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마음을 가져 오라

수유동 화계사 철야다라니기도

2014-09-01     불광출판사

 


“삶의 방향이 분명하다면 온 삶이 다 분명해진다. 하지만 삶의 방향이 분명하지 않다면 당신의 삶은 늘 문제투성이가 되고 만다.” 2013년 자기계발 분야 베스트셀러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에 실린 숭산 스님 법문이다. 숭산 스님(1927~2004)은 1522년에 창건된 화계사를 국제포교의 중심사찰로 중흥시킨 장본인이다. 해외에서는 세계 4대 생불로 추앙받는다. 스님에게는 신묘장구대다라니에 얽힌 일화가 있다. 출가하자마자 솔잎가루만으로 연명하며 다라니 정진에 들어가 100일째 되던 날 깨침을 얻은 이야기다. 여러 고승과 선사들이 참선 정진의 방편으로 주력수행을 겸해온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화계사 주지 수암 스님은 말한다. “어느 경계에도 흔들림 없는 것이 선이다. 주력수행도 그렇다.” 철야다라니기도 현장에는 130여 명의 동참자들이 오고가는 삶의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찾아 정진하고 있었다.


| 주력수행으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가
토요일 밤이다. 성성한 보름달이 구름 너머로 흘렀다. 주택가가 지척인 도심사찰이지만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화계사는 고적했다. 경내에는 이제 막 시작된 다라니기도 소리가 낮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 사다바야 마하 사다바야 마하가로 니가야….”
대적광전에 자리 잡은 동참자들의 목소리가 수암 스님의 힘있는 목탁 집전을 따라 오르내렸다. 눈을 감고 다라니를 외는 사람도 있고, 천수경이 수록된 법요집이 더러 펼쳐져 있기도 했다. 
천수경은 모든 사찰에서 매일 애송되는 경이다. 하루 세 번의 예불과 크고 작은 의식마다 빠지지 않는다. 사실 이 경의 중심축이자 주인공은 신묘장구대다라니다. 관세음보살이 보타락가산에서 석존을 모시고 중생의 안락을 위해 다라니를 설하면서 갖가지 공덕을 발원하고 모든 업장을 참회하는 감로법문을 부연해 놓은 것이 천수경의 얼개이기 때문이다. 이 다라니를 보통 대비주라고도 부른다. 대비주를 가까이 했던 것은 선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대비주 수행을 깨달음의 방편으로 삼았던 선사가 여럿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일화는 경허 선사의 으뜸가는 법제자 수월 스님(1855~1928) 이야기다.
머슴살이를 하다 서른 살에 출가한 그는 아둔한 사람이었다. 경전을 배울 수 없어 부목과 공양주 소임이 맡겨졌다. 어느 날 대비주를 듣고 한 번에 모두 외우게 됐다. 그 뒤로 늘 대비주를 읊고 다녔다. 하루는 은사 스님이 불공을 드리다 마지가 올라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공양간으로 갔다. 수월 스님이 대비주를 외며 아궁이에 끊임없이 장작을 넣고 있었다. 밥이 까맣게 타서 탄내가 진동하고 솥은 벌겋게 달아오르는데 스님은 무아지경이었다. 은사 스님은 수월 스님에게 방을 하나 내어주며 마음껏 대비주를 외게 했다. 7일째 되던 날, 스님이 문을 박차고 나오며 소리쳤다. 
“스님, 잠을 쫓았습니다! 잠을!”
수월 스님은 천수삼매(천수경의 대비주 독송을 통한 삼매)를 증득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9개월 동안 대비주를 10만 번 외는 정진 후에 ‘무無’자 화두를 타파한 용성 스님(1864~1940), 442자의 대비주에 일념을 모아 1분에 5번, 하루 4천 번을 외는 경지에 도달했던 광덕 스님(1927~1999) 이야기도 있다. 화계사 주지 수암 스님은 선을 두고 좌선에만 축소할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진정한 선이란 ‘오직 일념’이기 때문에 그렇다. 화두수행, 주력수행, 염불수행이 모두 선이라는 견지다. 화계사 다라니기도에 온 불교출판사 ‘비움과 소통’ 김성우 대표도 참선수행과 주력수행을 병행하고 있다.
“매달 동참하고 있어요. 다라니 철야정진 하는 곳이 많지 않거든요. 숭산 스님 계실 때부터 참선 철야정진을 매주 했습니다. 선은 행주좌와行住座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한 물건도 없는 자성자리를 보는 것이고 주력은 그 자리에서 일체를 작용하게 하는 힘이지요. 주력수행을 겸해 깨달음을 얻은 선사들이 많습니다. 평소 산책이나 운전을 할 때에는 간단히 준제진언을 하고 있고, 대비주 철야정진은 빼놓지 않고 하려고 합니다.”

 
 


잔잔한 호흡으로,
때로는 가쁜 숨으로
대비주를 외는 동안
망념은 쉬어지고
대비주와 하나 됨이
느껴졌다. 문득 고개를
돌려 둘러본 동참자들의
얼굴엔 맑은 평온이
서려 있었다.
 


| 다라니기도는 마음 세탁기다
대적광전을 가득 메운 다라니기도의 열기는 1시간 독송과 10분 휴식이 교차되며 밤새 이어졌다. 익숙한 진언이라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잔잔한 호흡으로, 때로는 가쁜 숨으로 대비주를 외는 동안 망념은 쉬어지고 대비주와 하나 됨이 느껴졌다. 문득 고개를 돌려 둘러본 동참자들의 얼굴엔 맑은 평온이 서려 있었다. 그 순간 모두에게 ‘분명한 삶의 방향’이란 오직 대비주였을까. 대비주를 향해 대비주가 이끌어 가는 길. 어느 한 곳 안팎의 경계가 끼어들 틈새 없이 흔들리지 않는 마음자리만이 오롯하게 드러나는 그 길.
“법에 어찌 상하가 있겠어요. 능엄주, 광명주, 대비주에 무엇이 수승하다는 게 어디 있겠나 하는 말씀입니다. 병에 맞는 약이 최고의 명약이듯 아픔, 고통, 번뇌, 망상에 휩싸인 중생을 치료할 수 있다면 그 법이 최상승이지요. 대비주도 그런 것 같아요. 가장 익숙하고 친근하잖아요. 보편성이 양약良藥일 수 있어요. 그렇기에 거리낌 없이 집중할 수 있고 지속가능한 것이 대비주입니다.”
철야정진에 앞선 인터뷰에서 왜 대비주인가, 하는 질문에 답한 수암 스님의 설명이 떠올랐다. ‘기도와 나눔으로 함께하는 도량’을 지향하는 스님의 고민은 보편성과 다양성으로 귀결된다. 도심에서 존재의 다양성을 담아내기 위해선 획일적으로 참선도량, 지장도량, 약사도량을 표방하기보단 다양한 수행과 기도 프로그램이 갖춰져야 한다고 봤다. 주 단위로 참선 철야정진을, 월 단위로 다라니기도와 삼천배 정진을 빠짐없이 진행하고 있다. 정월기도・33일 문수나한기도・초파일 33일 약사여래기도・49일 지장기도・입시기도・100일 관음기도 등 자기성찰을 위한 기도가 365일 끊이지 않는다. 기도와 수행, 교육과 법회 모임 체계가 안착된 지금은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화계사를 찾는 고정인원이 매주 1,000명에 달한다. 
온 가족이 항상 같이 나와서 나란히 앉아 가족애를 자랑하는 지요섭(66)・신옥임(65)・지숙인(37)・지정배(35) 씨는 우리는 부처님 자손이라고 했다. 이들에게 다라니기도는 마음 세탁기다. 
“다라니기도가 처음 시작된 날부터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왔어요. 날짜도 잊지 않고 있어요. 2007년 7월 27일이죠. 살다 보면 매일 불심으로만 살아지지 않잖아요. 더러워진 옷을 세탁기에 넣어 씻어내듯 한 달에 한 번, 꼭 이날만은 마음의 때를 정화하자는 게 우리 가족의 다짐입니다. 마음 세탁엔 다라니기도만한 게 없지요.”
동참자 축원으로 다라니기도를 마친 시각은 새벽 4시였다. 어라, 세탁기에 들어갔다 나온 마음은 단지 깨끗해지기만 한 게 아니었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사느라 낡고 헤진 마음이 생생한 새 마음으로 바뀐 듯 홀가분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멀리 한강 너머로 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화계사 철야정진 안내
참선 매주 토요일 저녁 9시 ~ 일요일 새벽 4시
다라니기도 둘째주 토요일 저녁 9시 ~ 일요일 새벽 4시
삼천배 넷째주 토요일 저녁 9시 ~ 일요일 새벽 4시
문의 02-902-2663


기도,이제는.진화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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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계사 주지 수암 스님

: 현대인들은 일상에서 ‘지금 여기’에 깨어있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 시대가 낳은 병폐입니다. ‘멀티’를 요구하는 시대잖아요. 이것을 하면서 저것을 생각해야 하고, 밥을 먹으면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요. 1950년대에 태어난 6・25세대와 1960년대 경제개발세대는 서구권에서 200년 걸린 산업화를 압축성장으로 이뤄냈습니다. 지금 그 대가를 치르는 거예요. 그들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생존을 위해 물질을 욕망했던 세대니까요. 현대인, 즉 멀티세대는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해내 일을 잘하는 듯 보여도 실상 제대로 집중하지 못합니다. 집중과 내려놓기 훈련이 필요해요. 일정 시간 한 가지에 몰입하는 다라니기도가 도움이 됩니다.
: 어떤 마음가짐으로 기도해야 할까요?
간절한 마음이 동기가 될 수 있습니다. 깨달은 사람 입장에선 치졸할 수 있지만 본인에겐 가장 지고지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동기가 전부는 아니지요.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도움 속에 이뤄져 있다는 자각이 필요합니다. 서울대 가기 바라는 건 기복이에요. “우리 자식이 공부 열심히 해서 세상에 도움 되고픈 꿈이 있는데 굳건한 재목으로 성장하도록 보살펴 주십시오.” 이것이 참다운 기도입니다. 기복을 거쳐 진실한 동기를 통해 성장하고 작복으로 넘어가는 것이지요. 기도의 사회적 목표가 핵심입니다.
: 기도와 수행에서 나눔을 강조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현대의 수행불교는 현실참여 없이 자기 수행에 그칩니다. 조선과 일제강점기 승가사회가 극도로 제약받으며 수행에만 전념했던 흐름을 답습해 왔어요. 종교는 사회개혁의 방향성을 갖고 최첨단 트렌드를 끌고 가야 합니다. 개인의 무명타파, 업장소멸이라는 베이스를 사회구성원과 모든 존재의 변화로 확장하는 거죠. 이웃이 행복해야 비로소 나도 행복할 수 있다는 철저한 깨달음이 우선입니다. 
박제화된 사회복지나 구두선口頭禪으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기도하고 수행해서 변화 에너지를 축적하면 자비 실천의 막강한 동력이 되지요. 기도는 나눔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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