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을 결정한 불교서

고귀한 가르침 보현행원품

2007-06-22     관리자

 [에밀]의 저자 루소(J.J .Rousseau, 1712~1778)는 이렇게 말하였다. " 모든 사람은 세상에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어머니로부터 하나의 생명으로 탄생하고 한 번은 인간으로서 사회에 탄생한다. "  탄생에는 언제나 심한 고통이 따른다. 제1의 탄생에서는 신체적 고통을 동반한다. 제2의 탄생에서는 신체적 고통 대신에 정신적 고뇌가 따른다. 우리의 정신은 불안과 회의, 허무와 절망 속에서 방황한다. 때로는 자신만만한 생의 성취감을 느끼는가 하면 걷잡을 수 없는 인생의 좌절감을 경험하게 된다. 즉 빛이 제2의 탄생을 위한 인간의 몸부림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키에르케로오르(Kier Kegaard, 1813~1855) 의 전집을 읽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22세의 젊은 키에르케고르는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 지금까지 나에게 결핍되었던 것은 나는 무엇을 해야 되는가를 자각하지 못한 점이었다. 내가 무엇으 하기를 신(神)은 바라고 있느냐. 그것을 위해서 내가 살고 , 또 내가 죽을 수 있는 그러한 이념을 발견하는 것이다. "  꿈많은 고등학교 시절 ' 그것을 위해서 내가 살고, 또 내가 죽을 수 있는 그러한 이념을 발견하는 것이 나의 과제가 아닐까..... 하고 자문자답을 하곤 했다. 그리하여 불교 써클인 [룸비니]회에 들게 되었고,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하여 세상의 흐름과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불교종립 동국대학교에 진학했었다. 대학 입학 후에도 " ' 나 ' 란 무엇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 참 '이고 ㅜ엇이 ' 거짓 '이며 생의 목적과 의문는 어디에 있는가? " 에 대한 의문은 계속되었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선지식을 찾아가 뵈었고 각종 사상 강연회와 법회에 참석하였다.  그러던 1965년 4월  매주 수요일 동국대학교 선원에서 [ 보현행원품 ]강의를 듣게 되고, 이것이 오랫동안 방황과 모든 의문에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되었다. 이 때 강의는 박성배 교수님이 하셨다. 얼마 후 구도(求道)의 동지인 대학생불교연합회 선배들과 함께 현 불광사 법주이신 광덕 큰 스님으로부터 [ 보현행원품 ] 강의를 듣고 내 인생은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 보현행원품 ]은 화엄경 속의 법문이다. [ 화엄경 ] 은 부처님이 깨달으신 내용과 광대한 공덕을 설하고 있지만 행원품에 이르러서 그와 같은 광대한 공덕을 성취할 방법을 말씀하고 있는것이다.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에 의해 보리심을 내어 53 선지식을 차례로 찾아 법을 묻고 배우는 구도역정의 마지막 차례에  보현보살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보현보살이 선재동자에게 10대 행원을 설한다. 그 10대 행원은 다음가 같다. 첫째는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이요(禮敬諸佛), 둘째는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이요(稱讚如來),셋째는 널리 공양한는 것이요(廣修共養),넷째는 업장을 참회하는 것이요(懺悔業障), 다섯째는 남이 짓는 공덕을 기뻐하는 것이요(隨喜功德),여섯째는 설법하여 주시기를 청하는 것이요(請轉法輪),일곱째는 부처님께 이세상에 오래 계시기를 청하는 것이요(請佛住世),여덟째는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는 것이요(常隨佛學),아홉째는  항상 중생을 수순하는 것이요(恒順衆生), 열째는 지은바 모든 공덕을 널리 회향하는 것이니라(普皆廻向).  보현보살이 선재동자에게 설한 10대 행원은 부처님이 지니신 공덕 세계로서 일체중생이 마땅히 이룩하여야 할 목표이며, 필자인 나 역시 마땅히 도달하여야 할 경지이다.  필자는 보현행원품의 가르침과 평상시 수지독송의 공덕으로 육체(artha)와 감정(kama)과 사상과 주의(dharma) 중심으로 보던 착각된 인가관에서 불성(佛性)생명의 인간관으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하게 되었다. 이 점에 대하여 나는 부처님과 스승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이 점에 대하여 필자는 ' 나의 생명이 불성생명이다 ' 라고 정의를 내린다. 불성생명은 존재론적으로 불생(不生) 불멸(不滅)의 법신(法身, dhamakaya)의 세계요, 인식론적으로 태양광보다 더 밝은 지혜(般若, prajna)의 세계요, 윤리적으론 최고의 선(善)인 최고의 즐거움 즉 열반(涅般 , nirvana) 의 세계다.  나는 인도철학에서 주로 간디사상에 관심을 두고 공부해 왔었다. 그 이유는 부처님 이후 인도(印度)민중의 마음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었던 인물은 마하뜨마(Mahatma)간디 (Gandhi, 1869~1948) 뿐이기 때문이다. 네루(Nehru , 1889~1964) 는 간디에 대하여 " 그에게서 받은 가장 강한 인상은 대중과의 일체화, 즉 대중과의 정신적 통합이며 인도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무산자(無産者) 곤공한 자와의 놀라운 이치의 관념이었다 " 라고 말했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시달림을 받는 대중을 신(神)가운데로 끌어 올리려는 그의 열의 앞에서는 다른 아무것도 ,심지어 종교까지도 2차적인 것이었다. 간디의 숙원은 그의 말을 빌리면 " 만인(萬人) 의 눈(眼)에서 눈물을 깨끗이 씻어 주는 것이었다 " 고 그의 저서 [인도의 발견 ] 에서 말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간디의 사상에서 보현 10대 행원을 목격하며 그의 사상을 공부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상(相)을 없앤 반야(般若, prajna)의 눈으로 보면 불성생명적 존재다. 이 불성생명의 인간관은 간디의 형이상학적 개념인 존재의 통일성(동일생명)원리이다.  간디는 인류의 정신적 통일성을 인정했다. 개인은 궁극적 실재의 성격을 띠고 있다. 간디는 인류의 정신적 통일성이 있으므로, 중생성불인 자아실현은 결리된 각 개인의 선(善)을 증장시키는데 존재하는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의 선을 증장하는데에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모든 사람의 선이란 간디에게 있어서 모든 생명에 대한사랑을 의미하고, 가장 가난한 사람과 신분이 낮은 사람까지도 포함한다. 인간의 궁극적 목적은 성불(成佛)인 자아실현이니 만큼 인간의 온갖 사회적, 정치적 및 종교적 활동은 중생성불을 실현하는 노력이 불가결의 의무로 된다.  그 이유는 [ 보현행원품 ] 에서 " 중생을 존중하여 섬기는 것은 곧 부처님을 존중하여 섬기는 일이 되며, 중생을 기쁘게 하는 것은 곧 부처임을 기쁘게 하느 거나 마찬가지다 " 라고 했다. 그ㅐ서 간디는 고통받고 있는 인도 민중을 위해서 생애를 통하여 총 2,338일 (6년 148일)을 옥중에서 보냈다. 그의 일생은 봉사 생활 그 자체였다. 이러한 봉사의 실천은 간디의 정신적 통일성의 원리에서 나왔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간디의 윤리의 초석이었던 아힘사(ahim sa, 보편적 사랑) 가  인생의 통일성 원리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간다는 분명히 20세기의 보현 10대 행원을 실천한 보살이었다.  필자는 '  나의 생명은 불성 생명이다 ' 라는 신념을 가지고 생활하니 참으로 행복하고 감사하다. ' 불성 생명의 길 ' 즉 ' 보현행원의 길 ' 이 내가 그렇게 갈망하던 ' 그것을 위해서 내가 살고,. 또 내가 죽을 수 있는 그런한길 ' 이기 때문이다. 이 은혜의 보답의 길은 모든 생명을 부처님으로 보고 찬탄하고 그 근거에 따라 공양하는 것이다.  경(經)에는 재물공양과 법공양으로 나눈다. 이 공양중 법공양 공덕이 더 수승하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 부처님께서는 법을 존중하느 까닭이시며, 말씀대로 행하면 많은 부처님이 출생하는 까닭이다 " 라고 하셨다. 법 공양은 "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하는 공양,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공양, ...... 보리심을 여의지 않는 공야 " 이라고 말씀하셨다. 불교의 목표가 중생성불과 불국토실현에 있다면 법공야, 즉 전법(傳法)의 실천해 나아가는 길이 인생의 참된 길이라는것을 확신한다.  이런 고귀한 가르침을 [ 보현행원품 ] 을 통해 배웠기 때문에 필자는 마치 영문(英文)에 모르는 단어가 있을 때 영어 사전을 편치듯이, 내게 닥치는 모든 문제와 인류의 행복과 세곟평화를 위하여 [ 보현행원품 ] 사전을 독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