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맨얼굴을 마주할 거울이 필요합니다”

인물열展 - 기다림, 그 위대한 탄생 | 지금, 만나러 갑니다 | 불교포커스 신희권 대표

2014-08-12     불광출판사

그가 유쾌한 사람이란 게 실은 조금 의외였다. 묵직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마치 집밥 내놓듯 담담하게 풀어놓으며 이따금 상대를 웃게 만드는 그에게 투사의 격앙된 표정이나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눈빛을 기대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바로 불교계 최초의 인터넷신문이자 이른바 ‘불교 판의 불편한 진실’을 가차 없이 들추는 대안언론으로 탄생한 ‘불교포커스’ 신희권(49) 대표이기 때문이다. 탄생에는 필연적으로 진통이 동반된다. ‘할 말 하는’ 대안언론으로서 겪었던 불교포커스의 진통과 성장스토리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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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유와 나눔, 인터넷 대안언론으로 실천하다
: 불교포커스는 불교계 최초로 교단 자정과 개혁을 추구하는 대안언론을 표방하면서 인터넷 언론의 막을 열었습니다. 그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기존 매체에서 다뤄지지 않은 면들이 분명 있는데 감추거나 숨겨서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제는 드러내서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었어요. 처음부터 그런 원력을 펼칠 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습니다. 불교계에 와서 처음 일한 곳이 ‘자비의 전화’였는데 상담전화 외에도 지방 어느 절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느냐 묻는 전화가 많았어요. 마침 통신문화가 서서히 발달하던 시점이라 전국 사찰 전화번호를 한데 모아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죠. 그게 1995년에 문을 연 ‘불교114’입니다. 2년 뒤에는 일간지 홈페이지에서 불교 관련 소식을 모아 보여주는 뉴스클리핑 사이트를 열었어요. 이것이 불교포커스의 전신인 ‘불교정보센터’인데 그 체제로 상당기간 갔습니다. 동전의 양면을 명확하게 얘기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으로 정식제호를 갖고 자체 기사를 내기 시작한 게 2006년입니다. 종이신문처럼 제작비용이 많이 들지 않으니 인터넷의 대중화라는 시대흐름과의 조우가 유효적절했던 것 같습니다.
현상의 이면을 취재하고 기사화하는 작업은 초창기보다 오히려 요즘이 더 어려워요. 예를 들어 세력 간의 다툼이 있다고 한다면 양쪽 모두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면서 본질적인 내용을 덮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매체가 진화하는 동안 대응 방식도 진화했다고 할까요. 불교계 이면의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취재하면서 실망하거나 좌절하지는 않았어요. 저를 힘들게 했던 건 기사로 인해 인간관계가 깨지는 일이었습니다. 불교계가 좁기 때문에 한두 단계 거치면 서로 다 연결돼 있잖아요. 그런 일이 있을 때면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회의감도 들었죠. 그동안 배후에 어떤 스님이나 세력이 있는 것처럼 매도된 적이 있지만 전혀 사실과 다른 얘기이고, 회유가 있거나 해서 써야할 기사를 못낸 적은 없습니다. 글쎄요, 누가 돈으로 회유 좀 했으면 좋겠는데요.(웃음)

: ‘불교계 최초’라는 타이틀로 인터넷 대안언론을 창간하게 만든 동인은 무엇이었나요?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 과정도 궁금합니다.
어머니는 사실 저를 하느님 품 안에서 키우고 싶어 했던 분이었어요. 부모님이 시골에서 상경하셔서 안 해본 일 없이 고생하며 자식들을 키우신 집안의 장남입니다. 고등학생 때 우연찮게 집 근처 절에 갔다가 학생회 1기가 되어서 책임감을 느끼며 여러 가지 일들을 했었어요. 아버지는 자식들이 절이든 교회든 공부 아닌 다른 곳에 한눈파는 게 용납이 안 되던 분이었죠. 아버지 말씀이, 제가 첫 수련회를 2박 3일간 다녀오고는 밥을 먹으면서 소리를 안내더라고 하셨어요. 그 뒤로 절에 다니는 것을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으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학생회 시절에 합리적이지 못한 절집의 현실을 가까이서 보게 됐죠.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부처님 오신 날 발표회라고 해서 무대를 준비하는데 예산이 20만원이라고 치면 스님께서 15만원을 주시면서 “돈이 이것뿐이다.” 하시는 거예요. 고생하면서 겨우 겨우 어떻게든 발표회를 마친 뒤에 고생했다고 회식비로 15만원을 주셨어요. 저는 고맙지 않았습니다. 그 돈이면 훨씬 여유롭게 더 좋은 무대를 준비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스님들이 돈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른다고 생각했죠. 그 일이 나중에 불교 쪽에 오게 되는 계기가 된 셈입니다. 대학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할 때 ‘절집이 바뀌면 세상이 바뀔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소식의 소통이 잘되면 변화를 위한 학습효과가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요. 이 일을 하면서 지치지 않았던 이유는 어린 나이에 절집 사정을 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불교계에서 일하다 실망감을 안고 떠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얘기해요. “모르고 왔어? 바꾸자고 온 거잖아.” 그런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불교포커스에서 생산한 저작물은 누구나 복사할 수 있으며, ‘정보공유라이센스 2.0:영리금지 개작금지’에 따릅니다.” 불교계 매체 홈페이지에서 볼 수 없던 낯선 표현입니다. 
‘카피레프트’예요. ‘정보공유라이센스 2.0’을 알기 쉽게 부르는 말인데 ‘카피라이트’의 대안적 개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불교가 나눔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마저 자본적 논리에서 나온 지적재산권을 굳이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니 결정이 쉬워지더군요. 기사를 다른 홈페이지들에 가져가면 그곳의 콘텐츠를 풍성하게 할 수 있고 굳이 불교포커스에 들어오지 않고도 기사를 썼던 의미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의 기본정신이 공유와 나눔인데 불교계에는 아직까지 이런 논의 자체가 없죠. 그런 의미에서 카피레프트는 작지만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안 하는 일을 하자, 남들이 하는 일도 조금 다르게 하자는 게 제 모토입니다. 

| 창간정신에 충실한 ‘담론의 메카’를 꿈꾸며
: 다양한 분야의 칼럼을 접할 수 있는 ‘여시아사如是我思’ 섹션이 매력적입니다. 필진이 모두 재가자이고 코너마다 전문성과 고민의 깊이, 생동감이 있습니다. 마땅한 공론의 장이 부족한 불교계 실정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아 보입니다.
스님 필진을 열심히 찾고 있는데 다들 안하려고 하시네요.(웃음) 여시아사가 많은 분들에게 데뷔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고 그분만이 쓸 수 있는 글을 마음껏 쓰는 환경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예요. 필진 중에 오창익, 백찬홍, 박문수 같은 분들은 이웃종교인이거나 시민사회영역에 계신 분들인데 바깥에서 해줄 수 있는 얘기를 들어본다는 의미가 있어요. 여러 영역에서 기존 매체 오피니언 코너에 언급됐던 내용들을 넘어설 공론의 마당이 필요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왜 바꿔야 하는지 교계에 담론 형성이 안 되고 언로가 막히니까 결과적으로 표현방식이 격하고 실속도 없거든요. 공적인 성숙을 이루기 어려운 소모적인 논의에 그치는 거죠. 평소 담론의 장에서 충분히 소통될 필요가 있습니다. 
길게 봤을 때 불교계 담론 형성을 위한 인큐베이팅 공간을 꿈꿔요. 불교계 활동가들이 참신한 기획과 글로써 내공을 쌓아가고 그것이 토론회나 책으로 결과물이 되어 나올 때 한 차원 성장이 가능하겠죠. 그래서 그런 분들이 기획과 집필을 하실 수 있도록 사무실 공간 일부를 열어놓고 있어요. 현재 여시아사 섹션을 맡고 있는 윤남진 씨가 이 공간을 활용하고 계신데 불교계가 이런 분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이 분의 역량을 활용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인문학 연구모임인 ‘수유 너머’와 같은 시스템을 장기적인 모델로 삼으려고 하지요. 


: 두세 명의 인원으로 운영되는 ‘1인 미디어’가 아니고 정규 기자만 5명인데 회사 경영이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교계 인터넷언론 중에선 가장 많은 숫자일 거예요. 언론으로서 자기 생명력을 키워야 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까요. 6개월 전 신입기자를 새로 뽑았습니다. 그동안 경제적으로 여력이 좀 생기는 기회가 두 번 왔었어요. 불교정보센터 시절에 사무실이 무척 협소하고 열악했는데 급여를 더 가져갈지, 사람을 뽑을지, 사무실을 옮길지 세 가지 선택이 있었습니다. “일이 좀 많은 건 좀 더 뛰면 된다. 급여는 더 받으면 좋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사무실이다.”라고 다들 의견을 모아줬어요. 이번에도 급여와 사람 중에 사람을 선택해서 지금 이 인원이 된 겁니다. 참 고마운 일이에요. 다들 직원이기 이전에 도반이고 동지죠. 
다른 인터넷언론과 마찬가지로 주요 수익은 광고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개별광고 단가가 최대 월 30~50만원을 넘지 않도록 제한을 두고 있어요. 그걸 포기하더라도 써야할 기사는 쓰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정입니다. 금액이 너무 크면 그게 어려울 수 있죠. 또, 사찰재정 공개를 많이 얘기하잖아요? 비판하는 입장에 있는 언론일수록 먼저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조만간 재정공개를 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내부에서 반대의견이 있네요. 다른 이유가 아니라 급여가 너무 적어 창피하다고.(웃음) 


: 개인적으로 ‘시골절 주지일기’ 코너를 좋아합니다. 현실적이고 감동이 있어요. 외부필진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대안언론으로서 고발매체의 정체성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을 텐데요, 향후에는 어떤 방향으로 운영하실 계획인가요?
고발성 기사는 불교포커스 창간정신 그 자체입니다. 이제는 불교포커스도 지향하는 정신만으로 격려와 지지를 받을 시기는 지났다고 봅니다. “어려울 텐데 꿋꿋하게 하고 계시네요.”가 아니라 “잘 하고 있는 거야?”라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않은 때가 온 거죠. 불교계 현실이 아직 옛날에 봤던 구태의연한 면면들이 해소되었다고 말할 수 없어요. 창간정신에 대한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갖고 접근할 필요가 있는데 주춤했던 것이 사실이구요. 올 하반기부터는 기획취재팀을 따로 두고 임팩트 있는 기사들을 만들어낼 계획입니다. 외부 필진의 역량 또한 업그레이드해서 개별적 글쓰기에서 쟁점에 대한 찬반토론으로 발전시켜 교계에 이슈를 제시할 수 있는 콘텐츠를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에요. 글 뿐 아니라 좌담 영상 등 다양한 기법을 도입하기 위해 사무실 공간에 작은 스튜디오를 꾸밀 생각입니다. 촬영과 녹음 장비를 소박하게 갖추고 영상을 통한 메시지 전달을 시도하려고 해요. 영상은 텍스트와는 또 다른 전달력이 있으니까요. 재미있는 시도가 될 것 같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맨얼굴이 있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때 더욱 아름다운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원력으로 불교계 인터넷 대안언론 불교포커스를 탄생시킨 신희권 대표. 그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저명한 언론학자 마샬 맥루한의 말 “미디어가 곧 메시지다”가 떠올랐다. 고발매체라는 창간정신을 토대로 건강한 담론형성의 장을 만들며 성장을 거듭해 가고 있는 불교포커스와 신희권 대표.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의 행보가 앞으로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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