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를 품는 따스한 기운

공주 갑사 <삼신불괘불탱>

2014-04-08     불광출판사
 
국보 제 298호 <삼신불괘불탱>, 조선후기 효종 원년
(1650)에 완성되었으며 17세기를 대표하는 수작. 삼신불(법신 비로자나불, 보신 노사나불, 응신 석가모니불)이 나란히 앉아 계시다. 크기 12.47 x 9.48m.

공주 갑사의 초입에 들어서는데 싸락눈이 천지에 흩날린다. 고운 입자의 눈발이 일제히 거꾸로 하늘로 오르기도 하고 공중에 머무르기도 하며 바람따라 군무를 춘다. 도인이 많이 나기로 유명한 계룡산. 입구부터 만나게 되는 노송과 느티나무 고목들이 그윽한 신비를 품고 있다. 덜 녹은 눈으로 여기저기 덮인 땅인데도 밟히는 흙은 따스했고, 차곡차곡 쌓인 낮은 돌담들은 정겨웠다. 계곡의 바위와 주변 나무들은 겨울인데도 융단같은 이끼로 덮여 있다. 습윤한 골짜기 사이에서 하얗게 피어오르는 물기운 따라 용이라도 한 마리 승천할 기운이다. 절 마당에 들어서니, 상상했던 것보다 규모가 작아보였다. 그런데 시간을 두고 돌아볼수록, 아득한 봄날 같은 부드러운 따스함 속에, 천지를 품어내는 호연지기가 서려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그것은 결코 천하를 발밑에 두고 군림하겠다는 권위적 기상이 아니다. 넓고 큰 기개는 여느 호걸 못지않으나 그 표현에 있어 밝고 따듯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갑사가 소장하고 있는 대표 유물들이 바로 이러한 특징의 기운을 품었다는 것이다. 철 당간, 대웅전의 소조 삼세불, 금고저(쇠북걸이), 삼신불괘불탱 등이 그러하다.




| 장대함 속에 품은 온화한 미소

사찰 입구의 철 당간幢竿은 15미터의 어마어마한 높이이다. 연결된 철통이 현재 24개인데 본래 28개였다 하니, 지금보다 3~4미터는 더 높았을 것이다. 육중한 용의 몸통 같은 철 기둥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았고, 그 꼭대기에 화려한 당번이 걸려 창공에 드높이 펄럭였을 것이다. 대웅전 안 한 켠에는 청동 쇠북(금고)이 달려있는 나무로 조각된 조형물이 있는데, 얼핏 보기에 업경대 같아 보인다. 이 조형물은 국내에서 가장 큰 초대형 쇠북걸이로 유명하다.(도판 03) 거대한 부채꼴 모양의 연꽃잎 양쪽으로 용이 솟아 나오고, 이 두 마리 용은 기염을 토하며 하나의 붉은 여의주를 동시에 잡고 있다.(도판 04) 매달린 쇠북은 용이 품은 대형 여의주 같다. 그런데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를 받치고 있는 신비스런 푸른 동물이 고개를 빼꼼 내어 나를 향해 메-롱 혓바닥을 내밀고 있다. 먼저 장대한 규모와 화려함에 매혹되고, 다음엔 그 속에 스민 해학에 웃는다. 돌아나오며 진해당 주련의 글귀를 마주한다.

팔만 사천 경은 마음에서 나온다.
백억의 하늘과 땅을 발아래 품었다.
사라쌍수에 잠긴 광채가 바로 적멸이요
다시 금강 사리가 광명을 발한다.

갑사에는 위에서 언급한 특징인 장대함과 따스함을 함께 품은 국보 괘불탱화가 있다. 국내에 그리 많지 않은 17세기의 귀중 작품이다. 언제 실제로 펼친 것을 볼 수 있을까. 7년 전 가을 개산대제 때 100년 만에 처음 펼쳐서 ‘영규 대사 추모 괘불재’를 거행하였다. 그리고 앞으로는 도통 계획이 없다 하신다. 영규 대사는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승병을 일으킨 인물이다. 공주가 고향인 그는 청주성이 왜적에게 점령되었다는 소식에, 이미 관군이 모두 달아난 그곳에 승병을 이끌고 가서 탈환에 성공한다. 영규 대사와 승군 700여 명은 이어 금산전투에도 뛰어들었으나, 무려 20배가 넘는 수의 왜군에 대적해 사력을 다해 싸운 후, 마지막 한 명까지 모두 몰살된다. 한성을 버리고 피난 갔던 선조는 청주성 승전 소식에 영규 대사에게 당상 벼슬과 관복을 내렸으나, 그것이 미처 도착하기도 전 대사는 전사한다. 갑사는 승병 궐기의 최초 도화선이었다. 나라를 지키다 숨진 고독한 전사들의 성지인 것이다. 그 후, 정유재란 때 사찰은 전체가 전소되어 버리는 비운을 맞는다. 이러한 역사의 아픔을 딛고 선조37년(1604)부터 갑사는 다시 재건되기 시작했다. 갑사 내 표충원에 모셔진 영규 대사의 영정을 보니 기골이 참으로 장대하다.

 



| 창공에 나타난 초대형 부처·보살님들

갑사 삼신불괘불탱은 높이 12.47미터 너비 9.49미터의 야외용 불화로, 장정 30명 이상이 동원되어야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다.이러한 형식의 초대형 괘불탱화는 임진왜란 이후인 17세기부터 유작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전란 때 사망한 무수한 영혼들을 위한 합동 천도재에 사용되었다. 희생된 수천수만의 영가를 천도하기 위해 끊임없이 몰려드는 민중들을 감당하기에 법당 실내는 너무 좁았다. 이에 급기야 야외에 불단을 설치하고 십 리 밖 멀리서도 볼 수 있는 초대형 부처·보살님들이 허공을 배경으로 장엄한 모습을 드러냈다.(도판 05) 본 괘불탱화에는 삼신불三身佛, 법신 비로자나불·보신 노사나불·응신 석가모니불이 나란히 그려져 있다.(도판 01) 그런데 어째서 삼신불일까. 극락천도를 위한 아미타불이라든가 지옥구제를 위한 지장보살이라든가, 왜 좀 더 중생이 알기 쉬운 도상이 아닐까.
필자의 일본인 친구(사경연구가)가 ‘한국에서 가장 유행하는 경經은 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반야심경·금강경’이라 했더니, 어떻게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경전이 가장 대중적일 수 있냐며 매우 놀란다. 일본은 이해하기 쉬운 ‘법화경’이라고 한다. 일본은 방편을 중시하는 친절한 우회형인 듯하고, 한국은 단도직입적인 돌직구형이 아닌가. 간화선의 전통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한국불교. ‘이뭣고?’라는 화두를 들고 오롯이 돌진해 들어가는 간화선의 매력은 간단명료함과 속전속결에 있다.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깨달음을 체험하는 것’밖에는 없다고, 깨달은 선사들은 입을 모은다. 다른 왕도는 없다. 독립된 개체라고 착각하는 ‘나’는 모든 집착과 번뇌의 집이다. 여기서 벗어나 진아眞我(진짜나 또는 큰나大我)라고 불리는 진여법성을 어떤 방식으로든 체험을 하여야 비로소 ‘작은 나小我(또는 에고)’에서 벗어날 수 있고 번뇌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다. 스스로 나라고 생각해 갇혀있던 세계에서 ‘탈피’해야만 하는 것이다.


 
 



          08.09.
대적전과 부도. 갑사의 본래 절터
자리였던 현재의 대적전 앞에는
통일신라시대의 부도(승탑)가 있다.
특이한 형태의 이 부도는 삼신의
원리를 재현해 내고 있다. 아랫부분에는
불성의 기운이 구름처럼 일어나고 있고,
그 안에서 용·사자·천인 등 삼라만상이
응신으로 모양을 나투고 있다.










| 우리 존재의 방식, 삼신불

깨달음의 자리라고 하는 진여법성은 ‘법신 비로자나불’로 조형화된다. 항상 삼신불의 가운데 위치해 ‘우리의 근원은 한 바탕’이라는 뜻의 지권인智拳印의 손 모양을 하고 있다. 이 바탕자리 체험을 우리는 깨달음이라 한다. 내가 ‘존재하는 방식’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지혜의 눈을 뜨게 되면, 더 이상 장님놀이 속에 좌충우돌하는 고통은 없게 된다. 이 법신의 자리(또는 법계)에서 에너지가 일어나는 것은 ‘불성이 일어난다’고 해서 성기性起라고 하고 이것이 ‘서로 작용하는 것’은 연기緣起라고 한다. 청화 큰스님은 “너나 나나 모두가 다 법계연기, 즉 인연 따라 잠시 모양을 내었구나.”라고 하신다. “산도 냇물도 모두가 다 법성자리에서 연기하여 잠시간 모양을 냈을 뿐이다. 그리고 인연 따라 모양을 나투어서도 순간 찰나에도 머물러있지 않는다.”고 하신다. 불성의 에너지가 일어나 삼천대천세계를 장엄하는 모습은 ‘보신 노사나불’로 표현된다. 물론 보신과 법신은 우리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세계이다. 현대 과학이나 의학에서는 보신의 영역을 현미경과 망원경을 통해, 극히 그 일부분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그 너머 법신의 세계를 증명하는 데 있어서 현대과학은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 삼신여래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는 당체

인연 따라 잠시간 ‘모양을 낸 상태’가 응신의 세계이다.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응신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표현된다. 틱낫한 스님은 죽음이라는 현상을 ‘구름이 없어지는 비유’를 들어 설명하신다. 바다에서 수증기가 일어나 구름을 만들고, 구름은 잠시 모양을 이루다가 다시 사라진다. 비가 되어 내리기도 하고 기체가 되어 더 작은 입자로 분해되기도 한다. 질량불변의 법칙으로 에너지는 형체를 바꾸며 변화한다. “변화할 때에 따라 우리 눈에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없어진 것은 아니다.”라고 하신다. 다름 아닌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은 핵심, ‘무상(無常, 모든 것은 변화한다)과 연기(緣起,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일어난다)’의 또 다른 설명이다.
이러한 존재의 근본적인 방식을, 우리나라 불교미술의 전통에서는 끊임없이 ‘삼신불’의 조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내가 나의 존재 방식을 깨닫게 되면, 더 이상 번뇌는 설 자리가 없다. 색수상행식色受相行識에 집착해 구천을 떠도는 영혼도 없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에 끄달리는 고통도 없다. “법신·보신·응신 삼신三身의 성품을 지닌 본각本覺 여래는 중생 모두가 원만히 갖추고 있지 않은 자가 없다.” 삼신 여래가 모두 동시에 작용하고 있는 당체가 바로 ‘나’이고, 현재 ‘나’의 존재방식은 삼신여래인 것이다. 갑사의 대웅전 주련에는, 이러한 진리를 망각하지 않도록 수행의 요체가 다시 한 번 활달한 필치로 새겨져 있다.

청정함이 지극하면 광명에 통달한다.
고요한 비추임은 허공을 머금었다.
멈춰 돌이켜 세간을 관하니
마치 꿈속의 일 같구나.
비록 여러 감각이 움직임이지만
핵심은 하나의 중심을 잡는 데 있다.



강소연
불교미술사학자. 홍익대학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일본 교토대학에서 ‘일본소재 조선전기 왕실 불교회화’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해외에 유출된 우리 국보급 불교회화 문화재를 약 7년 간 현지 조사하여 『잃어버린 문화유산을 찾아서』를 출간했다. 동국대 불교학과 연구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조선일보 (주)디지틀조선일보 기자를 역임했으며, 일본 미술문화계 최고학술상 ‘국화상’ 장려상.한국 불교소장학자 ‘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월간 불광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