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어쩌면 탱고

2014-05-27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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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숍에서 가져온 테이크아웃 종이컵을 
며칠째 들고 다니는 나를 보며 
좋은 컵들 다 놔두고 종이컵을 쓴다며
도반스님이 나무란다. 

그렇다. 좋다 난. 
그 정착할 것 같지 않은 종이의 가벼움이. 
일회용으로 만들어져 뜨겁게 하루를 살다가 
며칠 더 덤으로 남아 쓰이게 되는 그 유용함이 좋다. 
며칠이면 더럽혀져서 뭉개지고 버려지는
종이컵의 그 쓸쓸한 최후조차 마음에 든다. 
마치 내 인생이 거기 투영되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 낡은 세상을 떨치고픈 강렬한 생의 욕망
제철과일 없는 세상에 산다지만 시장에 가보면 철마다 과일 빛깔이 다르다. 그 싱그러운 빛깔만 봐도 지금 계절이 어디쯤 와 있는지 확연히 느낄 수 있다. 향긋한 봄나물 바구니는 또 어떠한가. 발길 잡는 향기 앞에서 나는 길게 호흡하며 가슴 가득 봄을 품는다.
계절은 바뀌어 어느새 봄이 손짓한다. 이러다보면 금세 또 여름 되겠지. 지구가 뜨거워져서 요즘엔 봄볕도 간혹 여름 볕 같을 때가 있다. 이런 얘길 하는 이유는 내가 한창 더울 때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더위를 싫어한다. 반면 성격은 뜨거운 특성을 많이 가진 듯하다. 저 붉은 태양처럼 내게는 숨은 열정이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출가해서 가장 힘든 일 가운데 하나가 그 모든 열정을 내 안에 꼭꼭 가두어두는 일이 아니었나 싶다. 가만히 앉아서 기도하고 좌선하고 염불하면서 보내는 무채색의 일상이 내 숨을 턱턱 막히게 했는지도 모른다. 
출가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지 않았을까. 어딘지 모를 출구조차 사라져버린 이 답답함 말이다. 한때 나는 공기조차 벽처럼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심경으로 머물던 때의 사찰은 더 이상 신비로운 세상이 아니었다. 다시 떨치고 떠나고픈 낡은 세상이 되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그 모든 갈망의 근원에는 불같은 열정과 견디기 힘든 강렬한 생의 욕망이 불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렇게 유학길에 오른 것일 테다. 솔직히 그 당시에는 불교학에 대한 학문적 호기심보다는 낯선 이국땅에서 겪게 될 젊고 싱싱한 외로움이 내게는 더 기대되고 흥미로웠다.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서툰 언어로 인사하며 해맑게 웃으며 살고 싶은 꿈을 꾸었다고나 할까. 그때까지의 삶은 전생의 기억처럼 묻어두고, 내 안에 가두어두었던 열정을 조금씩 꺼내어 뭐든 이루어내고 싶었다. 실제로 나의 유학생활은 뭐든 열심히 몰두하며 지낸 시간이었다. 제때에 논문을 썼고, 남들보다 빨리 학위를 받았으니 여기엔 조금의 움츠러짐도 없다. 다만 그땐 그것이 내 열정 때문이라는 생각에는 이르지 못했다. 


| 인생은 생각대로 흘러간다 
유학시절,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던 어느 날 저녁 무렵, 나는 한 음악회에 초청을 받았다. 처음 음악회에 초대받았을 때는 ‘스님에게 무슨 음악회 티켓을 선물할까’라고 생각했다. 불교 계율에는 음악을 보거나 일부러 들으러 가서는 안 된다는 항목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계율 전공자가 아닌가. 남들보다 더 조심스런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클래식도 아닌 탱고음악회라니. 상대에게 미소를 띠우며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티켓을 자세히 보니 뜻밖에도 장소가 사찰이었다. 법당 뜰 앞에서 탱고음악회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러고 보니 내게 초청장을 준 사람도 그 절에 사는 일본 스님이었다. 순간 호기심이 동했다. ‘그래? 그럼 가볼까? 절인데 뭐 어때? 한번 가보지 뭐.’ 그렇게 몇 번의 망설임이 있고 난 후에 나는 가기로 결정했다. 내 생애 두고두고 잊지 못할 그 붉은 빛깔 탱고음악회를. 
살면서 음악을 들으며 그날처럼 가슴 뛰었던 적은 없었다. 음악방송을 진행하는 지금도 그런 일은 별로 없다. 심지어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조차 그만큼의 설렘과 두근거림은 함께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스산한 바람결에 묻어 허공을 울리는 바이올린과 콘트라베이스, 여기에 강렬한 음색을 지닌 반도네온, 그리고 열정적인 눈빛을 마주한 채 무대를 휘젓는 두 남녀의 붉은 몸짓까지, 춤과 음악 속에 녹아있는 격정적인 감정이 내겐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날 이후 내 마음 속에는 ‘탱고’라는 단어가 콕 와서 박혔고, 붉은 물감을 확 끼얹은 것처럼 그 강렬한 끌림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그 후 탱고 공연은 다시 보지 않았다. 그 어떤 공연을 보아도 그날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주진 않을 테니까.
음악회가 끝나고도 여전히 식지 않은 그 열기를 안고 찬바람 속을 뚫고 오며 나는 생각했다. ‘혹 내 안의 열정도 저 탱고와 닮지 않았을까. 온 마음을 불태워 정성스럽게 살아볼 만한 그것, 인생이란 게 바로 이런 거지. 인간의 삶은 어쩌면 탱고처럼….’ 
그동안 살아오면서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고, 당당하게 삶을 대했던 적이 얼마나 될까? 아니 몇 번이나 될까? 그럭저럭 큰 흐름 속에 나를 맡긴 채 하염없이 세월만 보낸 지난날들은 이제 더 이상 기억 속에조차 붙잡아두고 싶지 않은 과거가 되었다. 
알다시피 불교 내부에는 금지조항이 많다. 그러다보니 출가자들은 살면서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그런데 대개는 그 말을 듣기 전에 미리 지레짐작으로 ‘그건 하면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 누구누구라고 꼬집어 말할 것도 없다. 다름 아닌 내가 그랬다. 승가조직 속에서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결코 자주적이지도 자발적이지도 못했다. 반드시 계율을 예로 들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소소한 일상의 많은 일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틀 안에서 세상 밖으로 뛰쳐나오지 못할 때가 참 많았다. 
고정관념의 틀에 얽매여 답답한 심정으로 지내다보면 세상과의 순환 고리가 끊어지는데, 그런 줄 알면서도 그냥 내버려둘 때가 많았다. 그래서 가끔은 사는 일이 심드렁해지곤 했다. 어딘지 모르게 김이 샌 듯 내면이 알차지 못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멀리서 보면 초연한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옹졸한 심사가 내면에 꽁하게 숨어있었다. 그러나 인생은 생각대로 흘러간다. 순자가 말한 운명의 논리처럼 말이다. 

운명이란 닭장 속에 떨어진 
매의 알과도 같은 것이다.
스스로 닭처럼 평범하고 
무료한 삶을 선택할 수도 있고
매처럼 힘찬 날갯짓을 하면서 
일생을 살아갈 수도 있다.

출가자는 기본적으로 열정적인 사람들이다. 열정이 없고서야 이런 눈부신 선택을 했을 리가 없다. 누구보다 강한 열정과 생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에 구도의 길을 택한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세간과 출세간 중에 보는 방향에 따라 어느 쪽이 닭장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이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의해 우리는 닭도 될 수 있고 매도 될 수 있는 건 분명하다. 내 의지가 바로 나의 길이요 내 운명이므로.


| 그러지 말자, 봄이니까
인생의 목표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는 극명하다. 목표가 있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더 열정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것 또한 당연하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의 길을 찾아가는 일을 소가 무거운 짐을 지고 진흙벌판을 지나가는 것에 비유하는데, 이때 소는 한눈팔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서 수렁밭길을 지나고서야 비로소 쉰다고 말한다. 이는 고통의 순간을 인내하며 꾸준히 한길을 가다보면 언젠가 최상의 쉼터가 나온다는 얘기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인생도 그렇지 싶다. 일단 무슨 일이든 온 마음을 다해 노력하고 나면, 나를 뚫고 올라오던 수많은 두려움은 곧 생의 희망으로 빛나게 될 테니까.
세상에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미래도 각자가 정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하고 싶은 일을 만났을 때, 때로는 무모해 보일지 모르지만 용기를 내어 인생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단 도전을 해야 후회를 하든, 꽃을 뿌리든 할 것 아니겠는가. 나는 가끔씩 인생이 뭐 별건가 싶다. 한번 쓰고 사라지는 종이컵의 무상함이나, 한생을 살다 가는 인간의 허망함이나 뭐 그리 다를까 싶을 때가 있다. 자신의 삶은 뭔가 특별해야 하는 양 체면 차릴 일이 많은 날이면 이 생각은 더욱 강하게 내 머릿속을 파고든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는 거추장스러운 감정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소소한 일상의 감정에 대해서도 상처 받고 괴로워한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일들이 우리의 희망을 무너뜨리고 도전하는 자신을 좌절시키는 것이 아닐까?
머리 깎고 하루하루 밥그릇 나이가 들어갈수록 삶은 점차 덤덤해져간다. 불안한 뭔가가 내 인생에 닥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게 무사하게만 살다보니 어느새 탱고처럼 열정적으로 살리라 다짐했던 꽃다운 다짐은 사라져버렸다. 한낱 지나간 청춘 속에서만 미소 짓는다. 
그러지 말자. 봄이니까. 꽃처럼 화사하게 다시 시작해 보리라.



원영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아사리(계율과 불교윤리 분야). 
운문사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선원 안거 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2008년 「대승계와 남산율종」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대승계의 세계』, 『계율, 꽃과 가시』 등이 있다. 현재 BBS불교방송 ‘아침풍경’을 진행하고 있으며, 중앙승가대학교 외래교수로서 강의와 다양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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