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념思念을 넘어 무념無念으로 가는 길

2014-11-04     만우 스님

 

 
 
 
 
깊고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현미顯微의 안목으로 존재의 근원에 다가가는 방법, 머물러 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적합하다. 관찰하고 분석해서 거친 것부터 하나하나 지워나가 가장 미세한 마음의 먼지까지 깨끗이 비워내어 마침내 저 언덕에 다다르는 방식은, 그러나 길 위에서는 또 하나의 무게다. 객관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이질적인 개별자들에게 시선을 나누어 한 번에 제대로 보고 그 동질성을 파악하기에는 몸과 마음의 밝기가 너무 약하다. 
걷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몸으로 하는 행위이고 그 본질은 괴로움이다. 괴로움을 통해서 괴로움을 느끼는 것에 대한 확인 작업이다. 분석보다는 통합의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소통하는 형식이 알맞다. 세계는 하나의 꽃, 우주는 한 개의 티끌, 이런 망원望遠의 시각이 사념思念을 넘어 무념無念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고 강고强固한 주착住着의 고개를 넘어 무주無住에 이르게 한다. 현미의 시선으로 길을 가든 망원의 시선으로 가든 그 중간의 길을 가든 선택은 자유다. 고개를 넘은 자만이 승리자다.
 
| 기원의 깃발, 타르쵸
히말라야의 길은 수많은 고개들의 연결선이다. 어느 길을 선택하더라도 예외는 없다. 라(La, 고개),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길은 라la와 라la 사이를 이어주는 선線의 다름 아니다. 무려 2,500㎞가 넘는 히말라야 산줄기는 곳곳에 마을을 품고 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소통을 위해 아무리 험준한 산이라도 넘나들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산이 크고 깊어 최적의 길을 냈다 하더라도 높은 고도의 고개를 넘는 일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일이다. 그것도 맨몸이 아니라 많은 짐을 지고 오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강건한 체력뿐만 아니라 신령스런 기운의 가피, 좋은 날씨 등  다양한 조건이 보조하지 않으면 무사히 고개를 넘어갈 수 없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래서 탈 없이 고개에 오르면 그들은 “라우깰로 끼끼 쏘쏘!(우리의 신들은 승리했다. 악귀는 정복된다)”라고 외친다. 준비해온 경전의 글귀나 부적이 그려진 오색종이 묶음을 허공에 날리며 그들의 기원이 헛되지 않았음을 천지에 고한다. 그리고 고개에는 어김없이 그들의 바람을 담은 타르쵸나 룽다가 바람에 펄럭이고 쵸르텐이나 돌무지들이 자리하고 있다.
히말라야 기슭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티베트불교를 믿기 때문에 사는 집은 물론 마을 입구, 사원 주위, 험준한 고개, 오래된 나무, 다리 등 삶과 직결되고 신성시하는 모든 사물과 장소에 타르쵸와 룽다를 시설한다. 수평으로 걸려있는 타르쵸와 수직으로 세워져 있는 룽다는 탑을 뜻하는 쵸르텐과 경전을 전부 읽는 공덕이 있다고 믿으면서 돌리는 마니차와 함께 티베트불교를 상징하는 네 가지 제일 큰 표상이다. 요즈음에는 자동차에도 타르쵸가 걸려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자동차는 이제 가장 중요한 운반수단이자 생계수단으로 자리매김 했기 때문에 무사안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타르쵸를 매달아 놓는 것은 이들의 관습으로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라la를 오르다 멀리 타르쵸가 바람에 나부끼는 것을 보면 어느덧 고개가 가까워졌음에 마음이 기꺼워지고 다리에 힘이 오른다.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결계의 의미로 신산한 삶이 지고至高의 복된 삶으로 변화되기를 바라는 기원의 의미 이외에 길을 걷는 자들에게는 가쁜 숨을 내려놓고 호흡을 고를 수 있는 쉼터의 표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바람에 날리는 타르쵸(기원을 매단 깃발)들을 보면 이방인들도 뭔가의 싸움에 승리한 듯한 감정이 솟는다.
사실 타르쵸의 기원은 불교가 아니다. 티베트에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에 토속종교인 뵌교에서 유래되었다. 나란다 대학 교수이며 탄뜨라 밀교수행의 대가인 파드마 삼바바가 티송떼짼 재위시에 먼저 티베트에 들어와 있던 나란다 대학 학장 출신 싼타락시타의 요청으로 티베트에 들어와 기득권 세력인 뵌교를 제압하면서 원주민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뵌교의 풍습을 받아들인 데서 시작되었다. 범신론을 근간으로 하는 뵌교는 삼라만상에 영혼이 깃들어 있음을 믿고 영혼들의 주처住處인 우주를 색으로 표현했다.
 
| 바람의 말, 룽다
하늘은 푸른색, 하늘의 구름과 설산은 흰색, 태양과 불은 붉은색, 대지는 노란색, 대지에서 나는 수확물은 녹색으로, 이 색들이 우주의 바탕이 되는 것이라 생각하고 깃발에 표시해 내걸었다. 그리고 깃발에 무기, 해, 달 등 강력한 힘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그려서 복을 부르거나 액막음을 하는 주술적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의 오방색五方色과 그 의미와 용도가 유사하다. 오행 가운데 토土를 의미하는 황색은 뵌교에서 노란색이 상징하는 대지와 상통한다. 그리고 뵌교의 사제가 주술로 길흉화복을 점치고 다스리며 하늘과 소통하는 제사장의 역할을 담당한 것과 무당들이 오방색으로 된 옷을 입고 깃발을 꽂고 접신의식을 하는 행위는 뵌 사제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그 뵌교의 깃발을 수용해 불교의 경전이나 상서로운 문양, 수호신 등을 새겨 불교화 한 것이 지금의 타르쵸다. 룽다도 마찬가지다. ‘바람의 말’이라는 뜻을 지닌 룽다(풍마風馬)는 우리의 솟대와 의미의 궤를 같이한다. 솟대를 마을의 안녕과 수호, 풍농을 기원하는 의미로 세우듯이 그들은 히말라야의 거친 바람을 순치시키기 위해 룽다를 세운다. 탁한 바람은 맑아지고 거친 바람은 부드러워지며 찬바람은 따뜻하게 바뀌소서 하는 기원을 담아서다. 파드마 삼바바가 최초로 이 의식을 카일라스, 강린포체, 강띠세라 불리는 수미산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히말라야와 이 땅, 공간과 인종과 언어는 달라도 삶을 통찰하고 수용하고 이끌어가는 문화적 양태는 불이不二의 원형질 위에 놓여있음을 깨닫는다. 바람에 날리는 타르쵸, 룽다, 부동의 쵸르텐 뒤에 설산이 서있다. 눈부시다.  
 
 
 
 
 ‘바람의 말’ 이라는 뜻을 지닌 룽다(풍마風馬)는 우리의 솟대와 의미의 궤를 같이한다. 솟대를 마을의 안녕과 수호, 풍농을 기원하는 의미로 세우듯이 그들은 히말라야의 거친 바람을 순치시키기 위해 룽다를 세운다. 탁한 바람은 맑아지고 거친 바람은 부드러워지며 찬바람은 따뜻하게 바뀌소서 하는 기원을 담아서다.
 
 
 
| “라우깰로 끼끼 쏘쏘”
고갯마루에 앉아 호흡을 고르고 잠시 현미顯微의 눈으로 내 안을 들여다본다. 내가 앞으로 넘어야 할 진정한 고개는 무엇인가. 얼마나 많은 고개를 넘어야 고향에 이를 수 있을까. 억겁을 돌고 도는 동안 너의 행적은 어디에 숨어 있는가. 
꿈속에서 가끔 조우하는 어떤 행적들이 있다. 거기에서 낯설은 나도 만났고 낯익은 그대도 만났다. 고개도 넘고 깃발처럼 나부끼기도 했다. 이름도 애타게 불러보았고 헤어짐에 가슴 아파했다. 꿈길에서도 모든 감정들이 일고지고 통증도 선명했다. 보는 자와 보여지는 대상인 주체와 객체는 자주 자리바꿈을 했고 위상이 변해도 기본 감정은 그대로였다. 속박, 그리고 탈출, 꿈에서도 꿈을 꾸었다. 다겁의 시간을 돌고 돌면서 경험했던 짙은 기억들이 봉인을 뚫고 나온 것일까. 현재의식이 잠재의식에 의해 잠식당하면서 다른 모습으로 변한 나는 현재의 나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환영幻影들의 실재화, 사라지지 않는 환신幻身의 현현顯現, 자취 없는 법신法身이 곧 환신이라고 했는데 꿈과 실재가 정말 둘이 아닌가?
주인은 객인에게 꿈을 이야기하고 主人夢說客
객인은 주인에게 꿈을 이야기하네 客夢說主人
꿈을 이야기하는 주인과 객       今說二夢客
둘 다 꿈속의 사람               亦是夢中人 西山
다시 꿈길을 갈지라도 일어나 길채비를 하며 갈 길을 가늠한다. 걸으며 뒤돌아 본다. 환幻 처럼 온 길이 보인다. 어떤 갈 길도 지나온 길이 되리라. 타르쵸가 바람에 날린다. 문득 팽목항의 노란 깃발이 겹쳐진다.   
 8월에 넘었던 무스탕 히말라야 고개에 팽목항의 사월의 슬픔을 걸어두고 왔다. ‘사월이 꿈이기를, 이런 꿈은 꾸지 말기를. 분노는 잠들기를. 슬픔은 인양되기를, 고통은 바람되기를’ 트레킹을 마치고 카투만두 어느 집에서 ‘사월이 가면’ 노래를 불렀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얼굴 / 잠이 들면은 꿈속의 사랑 / 사월이 가면 떠나갈 사람 / 오월이 오면 울어야 할 사람 / 사랑이라면 너무 무정해 / 사랑한다면 가지를 마라 / 날이 갈수록 깊이 정들고 / 헤어보면은 애절도 해라” 
어떤 고개보다 높고 어떤 바다보다 깊은 고통 속에 있는 가족들, 공감하는 이들. 그들은 이렇게 외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올까?? “라우깰로 끼끼 쏘쏘” 
 
 
만우 스님 
계룡산 갑사로 출가했다. 해인사 강원에서 잠시 수학하고 월간 「해인」 편집위원과 도서관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미황사 부도암 한주로 머물며 히말라야를 여행하고 돌아와 낯선 곳에서 만난 낯익은 삶에 대한 특별한 기록들을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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