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안전관리시스템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국내・외 재난시스템과 우리 사회의 준비 자세

2014-08-12     불광출판사

최근 우리는 있어서는 안 될 가슴 아픈 사건을 겪으며 엄청난 트라우마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무리한 구조변경, 과적으로 인한 복원력 부족, 미숙한 운항 등이 원인이 되어 300여 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침몰사고는 예견된 참사였다. 사고 발생 시 선장의 신속한 탈출지시와 함께 선원들이 안전한 대피로를 확보하고 구명활동을 했더라면, 초기대응에서 해양경찰청의 구조 활동이 적극적으로 펼쳐졌다면, 사고 수습과정에서 정부의 재난안전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됐다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치명적인 결과와 마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대한민국 재난안전관리의 현주소
이번 사고는 사회 곳곳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에 대한 경각심과 국민의 안전을 관리감독하고 총괄·조정·지원하는 국가의 재난안전관리시스템의 작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웠다. 이에 정부는 ‘국가안전처’를 신설하여 재난안전관리체계를 통합하고, 공직사회의 개혁과 국민의 안전보장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재난사고가 발생한 후에 “아! 그때도 그랬지.”가 아니라 “그때 그랬기에 우리는 이렇게 개선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기 위해서 새로운 재난안전관리시스템 구축에 우리 모두의 지혜와 역량을 모아야 할 때이다. 그러므로 국가 재난안전관리시스템을 어떻게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재난災難, Disaster이란 물(水)과 불(火)의 합성어인 재災와 어려움을 뜻하는 난難이 합해진 말로서 물과 불로 인한 ‘예기치 못한 재해에 의해 발생한, 불행한 사태’를 말한다. 재난은 태풍·홍수·가뭄·강풍·해일·지진·화산·대설·황사 등의 자연현상에 의해 발생하는 자연재해와 환경오염·교통·선박·항공기 사고나 폭발, 화재·방사능 누출 사고 등 국가사회 기반 마비와 전염병 확산 등 인간이 유발하는 사고성, 범죄성 재난인 사회재난으로 분류된다. 오늘날은 기후변화, 인구와 산업시설의 도시집중 등으로 인해 재난이 대형화, 다양화, 복합화 되는 추세여서 재난이 한 번 발생하면 대규모의 인적, 물적 피해를 초래한다.  
우리나라는 대형재난이 발생하면 재난부처를 신설했다가 재난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면 슬그머니 그 기능을 축소해왔다. 그 예로 1994년의 성수대교 붕괴와 1995년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겪으면서 내무부에 재난관리국을 신설했고, 2002년 태풍 루사, 2003년 태풍 매미,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이후 행정안전부 산하에 소방방재청을 신설하여 자연재난과 인적재난을 전담했다. 현 정부에 들어 자연재난과 인적재난을 전담하던 소방방재청의 업무 중 인적재난을 안전행정부의 사회재난업무에 흡수시키면서 국가의 재난관리 업무는 안전행정부와 소방방재청으로 이원화됐다. 
또한 재난의 발생장소에 따라서도 관할영역이 구분된다. 재난이 육지에서 발생하면 소방방재청과 안전행정부·해당부처·지자체가 담당하고 바다에서 발생하면 해양경찰청과 해양수산부가 담당한다. 우리나라의 재난관리체계는 안전행정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재난유형에 따라 주무부처 장관이 본부장이 되는 중앙사고수습본부, 각 시·도지사의 재난안전대책본부로 이어지는 하부구조로 되어 있다. 현장구조팀으로는 소방방재청장을 단장으로 하는 중앙긴급구조통제단과 각 시·도 소방본부장의 시·도긴급구조통제단, 그 하부에 현장 소방소장 등의 현장구조팀으로 구성되어 복잡한 다단계의 지휘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 재난의 사례, 지난 재해를 기억하라
선진국의 재난관리시스템은 단순한 지휘체계와 현장중심의 신속한 대응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총괄·조정기능을 수행하는 컨트롤타워와 유관기관 간의 유기적 협조가 잘 이뤄진다. 재난관리 선진국인 미국은 2001년 9·11테러 당시 뉴욕의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뉴욕시 소방본부장에게 현장의 총괄 지휘를 맡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9·11테러 이후 재난, 안전, 안보를 통합한 국토안보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 DHS)가 신설됐고 연방재난관리청(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 FEMA)이 편입되면서 오늘날의 재난관리체계가 구축되었다. 재난 시 현장대응은 주·지방정부가 맡고 재난비상사태가 선포될 경우에는 FEMA가 전면에 나서고 뒤에서 국토안보부가 조정역할을 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Katrina가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했을 당시 관료출신이었던 FEMA청장이 대피명령을 늦게 전달해 피해를 키웠고, 미숙한 상황대응에 대해 시민들의 비난 또한 쇄도했었다. 그러나 이후 2012년 허리케인 샌디Sandy가 상륙해 미국 동부를 강타했을 때, 현장전문가 출신인 FEMA청장은 국립허리케인센터와 함께 샌디의 예상 진로를 추적하여 허리케인의 피해예상 지역을 긴급 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CNN 등의 미 언론을 통해 주정부의 대비태세와 대피과정을 실시간 중계함으로써 해안가 주민 수십만 명을 대피시켰다. 또한 해일 등에 대비해 주 방위군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FEMA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발전해 나갔으며 이제는 국민적 신뢰를 받는 기관으로 거듭났다.
우리는 어떠한가? 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르고서도 유사재난이 반복된 사례가 있는가 하면, 학습효과와 꾸준한 실전훈련으로 피해를 최소화한 사례도 있다. 예를 들면, 세월호 참사는 20년 전에 발생한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의 판박이였고, 마우나오션 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는 15년 전에 발생한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고에서 지적된 위험요소가 시정되지 않아 발생한 사고였다. 이러한 사회재난은 관리감독 소홀과 사회 전반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이 원인이었던 경우가 많다. 그 밖에 대규모의 인명, 재산피해를 낸 2002년의 태풍 루사는 국지성 집중호우로 인해 산사태와 하천이 범람한 자연재해이다. 태풍 루사 이후 자연재해에 대한 예방과 대책이 마련되고 있었으나 2011년 국지성 호우로 발생한 우면산 산사태 경우 사방구조물 부족과 무리한 수로변경이 원인으로 피해를 예방할 수 없었다. 한편 지난 5월 지하철 3호선 도곡역에서 발생한 방화사건은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사건과 유사했으나 역무원의 신속한 현장대처와 시민의 협조로 사고의 확산을 방지할 수 있었다. 2013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아시아나항공기의 활주로 충돌사고 수습은 승무원의 헌신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대응활동으로 인명피해를 최소화한 모범적인 사례다.

| 재난안전관리시스템을 준비하기 위하여
재난은 한 번 발생하면 인명, 재산피해는 물론 사회적·정신적 트라우마를 야기한다. 그러므로 사고 발생 시 대응, 수습이 잘 이뤄지기 위해서는 재난 예방과 대비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 재난이 빈번한 일본은 재난관련 예산의 약 75%를 예방에 투자하는데 반해 우리는 예산의 77%를 재난 복구비로 사용한다. 국가가 안전에 대한 예방투자를 소홀히 하면 사고로 얻은 교훈에 대한 개선책과 후속조치를 실행할 수 없고 유사사고의 재발을 방지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기업은 안전시설 설비와 산업 안전관리를 낭비로 생각하지 말고 투자로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은 안전을 ‘관리’개념에서 벗어나 ‘문화’로 정착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재난안전에 대비한 교육과 훈련은 보여주기 식의 보고용이 아닌 실전위주로 이루어져야 한다. 사람은 위급한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이성적 판단이 어려운 IQ 40이하의 패닉Panic상태에 빠지고, 머리나 논리가 아닌 몸으로 조건 반사하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긴급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비상시 행동요령을 몸에 익히는 반복적인 교육과 훈련을 실시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안전사고를 내 일이 아닌 남의 일로, 안전지침이나 규제를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불편함으로 치부하면서 안전 불감증에 대해 눈을 감아왔다. 그러나 이제 안전은 우리의 생명과 직결되며 내가 지킨 작은 안전실천 하나가 내 가족, 이웃을 지킨다는 시민의식을 펼쳐 나가야 한다. 
결국 값비싼 희생을 치르고 새롭게 정비될 우리의 재난안전관리시스템은 각 부처에 분산되어 있는 재난안전기능을 통합해서 재난안전정책을 총괄·조정·지원하는 컨트롤타워가 돼야 한다. 효율적인 대응을 위해서 지방자치단체와 책임기관의 방재역량을 강화시켜야 하고, 재난현장에서 즉각적인 초동대처가 가능하도록 현장위주의 지휘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현장을 잘 알고 관리할 수 있는 재난전문가를 양성·배치하여 피해를 경감시키고, 지자체별 특성에 맞는 재난관리 매뉴얼을 작성하여 반복적으로 실전 훈련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정상만
한국방재학회 회장, 공주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미국 아이다호대학교 토목환경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국립방재연구원 원장, 국토해양부 중앙건설기술심의위원회 위원, UN태풍위원회 방재분과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특별시의 안전관리위원회, 한국수자원공사의 일반기술심의위원회 위원, 제 7차 세계물포럼 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재난관리론』, 『방재학』, 『수문학』, 『수리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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