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까지 환히 밝혀 주길

절에서 마주한 불교문화 | 안양 한마음선원 등 만들기

2014-06-02     불광출판사

이즈음 봄밤의 길거리가 연등으로 오색찬연하다. 도량을 따라 빛나는 연등은 길 잃고 헤매는 나그네에게 ‘이 길로 가시오’라며 가야 할 길을 인도해주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은은한 빛으로 어둠을 몰아내고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시나브로 환하게 비추는 연등. 때로는 수수한 모습의 연꽃처럼, 때로는 수호신장과 같은 장엄한 모습으로 무명無明을 밝히고 있다.

| 지혜의 광명을 담아 무명을 밝히는 등불
『화엄경』 「입법계품」에서는 연등에 대해 “믿음을 심지로, 자비를 기름 삼으며, 공덕을 빛으로 하여 탐·진·치 삼독을 없앤다”고 말한다. 지혜의 광명으로 중생의 무명無明을 밝히는 등불이라는 의미다. 연등에는 또 다른 의미도 담겨있다. 늪이나 진흙 속에서도 맑고 깨끗하고 향기로운 꽃 피워내듯, 오탁악세에 물들지 않고 항상 맑은 본성을 간직하라는 부처님 마음이다.
해마다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올 즈음이면 불자들의 엄지와 검지에는 울긋불긋 고운 색이 물들어 있다. 주름종이 후루루 불어 떼어낸 낱장, 그 끝 곱게 비벼 만든 꽃잎 한 장을 창호지 바른 팔각 틀에 정성스레 얹어내다 보면 손끝은 그렇게 물이 들어갔다. 정성을 다해 만들어낸 연등일수록 그 속에는 만든 사람의 서원이 오롯이 배어들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연등축제는 뿌리 깊은 역사와 함께 해왔다. 1,000년 전 신라시대에는 ‘간등看燈’으로, 고려시대에는 국왕과 온 백성이 풍년을 기원하며 열었던 ‘연등회燃燈會’로, 조선시대에는 ‘호기呼旗놀이’, ‘관등觀燈놀이’로 불리며 전승됐다. 지금은 종로거리를 가로지르며 각종 놀이마당과 연등행렬로 거리를 수놓는 ‘연등회’로 이어져 세계인들도 함께 참여하고 싶어 하는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등불이 넘실거리는 빛바다의 행렬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전국의 거의 모든 사찰에서 연등을 만들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곳이 있다. 안양의 한마음선원이다. 등을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장비와 여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연초부터 시작해 4개월가량 연등행렬에 선보일 장엄등을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곳이다. 그래서 등을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마음선원은 프로 중의 프로로 통한다.
“거사님, 거기 LED 접지 잘 돼있는지 한번 봐 주세요.”, “어머나, 재단이 정확해서 배접하기 딱 좋다!”, “보살님, 여기에 풀을 결대로 바르면 깔끔하게 잘 붙어요.”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둔 한마음선원에서는 하루종일 이런 대화들이 오간다. 평일 오전인데도 법당이 시끌벅적하다. 신도들은 여기저기서 삼삼오오 모여 연등을 만들고 있다. 심지어 재단, 골조, 배접, 전기 배선, 채색 등으로 조별 업무분장이 철저히 이루어져 있다. 가장 중요한 조직은 간식팀이다. 옛 사람들이 말하길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지 않았는가. 부처님 오신 날 맞이 행렬등과 장엄등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면 보통 신심으로는 엄두도 나지 않는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 연등처럼 밝고 은은한 등 만드는 사람들
한마음선원의 기둥이 되고 있는 청년회가 등 만들기에 합류하는 시간은 늦은 저녁이다. 한창 사회생활에 바쁘기 때문에 각자의 본업이 끝난 후 모일 수밖에 없다. 한마음선원에서 장엄등을 만들기 시작한 건 이미 20년이 넘었다. 장엄등은 사람만한 등부터 4~5미터가 넘는 거대한 등까지 크기만으로도 장엄함이 전해진다. 한마음선원의 장엄등이 전통등만들기대회나, 연등축제 장엄등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도 벌써 여러 차례다. 오랜 기간 쌓인 기술 덕택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청년회 모두가 이미 전문가다.
한마음선원은 불교문화회관 건물을 설계할 때부터 장엄등을 만들기 위한 공간을 구상했다. 등 제작에 사용되는 공구들도 전문적이고 체계적이다. 심지어 장엄등에 사용되는 한지도 청년회가 직접 전주한지공방에 찾아가 개발한 ‘한마음순지’를 사용한다. 한마음순지는 지역 분원 장엄등 제작에도 함께 사용된다.
연등행렬에 나가는 등의 종류도 다양하다. 스님 손에 들릴 ‘만법귀일등’, 재가신도들이 들고 나갈 ‘푸름이등’, 합창단이 선보일 ‘반야바라밀등’, 어린이들의 고사리 손에 들릴 ‘광명등’, 청년연희단의 몫인 ‘연등’, 청년회가 이끄는 장엄등인 ‘평등공법등’과 ‘한나무등’, ‘부처님등’. 특히 장엄등 행렬은 여러 형태의 장엄등을 하나로 모아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처럼 구성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한마음선원을 창건한 대행 스님의 가르침이다.
“등을 켜는 것은 내 마음의 등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수억 겁을 이끌어 오면서 공부하고 발전시켜온 나의 근본불성에 감사하며 지극한 마음으로 불을 밝혀야 합니다.”
대행 스님이 생전에 일러주었던 말이다. 그 가르침은 한마음선원의 모두에게 깊이 스며들어 있는 듯했다. 연등을 만들 때 어떤 발원을 담았느냐는 질문에 보살님도, 거사님도, 푸른 청년 불자들도 둥근 달처럼 웃으며 말한다.
“처음 세웠던 개인적인 소원은 등을 만드는 동안 모두 사라졌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이 등을 보는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생명들이 다 밝아졌으면, 이 세상이 밝아졌으면 하는 발원이 생기더라고요.”
아! 그래서 한마음선원인 모양이다. 『현우경賢愚經』에 가난한 여인이 밝힌 등 이야기가 나온다. 경전에서는 가난한 여인 난타가 켠 등불이 부자들의 호화로운 등보다 더 밝게 더 오래 빛났다고 전한다. 푼돈도 되지 않는 전 재산을 털어 소박한 등불을 켜고 일체 중생의 어두운 마음을 밝히고자 하는 큰 서원을 담았기 때문이다. 난타처럼 올해는 모두가 각자의 마음에 연등을 환하게 밝혀보는 것은 어떨까. 내 마음 밝힌 등이 세상을 밝게 비출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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