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가시를 가진 선인장의 고민

2014-06-02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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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심리적인 고통은 그 원인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그 고통이 자신을 유지시키는 힘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아무리 부정적인 것일지라도 자신의 존재를 유지시키는 것이면 그것을 잘 바꾸지 못한다. 늦게까지 결혼도 하지 않고 직장도 없어서 속을 썩이는 자식을 걱정하면서도 자식을 돌보는 데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는 어머니들처럼 말이다. 자식이 정말 변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어머니가 달라져야 한다. 어머니들이 자식으로부터 존재 의미를 찾는 일을 그만두어야 비로소 자식들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 수 있게 된다. 요즘 젊은 세대들 중에 캥거루족이 많다고 걱정이지만 사실 부모에게 의존하는 젊은 세대보다 자식들을 과보호하는 부모에게 더 큰 문제가 있다.

| 사막 위의 선인장처럼 늘 외로웠던 그녀
‘은유와 마음’ 프로그램에 참가한 젊은 직장여성이 있었다. 그녀 역시 자신의 문제를 잘 알면서도 좀처럼 고치지 못했다. 그녀는 젊고 유능했으며 에너지가 넘쳤다. 하지만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의 소통에 서툴러서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못했다. 외로움을 많이 타면서도 왜 소통을 못하는지 원인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거친 모래바람이 부는 사막에 있는 외로운 선인장’이라고 비유했다. 하지만 선인장이 홀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주변에 많은 선인장과 함께 있지만 외로웠다. 그녀는 다른 선인장들과 달리 가시를 가지고 있었다. 잎이 크고 꽃도 아름다운 다른 선인장들은 가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의 속에 더 많은 가시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착하고 예쁘게만 보였다. 반면 겉에 많은 가시를 가지고 있는 그녀의 선인장은 사람들이 외면했다. 예쁘지도 않지만 사람들을 계속 찌르기 때문이다.
선인장의 가시가 사막이라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부터, 그녀는 가시를 다른 각도에서 이해하게 되었다. 원래 잎이었으나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시로 변한 것이라고 생각해보았다. 사나운 맹수도 많고 물도 없는 사막에서 자신을 지키려면 반드시 가시가 필요하고, 선인장 몸체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도 가시가 없으면 안 된다. 가시를 없애면 몸의 온도가 10도 정도 더 올라가서 선인장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선인장의 가시가 사막에서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필요악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주변사람들의 부정적 반응 때문에 속이 많이 상했던 그녀는 가시가 필요악이라는 생각 덕분에 조금은 편안해진 듯했다. 
그녀는 가시가 문제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가치 자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사막에 태어난 것을 원망하기는 했지만 가시를 원망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가시가 없었다면 일찍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시가 고맙기 이를 데 없었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지만 그 덕분에 선인장이 살아남았다고 생각했으며, 심지어 선인장이 예쁘고 사랑스러울 뿐 아니라 남의 시선에 좌우되지 않는 당당함이 멋지기까지 하다고 보았다. 

| 공격이 아닌 나를 보호하기 위한 가시 
남들이 갖지 않은 가시 때문에 외톨이가 되었다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어서 자신의 선인장만 가지고 있는 남다른 특징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녀는 가시가 없는 예쁜 꽃이 되기보다 예쁘지 않더라도 더 큰 선인장이 되어 당당하게 위용을 드날리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그녀가 큰 선인장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사나운 동물들조차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큰 선인장이 되면 아무도 자신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알고 보니 그녀는 소심하고 속이 여린 사람이었다. 가시를 바짝 세우고 남을 찔렀던 것도 결국 다른 사람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행위였다. 
그녀는 회사에서 다른 직원보다 유능했기 때문에 어디가나 질시의 대상이었다. 남자 직원들은 심하지 않았지만 같은 여자 직원들은 잘난 그녀를 그냥 보지 못했다. 젊은 사람이 일을 너무 잘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조심했지만 호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그녀의 탁월한 능력은 감추어지지 않았다. 시골에서 성장한 그녀는 은근히 사람들을 비교하고 질투하는 환경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직선적으로 자기감정을 노출했다. 한 대 맞으면 두 대 받아치는 식으로 동료들을 공격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공격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점점 고립되어 갔다.
그녀의 가시는 공격용이 아니라 방어용이었던 것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가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톡톡 쏘는 말로 동료들에게 상처를 주었는데, 그것 때문에 상처를 받은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이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동물이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어쩌다가 식물로 태어났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동물처럼 제대로 공격하지도 못하고 결국 남의 공격을 받기만 하는 식물처럼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다른 식물이 갖지 못한 특별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은 꺾이지 않았다. 선인장의 힘은 바로 선인장의 가시에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뿐 아니라 자기에게도 고통을 주는 부정적인 힘인 줄 알면서도 끝내 가시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두 번째 모임에서 그는 자신에게 독특한 취향이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가시가 있는 것이면 뭐든지 다 좋아했다. 밤송이, 고슴도치 등 가시가 있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졌는데, 선인장의 가시처럼 그것들은 내면 속에 잠재된 공격적인 성향을 표시한다. 자신의 공격적 성향을 하나둘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내가 살려고 남을 지나치게 공격한 것이 아닌지 후회하기도 했다.
나는 그 다음 모임부터 은유의 방향을 바꾸어 선인장의 ‘껍질’에 집중하도록 유도했다. 그녀는 남이 공격하면 두 배로 받아쳤지만, 알고 보니 허당이었다. 세고 날카로운 말을 해도 상대방을 이길 정도로 강력하지 못했다. 그녀의 껍질은 생각만큼 단단하지 않았다. 껍질이 없으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괴롭다고 하소연했다.

| 선인장, 자라다
“그것은 껍질 때문인가요?” “아니에요. 안에서 올라오는 생각들 때문이에요. 지금은 꾹 누르고 있지만 참기 힘들 때도 있어요.” “그럼, 껍질 때문에 힘든 것은 아니군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껍질이 없으면 발가벗은 느낌이에요.”
부정적인 에너지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존재이유라고 생각하면 거기에서 벗어나기 어렵듯이, 그녀는 가시가 부정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시가 없으면 자기의 존재도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껍질은 없어서는 안 될 것이네요.” “하지만 껍질 때문에 문제가 많이 생겼잖아요? 가시가 단단하고 뾰족하고 날카로워서 사람들이 싫어하잖아요?” “그런데 가시가 허당이라고 하셨죠? 그럼, 단단하지 않다는 건데요?” “아니에요, 단단한 껍질 때문에 문제가 많이 생겼어요. 그런데 조금 생각해보니까 실제로 껍질이 단단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에요. 남자들은 좀 무서워했어요. 여자들은 그게 단단하지 않은 줄 알고 함부로 했지만요.” “그렇다면 껍질과 속은 크게 다르지 않네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왜 생각이 자꾸 껍질로 가죠?” 
“속이 변해서 껍질이 되었지요? 부드럽고 단단함의 차이가 있지만 같은 식물이니까 성질도 같을 거예요. 그러니까 껍질은 처음에는 단단하지 않았는데 점차 단단해진 것이네요.” “혼란스러워요.” “그럴 수 있어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거니까요. 그런데 껍질은 외부의 공격만 막는 것이 아니라 안의 부드러운 것을 보호하기도 하는군요. 그리고 껍질을 통해 공기도 들어오고 햇빛도 들어오고 물도 들어오지 않나요?” 
“무슨 말씀이세요?” “그동안 공격만 생각하니까 식물이 약한 것처럼 느껴진 거예요. 껍질은 외부의 공격을 막을 뿐 아니라 공기와 물이 들어오는 통로이기도 해요. 수종에 따라서는 수분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지나친 햇빛과 거친 바람을 막기도 하지만, 껍질로도 공기가 들어오고 물도 들어오고 햇빛도 들어오지요. 그러니까 껍질은 부드러움과 단단함을 동시에 갖고 있어요. 만약 껍질이 완전히 딱딱해지면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갈 거예요. 내 몸에 붙어 있다는 것은 생명이 있다는 말이고, 그건 부드러움이 그 자체에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껍질이 방어도 하지만 외부와 소통도 한다는 말씀이지요?” “예.”
상담을 거듭함에 따라 그녀는 자신의 껍질과 속이 원래 한 몸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껍질이 안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차츰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단단한 껍질을 만들어 남을 공격했지만, 사실 자신 안에 있는 또 하나의 가시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상담이 진행되는 기간 사이에 회사 동료들과의 관계도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가시는 부정적인 힘이지만 자신의 에너지가 결집되는 지점이었다. 문제의 소지는 알아도 그것을 고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부정적인 에너지라도 그녀를 유지시키는 힘이기 때문이다. 가시라는 비유에 집중함으로써 자신의 공격성을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에너지의 긍정적인 성질을 이해함으로써 실제 삶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명법 스님
조계종 교수아사리, 동국대 불교대학원 명상상담학과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며 불교신행모임 ‘무빙템플’과 이야기 상담 연구단체 ‘은유와 마음’을 이끌고 있다. 해인사 국일암에서 성원 스님을 은사로 득도한 뒤 운문승가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운문승가대학 회주 명성 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았다. 서울대 불문과 졸업 후, 동 대학원 미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Smith College에서 박사후과정을 연수했다. 저서로 『미국부처님은 몇 살입니까』, 『미학의 역사(공저)』, 『선종과 송대사대부의 예술정신』, 『한 권으로 보는 세계불교사(공저)』 등이 있고 다수의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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