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맛, 절집 차

절에서 마주한 불교문화 | 차茶의 성지 해남 대흥사 일지암

2014-06-02     불광출판사

명전茗戰. 고려시대 스님들이 모여 차 맛을 평하고 겨뤘던 대회다. 단순한 차맛 비평이 아니라 차를 만든 사람이나 맛보는 사람이 자신의 선수행 경지를 드러내는 일종의 선문답 자리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교와 차의 관계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고 이어져 왔을까? 역사의 책갈피를 들추고 산사의 산문을 두드려 선다일미禪茶一味의 비밀을 풀어본다.

| 차를 매개로 삶의 도리를 논하는 공간
우리나라 최초의 차 문헌부터 뒤져보자. 현존하지는 않지만 『삼국유사』(1281년 편찬)를 통해 전해지는 『가야국기』(2세기 편찬 추정)가 차에 대해 언급한 문헌으로는 최초다. 여기에는 지금의 인도인 불교국가 아유타의 공주 허황옥이 서기 48년에 배를 타고 가야국 김수로왕에게 시집오면서 차나무 씨와 차를 가져온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차나무 씨를 심었다는 곳이 김해다. 고려 때 허왕후의 차 이야기가 전해진 이후 시집가는 딸의 가마 안에 차나무 씨를 넣어 주며 뿌리 깊은 차나무처럼 살라 당부하는 전통이 오랫동안 이어졌다고도 한다.
384년, 백제에 불교를 전한 인도 마라난타 스님은 영광 불갑사, 나주 불회사를 창건하고 이곳에 차나무를 심었다. 스님이 불교와 차를 함께 전했던 옛 백제 땅 가운데 호남 지역에 현재 한국 야생차 80%가 자생한다. 신라 김교각 스님은 8세기 중국으로 구법여행을 떠났다 구화산에 정착했다. 스님이 차를 가져다 심어 신라식 덖음차를 만든 것이 중국의 『개옹다사』(1703년 편찬)에 나와 있다. 당시 차의 종주국이었던 중국에 차 문화를 전한 ‘문화 역수출’이었다. 
불교를 빼고 차 문화를 말할 수 없는 역사적 근거는 또 있다. ‘차에 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는 『동다송』(1837년 편찬)이다. 이 책은 순조의 부마이자 최고 실세였던 홍현주가 초의 스님에게 “차를 알고 싶다”고 간곡히 청해 집필된 우리나라 최초의 다서이다. 초의 스님은 추사 김정희·다산 정약용 등 당대의 신지식인들과 차를 매개로 깊이 교유交遊했으며 다도의 중흥조이자 선다일미를 체득한 다성으로 불린다. 
해남 대흥사에는 초의 스님이 40세에 창건하고 열반 시까지 주석했던 공간을 복원한 일지암이 있다. 1979년의 이 복원불사는 차인들을 결집하고 현대의 차 문화를 다시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사찰은 예로부터 차를 매개로 지식인과 민초들이 스님과 만나서 세간과 출세간의 도리를 논하는 공간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의미에서도, 일지암은 차의 성지가 맞다.

 
 

| 차도 사람도 알맞게 기다려야 우러나온다
4월 중순에서 5월 초에 이르는 곡우와 입하는 절정의 차 맛을 위한 절기다. 이때 수확한 어린 찻잎이 가장 좋은 맛을 낸다는 것이 정설이다. 곡우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선다일미의 화두를 품고 일지암을 찾아갔다. 차의 첫잎처럼 여린 햇살이 이제 막 얼굴을 내민 이른 아침, 대흥사 원주 법두 스님이 야생차밭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연못 위 누마루에서 객을 맞았다.
“처음 계를 받고 승복을 입던 날, 은사스님께 삼배를 올렸더니 ‘이거 니 해라’ 하시고는 다관을 주셨습니다. 의발도 아니고 경전도 아닌 다관이요. 값나가는 물건이라면 또 모를까, 그저 흔한 다관이었습니다(웃음). 지나고 보니까 이제는 스님 뜻을 헤아릴 것도 같고요.”
법두 스님에게 언제부터 차를 즐겼는지 묻자 역시나 “처음 절에 오던 날부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출가의사를 고하는 자리에서도 어른 스님이 차를 내주며 맞이했고 사미계를 받던 날에는 은사스님의 다관이 품에 들어왔다. 그 뒤로 선방 깊숙이까지 커피 문화가 밀고 들어오거나 말거나 18년째 차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구전으로 또 어깨 너머로 차를 배운 세월이 오래지만 차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많아 목포대와 조선대에서 다도학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스님에겐 새벽예불과 아침공양 사이, 홀로 앉아 경전 한 편 읽고 차 마시는 때가 가장 귀하다. 하지만 소임이 소임인지라 그마저도 매일 주어지는 행운은 아니다. 초의 스님처럼 차 한 잔 우려 누마루 난간에 올려두고, 대숲에 바람 드는 소리 귀 기울이다 목마르면 한 잔 들며 차의 신령한 맛을 즐길 여유는 좀처럼 누리기 어렵다. 대신, 절에 오면 스님들이 당연히 차 한 잔 내주는 줄 아는 손님들에게 하루 종일 차 ‘퍼주는’ 게 일이다. 문턱이 없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말하는 법두 스님은 스님네들 처소가 차 마시는 공간이고 또 열려 있는 공간으로 인식되는 것이 고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차의 정신에 대해서만큼은 말을 아꼈다. 
“차를 마시면서 더 바랄 게 있겠어요? 차 정신이랄 것도 뭐 있나요. 이 차란 놈이 뜨끈뜨끈한 물에 들어앉아 제 몸 우려내 가지고 사람들한테 즐거움을 주잖아요. 그럼 그 맛을 고맙게 즐기는 것이고. 우리도 똑같아야지요. 그 사람 본모습이 우러나올 때를 기다려주는 겁니다. 알맞게 기다려야 우러나오는 게 ‘진짜 맛’ 아니겠습니까?”
홀로 고요한 차 맛을 못 누리는 큰절 원주의 고충이 다관에 들어앉은 찻잎의 말없음을 닮았다. 어린 동자승이 다각 소임 맡아 초파일 헌다에 쓸 차순 따러 차밭으로 달려가거나, 운수납자가 안거를 해제하고 산철행각을 하며 하루라도 차 생활을 빼먹지 않으려 다구도 없이 발우에 말차 타마시던 풍경은 이제 없다. 그러나 절에 가면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라는 말처럼 반갑게 차를 나누려는 스님들이 거기, 있다. 그것이 궁극의 맛, 절집 차의 진수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고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건 그렇고, 못다 푼 선다일미의 비밀은 다음 번 절에 가는 날 다시 도전해봐야겠다. 일단 “스님, 차 한 잔 주십시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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