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 돌고 돌아 다시 내가 되는 것

2014-07-07     불광출판사

 

사람은 태어나고 죽습니다. 그런데 윤회의 관점에서 보면 살아있다는 것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고 죽었다는 것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잘 모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생각과 느끼는 감정이 어디서 오며 왜 생기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살다가 어떤 감정을 느꼈을 땐 그 감정에 휘둘립니다. 자기 의지로 자신의 감정을 움직이기는 어려워요. 업이라는 것에 딱 묶여있기 때문입니다.


| 몸, 인연 따라 입고 벗는 옷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당나라 시대에 등은봉鄧隱峰 선사가 있었습니다. 물구나무를 선 채 열반에 드신 것으로도 유명하지요. 이 선사가 하루는 스님들께 소임을 나누어 맡겼습니다. 그 때 공양주 소임을 받은 스님이 밥을 지으려 불을 피우다가 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많은 대중들과 함께 먹을 밥을 짓다보니 땔나무를 너무 많이 넣은 겁니다. 그래서 불이 아궁이 밖으로 솟구쳐 나온 거예요. 그 불이 옷에 번져 스님은 그만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공양주 스님이 저승의 염라대왕 앞에 가서 앉았습니다. 염라대왕이 너는 어째서 왔느냐고 묻자 “저는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 억울해서 못살겠습니다. 등은봉 스님이 내게 일을 안 시켰으면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스님 탓입니다. 이 억울함을 염라대왕님이 풀어주십시오.”라고 읍소하지 않겠어요. 염라대왕이 등은봉 스님을 데려와 함께 확인해보자 했지요. 공양주 스님은 등은봉 스님을 찾아가 자기와 같이 염라대왕 앞으로 가자고 이야기했습니다.
등은봉 스님은 “그래? 그런데 내가 왜 가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공양주 스님은 “내가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가서 사실을 이야기하니 스님을 데려오라 했습니다.”라고 대꾸를 하더랍니다. 등은봉 스님은 “니가 죽었느냐?”라 반문했지요. 공양주 스님은 “죽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등은봉 스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진짜 죽었느냐?”, “예, 진짜 죽었습니다.” 스님이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더 던집니다. “그래? 그런데 죽은 놈이 어떻게 여기 있느냐?” 공양주 스님은 가만 생각해보니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찾아오고, 어떻게 말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 공양주는 등은봉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처음으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생각해봅시다. 공양주 스님이 진짜 죽은 것일까요?
보통은 죽음을 말할 때 ‘육신을 버린다’고 표현합니다. 그 육신은 인연 따라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지금 이 몸도 과거의 전생으로부터 계속 윤회를 해서 받은 몸이지요. 지옥에도 갔다가 아귀, 축생의 삶도 거쳤다가 극락, 천상, 인간, 수라의 삶도 겪었을 것입니다. 육도세계를 윤회한단 말입니다. 복을 지으면 천상에 갔다가 복이 다 하면 다시 윤회를 하고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갔다가 아귀가 됐다가 축생으로 또 태어난다는 식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완전히 없어졌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몸만 바꾸는 것입니다.
봄이 되면 새싹들이 전부 핍니다. 생겨나지요. 그러다 가을이 되면 열매를 맺고,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나면 나무는 죽은 것처럼 보입니다. 열매도 없고 꽃도 없고 잎도 없습니다. 하지만 때가 되어 봄이 오면 새싹이 돋고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듯 우리도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는 것과 같아요. 사람으로 태어났다가 짐승으로 태어났다가 천상계에 오르는 식으로 몸을 옮기는 것일 뿐입니다. 다만 모양만 다르지 ‘나’는 그대로 있는 거예요. 

| 삼독을 버려야 갈 수 있는 부처님 세계
그렇다면 자리를 옮기고 있는 ‘나’는 어떤 것일까요. ‘참 나’에게는 탐진치 삼독심이 엉겨붙어있습니다. 생각과 감정들에 나도 모르게 휘둘리는 것도 탐진치가 업식業識에 따라 생겼다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저 물건을 내가 가져야겠다’,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갖겠다’, ‘돈을 벌겠다’ 이런 욕심들로 삼독심이 발현됩니다. 그러니 윤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미혹과 도탄에서 벗어나는 길은 ‘진짜 나’의 마음을 찾는 것입니다. 탐진치로 뒤덮여 있는 마음에서 탐진치 삼독을 버려야 생사를 윤회하는 세계를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진짜 마음을 찾는 것이 바로 극락세계로 가는 길입니다. 극락세계는 다른 말로 하면 부처님 세계입니다. 
우리는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편할 땐 ‘아, 이곳이 극락이구나’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던 극락과 부처님 세계를 말하는 극락은 전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이 살아생전에 비교적 복을 많이 지었다고 하면 “저 사람은 극락에 갈 수 있겠다.”라고 말하지요. 흔히 생각하는 극락이란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이뤄지고 하고 싶은 대로 전부 할 수 있는 내 욕심이 모두 채워지는 곳입니다. 그것은 진짜 극락세계가 아닙니다. 내가 지은 복만큼만 누릴 수 있는 세계지요. 진짜 극락은 아까 말 한대로 부처님의 세계입니다. 탐진치 삼독을 버리고 진짜 마음을 찾기 위해 갈고 닦아야만 갈 수 있는 세계, 더 이상의 고통과 근심, 걱정, 번뇌, 망상이 모두 사라진 곳입니다. 윤회의 고리에서 완전히 벗어난 절대의 세계지요.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 세계는 생로병사를 순환하는 고통에서 모두 벗어난 곳으로서 ‘살았다’, ‘죽었다’고 하는 말 자체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 진짜 ‘나’를 찾아야 진짜 ‘마음’이 보인다
그러므로 불자들은 이런 삼독을 버리고 진짜 마음을 찾아야겠다는 의식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당장 100% 실천은 못하더라도 삼독을 버리겠다는 마음과 진짜 나를 찾겠다는 생각을 항상 떠올리고, 갈고 닦아야 해요.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가정, 지위, 권력, 돈 모두 다 중요하겠지만 그것은 그저 인연 따라 왔다갈 뿐입니다. 영원히 내 것도 아닙니다. 부모와 자식의 연을 맺었더라도 인연이 다 되어 흩어지고 나면 또 다른 부모를 만나는 거예요. 지금 부모자식으로 만난 인연이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 인연이 영원하다면 스님들이 왜 결혼을 하지 않겠습니까.
얻었기 때문에 잃는 것입니다. 얻지 않으면 잃을 게 없습니다. 이렇게 집착하지 않고 해방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람 부는 대로 왔다가는 하나의 인연에 불과하기 때문에 집착하면 본인의 마음만 다칠 뿐입니다. 이것도 인연이려니, 저것도 인연이려니 하고 넘기고 오롯이 내 진짜 마음을, 탐진치 삼독심이 완전히 제거된 진짜 나를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견성이에요. 견성을 이루기 위해 공부하고 기도하고 보시하고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자식과 가정 모든 것들도 함께 잘됩니다. 자식과 가정이 주가 아닙니다. 내가 나의 중심입니다. 내가 있기 때문에 남편도, 자식도 있습니다.
여러분, 삼독을 버리겠다고 수행을 하면서 ‘매일 철야 기도를 하겠다’, ‘매일 108배를 하겠다’ 원을 세운 적이 있으실 겁니다. 원을 세우고는 끝까지 지키고 계십니까. 입재만 하고 회향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용두사미지요. 시작은 있고 끝이 없으면 하나마나입니다. 정진하셔야 합니다. 끊임없이 꾸준하게 정진을 해야 결국에는 회향할 수 있어요. 회향을 해야 부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정도는 돼야 ‘죽는다’, ‘산다’하는 망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지혜를 잘 갖춰야 해요. 지혜를 잘 갖춘 사람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욕심을 없애 탐진치 삼독이 사라지면 그 자리는 지혜가 차지합니다. 한마디로 욕심이 없으면 지혜가 생기는 것이지요. 욕심을 많이 부리면 지혜가 사라지고, 머리가 아둔해지고 고통을 받게 됩니다. 지혜를 지키고 복을 많이 받아서 나와 남이 자리이타 하려면 열심히 정진하셔야 합니다. 성불하세요.


법문. 진우 스님
1973년 평창 월정사에서 백운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1978년 부산 범어사에서 고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범어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완도 신흥사, 광주 관음사, 담양 용흥사 주지를 역임했으며 상원사 청량선원, 백양사 고불선원, 용흥사 몽성선원 등에서 안거수행을 했다. 백양사 총무 등 7직 소임을 두루 맡았고 현재는 고불총림 백양사 주지 소임에 매진하고 있다. 서옹 큰스님의 뜻을 기리며 큰스님의 가르침인 ‘참사람 운동’을 벌이고 참사람 강의를 통해 그 뜻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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