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있는 그대로를 볼 것인가

서울 가양동 홍원사 위빠사나 수행모임 반야회

2014-06-02     불광출판사

 

얼마 전 해인사 강원 출신의 한 스님을 만나 점심공양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스님의 손놀림이 조금 어색했다. 자세히 보니 수저가 왼손에 들려 있었다. 스님은 빙긋 웃으며 “온전히 먹기 위해서”라고 했다. 스님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먹는 것만으로도 어느새 먹는 행위에 집중하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순간, 느리게 걸으며 발의 느낌을 알아차리는 위빠사나의 경행이 연상됐다. 간화선에 비해 쉽고 체계적인 수행법이라는 지지 속에 위빠사나가 빠르게 대중화되는 추세다. 국내에 전문수행도량만 40곳이 넘고, 해외 수행센터에서 장기간 수행 후 귀국해 위빠사나를 보급하는 스님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 가양동 홍원사도 그 중 한 곳이다. 


| “부처님이 깨달으신 수행법 직접 경험하러 갔지요”
위빠사나란 지금 이 순간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림하여 무상・고・무아라는 삼법인의 지혜를 얻게 하는 수행법이다. 용어부터가 알기 쉽고 누구나 할 수 있다는 특징은 위빠사나가 보편화되는 데 중요한 작용을 했다.

그렇다면 위빠사나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인물은 누구일까? 1988년 6월 북한산 승가사에 미얀마 고승 우빤디따 스님을 초청해 위빠사나 집중수행과정을 연 거해 스님이 그 주인공이다. 거해 스님은 한국 스님으로는 처음으로 태국과 미얀마에서 오랜 기간 수행하고 위빠사나를 국내에 본격적으로 전파한 인물이다. 비슷한 시기에 해외 수행센터에서 공부한 스님으로는 도성 스님이 있다. 이들이 ‘위빠사나 해외파 1세대’라면 홍원사 주지 성오 스님은 2세대라고 할 수 있다. 성오 스님이 ‘수행자의 정신을 쾌청하게 하는 차’라고 하며 자몽 줄기로 만든 차를 건네고는 당시의 기억을 풀어놨다.
“거해 스님 이후 우리가 미얀마 들어간 게 90년대 초반이었어요. 나하고 도정 스님, 지운 스님 같은 분들이 함께 갔지요. 우리 세대까지는 우빤디따 스님 등 고승들의 지도를 직접 받을 수 있었다는 게 큰 축복입니다.”
위빠사나가 점차 대중에 알려지게 된 2000년대 이후로는 처음부터 태국이나 미얀마로 출가해 법명을 받고 남방불교의 복식을 따르면서 한국에서 수행자들을 이끄는 지도자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성오 스님이 속한 2세대 스님들은 강원과 선원에서 공부하다 해외 유학길에 오른 경우다. 성오 스님도 강원과 선원을 거친 후 인도 푸나대학에서 위빠사나를 알게 됐다. 
“그때만 해도 남・북방 불교교류가 닫혀 있었잖아요. 인도 가기 전까지 나는 부처님이 간화선 해서 깨달은 줄 알았어요, 솔직히 말해서. 그런데 남방에 가니까 그게 아닌 거예요. 위빠사나라고 하는 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그러더군요. 『대념처경』이라는 경전에 그 내용이 설해져 있다고 해서 대학원에서 이 공부를 했죠. 그러다 부처님이 깨달으신 수행법의 원형을 내가 직접 경험해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얀마로 갔습니다.”
미얀마는 국가의 지원을 받아 수행센터가 활성화된 나라다. 1949년 미얀마 초대 수상 우누에 의해 마하시 스님이 지도자로 초빙되었고 위빠사나의 중요한 특징인 수행 점검 체계도 이때 만들어졌다. 


 

| 알아차림 가로막는 마음의 습관, 알아차림 지탱하는 믿음의 힘
매주 목요일마다 열리는 반야회 수행현장에서는 초기불교도량답게 수행시간을 열고 닫는 은은한 종소리가 매운 죽비소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반야회 회원들은 1m 정도 간격을 두고 서서 각자의 속도로 경행을 시작했다. 성큼성큼 걷는 이도 있었고, 발의 느낌에 집중하느라 매우 느리게 걷는 이도 보였다. 선방에서 방선 때 줄지어 돌며 포행하는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위빠사나에서는 좌선할 때 호흡의 일어남・사라짐을, 경행할 때 다리를 들어 올림・앞으로 내디딤・내려놓음을 알아차린다. 수행이 깊어질수록 동작을 잘게 잘라 알아차림을 할 수 있다. 
“알아차림은 거울에 비치듯 있는 그대로 비추는 것입니다. 몸에서 오는 가벼움, 무거움, 쑤심, 차가움, 따뜻함 같은 감각을 그대로 느끼는 것이지요. ‘호흡이 실낱같다, 연기처럼 드나든다, 바늘로 찌르는 것 같다’라는 표현은 이미지(형상)를 만들어 개념화하는 것입니다.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됩니다. 그 형상을 내려놓는 공부를 자꾸 하다보면 나중에는 사라지게 되지요. 이게 중요해요. 분명한 대상을 깨어있는 마음으로 분명히 알아차려야만 지혜가 옵니다.”
알아차림을 방해하는 마음의 습관은 ‘형상 짓기’만이 아니다. 대상을 좇는 열망이 마음을 끊임없이 밖으로 치닫게 한다. 성오 스님은 ‘알아차림이란 이 모든 일어남을 지켜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대상이 없이는 수행이 불가능하다는 것. 대상의 좋고 나쁨을 가리지 말고 수행해야 하며, 하다보면 대상의 본성을 볼 수 있는 단계를 지나고 지혜를 얻게 된다. 수행의 초보적인 단계에서는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본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십중팔구 일어남은 이미 사라진 다음이다. 우빤디따 스님은 이것을 ‘사라진 꽁무니를 좇는다’라 했다고 성오 스님이 전한다. 이러한 경계는 정상이다. 점점 수행이 향상되면 ‘일어남’을 보게 되고, 다음 단계에서는 ‘일어날 조짐’을 보게 된다. 이것이 지혜로 가는 과정인 것이다.
이것은 성오 스님이 수행과 함께 믿음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믿음이 없으면 수행은 오래가지 못한다. 삼보에 대한 귀의심과 순수한 믿음이 안으로부터 우러나야 부처님의 세계와 만나는 경지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홍원사에서는 불자로서 기틀을 세우는 불교기본교육을 먼저 받고 위빠사나에 임해 수행의 경계를 믿음으로 극복해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무원향(50) 불자는 12년 전 성오 스님이 천안 호두마을에서 정기적으로 수행지도를 시작할 당시 그곳에서 스님을 처음 만났다. 당시 절에 다니며 기도하는 신행과 위빠사나 수행을 각각 다른 곳에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성오 스님의 법문은 신행과 수행의 두 기둥이 올곧게 서 있더라는 것. 전경자(63, 광명성) 불자도 가족을 위해 초하루・보름 기도를 오래 해왔지만 나 자신을 알기 위한 수행에서 얻는 기쁨에 비할 수 없다고 밝힌다. 그동안 위빠사나가 서구불교를 통해 우회적으로 유입되면서 종교의식을 배제한 재가자 지도시스템으로 정착해 신행의 측면이 균형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한국불교의 신행형태를 유지하고 수행에서 삼보에 대한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성오 스님은 위빠사나를 한국불교와 조화시킨 인물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 사념처를 둥글게 닦는 위빠사나 수행
“위빠사나와 간화선은 같은가 다른가를 묻는다면 저는 같다고 보는 입장이에요. 위빠사나는 내 몸과 느낌과 마음과 마음의 대상, 색수심법色受心法 네 가지를 다 둥글게 닦는 건데 이걸 줄이면 몸과 마음이에요. 간화선에서는 마음을 굉장히 강조했지요. 다시 말하면 위빠사나는 색수심법을 다 보는 것이고 간화선은 그 중 마음을 중심으로 보기 때문에 원뿌리는 같다고 하는 겁니다.”
성오 스님은 다르다고 보는 견해도 틀린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간화선은 화두라는 명제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마음을 보는 것이고, 위빠사나는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 삼법인을 투과하게 되면 이것이 견성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맞는 수행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가장 유효할 것이다.
송세운(67, 서광) 불자는 안국선원에서 간화선 수행을 하는 아내의 권유로 위빠사나를 접하게 된 특이한 경우다. 참선은 어렵고 위빠사나가 체계적이며 논리적이라는 말을 들어왔고 아내 또한 본인에게는 위빠사나가 잘 맞겠다고 권했다. 3년째 접어든 지금 마음이 안정되고 차분해졌다. 
“사업상 큰 손실을 입는 일이 있었어요. 닥쳐올 시련도 만만치 않았죠. 그때 수행이 절실했고 위빠사나를 만났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버릴 것은 버리고 놓을 것은 놓아야겠다 싶었어요. 이제 ‘이 일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구나’ 하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성오 스님은 강원도 원주에 수행환경이 잘 갖춰진 위빠사나센터를 건립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현재 부지 매입까지 끝난 상태다. 지금은 달라이라마 스님을 모델로 하여 참회와 서원으로 자기 자신을 정화하는 수행입문 체계를 어떻게 다져나갈지 모색하고 있다. 미얀마 마하시수행센터에 버금가는 한국불교 수행의 요람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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