레스트의 산군들이 노을빛으로 점차 물들어가다 해가 지자 다시 본래의 흰 빛으로 되돌아오는 광경을 따라 마음도 홍조를 띠다 다시 별빛으로 물들었다. 그런 느낌이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요리사들이 차를 끓여 마중을 나왔다. 잠시 차 한 잔, 몸도 쉬고 마음도 제자리, 야영지에 도착하여 늦은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뜻하지 않은 변수에 의해 황홀한 히말라야의 또 다른 모습이 잠자리까지 들어와서 오래 머물렀다. 마음은 아직 제자리가 아니다. 텐트를 나와 잠시 서성인다. 유성이 흐르고 서리가 하얗다. 안정이 된다.

 

| 순한 풍경에 깃드는 선한 마음

타르케걍(2,550m)을 거쳐 히말라야에서 마지막 밤을 보낼 카카니를 향한다. 수목한계선을 지나니 한국의 가을 풍경과 흡사하다. 구술봉이꽃들이 곳곳에 피어있고 마을이 있는 계단식 밭에는 보리가 수확기에 접어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봄에 피는 유채꽃이 한창이다. 순한 풍경에 선한 마음이 깃드는 것인가,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에 맺힌 것이 없다.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그저 밝다. 이쯤 어디에서 한 철 일없이 설산을 바라보며 지내고 싶다. 그러면 굳이 수행한다고 폼 잡지 않아도 한가한 마음 깃들 것만 같다.

화려한 문양이 살아있는 오래된 쵸르텐 옆에 연분홍빛 꽃을 달고 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영락없이 살구꽃이다. 자세히 보니 마을 곳곳에 꽤 많이 분포되어 있다. 나중에 안나푸르나 라운딩을 할 때 가샤에도 똑같은 나무가 많이 있어 물어보니 ‘사쿠라’라고 대답을 한다. 아하! 벚꽃이었구나. 가을에 피는 벚꽃, 히말라야의 조화를 어찌 알겠는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제복차림의 아이들 미소가 꽃처럼 환하다. 학교 갔다 오니? 물어도 웃기만 한다. 카카니에 도착하여 마지막 야영 준비를 한다. 트레킹이 끝나는 날은 함께 한 스텝들(가이드, 세르파, 포터, 주방팀)과 조촐한 파티를 열어 그들의 수고를 치하한다. 음식을 푸짐히 준비하고 그날은 마음껏 먹고 마시고 춤추게 한다. 네팔 사람들은 흥이 많은 민족이다. 트레킹 중간에도 시간이 나면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즐겨한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과정에 우리 노래를 배우는 시간도 있다고 한다.

주방팀이 강자라 트레킹 성공을 축하하는 케이크도 만들었다. 그 열악한 주방기구로 그들은 온갖 요리를 다 만들어 낸다. 묘한 솜씨들을 지녔다. 이윽고 파티가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아리랑 같은 네팔을 대표하는 민요 ‘레쌈 삐리리’를 서로 주고받으며 작은 북장단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춘다. 흥이 가득하다.

 

레쌈 삐리리, 레쌈 삐리리,

바람결에 휘날리는 비단처럼

내 마음 펄럭입니다.

날아가는 것이 좋을지

언덕위에 앉는 게 좋을지 모르겠어요.

 

밖으로 나와 벚꽃 날리는 쵸르텐을 돈다. 펄럭이는 마음이 다시 히말라야 골짜기를 날고 산봉우리에 앉는다. 다시 돌아올 길, 떠나는 마음이 하얗다.

 

 

만우 스님
계룡산 갑사로 출가했다. 해인사 강원에서 잠시 수학하고 월간 「해인」 편집위원과 도서관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미황사 부도암 한주로 머물며 히말라야를 여행하고 돌아와 낯선 곳에서 만난 낯익은 삶에 대한 특별한 기록들을 정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