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은 인간성이 가장 성숙된 사람

통도사 반야암 회주 지안 스님

2014-04-08     불광출판사

 


넘실넘실 봄내음이 훈풍을 타고 움츠렸던 마음 위로 넘나든다. 또다시 새로운 계절,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시기다. 새로움은 때론 낯선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일상에 신선한 변화를 가져오며 지루했던 삶에 풋풋한 희망과 기대를 품게 한다. 새해가 시작된 후 조금은 느슨해진 마음을 추슬러, 학생들이 새학기를 맞이하듯 마음공부 원력을 새롭게 다져본다. 봄바람에 실려 스승을 찾아 먼 길을 재촉한다. 양산 통도사 반야암, 조계종 고시위원장 지안 스님의 처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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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하는 사람 곁에 늘 함께 하는 스님 
 
: 근현대 대강백이신 운허-월운 스님의 강맥을 이어 지난 40여 년간 통도사 승가대학 강주, 조계종 종립 은해사 승가대학원장 등을 역임하시며 교학연구와 후학양성에 매진해오셨습니다. 이와 더불어 재가불자 교육에도 정성을 기울여오셨는데요. 현재도 서울, 창원, 반야암에서 그룹 스터디 형식으로 재가자들의 경전 공부 모임을 지도하고 계십니다.
 
재가자들이 자발적으로 공부 모임을 결성해 도와달라고 하니, 저로서는 몸이 좀 고달퍼도 매우 기쁜 일이지요. 월요일엔 창원 반야불교학당, 화요일엔 반야암 반야경전교실, 금요일엔 서울 패엽회에서 매주 1회씩 경전 강의를 해오고 있습니다. 각 공부 모임이 짧게는 7년에서 길게는 23년 정도 됐어요. 제가 1970년에 출가했으니 올해 어느덧 44년이 되었네요. 학인 시절을 빼고는 통도사 강원에서 중강을 시작으로 40년간 강의하며 지내온 셈입니다.
통도사 승가대학이 올해 57회 졸업식인데 그중 제가 15회를 졸업시켰고, 은해사 승가대학원엔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있으며 네 기수를 졸업시켰습니다. 재가불자 교육은 1978년 불교대학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부산 대법사 불교학당을 시작으로, 부산구도회 지도법사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어요. 불교 공부를 열심히 꾸준히 한 사람들을 보면 신행자세가 바르게 될 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훌륭하게 다듬어집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굉장히 큰 보람과 만족감을 느낍니다
 
 
: 공부에 참여하는 분들이 거사 중심으로 이뤄져 있고 교사교수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많습니다. 불교의 지성화와 엘리트 불자 양성에 앞장서 오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불교신자가 여성 위주로 편중되어 있고 기복에 치우쳐 있던 흐름을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시키고자 했어요. 그래서 거사불교를 주창하게 된 거죠. 거사들이 불교를 믿도록 유도하기 위해선 불교가 지성화되어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고, 내 나름대로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 겁니다. 그러면서 거사회가 결성되었고 경전 공부를 통해 지식인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현재 반야암에서 매월 첫째 주 일요일 반야불교거사회 가족법회가 열리는데, 많게는 100여 명의 거사들이 동참해요. 부처님 가르침을 교리적으로 제대로 알고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사회적 활동도 활발해졌습니다. 매달 포교지 반야를 발간하고, 사단법인 반야불교문화연구원을 설립해 불교학술을 비롯해 불교문화 발전에 힘쓰며, 해마다 장학사업도 꾸준히 펼치고 있습니다
 
 
 
: 강원 학인시절, 윗반에 있을 때부터 아랫반 스님들에게 강을 하셨습니다. 일찍이 경학에 두각을 나타내시고 평생 학승으로서 모범적인 수행자상을 보이셨는데, 교학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학교다닐 때부터 공부는 좀 했습니다. 제가 다른 건 다 잘 못해도 남들보다 잘하는 게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책 보는 거예요. 책 보는 게 취미이자 특기인 셈이죠. 출가 전부터 독서를 즐겨했고, 그 습이 절에 와서도 그대로 이어진 것 같아요. 책만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거든요.
쑥스럽지만 옛날 이야기 하나 하자면, 제가 통도사 강원 학인 때 홍법 스님께서 주지 소임을 살고 계셨어요. 가끔 강원에도 오시곤 했는데, 다른 스님들 다 쉬고 있을 때 저만 혼자 경상 앞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신 적이 있어요. 하루는 공양시간 끝에 학인스님들에게 한 말씀 하셨는데, “지안이처럼 공부 열심히 해라.”였지요. 당시에는 강원에서 시험 치면 1등에게 장학금 명목으로 500원씩 주는 전통이 있었는데, 제가 좀 많이 받아 챙겼습니다


: 조계종 교육원 연수교육 프로그램 중 오는 3월 중순 지안 스님과 함께하는 인도성지순례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인도성지순례를 많이 다녀오셨으며, 성지에서 쓴 편지왕오천축국전번역서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역사적 사실과 신화전설적 요소 사이에서 어떤 관점으로 이해해야 하나요?
 
인도성지순례는 이번이 15번째입니다. 학인스님들과 함께 가이드를 겸해서 많이 다녀온 편이죠. 아무리 둔재라도 맹자3천 번 읽으면 문리가 터진다고 했듯이, 인도성지순례도 갈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느끼고 부처님과 그 가르침에 대한 이해가 깊어집니다. 나라마다 건국신화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어느 종교든 교조를 신성화우상화시키는 과정에서 신화적 요소를 다분히 차용하고 있습니다.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과학문명의 시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많죠.
신화적 요소를 전부 거둬내고 부처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순수하게 묘사해보려는 시도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다만 신화를 역사적인 사실인 양 맹목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지양하되, 신화는 신화대로 그 속에 상징하고 있는 의미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부처님은 인간성이 가장 성숙된 사람입니다. 역사적 사실과 신화적인 요소로 구분해서 부처님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밝고 맑은 부처님 정신을 이 삶 속에서 어떻게 실천하며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 지안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통도사 반야암에서 바라본
영축산의 아름다운 설경.

 
  
 
 
| “스님, 마음이 밝아질 때가 올 거야!” 
 
: 요즘은 태어나면서 경쟁사회에 내몰리는 것 같습니다. 어린이집 들어가는 것도 경쟁이 심하며, 2030세대를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세대라 부르기도 합니다. 젊은 세대들의 고민이 깊어가는데, 스님은 젊은 시절의 고뇌를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저 또한 어찌 고민이 없었겠습니까. 세속적 가치에 찌들대로 찌들려 인생과 진로에 대해 끊임없이 방황하던 시절이었죠. 몇 달 쉬며 책이나 읽겠다고 통도사를 찾았습니다. 속으로는 고시나 쳐볼까 하는 생각도 품었죠. 이튿날 얼떨결에 새벽예불에 들어갔다가, 스님들이 예불드릴 때 읊는 장엄한 창불唱佛 소리에 나도 모르게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영혼이 떨리는 감흥이 파문처럼 나를 이끌어 출가의 길에 들어서게 한 거죠.
출가 후에도 제 성격이 날카로운 편이라 스스로 갈등을 일으키고 마음을 괴롭혔어요. 그럴 때마다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운 은사스님의 말씀 한 마디가 있습니다. “금생은 태어나지 않은 셈 치고 살라.” 힘들고 괴로울 때 그 말씀을 음미하면서 스스로 나를 달래고, 모든 걸 극복할 수 있는 여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 일이 한 생각 돌리면 아무 것도 아니며, 어떤 때는 나도 버리고 세상도 버려야 할 용기를 가져야 할 때가 있어요. 자기가 선택한 길을 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길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왕자 출신으로 태어났지만 모든 걸 버리고 출가하지 않았습니까. 가장 위대한 포기를 하신 분이죠.
우리 삶은 고민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세속적인 가치에 너무 사로잡히면 열등소외의식에 빠져 자기자신을 학대하며 자포자기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 괴로움이 일어날 때는 차라리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붙들고 깊이 고민해보세요. 어느 순간 자기 정신세계를 성숙시키며 지혜롭고 유익한 방향으로 삶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 은사이신 벽안 스님께서 금생은 태어나지 않은 셈 치고 살라.” 하셨는데, 스님 스스로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셨을 때의 감회는 어떻습니까?
 
특별히 내세울 건 없지만 용케도 별탈없이 잘 살아온 것 같아요. 젊은 시절 세상을 삐딱하게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경향이 있었는데, 나이 들어서인지 마음이 좀 쉬어지고 세상을 밝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남의 사정도 전보다 잘 이해해주고 탐진치 삼독이 예전보다 현저히 줄어듦도 느껴지구요. 문득 예전 일화가 하나 생각나네요. 1973년도쯤인가, 제가 학인일 때 월간 불광을 창간하신 광덕 스님께서 통도사를 찾은 적이 있어요. 출가 전부터 다른 큰스님들은 몰라도 법정 스님과 광덕 스님의 이름은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드리고 나서 느닷없이 평소 궁금했던 질문을 드렸습니다.
스님은 절에 와서 오랜 세월 수도하셨는데,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철부지 때 당돌한 질문이 이렇게 나온 거죠. 스님이 허허 웃으시더니, “나한테 도 깨달았느냐, 못 깨달았느냐 묻는 거여? 스님! 스님도 앞으로 공부를 잘해봐. 마음이 밝아질 때가 올 거야.”라고 대답해주셨습니다. 당시에는 그 말씀이 만족스런 대답이 못 됐어요. 그런데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면서 새록새록 새롭게 이해되고 인식되면서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져요. 지금 젊은 학인 후배가 나에게 물으면, 광덕 스님과 똑같은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우리 불자들도 불교 신행을 잘해 스스로 마음이 밝아지면, 세상을 편안하고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겁니다. 나쁜 맘 안 품고 남 원망하는 마음이 사라지니 사회도 더불어 밝아지는 거죠
 
 
 
: 마지막으로 봄을 맞아 새로운 마음을 준비하는 분들께 용기를 주는 따뜻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대인춘풍對人春風이라는 말이 있어요. 사람을 대할 때 봄바람처럼 따뜻하고 부드럽게 대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거리를 지날 때 사람들 표정을 한번 살펴보세요. 딱딱하고 무겁습니다. 마음이 무겁고 현실에 불만이 많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우리를 괴롭히는 현실문제는 무엇일까요? 크게 보면 금전과 애정 문제일 거예요. 문제의 해답은 마음을 어떻게 먹고 사느냐에 있습니다.
예로부터 불행한 일을 겪으면 마음 잘 먹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만고의 명언입니다. 마음 잘 먹으면 죽을 듯 괴롭던 문제도 아무렇지 않게 풀려갑니다. 마음 잘 먹으면 가난해도, 애인 없어도 괜찮습니다. 가난하면 작은 데 만족하는 행복을 알게 되고, 사람은 혼자 있을 때 가장 자유롭고 편안합니다. 마음 잘 먹는다는 것은 현재 눈앞에 닥친 상황에 항상 지혜롭게 대처하면서, 그 상황을 호전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물에 빠진 김에 수영을 하거나 조개를 주울 수도 있는 것이죠. 금강경화엄경에 나오는 항복기심降伏其心과 선용기심善用基心의 의미를 잘 새겨야 해요. 어느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중생의 허망된 망심을 극복하고 항복받아, 그 마음을 잘 쓰고 살아야 합니다.
 
 
 
 
 
지안 스님
1970년 통도사에서 벽안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74년 통도사 강원을 졸업하고, 통도사 승가대학 강주, 정법사 주지, 조계종 교육원 역경위원장, 은해사 승가대학원 원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통도사 반야암 회주로서, 조계종 고시위원장이자 반야불교문화연구원 원장으로 있다. 저서와 역서로 산사는 깊다, 왕오천축국전, 경전으로 시작하는 불교, 조계종 표준 금강경 바로 읽기, 대승기신론 강해, 금강경 이야기, 학의 다리는 길고 오리 다리는 짧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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