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아픔과 함께 걸어간다는 것

불교, 세상에서 나누며 노닐다 | 부처님의 가르침, 어떻게 회향할 것인가

2014-07-07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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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한국불교에 과연 복지는 있는 것인가? 있다면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이 불교계에 대두되었다. ‘불교는 세상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곧 ‘불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했다. 천상의 도솔천에 머물고 계시던 부처님께서 고해의 중생계에 몸을 나툰 것은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였다. 불자들이라면 그 정신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인식의 확산 속에 사회적 실천의 일환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하 복지재단)이 설립됐다. 그때가 1995년이었다.

| 한 명의 깨달음이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종교
불교는 수행의 종교이다. ‘수행’이라는 말 때문인지 불교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주로 산속 사찰에서 수행하는 스님을 떠올리곤 한다. 그래서일까. 불교는 세상과의 소통, 사회문제에 대해 연연하지 않는 종교라는 오해를 사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잘못된 생각이다. 불교의 수행은 깨달음을 얻는 것이며, 깨달음을 통해 중생을 구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 한 사람의 깨달음이 우리 모두를 함께 행복하게 만드는 종교가 불교라는 말이다. 구체적인 실천방안도 있다. 수행을 통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불성을 찾아 발현시키는 것이다. 즉, 불성은 너와 내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린 이타심과 이를 위한 자비를 구현하는 길이기도 한 셈이다. 
석가모니 부처님 스스로가 그 길을 잘 보여주었다. 부처님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이를 널리 알림으로써 중생제도에 앞장섰다. 부처님은 중생의 고통을 관망하지 않았으며,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불교가 세상의 아픔을 직시하고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기 위해 나섰던 종교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불교는 자비의 종교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에서 자비는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 우리 불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방법은 사회복지일 것이다. 출가를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 모두 불자라면 수행에 매진해야 하겠지만, 동시에 세상의 고통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복지는 수행 그 자체다. 또한 불교가 자비의 종교로 남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복지재단은 불교의 사회적 역할 이행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현대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닥칠 미래에 대한 불교적인 해법을 제시하자는 것이 설립 당시의 근본 취지다. 사찰의 폐쇄적인 담장을 허물고 세상속의 불교를 추구하자는 것이 기본 주춧돌로 깔려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자원봉사는 현시대의 보살행이라 할 수 있다. 재단은 많은 불자들이 나눔을 통해 사회적 공동선을 이행할 수 있도록 재단 부설 조계종자원봉사센터를 운영하면서 사찰, 병원, 복지단체에서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이외에도 국・내외 긴급재난구호사업과 국제개발구호사업을 운영하면서 재난발생지역과 빈곤지역을 직접 지원하고 있으며 결연후원사업, 국내・외 난치병어린이 지원, 불교사회복지 연구, 복지교육 연수, 대외교류협력, 자비나눔통장 등의 다양한 사업을 통해 불교사회복지 인프라 확장과 영역의 다원화를 도모하고 있다. 

| 고통 속 중생을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기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은 우리 사회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과 시스템은 억울한 희생자를 만들었다. 왜곡된 언론에 우왕좌왕하며 총체적 부실을 드러낸 국가의 위기대응능력은 압축성장의 폐해들이 여실히 수면 위로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다. 재단은 사건 다음날 새벽 긴급재난구호봉사대를 가동했으며, 이른 아침 진도로 출발했다. 진도종합체육관은 수심과 걱정으로 가득한 가족들이 하나 둘 모이고 있었으며, 곧이어 실종자가 구조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 희망은 실망과 좌절로 변화되었고, 통곡과 절규로 가득 찬 팽목항은 그 어떤 것으로도 위로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완전한 절망만이 남아있을 때, 비구니스님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 밥도 제대로 넘기지 못하는 가족들에게 잣죽과 떡을 직접 만들어서 나눠주고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모습, 그 모습이야말로 부처님의 모습이라고 할 만했다.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온 가족의 시신을 부여안고 통곡하는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성심을 다해 기도하는 모습에 얼어붙은 가족들의 마음이 조금씩 열려갔다. 불교가 세상에 다가가는 만큼 세상은 불교를 향해 다가서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 순간 구제중생에 출가와 재가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불교가 추구하는 복지는 어떠해야 한다는 상도, 이념도, 그 어떤 논쟁도 무의미하다. 그저 고통 속에 있는 중생을 위해 한걸음이라도 먼저 다가서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이 시대에 필요한 불교의 모습이고 불자의 지향점이다. 비구니스님들이 세상의 아픔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는 모습, 세상의 고통에서 한줄기 희망을 전하는 모습, 그 안에서 우리 한국불교의 가능성을 보았다.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중 하나는 ‘자비’다. 자비는 일체의 중생을 구하겠다는 대승보살의 서원이 담겨있다. 서로가 그물처럼 연결돼 있다는 연기緣起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무수히 많은 관계를 통해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렇기에 중생이 아프면 보살이 아픈 것이며, 이타행을 실천하는 보살이 많을수록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다. 
부처님은 누구나 불성을 갖고 있으며,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모든 존재가 차별 없는 평등사상을 말했다. 만물이 하나로 이어진다는 만물일여사상萬物一如思想은 모든 존재에 대한 생명존중사상과 평화를 뒷받침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은 후 사회의 변화를 설했다. 자비사상은 비폭력으로 이어졌으며, 카스트 제도와 여성 차별에 대한 평등의 실천으로 이어졌다. 또한 보시를 통한 나눔과 분배를 널리 알렸다. 부처님이 생각한 이상적인 사회는 인간중심의 세상, 모든 자가 행복한 민주적 공동체에 가까웠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자비’와 ‘중생제도’는 현대 사회에서 ‘사회복지’로 통칭되는 ‘보시바라밀’의 실천방안이자 불자들이 반드시 걸어야 할 길일 것이다. 

|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하여
현재 끊임없는 욕망의 확장시스템으로 작용하고 있는 시장경제중심의 가치관은 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물질에 대한 과욕과 생명의 경시는 ‘너와 나는 다르다’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며, 과도한 물질과 물량주의는 자신의 구속과 사회의 균열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과 같은 모습이라면 분명 앞으로의 사회는 개인화, 경쟁, 성공, 물질만을 추구하는 사회로 고착할 것이며, 그 안에서 행복과 자아실현은 더욱 멀어질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세상에 필요한 시기이다. 부처님의 연기설에 따라 모든 생명이 인연으로 맺어 있고 그로인해 남이 아프면 곧 내가 아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또한 세상과 타인과 다른 생명과 그리고 환경과 상생하는 삶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이는 사회 전반에 걸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운명 공동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다’라는 삶을 지향함으로써 소유와 집착에서 벗어난 공생의 가치를 찾아야 할 것이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행복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각자 나름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것이 부처님의 제자로서 불자들이 걸어야 할 길이다.
우리 안의 이타利他를 발현하는 삶, 혼자가 아닌 타인과 사회와 자연과 상생하는 삶이야말로 부처님이 지향하는 삶이자 불자들이 만들어가야 할 세상이다. 더 많은 사람이 ‘더불어 함께’를 마음으로 바랄수록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사회복지를 통해 이타를 행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자비가 가득한 사회이자 정토로 가는 지름길일 것이다. 

최종환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의 사무국장이자 대한불교조계종자원봉사단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불교사회복지의 태동기부터 교계의 사회복지를 위해 애써왔다. 불교사회복지를 정착시킨 인물이자 불교사회복지계를 이끌어 가는 주요 인물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1995년 전국비구니회장 표창을 시작으로 1996년 조계종 총무원장 표창, 2005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2006년과 2011년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2012년 국무총리 표창 등을 수상했다. 현재 대통령자문기구 민주평통자문위원, 보건복지부 희망나눔 정책네트워크 위원,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운영위원,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정책위원회 위원 등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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