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안 외딴섬 오곡도를 찾아온 달마

2014-12-03     장휘옥, 김사업

편집자 주

장휘옥과 김사업은 수행자의 길을 걷기 위해 2001년 함께 대학 강단을 떠나 남해안의 외딴섬 오곡도로 들어갔다. 이후 세계의 고승들을 찾아다니면서 수행했으며, 2003년부터는 간화선 수행에만 전념하여 일본 임제종 대본산 향악사의 다이호(大峰) 방장 스님으로부터 900여 회에 이르는 독참 지도를 받으며 수행해 왔다. 현재는 오곡도 절벽 위 폐교를 수리하여 간화선 수행 전문도량 ‘오곡도 명상수련원’(www.ogokdo.net)을 운영하고 있다. 「불광」 창립 40주년을 맞아 그동안 두 사람이 학문과 수행을 통해 얻은 정확한 불교를 제시하고, 교리가 머릿속의 지식으로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에서 살아 움직일 수 있는 길을 안내하고자 한다. 내용은 불교 교리를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연기緣起·공空·유식唯識의 세 파트로 나누어서 각각 생활에 접한 예를 들어 쉽게 설명한 다음 선종의 선사들은 생활 속에서 이들 교리대로 어떻게 살았는지 그들의 삶 속에서 찾아보고 마지막으로 교리와 생활, 이론과 실천이 일치한 우리가 가야할 길을 연재할 예정이다.

 

| 「불광」 창립 40주년을 축하하며

2014년 11월은 「불광」 창립 40주년을 맞이하는 달이다. 축하 메시지를 보내려 하니 문득 중국 당·송 시대 선승들이 자주 사용하던 문구 하나가 떠오른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성철 스님 덕분에 이 문구는 우리에게도 꽤나 잘 알려져 있다.

송나라 때 청원 유신(靑原惟信, ?-1117) 선사가 법상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30년 전 이 노승이 아직 선에 입문하기 전, 산은 산이었고 물은 물이었다. 그 후 선 수행에 매진하여 깨달은 바가 있었을 때 산은 산이 아니었고 물은 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산은 다만 산이요 물은 그저 물일 뿐이다.”

선 수행 초심자가 산과 물을 보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그러나 목숨 걸고 수행하여 ‘산과 나’, ‘물과 나’, ‘천지와 나’가 둘로 나누어지지 않고 하나가 되면, 산은 더 이상 산이 아니요 물은 더 이상 물이 아니다. 너는 네가 아니요 나는 내가 아니며, 삶은 삶이 아니고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거기서 수행이 더 깊어져 깨달음을 얻게 되면 다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가 된다. 너와 나는 둘이 아니라 하나지만 너는 여전히 너이고 나는 여전히 나일 수 있는 자유로운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불광」 창립 40주년을 맞아 청원 선사 법문의 마지막 구절 ‘산은 다만 산이요 물은 그저 물이다’의 안목으로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40년이라는 세월 동안 온갖 시련을 헤치고 「불광」을 오늘의 위치에 올려놓은 여러분들의 열정과 노고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불광」과 하나가 되어 동고동락한 40년을 뒤돌아보면, 40년이란 느낌조차 없는 영원 속의 순간들일 것입니다. 「불광」은 여러분들에게 비교할 대상 자체가 없는 소중하고 고귀한 것이기에 매일 매일이 40주년 기념 아닌 날이 어디 있겠습니까? 앞으로도 「불광」의 하루하루가 빛나는 날이기를 기원하면서 「불광」 창립 40주년을 축하합니다.”

 

| 오곡도를 찾아온 달마

우리가 선 수행에 전념하기 위해 대학 강단을 떠나 남해안 외딴섬 오곡도로 들어온 때가 2001년, 벌써 13년 전의 일이다. 그동안 선 수행에 매진하느라고 일체의 외부 강의나 원고 청탁을 거절했기에 이젠 당연히 청탁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언젠가 스쳐 들었던 한마디 말도 종자로 심겨져 있다가 기회가 되면 싹을 틔운다는 진리를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2005년 겨울, 불광출판사의 여러분들이 우리가 운영하는 오곡도 명상수련원의 일주일 동계 집중수련에 참석했다. 간화선 수행을 하기 위해서였다. 한두 명이 아니라 사진 기자를 포함한 거의 전 직원이 참가했다. 우리는 그들의 용단을 진정으로 자랑스럽고 흐뭇하게 생각했다. 구면이 되면 원고 청탁이 있을 때 거절이 힘들지 모른다는 우려 또한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참으로 찬사를 보내고 싶은 일이었다.

일주일 간의 수행을 마치는 날 저녁의 총평시간에는 누구라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무엇이든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불광출판사의 어느 누구도 원고 청탁에 관해서는 말 한마디 꺼내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 반이 지난 2007년 여름, 불광출판사 류柳 주간이 오곡도 수련원 하계 집중수련회에 참석했다. 수행을 마치고 떠나는 날 아침, 류 주간은 수련원 입구에서 손을 흔들며 한마디 인사말을 던졌다. “원고 부탁드립니다.”

올해(2014년) 8월 어느 날, 월간 「불광」 기자 두 명이 오곡도 수련원까지 무려 10시간이나 걸려서 찾아 왔다. 이렇게 먼 곳까지 굳이 찾아온 이유는 수련원을 취재하여 다음 달 「불광」에 기사도 실을 겸 「불광」에 연재할 글을 청탁하기 위해서였다.

2주 뒤, 9월호 「불광」이 나오자 이것을 가지고 이번에는 월간 「불광」 편집장과 불광출판사 기획부장이 오곡도 수련원까지 찾아왔다. 1년간 「불광」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연재가 끝나면 불광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할 것을 계약하기 위해서였다.

선은 머리로만 생각하면서 탁상공론 하는 것과는 아득히 거리가 멀다. ‘지금 이 자리’를 철저히 살아가는 것이 선이다. 우리는 「불광」 식구들의 성실하고 민첩한 행동에서 살아있는 달마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의 진취적 기상은 단호했던 우리의 의지를 꺾고도 남았다. 2007년 여름 류 주간이 남기고 간 “원고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흔쾌히 수락했다. “원고 부탁드립니다.”가 뿌린 종자가 7여 년 만에 싹을 틔우게 되는 순간이었다.

| 머릿속에 갇힌 지식이 아니라 내게서 살아 움직이는 불교

우리는 독자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글이 어떤 것일까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가 며칠 전 수련원을 찾아온 분과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그는 불교 교리에 매우 해박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신변 이야기를 하다가 일련의 사건으로 인한 화를 삭이지 못해 괴로워하였다. 그는 불교 교리는 잘 알고 있지만 그 이론이 일상의 삶 속에 용해되지 않아서 자신의 번뇌를 잘 다스리지 못하는 많은 주변 사람들의 아픔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그에게 물었다. “화가 나면 화를 내어야 합니까, 참아야 합니까?” 그는 화를 참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다시 물었다. “화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진정한 불교인입니다. 불교 교리를 산더미처럼 알고 있으나 화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진정한 불교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화를 내는 것은 당연히 화에서 자유로운 행동이 아닙니다. 그러나 화를 참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둘 다 화에 구속된 결과이지요. 화를 참는다고 해서 그 화가 없어집니까? 화를 참으면 속으로 골병이 들어 괴롭습니다. 그렇다고 화를 마구잡이로 낼 수도 없고. 어떻게 하는 것이 화로부터의 해탈입니까?”

그는 답변을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말했다. “불교를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화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도 모르고 있는 것 아닙니까? 부처님께서 설한 법은 머리로만 생각하는 이론이 아니라 직접 해탈에 이르게 하는 길이었습니다. 해탈에 대한 이론만 아는 것은 가려운 곳은 발인데 신발만 긁는 것과 같습니다. 화에서 진정 자유롭게 되는 것, 이것이 곧 해탈을 실천하는 길이고, 선 수행을 하는 이유입니다.”

이 이야기는 위의 지인에게만 한정된 말이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불자들이 안고 있는 고민이자 풀어야 할 과제이다. 아니, 불교 역사 전체를 통해서 항상 문제되어 왔고 그 해결을 모색해 왔던 숙제였다. 우리는 월간 「불광」에 기고할 글의 윤곽을 잡았다. 정확한 불교 교리도 배우고, 그 교리가 머릿속의 지식으로만 갇혀 있지 않고 내 몸과 마음에서 살아 움직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글을 쓰기로 했다.

내용은 불교 교리를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연기緣起·공空·유식唯識의 세 파트로 나누어서 각각 생활에 접한 예를 들어가면서 쉽게 설명한 다음, 선종의 선사들은 생활 속에서 이들 교리대로 어떻게 살았는가를 그들의 삶 속에서 찾아보고, 마지막으로 교리와 생활, 이론과 실천이 일치한 우리가 가야할 길을 제시하기로 했다.

선사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까닭은 거기서 교리와 생활이 일치한 펄펄 살아있는 실제의 사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교리를 명확히 이해한 다음, 그 교리대로 철저하게 산 생생한 삶을 알게 되면 교리에 대한 이해도 심화될 뿐 아니라 본인도 그렇게 살 수 있는 나침반과 동기부여를 동시에 얻는다. 선사들의 삶은 교리와 생활이 일치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된다.

 

| ‘여시아문’과 ‘여시아오’

선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진리 덩어리가 된 사람의 꾸밈없는 울림이었다. 입으로만 외워서 말하는 진리가 아니라 평상시의 눈짓 하나, 툭 던지는 말 한마디가 진리 그대로였고 설법이었다. 보는 사람이 그 진수를 알아보지 못할 뿐이다. 안목이 있어 알아보는 순간,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을까!” 하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경전은 “여시아문如是我聞”, 즉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로 시작한다. 교리 또한 ‘여시아문’의 내용이다. 타인에게서 들은 내용이거나 그에 대한 분석과 해석이 교리라고 할 수 있다. 선에서 ‘여시아문’은 빵점이다. 선을 ‘여시아문’에 대응시켜 표현한다면, 선은 “여시아오如是我悟”, 즉 “이와 같이 나는 깨달았다.”를 생명으로 한다. 남의 이야기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본인 자신이 온 존재를 통해 깨달은 진리를 직접 보여주지 못하면 선이 아니다.

동산 수초(洞山守初, 910-990) 선사가 수행승 시절 스승을 찾아 중국 대륙을 종단하는 목숨 건 여행 끝에 겨우 광동성 운문산에 도착했다. 이렇게 먼 고난의 길을 찾아온 구도자에게 운문 문언(雲門文偃, 864-949) 선사는 아래와 같이 물었다.

 

운문: 최근 어디 있었느냐?

동산: 사도라는 곳에 있었습니다.

운문: 하안거는 어디서 했는가?

동산: 호남성의 보자사입니다.

운문: 언제 그곳을 떠났지?

동산: 8월 25일입니다.

 

문답이 여기까지 이르렀을 때 운문 선사는 천지가 진동할 정도로 고함을 질렀다.

“이 얼간이 같은 놈! 너는 세 차례나 몽둥이로 맞아도 모자라지만 몽둥이가 더러워질까 참는다!”

동산의 대답 어디에 잘못이 있기에 맞아야 하는가? 동산은 이미 안거를 몇 차례나 지냈으니 선이 무엇인지 알았어야 했다. 선은 자신의 생생한 진리 체험을 생명으로 한다. 운문 선사의 물음은 장소나 일자를 묻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하나 동산의 선적禪的 경지를 물은 것이고, 동산은 그에 맞는 자신의 선적 체험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런데도 동산은 보자사니, 8월 25일이니 하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

느닷없이 호된 야단을 맞고 물러난 동산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운문 선사를 찾아가 물었다. “어제 화상께 세 차례나 맞을 것을 용서받았는데, 어디에 잘못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운문 선사가 다시 크게 꾸짖었다. “이 밥통아, 진리를 구하는 놈이 그런 식으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세월만 보내면 어떻게 하느냐?” 진리 그 자체가 되지 못하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남의 이야기만 읊조리는 것은 평생 남의 보물만 세고 자기 것은 하나도 없는 것과 같다는 일갈이다. 운문과 동산의 이 일화에는 진리 체험을 중시하는 선의 성격이 잘 나타나 있다.

선의 성격이 이러하므로 선에서 스승으로부터 제자로 진리가 전해지는 기준은 ‘체험’이지 ‘기억’이 아니다. 스승의 언행을 가장 잘 기억하고 있는 제자가 그 스승의 법을 잇는 것이 아니라, 스승의 진리 체험과 일치하는 체험을 가진 제자가 법을 잇는다. 진리의 동일한 체험이 확인되면 스승은 제자의 깨달음을 인가한다. 이 진리 체험에 의한 법의 전승을 선에서는 매우 중시해 왔고, 그 결과 어느 스승에서 어느 제자로 진리가 전해졌는가를 밝히는 계보인 법맥이 형성되었다.

선사들의 일거일동은 이미 자신의 몸이 되고 마음이 된 진리가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독특한 형태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당나라 때의 대주 혜해(大珠慧海, ?-?) 선사는 “스님도 도를 닦기 위해 노력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말했다.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잔다.” 이 말은 불교의 핵심 교리인 연기緣起의 이치 그대로 사는 사람이 ‘연기’의 냄새라고는 전혀 풍기지 않으면서, 살아있는 ‘연기’의 진면목을 그대로 보여 준 것이다.

또 앞에서 언급한 청원 유신 선사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 여전히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는 바로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온몸으로 체험하여 ‘색즉시공, 공즉시색’ 그대로 살아가는 자가 하는 말이다.

대주 혜해 선사가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잔다.”고 한 말이 어째서 불교의 핵심 교리인 ‘연기’대로 살아가는 자의 말일까? 또 청원 유신 선사의 게송이 어째서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대로 살아가는 자의 말일까?

이렇게 난데없이 물으면 대답을 못하고 어리둥절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 연재될 연기와 공에 대한 교리적 설명과 일상생활에 즉한 예를 보게 되면 위 선사들이 말하는 바의 진수에 눈을 뜰 것이다. 그래서 진리대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생생하게 알게 되어 교리와 생활, 이론과 실천이 일치된 삶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월간 「불광」 다음 호(12월호)에서는 우선 불교의 핵심인 ‘연기緣起’의 이치부터 현실생활에 적용시켜 이야기식으로 쉽게 풀어가고자 한다.

 

장휘옥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화학과를 졸업한 뒤, 동국대 불교학과로 학사 편입, 석사 과정까지 마쳤다. 이후 일본 도쿄대학(東京大學) 대학원(인도철학 전공)에서 화엄 사상으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고 동국대 사회교육원 교수로 재직했다.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연구원, 한국불교학회 이사, 원효학연구원 연구위원, 한국정토학회 이사를 역임했다. 『불교학개론 강의실 1, 2』, 『해동고승전 연구』, 『정토불교의 세계』, 『자 떠나자 원효 찾으러』, 『길을 걷는 자, 너는 누구냐』(공저), 『무문관 참구』(공저), 『새처럼 자유롭게 사자처럼 거침없이』 등 10여 권의 책을 썼으며, 『화엄경 이야기』, 『대승기신론 이야기』, 『중국불교사 1, 2, 3』 등 여러 책을 번역했다.

 

김사업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동국대 불교학과에 학사 편입하여, 같은 과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일본에 유학하여 교토대학(京都大學)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불교학 전공)을 수료하고, 동국대 사회교육원 교수로 재직했다. 주요 저서와 논문으로는 『길을 걷는 자, 너는 누구냐』(공저), 『무문관 참구』(공저), 「유식설에서의 연기 해석」, 「선과 위빠사나의 수행법 비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