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자, 속세를 떠나다!

<통도사 팔상탱> ‘유성출가상’

2014-09-01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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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팔상탱>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1775년, 비단에 채색, 233.5×151cm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팔상탱으로, 당대 여타 팔상탱화의
모본模本역할을 하였다.
경남 양산 통도사. 통도사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금강계단에 있다. 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사찰 중에서도,
‘시아본사是我本師 석가모니불’의 진신眞身이 모셔진 제1의
적멸보궁인 것이다.






‘아무도 아니기.’
실상에서 보자면 우리는 아무도 아니고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잃을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자아는 늘 그럴듯한 사람이 되려 하고 무엇이든 소유하려 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그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본래 그러한 지고의 진리입니다. 우리가 그 자애롭고 비범한 진리를 인식하고 우리 자신을 내맡길 때, 우리를 얽매고 있는 모든 족쇄들이 끊어집니다. 
- 아남 툽텐, 『알아차림의 기적』 중에서


‘원숭이들이 자기의 이름 석 자를 내세운다거나, 직업이나 직위로 스스로의 상相을 만들고, 그것으로 자신과 남에게 분별심을 잔뜩 내고 산다면 얼마나 우스울까’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사실 그렇게 살고 있는 ‘털 없는 원숭이’인 인간의 행태를, 저쪽 편 ‘자연의 눈’으로 본다면 얼마나 우스울까. 장미는 자기 이름이 장미인지 모르고, 코스모스는 자기 이름이 코스모스인지 모른다. 인간이 지어 부른 것일 뿐이다. 사람들이 제아무리 많은 개념과 제도를 만들어내고 명명하여도 자연의 생명활동은 여여如如할 뿐이다. 사람들은 가족과 사회라는 제도 속에서 이름과 직업으로 규정되어 그 상相에 걸맞게 열심히 살아간다. 이것은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될 경우, 문제가 생긴다. 고통이 따르게 된다. 누가 어떤 형태의 삶을 살던 그것은 단지 ‘역할’에 불과할 뿐 “자신의 참모습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선사들은 말씀하신다. 
“나빠 보이든 좋아 보이든 모두 우리를 얽매는 족쇄일 뿐입니다. 우리가 아무도 아니고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참으로 지고지순한 진리이자 실상實相입니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모두 내려놓을 때, 아무도 아니고 어디로도 가지 않을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우리의 참모습을 직접 만나는 것이고, 곧 붓다이고, 알아차림이고, 순수의식이며, 우리가 모든 것과 합일되는 체험입니다.” - 아남 툽텐


| 조선후기 대표 명작, 통도사 팔상탱
통도사 산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원한 솔바람이 나를 맞는다.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 펼쳐지면, 속세의 어지러움이 저절로 가라앉고 본향의 품으로 들어가는 안도감과 평화로움이 스민다. 통도사 가람은 좌측의 계곡을 따라 자연스럽게 동에서 서로, 같은 방향으로 흐르듯 앉혀져 있다. 자연의 물길과 바람길 그대로, 산도 평지도 아닌 구릉의 땅 경사 그대로, 깎지 않고 쌓지 않고 환경에 순응한 채로 가람이 배치되었다. 가람이 안내하는 대로 발길을 옮겨 가다보면 드디어 만나게 되는 궁극의 공간 ‘대웅전과 금강계단’. 통도사의 대웅전 안에는 부처님이 없다. 보살님도 없다. 허허로운 공간만이 있다. 내부 벽면은 통유리창이 끼워져 있어, 그 유리창을 통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이 보인다. 
대웅전 건물 사면에는 각각 다른 이름의 편액이 걸려 있는데, 동쪽은 대웅전大雄殿, 서쪽은 대방광전大方廣殿, 남쪽은 금강계단金剛戒壇, 북쪽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 쓰여 있다. 모두 다 통합하면서도 그 본성은 공空함을 보여주는, 종교적 상징성이 대담하게 연출된 적멸寂滅의 공간이다.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봉안한 불보佛寶사찰로 유명하다. 해인사는 부처님의 말씀(法)인 팔만대장경을 간직하고 있는 법보法寶사찰로, 송광사는 보조국사 이래 열여섯 명의 국사를 배출한 승보僧寶사찰로 이름나 있다. 통도사는 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사찰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제1의 적멸보궁인 것이다. 통도사는 다양한 국보급 유물 유적들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 중 <통도사 팔상탱>은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불화 중의 역작으로 후대 여타 팔상탱의 모본模本 역할을 하였다. 부처님의 일대기를 여덟 폭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탱 중에서, 본 글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출가의 뜻을 살피고자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을 택하여 보도록 하겠다. 

 


| 팽팽한 줄다리기 떠나려는 아들, 잡으려는 아버지 
깊은 명상에 너무나 자주 빠지는 싯달타 태자를 보고 정반왕은 아들이 출가할까봐 더욱 걱정이 되었다. 왕은 아들을 결혼시키고 자식을 보게 하면 분명 마음이 바뀌리라 생각하여, 서둘러 태자비를 간택했다. 그리고 태자의 마음을 잡기 위해 궁전은 더욱 호화롭게 치장하고 미모의 무희들로 가득 채웠다. 감미로운 음악과 맛있는 산해진미로 넘쳐나는 향락을 즐기게 하였다. 하지만 이미 ‘인생무상’이라는 화두에 걸린 태자는, 그 어떤 오욕락에도 마음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태자 역시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어서, 아버지의 바람대로 따라주기를 10년. 참으로 오랜 동안의 기다림이었다. 드디어 더 이상은 지체할 수 없다고 결심을 굳힐 때, 아들이 태어나니 ‘라후라(장애물)’라고 이름 지었다. 이에 부왕은 노하고 부인은 울었다. 하지만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태자는 마침내 출가를 허락해 달라고, 아버지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드렸다. 그 비장한 모습을 보니 부왕은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직감하고 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순간 가슴에 치밀어 올라오는 슬픔 때문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한참만에야 입을 연 부왕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싯달타, 생각을 돌이킬 수는 없겠니. 출가 이외의 소원이라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겠다.” 
“그렇다면 저의 네 가지 소원을 이루어주시겠나이까?”
“무엇이든 어서 말해 보거라”
“첫째는 늙지 않는 일이며, 둘째는 병들지 않는 일이며, 셋째는 죽지 않는 일이며, 넷째는 서로 이별하지 않는 일입니다.”
부왕은 태자의 말에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태자의 너무도 진지하고 슬픈 얼굴을 보고 화를 낼 수도 없었다. 태자에게는 생로병사의 화두를 푸는 것이 실제로 너무나도 시급한 문제였다. 결코 아버지를 곤란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대화는 깨졌고 자리는 파했다. 다시 침묵의 세월이 흘렀다.

| 야반도주의 결심, 궁성의 높은 담장을 넘다
태자는 가족들이 이렇게 울고불고 매달리는 상황에서 절대 그들에게 알리고 궁성을 나가지는 못할 것이라 판단하고, 몰래 빠져나가기로 했다. 어느 때보다 거창한 연회가 있던 날, 그래서 모두 깊은 잠에 떨어진 한밤중, 태자 나이 29세가 되던 해 2월 8일 밤이었다. 바로 그 출가 장면을 상세하게 묘사한 것이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이다. 화폭의 좌측에는 녹색 지붕의 호화로운 궁궐이 있는데 아름다운 태자비가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잠들어 있다. 그러한 장면 가운데, 태자비 맞은 편 붉은 의자의 텅 빈 자리가 눈에 띈다. 싯달타 태자의 자리인 것이다.
그는 이미 마부 찬다카를 대동하고 애마 칸타카를 타고, 정거천淨居天의 도움을 받아 성 담장을 넘는다. 태자가 성을 넘는 대목의 화기畵記를 보면 “제석천이 말고삐를 잡아 이끌고 사천왕이 말의 네 발굽을 받들었다”라고 나온다.  작품 상단의 호법신들의 외호를 받으며 성을 나가는 태자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 모든 역할을 버리고 선택한 ‘아무도 아니기’
싯달타 태자는 부왕의 사랑하는 ‘아들’이자, 온 백성들이 우러러보는 ‘왕자’이자, 갓 태어난 어린 아기의 ‘아버지’이자, 모든 걸 의지하는 한 여인의 ‘남편’이었다. 하지만 태자는 이런 모든 역할을 버리고, 왕궁을 떠나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었다. 보관을 벗고 길었던 머리를 스스로 잘랐다. 고운 비단옷을 벗고 가난한 사문의 헤진 옷과 바꿔 입었다. 호화롭고 따듯한 궁궐을 벗어나, 어둡고 차가운 숲 속에 앉았다. 

오직 존재의 근본 진리를 찾아 이를 초월하여 길을 밝히고자 궁성을 탈출한 것이다. 그러나 궁성에 있을 때보다 가슴은 더 복잡하고 심장이 파도쳤다. 막상 궁성을 떠나 고요한 숲 속에 몸을 깃들고 보니 호젓하고 쓸쓸하여 창자를 끊는 듯 쓰라림을 느꼈다. 이별이라는 사실에 부닥치고 보니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애끊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렇게 천줄기 만줄기 비단실로 얽고 또 얽고, 천필 만필의 비단보자기로 싸고 또 싸서, 금이야 옥이야 만지면 터질세라 넘어지면 깨질세라, 온갖 정성을 쏟아 붓고 온 생명을 걸어가며 길러내고 보살피고 주위를 걱정하여 한 시각이라도 태자 곁을 떠나본 마음이 없었던 부왕과 마하파사파제 부인의 알뜰한 손길이 태자의 가슴을 사뭇 끈질기게 잡아 쥐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금지옥엽 자기를 키워준 부모도 버리고 정든 친정을 등지고 일생 운명과 백년 행복을 오직 남편에게 바치겠다고 따라온 야수다라 부인과 구이 부인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들이 잠든 사이에 나는 홀로 이 숲에 와 앉아있다. 이것이 현실인가 아닌가. 태자는 마치 태풍을 만난 만경창파와 같은 소용돌이 속이었다. 
- 『팔상록』 유성출가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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