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에 피어난 고운 봄

2014-05-27     불광출판사
 
봄이다. 
하지만 아직 바람 속엔 
차가운 냉기가 숨어 있다.
나는 이 바람을 따라 움직였다. 
어디로 향할지 모르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순천 금둔사에 들러 납월매를 보았다. 
납월매는 음력 섣달에 피는 매화를 말한다. 
가장 일찌감치 꽃망울을 터트리는 매화인 셈이다. 
금둔사의 홍매화가 대표적이다. 

바람에 실린 매향은 술 한 잔 입속에 털어넣은 듯 
내 몸 혈관을 따라 퍼진다. 
그 붉고 여린 꽃잎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금둔사에 잠시 머물던 바람은 
이어 변산반도의 어느 작은 포구로 나를 데려갔다.
차에서 깊어진 생각들을, 바다에 버렸다. 
곱게 물든 노을과 밤을 안은 바다는 평온했다.

 








다음날 아침 
내소사를 안은 능가산은 
아직 앙상한 겨울이다.  
봄소식을 알리는 건 
마당에 꽃망울을 터트린 
노란 산수유뿐이다. 
산을 넘어온 햇살이 
대웅보전을 비추기 시작했다. 



아! 
내소사 대웅보전 문창살에 
꽃이 피어난다. 
그 황홀한 순간을 
탑 뒤에서 바라보았다. 
마당 가득 퍼진 햇살은 
대웅보전을 이윽고 
꽃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바람은 다시 내게 불어와 
산을 넘게 했다.
직소폭포를 보고 내려와 
천천히 숲길을 따라 걸었다. 
투명하게 빛나는 꽃망울을 발견하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하얀 꽃잎, 
가느다란 줄기는 
바람결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바람을 따라 
이곳까지 온 것처럼. 
변산 바람꽃이다. 
그 곁에 앉았다. 
바람이 잔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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