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불교의 외침

보조 국사의 『권수정혜결사문』

2014-06-02     불광출판사

“만개한 벚꽃나무 아래에 서면 누구라도 바보처럼 보인다.”
지난 겨울.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서 이 문장을 만났다. 난 정말이지 봄을 기다리며 벚꽃이 피어나면 꼭 그 꽃그늘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는 어느 새벽, 삼청공원을 돌아오는 산책길에 만개한 벚꽃나무 숲에 들어가 보았다. 기대만큼 벚꽃은 만개한 상태였고, 아직 동이 터오기 전의 새벽하늘을 이고서 허공에 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올려보고 있었더니 마치 무중력의 우주인처럼 몸이 솟구쳐 올라 벚꽃의 소용돌이로 빠져드는 행복한 기분이 되었다. 

| 한국불교의 얼굴로 삼을 만한 명작
광주에서 화순을 거쳐 벌교로 내려가는 국도와 나의 출가 본사인 송광사의 초입에도 수령이 제법 되었을 법한 벚나무가 많이 가꿔져 있다. 이 벚꽃이 피었다 지고나면 하루가 다르게 산의 빛깔이 달라지고 큰절에서는 봄철의 가장 큰 불사인 보조 국사(1158~1210)의 종재를 모시는 준비로 분주해진다. 보조 국사와 16국사를 모신 국사전은 평소에는 개방하지 않다가 종재일이 다가오면 문을 활짝 열어 묵은 공기를 밀어내고 대청소를 한다. 내가 출가하던 당시만 해도 이 청소는 행자들의 몫이었다. 
출가 첫해의 봄이었을까? 청소를 마친 우리들은 초에 불을 붙이고 향을 한 대 사르고 합동으로 죽비삼배를 올렸다. 그러자 빨간 불꽃이 사그라들며 피워올린 하얀 연기가 보조 국사 진영의 가슴 위로 한 줄기 선을 그으며 천장까지 곱게도 올라갔다. ‘산의 정기를 한 몸에 담고 계신 것 같은 이 분은 어떤 삶을 사셨던 것일까?’ 그 의문을 품은 지도 이제 어언 30여년이 흘렀고, 지난 학기에 나는 「수선사 연구」라는 논문을 썼다. 
‘고전산책’에 한국불교의 얼굴로 삼을 만한 명작으로 보조지눌 스님의 『권수정혜결사문』을 주저 없이 떠올린 것도 나에게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보조 국사는 ‘정혜결사’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 결사의 선언문이 이 책의 내용이다. 따라서 결사문에는 결사의 취지가 담겨 있고, 이것을 통해 결사의 이념과 통시대적인 가치를 드러내어 한국불교의 발전에 지침을 삼을 수 있는 것이다. 

| 선교일치를 통한 본래불교·수심불교로서의 ‘결사’
보조 국사는 황해도 서흥 태생이다. 성은 정씨, 자호는 목우자牧牛子, 시호는 불일보조, 탑호는 감로다. 예부터 전해오는 많은 스님들의 이야기처럼 보조 국사도 잦은 병치레가 출가의 기연으로 작용했다. 어려서부터 병약하여 영험하다는 의원들을 찾아다녔지만 효험이 없었다고 한다. 스님은 8세에 출가(혹은 16세라는 설도 있다)하였고 25세(1182)에 승과에 합격하였다. 개성 보제사에서 열린 담선법회談禪法會에서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있어 결사를 기약하였다.
보조 국사는 보제사에서의 결의 후에 팔공산 거조사에서 결사문을 지었다. 결사문은 총 1만여 자에 이르는 장문의 저술이다. 경전의 구성방식인 서분-정종분-유통분으로도 나눠볼 수 있는데, 결사의 취지를 담은 머리글과 일곱 개의 질의응답 형식으로 결사의 이론적 배경을 담고있는 본문에 이어 결사의 발원과 경위 및 간행의 내역을 끝부분에 담고 있다. 
43세(1200)에 송광산 길상사로 옮겨 결사문을 반포한 이후 48세(1205)에 중창불사의 낙성과 함께 조정으로부터 조계산 수선사修禪社라는 사액賜額이 내려졌다. 이 시기에 수선사의 청규淸規라고 할 『계초심학인문』을 지어 결사체 내에서의 수행과 범행의 규범을 제시하였다. 「비문」에 전하는 스님의 사상은 성적등지惺寂等持·원돈신해圓頓信解·간화경절看話徑截의 삼문구조로 보는데, 성적등지는 『결사문』과 『수심결』, 원돈신해는 『원돈성불론』과 『화엄론절요』, 간화경절은 『간화결의론』에서, 그리고 삼문의 통합체계는 『절요사기』에서 각각 설해지고 있다.
보조 국사의 수선사 성립시기를 중심으로 하여 고려사회의 변천과정은 무신집권기→대몽항쟁기→원간섭기→여말선초기 등으로 시기를 구분할 수 있다. 특히 무신난으로 고려 귀족사회가 붕괴되면서 불교는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고, 중앙집권세력의 비호를 받던 교종 중심의 불교는 지방호족과 무신의 부상에 힘입어 선종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이 같은 시대상황 속에서 새로운 불교상의 정립은 시급한 과제였고, 불교혁신의 전기가 요구되는 시점이었다. 보조 국사가 착안한 것은 선교일치를 통한 본래불교·수심불교로서의 ‘결사’였다. 이것은 보조 국사가 염원한 순수불교의 발흥이자 종교운동의 귀착지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 “땅에서 넘어진 자 땅으로부터 일어나야 한다”
『결사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삼가 들으니 ‘땅에서 넘어진 자 땅으로부터 일어나야 한다’고 하였다. 땅을 떠나 일어나려는 것은 옳지 않다. 일심을 미혹하여 번뇌를 일으키는 이는 중생이요, 일심을 깨달아 무변묘용을 일으키는 이는 모두 부처이다.”
원인 없는 결과가 있겠는가. 눈앞의 현실을 바로잡으려면 원인을 되짚어 봐야 한다. 선언문은 상징적인 수사로써 이목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어야 한다. 결사문의 첫머리에 놓인 말로서 이보다 강렬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것이 스님의 감각이 아닐까 한다. 이어서 당시의 세태를 적시한 내용이 자기반성을 외친다.
“우리들 조석의 소행을 보자. 불법을 빙자하여 나와 남을 구별하고 이양利養의 길에서 허덕이며 풍진 세상에 골몰하여 도덕은 닦지 않고 의식만 소모하고 있으니 출가의 공덕이 있겠는가. … 지눌은 이를 깊이 탄식해온 지가 오래되었다.”
미식美食에 길들여지면 다시는 채근菜根을 씹는 길로 되돌아가기 어렵다. 영혼이라는 뒤주는 달콤함 혹은 부드러움이라는 쥐가 갉아대면 남아나지 못한다.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사소한 갈등과 경쟁이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만다. 공동체를 건강하게 하고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임인년 정월의 보제사 담선법회에서 동학 10여 인과 약속하였다. ‘이 법회를 마치거든 우리는 명예와 이익을 버리고 산림에 들어가 결사를 맺자. 그래서 선정을 익히고 지혜를 닦으며 예불하고 간경하며 나아가 힘써 운력하고 각자 소임을 다하도록 하자.’” 
보조 국사는 이 염원을 평생 잊지 않고 결국 수선사에서 결사체를 조직하여 이끌었다. 스님은 당신의 결사체를 ‘아름다운 기약’으로 부르면서 “그리하여 세상이 다할 때까지 영원히 어리석고 어두운 이들을 일깨워서 등불과 등불이 상속하고 밝음과 밝음이 다하지 않으면 그 공덕이 법성과 더불어 항상 함께하지 않겠는가.” 하고 당부하였다. 이후 수선사는 여말선초기의 16국사와 나옹·무학·혼수, 조선중기의 부휴, 그리고 근현대의 효봉·구산에 이르기까지 800년 역사의 조계산문을 형성하였다. 
시대의 표징을 읽고 그 시대를 구원할 종교적 가치를 구현하는 일이 종교본연의 사명이다. 불교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근본이념으로 하며, 그 방식은 자비의 정신으로 평화롭게 구현하려 한다. 불교는 공동체에 기반하며 각각의 구성원은 스스로가 ‘좋은 벗(Kalyāṇamitra)’이어야 한다. 좋은 벗은 스승처럼 수행에 이롭기 때문에 ‘승우勝友’, ‘선친우善親友’로도 번역되었다. 인간세는 모여들면 권력화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참된 결사는 ‘홀로 가는 결사’이며, 나로부터 시작하는 ‘순수불교결사’이다. 내가 살아가는 공간을 성스럽게 하여 이 땅의 확산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조 국사의 『권수정혜결사문』은 한국불교가 세세생생 자기정화와 교단발전의 교과서로 삼아야 할 선언적인 문헌이라 할 수 있다. 
곧 스님의 종재일이 될 터이다. 지금은 누가 국사전 문이라도 자주자주 열어놓고 천정에 붙은 거미줄까지 찬찬히 걷어내면서 쌓인 먼지를 털어내기라도 하는지, 맑은 다기물이라도 잊지 않고 올려놓는지, 이렇게 그립고 궁금하고… 그렇다.


보경 스님
송광사에서 현호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0년 간 선방에서 수행했고 조계종 교육원 연수국장과 교육국장,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송광사 서울분원 법련사 주지, 보조사상연구원 상무이사의 소임을 맡고 있다. 동국대 대학원에서 「수선사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저서로는 『사는 즐거움』, 『한권으로 읽는 법화경』, 『수타니파타를 읽는 즐거움』 등 에세이와 경전해설서 10여 권이 있다. 또한 ‘일생만권독서’라는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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