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스님으로 하나 된 남북 불교

만해 스님 열반 70주기 금강산 신계사 만해 스님 남북 합동 다례재

2014-09-01     불광출판사

 
 


경색된 남북의 관계는 좀처럼 해빙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2008년부터 시작된 경색의 기미는 금강산 피격사건을 계기로 급속히 얼어붙었다. 한때는 개성공단으로 향하는 길이 봉쇄되기도 했지만, 가까스로 다시 문이 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 경색국면은 아직 해법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런 국면 속에 만해 스님의 열반 70주기를 맞아 남북 불교계가 금강산 신계사에 모여 합동 다례재를 봉행했다. 


| 올해 첫 남북 공동개최 민간행사
한반도 관련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남북 관계는 경색 국면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여러 원칙적 장애요소들로 인해 쉽사리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 가운데 지난 6월 29일 금강산 신계사에서 ‘만해 스님 열반 70주기 남북 합동 다례재’가 봉행됐다. 다례재는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본부장 지홍 스님, 이하 민추본)와 북측의 조선불교도연맹(위원장 강수린, 이하 조불련)이 공동으로 개최한 민간행사다. 신계사에서는 매년 조계종과 조불련이 공동으로 ‘조국통일기원합동법회’를 열고 있다. 그러나 정부 승인 아래 열리는 ‘남북 합동 다례재’는 이번이 최초다. 또 종교계나 민간단체의 실무협의를 위한 단순 방북이 아닌 공동개최 형식의 행사는 올해 이번 다례재가 처음이다.
다례재에는 민추본 본부장 지홍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정문 스님, 제22교구본사 대흥사 주지 범각 스님과 함께 선묵 스님, 심산 스님, 제정 스님, 지일 스님, 덕운 스님, 전준호 대한불교청년회장 등 남측대표단 30여 명이 참석했다. 북측에서는 조불련 리규룡 부위원장, 차금철 서기장, 신계사 주지 진각 스님, 리현숙 조선불교도연맹 전국신도회 부회장 등 20여 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번 다례재는 만해 스님 열반 70주기를 맞아 올해 초부터 민추본이 주요 사업으로 삼고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결과물이다. 민추본은 지난 3월 중국 심양에서 조불련 측과 실무협의를 진행하고 다례재 개최를 제안했던 바 있다. 이후 민추본과 조불련은 팩스를 주고받으며 다례재 개최에 대한 실무논의를 이어왔다. 

| 불교개혁에 앞장선 한국불교계의 선각자
만해 스님은 을사늑약과 한일합방조약 이후 일제가 ‘한일불교동맹조약’을 체결해 불교계까지 식민지 지배의 마수를 뻗치자 승려궐기대회를 열어 일제에 저항했다. 이후 만주에 의병학교를 설치하고 독립군 양성에 나서는 한편, 1913년 ‘조선불교유신론’을 발표해 불교가 민중 속에서 민족부흥을 위해 이바지해야 한다는 불교개혁사상과 민중불교사상을 강조했다. 1919년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자 불교계 대표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후 암울했던 일제 치하에서도 끝까지 기개를 꺾지 않고 나라 위한 마음을 지킨 민족의 등불이었다. 
한편으로 스님은 일제 치하 저항문학의 상징이기도 하다. 시집 『님의 침묵』, 장편소설 『박명』, 『흑풍』, 『후회』 등을 발표해 근대기 한국문학을 이끌었다. 말년에는 조선총독부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겠다며 총독부의 반대방향으로 문을 낸 ‘심우장’을 짓고 그곳에서 기거하다 1944년 6월 29일 열반했다.

 
다례재는 108산사순례기도회
회주 선묵 스님과 신계사 주지
진각 스님의 타종으로 시작됐다.
참가자들은 만해 스님의 진영에
차와 향, 꽃을 공양하고 만해
스님의 정신을 계승할 것을
다짐했다. 이 자리에서는 남측과
북측이 서로의 통일의지를
재확인하는 덕담이 오갔다.

 


| 가을, 묘향산에서 서산·사명 대사 다례재 예정
만해 스님의 이런 업적은 남북에서 모두 추앙받고 있었다. 북측의 조불련은 “만해 스님은 북에서도 대단히 존경받고 있으며 민족의 지도자로 여긴다”고 설명하며 다례재 개최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이번 다례재에서 조불련 측이 직접 준비해 낭독한 ‘만해 스님 행장’에는 만해 스님에 대한 북측 불교계의 존경심이 가감 없이 담겨 있었다.
다례재는 108산사순례기도회 회주 선묵 스님과 신계사 주지 진각 스님의 타종으로 시작됐다. 참가자들은 만해 스님의 진영에 차와 향, 꽃을 공양하고 만해 스님의 정신을 계승할 것을 다짐했다. 이 자리에서는 남측과 북측이 서로의 통일의지를 재확인하는 덕담이 오갔다.
“다례재를 계기로 만해 스님이 활발히 오갔던 금강산과 설악산의 길목이 다시 이어졌으면 한다. 이를 바탕으로 통일의 길, 평화의 길이 복원될 수 있도록 우리 남북 불교도들이 힘과 지혜를 모아나가자.”
민추본 본부장 지홍 스님의 말에 북측의 리규룡 조불련 부위원장이 화답했다.
“만해 스님이 염원한 것은 우리 민족의 완전한 자주와 독립이었다. 북남 불교도들이 만해 스님의 민족자주정신을 계승해 민족통일을 위해 앞장서 나가자.”
다례재 말미에는 남북 공동발원문을 낭독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전준호 대불청 회장과 리현숙 조선불교도연맹 전국신도회 부회장이 공동으로 발원문을 낭독했다. 남북 불교계는 발원문을 통해 만해 스님의 정신을 반석으로 삼아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통일된 조국을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분단의 비극을 하루빨리 가시고(해결하고) 남과 북이 둘이 아닌 하나가 되기 위해 남북공동선언을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자등으로, 법등으로 삼고 실천행에 용맹정진하겠습니다. 통일로 가는 길 아무리 어렵고 난관이 겹쌓인다 해도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이 땅위에 기어이 통일된 조국, 발고여락의 이념을 현실로 꽃피워가는 현세의 지상정토를 일떠세우겠습니다.”
남북 불교계는 이어 집단적 자위권을 추진한 일본에 대한 비판도 가감 없이 발원문에 담았다. 남북 불교계는 “과거의 교훈을 망각한 채 평화를 위협하는 일본의 행위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피해에 대한 진실한 사죄와 배상에 나설 때까지 용맹정진하겠습니다.”라며 이 뜻이 남북 불교계의 일치된 견해임을 천명했다.
이날 합동 다례재에 참석한 남북 불교계 사부대중은 다례재가 끝난 이후 다과의 시간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양측 대표단은 두 손을 맞잡고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만나 남북불교교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자는 뜻을 교환했다. 이런 양측 불교계의 뜻은 올 가을에 결실을 맺게 될 예정이다. 민추본 본부장 지홍 스님은 다례재를 마친 후 인제 만해마을에서 열린 방북보고회를 통해 “올 가을 묘향산 보현사에서도 서산·사명 대사 합동 다례재를 남북 공동으로 개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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