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향기, 고향의 향기

인물열展 - 기다림, 그 위대한 탄생 | 사람이 있는 풍경

2014-08-12     불광출판사

 

그들에게 여행은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산이 좋은 계절엔 산을 찾고, 바다가 좋은 시절이 오면 바다를 향해
짐을 꾸렸다. 그렇게 어느 해엔 세찬 바람마저도 달콤한 제주도에서,
또 어느 해엔 푸른 바다가 눈부시게 빛나는 강릉의 해변에서,
그리고 또 언젠간 지리산 맑은 계곡을 찾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만들어온 그들이다. 
그런데 오늘은 좀 특별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엄마와 딸이 하는 첫 번째 여행. 
그래서 더 많이 설레고 기다려졌는지 모른다.
부모님이 만들어 준 커다랗고 따뜻한 보금자리를 떠나
결혼을 하고 출산을 앞둔 딸은 엄마와 떠나는 단둘만의 여행을 계획했다.
새 생명을 잉태하고 이제 곧 엄마가 되는 딸 허수나(33. 명인심) 씨와
그런 딸을 애틋한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엄마 서경숙(56. 진여화) 씨.
몸은 무거웠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고 편안했던 두 사람.
그들이 찾은 곳은 전북 부안이다.

 

Scene #1
반갑다, 
개암사
누구에게나 그런 곳이 있다. 
어느 날 문득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발길을 돌려 찾을 수 있는 곳. 
두 사람에겐 개암사가 그런 곳이다. 
봄이면 절집 입구까지 벚꽃들이 마중을 나와 
마음을 설레게 하고, 
여름이면 붉은 꽃을 활짝 피운 
배롱나무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가을이면 능가산을 물들인 
오색단풍에 눈이 즐겁고, 
겨울이면 하얀 설산에 에워싸인
절집의 고요마저도 평화로운 곳.
산이 좋아 절을 찾고, 
절이 좋아 산을 찾는
엄마와 딸은 오랜만에 다시 찾은 
개암사가 새롭기만 하다.
단청으로 새 옷을 갈아입은 대웅보전도
몇 채 없던 전각들이 
절 마당 곳곳에 세워진 모습도
사찰의 모양새는 예전과 조금 달라졌지만
그 안에서 느끼는 편안함은 여전하다.
대웅보전에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합장하고 앉아, 엄마는 딸의 순산을 기원하고
딸은 엄마의 건강을 발원한다.
서로를 향한 따뜻한 사랑이 포근하게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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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2
편하다, 
엄마와의 
시간
딸에게 엄마는 늘 그리움의 대상이자,
힘들 때 찾고 싶은 고향과도 같다.
엄마는 딸의 마음을 
언제나 미리 헤아려 주었고,
딸은 자라는 동안 한 번도 
엄마 말을 어겨본 적이 없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는 유별났던 모녀.
늘 아들처럼 든든했던 
딸이 엄마 품을 떠나고 난 후
엄마는 ‘빈둥지증후군’에 시달릴 만큼 
딸의 빈자리를 허전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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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시간을 보낸 건 딸도 마찬가지다.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지난 1년. 
결혼과 함께 선물처럼 찾아온 아이는
더없이 소중했지만, 엄마를 떠나 바뀐 
환경에 채 적응하기도 전에 시작된
임신과 입덧으로 낯설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했기 때문이다.
입덧으로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있을 때
간절하게 그리웠던 엄마.
보고 싶다는 마음이 무엇인지
딸은 그렇게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엄마의 사랑을
가슴으로 헤아리게 되었다.
손을 마주 잡은 엄마와 딸이 
문득 시선을 돌려 올려다본 하늘 위로
저 멀리 우금암이 보인다.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며 단단하게 서 있는
든든한 바위처럼, 엄마는 딸의 곁을 지켜줄 것만 같다. 
 

Scene #3
아쉽다, 
여기가 
끝이 
아니기를
함께 떠나는 즐거움, 그것만으로도 
‘행복’을 말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완벽한 길동무가 또 있을까.
바다로 향한 엄마와 딸은
한동안 말없이 수평선을 바라본다.
그 사이 하얀 포말을 일으킨 
파도가 발끝을 스치고 미끄러져 가기를 수차례.
한 번 두 번. 밀려왔다 사라지는 파도를
말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해지는 두 사람이다.
해는 점점 수평선 너머로 모습을 감추며
바다를 붉게 물들인다.
아! 아름답다. 잠시 시간을 멈출 수 있다면
석양을 바라보며 엄마와 딸이
함께 한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이제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야 할 시간,
오늘 하루를 감사하며 발걸음을 돌린다.
부디 오늘이, 지금 여기가 끝이 아니기를… 
두 사람만의 특별한 여행이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걸
엄마도 딸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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