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대담] 대담 박원순 서울시장 류지호 편집주간

시민이 만드는 미래사회

2014-12-03     대담 류지호 주간 / 정리 하정혜

| 희망은 공짜가 아니다

류지호
오랜만에 뵙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월간 「불광」 창간 40주년 기념 인터뷰에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원순
오랜만입니다. 참 반갑고, 「불광」이 이렇게 훌륭하게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랐어요. 특별한 잡지입니다.

류지호 감사드립니다. 시민의 지지 속에 재차 당선되셨는데 어떤 서울, 어떤 시장을 꿈꾸고 계신가요?

박원순
그동안 쭉 해왔던 일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해요.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 같은 단체를 만들면서 꿈꿨던 건 ‘희망’이었습니다. 지금과는 다른 세상, 사람들의 권리가 보다 잘 지켜지고 보다 더 행복한 사회에 대한 희망이죠. 희망은 공짜가 아닙니다. 저절로 오지 않는 것,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죠. 천만 서울시민이 각자 자기 자리를 찾아서 역할을 하고, 모두가 스스로 꿈꾸고 그것을 실현하는 사회가 되면 희망은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그런 역할을 서울시가 하려고 합니다.

류지호
각자의 꿈이 이뤄지는 서울시를 만든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하고 계신지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죠.

박원순
‘협치’를 강조합니다. 공공기관, 시민사회단체 등 각자 성격이 다르고 이해관계도 다른 주체들이 서울시민을 위해서 일하고 있지요. 서로 협력해서 시너지 효과를 내자는 것이죠. 또한 ‘혁신’을 강조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관점,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때 새로운 변화와 발전이 이뤄진다고 생각하거든요. ‘복지’, ‘삶의 질’, ‘에너지 자립’,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도시’, ‘창조적인 경제’와 같은 목표들이 있고, 협치와 혁신을 통해서 이뤄가고 있습니다.

류지호
통계를 보면 자녀 없는 2인 가구, 결혼하지 않는 1인 가구가 증가 추세입니다. 과연 행복한 사회로 가고 있는지 의문인데요,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박원순
전환의 시기죠.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고 자살율과 범죄율은 높아지는데 행복도는 떨어지죠.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결혼 안하고 아이 안 낳는 사회가 됐어요. 이것을 돌파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상상력과 창조성이 보장되고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가 충족돼야 좀 살만한 사회, 행복한 사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이제는 소프트웨어 시대죠. 창조경제와 문화예술이 성장을 이끄는 시대로 가고 있어요. 시장 되면서 세워놓은 방향과 정책이 처음부터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조만간 빅데이터 센터와 미래전략실을 만들어 미래를 예측하고 변화의 흐름을 더욱 면밀히 통찰해서 서울시의 근간을 바로잡는 데 중점을 두고요.
 

| 나눔으로 행복한 공유사회를 꿈꾸며

류지호
재선에 성공하셨고 여론조사 차기대권 1순위로 거론되는 시점에서 ‘박원순 리더십’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박원순
미래사회는 시민이 만든다는 것이죠. 앞서 말씀드린 변화의 큰 흐름을 시민들은 벌써 감지하고 있고, 실제로 주도하고 있어요. 과거에는 권력을 휘두르거나 큰 프로젝트로 당장 눈앞에 보여주는 리더십이 중요했지요.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상대편 후보는 “잠자는 서울을 깨우겠다.”고 했는데 오히려 사람들은 “잠 좀 자자.” 이런 심정이란 말이죠. ‘피로사회’이고 모두가 지쳐서 핏발이 서있는 시대입니다. 집 한 채 갖기 어렵고, 애 하나 키우기 힘들고, 온갖 성범죄가 횡행하는 이런 불안과 공포의 삶이 거대 프로젝트 하나에 달라질 수가 있을까요?

해법은 있습니다. ‘공유사회’입니다. 전세 값이 매매가의 63%까지 올라갔어요. 전세비용 수준에서 자기 집 갖는 것,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100명이 모여 마을을 만들면 집집마다 공부방을 둘 필요가 없어요. 대형냉장고, 세탁기도 필요 없죠. 100명이 모여서 어린이 도서관도 만들고, 세탁실도 만들면 작지만 내 입맛에 맞는 집을 지을 수가 있는 거예요. 신혼부부 100쌍이 모여 어린이집을 만들고 치매부모 모시는 가정 100가구가 모여서 작은 요양병원을 만들 수가 있어요. 자기 일 하면서도 안심하고 가족을 돌볼 수 있다는 거죠. 공유사회에서는 삶의 고충을 같이 해결하고 훨씬 더 행복한 삶을 누리는 길이 열려 있어요. “Another world is possible(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말입니다.

류지호
​​​​​​​여전히 기득권이나 기존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있고, 남들보다 더 갖고 싶은 욕망으로 인한 갈등이 심각합니다.

박원순
결코 성장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도리어 성장하기 위해서 이런 사회를 만들자는 얘깁니다. 누구나 성장과 고소득을 약속하지만 그게 가능했는가, 라고 한다면 전혀 아니죠. 시대가 변했는데 기존 방식대로 하니까 안 되는 겁니다. 성찰과 통찰의 바탕 위에 상상과 혁신을 통한 새로운 공생의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고부가가치를 산출하는 창조적 경제는 여유와 성찰 위에서 가능하지요. 우리는 OECD 국가 중에서 노동시간은 가장 길고 생산성은 꼴찌에 가깝습니다. 피곤하니까요. 이제 유연근무, 재택근무는 국제적인 트렌드입니다.

사회 속에서 갈등은 불가피하고 때로는 유익합니다. 우리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다른 실험을 할 수 있죠. 그래서 시장 직속으로 갈등조정관을 두고 새로운 논쟁과 토론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갈등을 혁신으로 가는 디딤돌로 활용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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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배고프고 여전히 목마른 사람

류지호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로 큰 성공을 이루시고 서울시장으로 계속해서 변신할 수 있었던 동력이랄까, 저변의 힘은 무엇인가요?

박원순
저는 성공이라는 말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 해서 제대로 성공했다면 한국사회가 이 정도밖에 안 되겠나 하는 거죠. 저는 아직 배고프고 여전히 목마른 사람입니다. 우리는 끝없는 완성을 향해서 나아가야 하는 존재잖아요. 외형적으로는 성공했다고 볼지도 모르지만 저는 훨씬 더 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끝이 없는 갈증이죠.

류지호
​​​​​​​초인적인 일정 속에서도 법률, 역사 분야 전문서적을 비롯해 미래가치를 제안하는 등 50여 종에 달하는 저서를 내셨습니다. 또한 방대한 양의 책을 소장하며 평소 활용하시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요, 디지털 시대에 책 읽는 사람이 크게 줄어든 세태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박원순
저도 요새는 거의 못 읽어요.(웃음) 사람들이 워낙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까 성찰하고 독서하고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지요. 그렇지만 의지를 갖고 조직하면 그런 여유를 가질 수가 있어요. 박근혜 대통령께서 추진하고 계신 시간제 일자리는 저도 아주 중요하다고 봅니다. 몇 년 전 독일에서 인터뷰 여행을 3개월 할 기회가 있었는데 사람 만나기가 아주 힘들었어요. 사무실에 잘 안 나오고 전화도 없고. 그런데 이 사람들은 일주일에 하루 이틀 나와서 일하고 월급 좀 적게 받는 대신에 자기 삶을 성장의 삶으로 만듭니다. 적게 일하지만 노동생산성이 높죠. 독일은 지금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입니다. ‘책 읽는 사회’를 만들려면 이런 부분부터 매듭을 풀어나가야 합니다. 어떤 시인이 서울시 책모임에 오셔서 “책은 모유다.”라고 하셨는데 깊이 공감합니다. 책은 ‘성장하는 삶’의 필수요소지요.
 

| “불교문화는 우리 민족의 보물입니다”

류지호
​​​​​​​인권변호사로 활동하실 때 1994년 조계종 종단개혁의 종헌종법 개정에 법률자문을 맡아주시는 등 불교계와 많은 인연이 있으셨습니다. 현재, 서울시와 불교계의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말씀해 주시죠.

박원순
서울시에 문화관광디자인본부장이 계신데 재작년에 이분한테 서울 전통사찰을 모조리 방문하시라, 요청을 했어요. 이 전통사찰 58곳이 서울로 보면 문화유산이고 문화보물이거든요. 규제 때문에 해우소를 새로 짓지 못하는 문제라든가 고충을 겪는 부분들 해결해 드리고, 올해에는 10월 10일부터 3일간 ‘서울시 전통사찰 주간’ 행사를 했습니다. 사찰에서는 시민들이 누구나 불교문화를 무료체험 할 수 있도록 개방해 주셨고 시에서 재정을 지원했죠. 내년에는 좀 더 키워볼 예정입니다. 불교박람회는 지난봄에 가보고 무척 감동 받았어요. 우리 전통문화, 의식주 생활문화가 불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소중하게 지켜지고 가꿔져 있잖아요, 현대적으로 혁신할 것은 혁신을 하면서. 아주 대단하더라고요. 그래서 세계적인 박람회로 키워서 일본, 중국, 서양 사람들도 오게끔 만들자고 했어요. 불교박람회 정말 제대로 키워라, 주무부서에 강력하게 주문했죠. 그리고 인사동–경복궁–북촌–삼청동으로 이어지는 문화관광벨트에 위치해 외국인이 많이 방문하는 조계사는 상가건물이 일주문 앞을 가로막고 있고 공간이 협소한데 이 부분을 잘 정리해야죠. 불교문화유산은 종교를 떠나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이다, 그런 관점에서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함께 지원해서 조계사 공간을 잘 갈무리하려고 합니다.

류지호
​​​​​​​​​​​​​​우리 시대의 또 다른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스님들에게 당부하실 말씀이 있다면요?

박원순
한국사회에 닥친 위기와 도전과제들이 사실 불교로 풀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해요. 불교계가 우리 사회에서 조금 더 역할을 키워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분들이 그 역할을 하고 계신 것으로 짐작하지만, 그것이 보다 조직적이고 지속가능한 형태로 드러났으면 좋겠어요. 사회적 기업이 한 예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사실상 불교에는 사회적 기업으로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무척 많습니다. ‘소셜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봤을 때, 사찰음식부터 시작해서 불교의 모든 것이 그렇다고 봐도 좋을 정도예요.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는 말씀처럼, 앞으로 세상 속으로 더욱 다가오는 불교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류지호
마지막으로 「불광」 독자들에게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원순
책을 참 잘 만듭니다. 우아하기도 하고, 내용에 있어서도 ‘깨달음의 죽비’가 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잡지가 잘 되서 많은 독자가 생겨나고, 그래서 부자가 돼서 좋은 책을 더 많이 발간했으면 좋겠습니다. 창간 40주년 축하드립니다.
 

박원순
경남 창녕에서 출생, 서울대학교 1학년 때 학내 시위로 제적, 단국대학교 사학과에 다시 입학, 졸업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로 1년 재직, 그 후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인권 변호사로 일하게 된다. 영국 유학 후, ‘참여연대’를 만들어 권력에 대한 감시기능을 수행했고,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그리고 ‘희망제작소’에 이르기까지 획기적인 시민단체들을 만들어 한국시민운동의 새 지평을 열었다. 2011년 ‘시민이 시장입니다’라는 정신으로 서울시장에 당선되었고 지난 6월에 재선, 현재 서울시민의 삶을 바꾸는 첫 번째 시장이 되기 위해 늘 시민을 향해 걷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