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몸과 마음 맑히는 연근과 연근조림 주먹밥구이

2014-11-04     불광출판사


 

 


연꽃과 연근은 한 몸이다. 단 한 송이만 피어도 온 마당이 향으로 그윽해지는 꽃. 유난히 연향이 멀리 퍼지는 것은 잡스러운 냄새를 먼저 제압하기 때문이다. 정화작용이다. 연근은 살아서는 연못의 물과 흙을 정화하고, 죽어서는 우리 몸을 정화한다. 꽃에서 뿌리까지 세상을 맑히는 본분사에 묵묵히 충실한 연蓮. 본연의 할 바에 진중한 사람을 만나면 무심코 연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그런 연유다. 강원대 철학과 최훈(48세) 교수가 그랬다. 먼저 채식의 실리實利를 살피기보다 한 번쯤 채식의 윤리倫理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묻는다. 습관을 따를 것인가, 앎을 따를 것인가. 오래된 질문이다. 햇살 좋은 가을날, 최훈 교수가 25년 지기知己인 아내와 마주앉았다. 두 사람은 8년 전, 육식의 습관 대신 윤리적 채식을 선택했다. 그날 이후, 철학자도 그의 아내도 채식으로 차린 식탁 앞에 행복하다.




| 2만 년을 견뎌낸 씨앗의 생명력

연의 생명력은 놀랍다. 연의 씨앗인 연밥은 심는 대로 낙오 없이 발아한다. 1951년 일본 동경 인근 5m 깊이의 늪지에서 신석기시대의 카누가 발견되었다. 이 안에 연 씨앗이 들어 있었는데 연구결과 2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었다. 믿기 어려운 일은 그 다음이었다. 이 씨앗을 심었더니 싹이 나고 약 1년 뒤에는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 것이다. 

이적異蹟은 부엌에서도 일어났다. 송나라 때 어느 대관집 요리사가 선짓국에 연근을 빠뜨렸다. 한나절을 끓이고 저어도 선지가 엉기지 않았다. 연근이 이유였다. 이후 피가 탁해져 생기는 질환에 연근을 쓰기 시작했다. 연근에는 정혈淨血뿐 아니라 지혈止血, 생혈生血 작용을 하는 기특한 효능이 있다. 

연근, 하면 대구다. 생산지 40%가 대구에 있다. 연근은 여름이 덥고 일조량이 많아야 하며, 토질이 비옥한 습지에서 잘 자란다. 일조량이 많은 대구에서도 습지가 밀집한 동구 반야월 일대가 연근 재배로 정평이 나 있다. 전국적으로 연근 재배농가가 꾸준히 증가추세다. 연근 생산량은 20년 사이 세 배 가량 늘었고 10년 전과 비교해도 생산량이 곱절이다. 흥미로운 것은 재배면적이 생산량에 정비례해 늘었다는 점이다. 정직한 농사의 방증이다. 

연근의 주성분은 녹말, 즉 전분이다. 그래서 감자로 만드는 요리는 얇게 썬 연근으로 감자를 대신하는 것이 가능하다. 연근으로 끓이는 연근된장국, 연근을 튀긴 연근칩, 연근을 갈아서 부쳐내는 연근전 등이 대표적이다. 연근의 전분은 소화흡수가 되지 않는 식이섬유와 유사하게 작용한다. 이를 저항성 전분이라 한다. 당뇨의 식치食治에 연근가루를 쓰는 것은 바로 이 성분 때문이다. 사찰에서는 찹쌀가루를 묻혀 튀기는 연근부각, 갈거나 잘게 썬 연근을 쌀과 함께 끓이는 연근죽, 매실액으로 담그는 연근장아찌 등 담백한 연근요리를 주로 해먹었다. 





| 평범과 비범 사이, 연근조림 주먹밥구이

누구나 가장 익숙한 연근요리를 꼽는다면 단연 연근조림이다. 연근은 따로 손을 대지 않아도 썰어놓으면 그대로 꽃이 핀 듯 모양이 곱다. 살짝 데쳐 가볍게 졸이면 아삭함이 살아있어 좋고, 좀 더 시간을 두고 졸여내면 찰진 식감이 생겨서 좋다. 

평범과 비범 사이. 연근조림 주먹밥구이는 평범한 연근조림의 평범하지 않은 변신이다. 미나리로 묶어 산뜻한 연두색이 더해진 모습은 얼핏 초밥을 닮아 있다. 초밥의 외양을 빌려온 주먹밥이다. 참기름으로 맛을 낸 보통의 밥 안에 매콤한 무말랭이무침을 품은 주먹밥은 생각지 못했던 맛의 반전을 선사한다. 사찰음식, 하면 으레 순하고 담백한 맛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매콤함을 더하니 반전의 작은 즐거움이 따라온다. 왠지 사찰음식이 친근해지는 순간이다. 그러고 보니 주먹밥이라는 이름 또한 그렇다.

살다보면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에서 선택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익숙함에서 한 발 나아가는 맛. 그래서 더욱 즐거워지는 맛. 연근조림 주먹밥구이의 매력이다. 사찰음식이 일주문을 나와 성큼, 가까워진다.




 










철학자의 식탁에는 고기가 없다.
적어도 이 사람에게는 그렇다.
강원대 철학과 최훈(48세) 교수는
동물에 대한 윤리적 대우를 언급하는
책을 번역하면서 채식을 결심한 이후,
‘고통을 느끼는 존재에겐 고통을
주어선 안 된다.’는 보편타당한 논리를
전파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최훈 교수가 채식을 ‘지향’하는 삶을
지속할 수 있었던 데엔 가족의 식탁을
마련하는 아내의 지지와 배려의 힘이컸다. 
오늘만큼은 그가 아내를 위해
사찰음식으로 차린 식탁을 준비했다.
오랜 고마움의 표현이다.






| 습관을 따를 것인가, 앎을 따를 것인가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채식의 윤리학을 말하는 국내 최초의 대중서다. 다양하고도 신선한 철학 대중서들을 집필해 온 강원대 철학과 최훈 교수가 식탁 위의 일상다반사, 그 중에서도 고기를 먹는 일에 관하여 썼다. 육식의 습관을 뒤로 하고 채식에 스스로를 길들인 철학자의 눈빛은 안온했다. 

“고기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저는 고기가 채소보다 훨씬 맛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입맛을 버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에요.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 하는 건 윤리가 투영되는 선택이지요. 동물에 관한 윤리적 대우를 언급하는 책을 번역하면서 채식을 결심하게 됐어요. 고통을 느끼는 존재에겐 고통을 주어선 안 된다는 것은 반박할 수 없는 보편논리입니다. 알면서도 더 이상 육식을 고집할 순 없었죠.”

앎을 실천하는 삶. 그러자면 습관의 극복이 필요했다. 관련 원서들을 탐독했다. 그중 반다나 시바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자본가들에게는 최소비용으로 최대이윤을 얻기 위해 최소 공간 안에 얼마나 많은 동물들을 밀어 넣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만이 관심거리이다.” 

현대화된 공장식 축산의 현실을 이처럼 잘 표현하는 말이 또 있을까? 사육되는 동물의 고통뿐만 아니라 기아 문제도 얽혀 있었다. 1kg의 소고기를 만드는 데는 14kg의 곡물이 필요했다. 내가 고기 1kg을 먹어버림으로써 14kg이나 되는 곡물을 먹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 못 먹게 된다는 뜻이 된다.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 시대다. 알면 알수록 채식의 의지는 강해졌지만 실천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한국사회에서 채식주의자로 산다는 것은 식탁 위에 고기 대신 ‘고민’이 차려지는 일입니다. 한국문화는 단일화가 강해요. 고기 없이는 회식이 안 됩니다. 미국에서 1년 정도 안식년을 보내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었어요. 이걸 먹을 거냐, 아니냐 묻고 작은 파티에도 채식 메뉴를 준비하죠. 우리 문화는 공통의 음식을 강요하고 있어요. 그것이 과도한 육식을 더욱 부추기는 셈입니다.”

플렉시테리언flexiterian, 나름의 기준에 따라 융통성 있게 채식하는 사람들이다. 최훈 교수는 플렉시테리언으로 살아볼 것을 권했다. 완벽한 채식이 어렵다면 채식을 ‘지향’하는 것부터 실천하자는 뜻이다. 혼자 먹을 땐 채식으로, 식구들과 먹을 땐 차려진 대로 먹는 방법도 있다. 미국의 음식 칼럼니스트 마크 비트먼은 ‘오후 6시까지만 채식주의자’다. 

아내 신연옥(44세) 씨는 가족의 건강과 환경을 위해 남편의 채식을 지지했다. “당신이 나와 살면서 결심한 일 중 제일 잘한 일이다.”라고 격려하고 채식 블로그와 사찰음식 요리책을 뒤져 가며 공들여 식단을 짰다. 최훈 교수는 아내와 딸의 협력이 아니었다면 채식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철학자의 본분, 아내의 본분에 충실한 두 사람. 그들이 마주앉은 모습은 보는 사람마저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채식이 부부의 건강한 백년해로에 디딤돌이 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요리 감수  정관 스님(백양사 천진암 주지) 

스타일링  이승진(아란치아)

촬영 협조  스몰하우스(02-725-7877)

꽃 협찬  인피오라타(02-2051-5465)






연근조림 주먹밥구이


재료

연근 150g, 밥 4공기, 무말랭이무침 70g, 참기름 3T, 볶은소금 1t, 검은깨 2T, 미나리 한줌(소금 약간)

조림장(간장 2T, 올리고당 2T, 다시마물 1/2컵)


만드는법

1. 연근은 깨끗이 씻은 뒤 채칼을 이용하여 얇게 저며 끓는 물에 살짝 데쳐낸다.

2. 냄비에 조림장 재료를 넣고 한소끔 끓여준다.

3. 여기에 1의 연근을 넣고 간이 밸 때까지 뒤적여가며 졸인다.

4. 따뜻한 밥에 참기름, 소금, 검은깨를 넣고 골고루 섞어준다.  

5. 끓는 물에 소금을 조금 넣고 다듬은 미나리를 넣어 데쳐낸다.

6. 한입 크기의 밥 안에 무말랭이 무침 한 줄기를 넣고 주먹밥을 만든다.

7. 마른 팬에 주먹밥을 굴려가며 구워낸다.

8. 7에 연근조림을 올리고 미나리로 묶어 완성한다.


Tip_

연근은 표백이나 가공을 하지 않은 통연근을 선택한다. 양쪽에 마디가 있고 껍질에 흠집이 적은 것을 상품으로 친다. 연근에는 암수가 있는데 길쭉한 모양에 무게가 가벼운 것이 수연근, 통통하고 묵직한 것이 암연근이다. 요리했을 때 암연근이 더 식감이 좋고 맛있다. 통연근은 살짝 적신 신문지에 싸서 비닐봉지에 담고, 껍질을 벗긴 연근은 물에 담가 냉장 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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