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우리’를 생각하는 시간

약이 되는 여름채소 가지와 가지약밥

2014-08-12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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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웅숭깊은 마음씀씀이를 지닌 이를 만날 때가 있다.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담백하게 상대를 껴안아 ‘우리’라는 참맛을 낼 줄 아는 사람. 고통 받는 사람들 곁을 지키러 아프가니스탄으로 날아가고, 환경과 굶주린 이웃들을 살리는 비움과 나눔의 실천인 ‘빈그릇 운동’에 160만 명을 동참하게 만든 前 에코붓다 이사장 유정길 씨가 그랬다. 그의 초대로 불교적 국제구호 연구모임 ‘Do No Harm(해로움 없이 행하라는 뜻)’ 회원들이 사찰음식을 나누기 위해 모였다. 식탁의 주인공이 되기보다 조화로운 맛을 위해 한 발 물러나 기꺼이 조연을 담당하는 채소 ‘가지’와 유정길 씨는 서로 닮았다. 북촌 한옥 지붕 아래 7월의 제철채소 가지로 만든 맛깔스런 가지약밥이 ‘우리’라는 화두로 마주앉은 어느 여름날의 점심식사를 웅숭깊게 끌어안고 있었다.

| 가지는 여름 건강을 지켜주는 영양소 보물곳간이다
가지의 담담한 맛은 보통 고소한 가지전으로, 시원한 가지냉국으로, 자꾸 손이 가는 가지나물로 우리네 식탁에 오른다. 그동안 미처 몰랐다. 가지가 어떤 식재료보다도 훌륭한 양분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름이면 풍성한 식탁을 차릴 수 있게 하는 이 흔한 채소에는 여름건강을 지켜주는 영양의 비밀이 그득하게 숨겨져 있다.
가지는 수분이 95% 이상이며 100g당 열량이 16kcal인 최고의 다이어트식품이다. 무엇보다도 가지의 보랏빛에는 외부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스스로 만들어낸 안토시아닌 성분이 듬뿍 들었다. 자외선이나 스트레스로 생성된 활성산소를 억제하는 항산화작용, 망막에서 빛을 감지해 뇌로 전달하는 로돕신 색소 생성을 도와 시력을 회복한다. 
가지의 원산지는 인도다. 중국 송나라 『본초연의本草衍義』에는 ‘신라에 일종의 가지가 나는데 모양이 달걀 비슷하고 엷은 자색에 광택이 나며 꼭지가 길고 맛이 달다.’라고 쓰여 있어 신라시대부터 재배한 것을 알 수 있다. 가지의 종류에는 청가靑茄, 백가白茄, 자가紫茄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보라색 가지가 주로 재배된다. 
가지의 성질은 차가워 체질이 뜨거운 사람의 열을 내려주며 열로 인해 혼미해진 정신을 맑게 하므로 여름 더위를 이겨내는 데 좋다. 그래서 사찰에서는 여름안거 기간 중에 가지요리를 자주 낸다. 재배하기 쉽고 효능이 뛰어나 절에서 직접 기르기도 했다. 
사찰의 가지요리는 예로부터 쪄서 무치거나 콩가루를 묻혀 쪄내는 조리법을 주로 썼다. 기름에 볶거나 굽는 요리는 많지 않았는데 기름이 귀하기도 했지만 소화하기 어려워 수행에 이롭지 않은 까닭이었다. 가지의 비타민E는 지용성으로 약간의 식물성기름과 함께 조리하면 흡수율이 높아지므로 가벼운 볶음 요리로 먹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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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찹쌀과 가지의 겸손한 만남, 가지약밥
영양소 보물곳간, 가지를 이용해 만들기 좋은 음식으로 가지약밥이 있다. 밥, 국, 반찬을 따로 차리지 않고도 가지약밥 한 가지로 간소한 식탁이 완성된다. 견과류 대신 감자, 표고버섯 등 신선한 채소를 넣어 만든 약밥은 소화기능이 떨어지는 여름철에 내기 알맞은 음식이다. 
가지를 양파와 함께 볶아 약밥 위에 올리면 보기 좋은 모양새에 눈이 먼저 즐겁다. 맛에 대한 기대감이 절로 샘솟기 마련. 한 입 맛보면 약밥의 단맛, 짠맛, 고소한 맛이 어우러지며 한껏 수분을 머금은 가지와 양파의 아삭한 식감이 먹는 즐거움을 더한다. 가지볶음과의 절묘한 조화로 간식에 가까운 약밥이 손쉽게 먹을 수 있는 한 끼 식사가 된다. 그래서 가지약밥은 채소를 잘 먹지 않는 어린아이부터 소화력이 약한 노년층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온 가족 소식 메뉴’다. 
어린 시절 잔칫날에나 먹던 약밥을 이제는 언제라도 먹을 수 있는 풍족한 시대다. 그렇지만 가지약밥은 조금 특별하다. 균형 잡힌 영양으로 가볍게 먹는 건강한 식사, 채식을 통한 자비의 실천, 온 가족이 둘러앉아 색다른 음식을 나눠 먹으며 함께하는 즐거움이 있는 3소식(소蔬, 소小, 소笑)의 식문화가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약밥 위에 살짝 얹혀 찹쌀로 만든 약밥의 고소하고 쫄깃한 맛을 풍부한 영양으로 거들어 주는 가지의 겸손함이 ‘더불어 사는 우리’의 의미에 대해 사색하는 시간을 선물한다. 가지의 본성에 충실하며 약밥의 본성을 해치지 않고 상생하는 맛, 추억의 주먹밥처럼 작고 소박하지만 그 의미만큼은 남다른 음식, 가지약밥이다.

가지약밥
재료
찹쌀 3컵, 가지 3/4개, 감자 1/2개, 
불린 표고 10g, 잣 1/2 컵, 황설탕 3/4컵, 
간장 2T, 소금 1t, 참기름 2T, 대추물 2컵
토핑(가지 1/2개, 붉은 양파 1/6개, 
완두콩 약간, 간장 1/2T, 설탕1t, 
사과식초 1/2t, 현미유, 꿀 약간)
만드는법
1. 찹쌀을 3시간 동안 불린다.
2. 가지, 감자, 불린 표고를 잘게 깍둑썬다.
3. 황설탕, 간장, 소금, 참기름, 대추물을 섞는다.
4. 불린 찹쌀을 체에 받쳐 물기를 빼고 압력밥솥에 찹쌀, 표고, 3을 담아 센불에 올려 약 8분 간 밥을 한 후 바로 한 김 식힌다.
5. 밥 위에 감자, 가지, 잣을 넣고 10분 간 더 찐 다음 주걱으로 골고루 섞어준다.
6. 약밥을 찌는 동안 가지, 붉은 양파를 채 썰어 간장, 설탕, 사과식초, 현미유를 넣고 센불에 볶다가 약간의 꿀을 첨가해 토핑용 가지볶음을 만든다.
7. 완두콩은 살짝 데친 후 찬물에 담가 식힌다.
8. 모양틀에 약밥을 넣어 모양을 만들고 그릇에 담아 가지토핑을 올린다. 그 위에 완두콩, 새싹채소 등을 얹어 상에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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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한 알에 담긴 우주를 깨우쳐 주는 빈그릇 운동
가지와 가지약밥이 ‘우리’라는 화두를 던져 주었다면 음식을 통한 환경수행으로 그 화두를 풀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유정길 씨다. 그의 이름 앞에는 정토회의 생태환경운동단체인 에코붓다가 늘 따라다닌다. ‘나는 음식을 남기지 않겠습니다’라는 에코붓다 빈그릇 운동 서약서에 160만 명이 서명하게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첫 시작은 2003년이었어요. 연간 15조 원어치 음식물쓰레기가 쏟아져 나오고 처리비용만 4천억이 드는 실정이었죠. 저와 법륜 스님, 그리고 정토회 회원들은 북한을 비롯해 지구촌 이웃들이 굶고 있는 상황에서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원들이 직접 학교나 지자체를 찾아가 빈그릇 운동을 알렸어요. 어떤 언론은 ‘지독한 시민운동’이라고도 했고 2005년 ‘올해의 환경기자상’을 받기도 했어요. 지금도 빈그릇 운동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초대한 이 친구들도 매일 실천해요.”
10년 전 유정길 씨는 인도JTS에서 활동 중이던 강성원 씨를 만났다. 지금은 불교계 국제구호단체 더프라미스에서 일하는 그는 2010년 캄보디아에서 자원봉사를 하다 지금의 아내 이영아 씨를 만나 두 달 전 평생의 반려가 되었다. 이영아 씨는 현재 참여연대 국제구호분야 활동가다. 두 사람은 음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적은 양을 덜어 먹는 것이 몸에 뱄다. 
“우린 남들도 괴롭힙니다.(웃음) 대학시절에 친구들이 저랑 같이 밥 먹으러 가는 걸 부담스러워 했어요. 쟤랑 밥 먹으면 다 먹어야 해, 하면서요. 그런데 식당 아줌마는 정말 좋아하셨어요. 반찬을 더 주려하시면 사양하고 적게, 남김없이 먹으니까요.”
강성원 씨의 말이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 국제팀에 근무하는 공선주 씨와 유정길 씨의 만남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토회 수행과정인 ‘깨달음의 장’에서 참가자와 지도자로 처음 만났고 2006년 기도대중으로 공동체생활을 할 때부터 교류가 오갔다. 그녀는 가지를 좋아한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통째로 삶은 것을 손으로 찢어서 참기름, 간장, 깨소금 넣고 무쳐먹는 가지나물을 좋아했죠. 가지약밥은 처음인데 정말 맛있네요. 먹고 싶은 만큼 덜어먹기 편한 장점도 있고요. 이렇게 모여서 함께 먹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불교와 국제구호라는 공통분모로 모여 한 달에 두번씩 만나는 얼굴들이지만 맛깔스런 사찰음식을 앞에 두고 마주앉으니 더욱 뜻 깊은 시간이라는 말이었다. 밥 한 알이 만들어지려면 우주의 모든 것이 필요하다는 유정길 씨. 한 알과 한 가마니 중 어느 쪽의 값어치가 더 무거운가 들여다보면 내재적 가치는 똑같다는 그의 말에 둘러앉은 모두가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 나와 연결된 ‘우리’를 느끼는 소중한 시간이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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