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다 핀 꽃들의 부탁

2014-11-04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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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은 늘 뜻밖의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다가옵니다.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전국을 다니며 꽤 많은 곳에서 공연을 해왔습니다. 산사음악회 무대에도 여러 번 올랐지요. 절, 혹은 스님에 대한 인연이라면 그때마다 내 마음을 맑게 해주는 것 같았던 그 기억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올해 초 저는 아주 각별한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자면 지나간 4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구나 잊지 못할 4월이었습니다. 방송마다 뒤집힌 배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그 속에 갇힌 아이들의 생사는 모두에게 더없이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네, 너무나 가슴 아팠던, 누구나 가슴 아파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세월호 이야기를 꺼내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미안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옵니다. 전 다른 친구들처럼 중·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수학여행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하지만 세월호에 갇혀있던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떠나며 얼마나 들뜨고 즐거운 마음이었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나이 차가 그리 많지 않은 언니의 입장에서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 참 괴로웠습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공연계에는 사상 유래 없는 찬바람이 불었습니다. 온 나라가 우울함에 젖어 있는 상황에서 웃고 떠들 수는 없었기에, 자발적인 공연 취소가 이어졌습니다. 무대 위에 오를 때 가장 빛날 수 있는 음악가이기에, 한편으로는 잡혀 있던 공연들을 취소해야 할지 고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마조마한 심정이기도 했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미리 잡혀 있던 부산 공연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사이에도 텔레비전에서는 세월호 이야기들이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아침에는 희망을 얘기하다가도 하루가 저물 때면 “미안하다, 너무 미안하다.”는 사람들의 댓글만 쌓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일찍 우리 곁을 떠나버린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고 싶어졌습니다. 공연을 3일 앞두고 마음을 담아 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담긴 음표는 금세 오선지를 채워갔지요. 불과 이틀 만에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완성됐습니다. 저는 그 곡에 ‘세월호, 미안한 고백’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다음날 공연에서 처음 연주된 그 곡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여러 곳에서 공연 제의가 들어왔는데, 그중 한 곳이 인천 법명사였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제에서 연주를 해달라고 부탁해왔습니다. 고민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무대에 올라 있는 힘껏 마음을 다해 연주를 했습니다. 조금이나마 희생자들이 위안을 받았으면, 그리고 유가족들의 마음에 위로가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내심 뿌듯하면서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던 복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무대를 내려오자 스님 한 분이 인사를 건넸습니다.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 일면 스님이셨습니다. 스님은 연주를 듣고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다며 장기기증 캠페인에도 힘을 보태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이런 것이 인연일까요? 너무나 일찍 불꽃을 꺼야 했던 푸른 생명들을 위로하는 자리에서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함께 하자며 내미는 손, 참 미묘한 기분이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함께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마음 낼 수 있는 기회를 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얼마 전 엄마가 중환자실에 입원해 계실 때 장기기증의 중요성을 절감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장기기증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지요. 장기를 이식받으면 새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너무나 많았습니다. 장기기증이라는 행위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스님의 손을 흔쾌히 잡아드렸습니다.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일에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무엇이든 기쁘게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이 기회는 못 다 핀 꽃들이 저에게 보내준 선물은 아닐까요. 아니, 꺼져가고 있는 소중한 생명들을 잊지 말아 달라는 부탁은 아닐까요. 저의 미약한 힘으로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왠지 아이들도 하늘나라에서 조금은 미소를 지어줄 것만 같았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싶었던 마음,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된 일면 스님과의 뜻하지 않았던 만남은 저에게 더없이 각별하기만 합니다. 



진보라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재즈 피아니스트. 3세에 피아노, 5세에 바이올린, 10세에 장구를 익히는 등 음악적 재능을 타고났다. 2002년 만 14세의 나이로 서울재즈아카데미 재즈피아노과를 졸업한 후 재즈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 등 국내 주요공연장에서 매년 15회 이상의 정기공연을 열고 있으며, 빼어난 미모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뮤지컬, 영화, 모델, 음악방송 MC 등의 활동도 병행하고 있는 만능 엔터테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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