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절에 도서관이 있었네!-성북동 길상사 도서관

특집 | 진리의 숲에 들다 | 절에서 배워요

2014-03-25     불광출판사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할 때,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직접 몸으로 경험하거나, 책을 보거나. 불교와 불교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고 싶을 때, 역시 선택은 좁혀 보면 둘로 나뉜다. 절에 가거나, 책을 보거나. 이 두 가지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다름 아닌 사찰도서관이다. “사찰도서관? 절에도 도서관이 있었나?” 하고 되묻는 것도 무리가 아닐 만큼 그 수가 적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찰도서관은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만 권이 넘는 장서를 갖추고 ‘연중무휴’로 운영하는 성북동 길상사 도서관이다.


 
 
 
 
 
| “절이란 공부하고 책을 만나는 
그런 공간이어야 한다”
길상사 도서관은 법정 스님을 닮았다. 길상사(주지 덕운 스님) 경내에 고즈넉하게 자리한 도서관은 탁트인 공간과 정갈한 서가가 조화를 이뤄, 찾는 이로 하여금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게 만든다. 한쪽 벽이 모두 통창이라 길상사의 운치 있는 사계절 풍광이 고스란히 담기는 조망 또한 백미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책장 사이 어
디쯤, 혹은 얼굴이 비추일 듯 맑은 마루 한 켠 어딘가에서 책을 손에 든 법정 스님을 만날 것만 같다. ‘세계의 아름다운 도서관’을 꼽는다면 단연코 높은 순위에 들 이 공간은 어떻게 지어지게 됐을까? 
1997년에 산문을 연 길상사가 도서관을 건립한 것은 2005년의 일이다. 평소 법정 스님은 “절이란 기도와 수행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불교를 공부하고 책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는 말씀을 많이 했고,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개인 소유의 책을 길상사에 기증해 왔다. 2005년, 3층 규모의 지장전을 신축하면서 2층에 도서관을 마련하게 됐고, 스님이 입적한 2010년에는 5천여권 장서의 열람뿐 아니라 대출까지 가능한 전산 시스템과 자원봉사팀을 꾸려 명실상부한 도서관의 격을 갖추게 된 것이다.
“현재 이용할 수 있는 장서가 오래된 책을 빼고도 만 권이 넘습니다. 4년 전에 비해 2배로 늘었죠. 성북구청 관내 ‘작은 도서관’으로 지정돼 연간 200만원을, 길상사에서 300만원을 지원받고 있습니다. 도서 구입 기준이요? 주목할 만한 신간과 이용자들이 신청한 도서, 스님들이 추천하신 책, 불자라면 한 번쯤 읽어보면 좋겠다는 책을 선정해 3개월에 한 번씩 구입하고 있습니다.”
도서관 운영 봉사자 모임인 ‘보리회’ 윤영숙 회장의 설명이다. 둘러보니 새로 들어온 책, 절판되어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법정 스님 저서, 불교 잡지와 사보, 베스트셀러 불서 등은 열람하기 쉽게 따로 서가를 구비해 두었고, 전체 장서의 분류가 매우 세밀하고 체계적으로 구성돼 있다. 서가에서 뽑아든 책에 간혹 도토리 모양의 금빛 스티커가 눈에 띄었는데 이것은 기증도서 표시로,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실천하는 도량답게 기증도서의 비중이 높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 사찰도서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배워나갈 수 있는 곳
“머물 곳이 있는 셈입니다.” 백성만 사무장이 건네는 한 마디의 속뜻이 묵직하다. 불교를 아직 낯설게 느끼는 이들이 처음 절에 찾아 왔을 때, 따뜻하게 맞이하고 교육과정으로 안내하는 누군가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이른바 ‘새 신도 맞이’와 본격적인 교육시스템을 누구나 편안하게 느끼는 것은 아니다. 심리적으로 다소 부담스럽게 받아들여질 여지가 없지 않다. 도서관은 찾는 이를 말없이 반기며, 거기 머무는 동안 불교와 친해지고 근기에 맞게 지혜를 쌓아갈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 놓는다. 도서관을 ‘머물 곳’이라 정의한 백 사무장의 말이 무게감 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이용자 김선희 씨도 이러한 사찰도서관의 묘미를 직접 체험중이다.
“일주일에 서너번 와서 예불과 점심공양을 하고 4시까지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요. 명상은 10년 넘게 했지만 불교 입문은 하지 않았었는데 서너 달 전 이곳을 알게 되면서 불교공부 하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됐어요. 여기, 보기보다 책이 굉장히 많아요. 심지어 서점에 없는 책도 있구요. 큰스님들 법문집으로 시작해서 경전류도 읽고, 업과 윤회를 벗어나는 참선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이젠 깨달음 쪽으로 관심이 옮겨가고 있어요. 도서관에
서 불교를 공부한다는 건 예를 들자면 『알기 쉬운 법화경』 같은 책부터 무비 스님의 『법화경 강의 上·下』까지, 쉬운 책에서 깊이 있는 책으로 내 속도에 맞게 진도를 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도서관은 ‘알고 싶다’는 관심만 있으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배워나갈 수 있는 곳입니다.”
길상사 도서관은 연중무휴다. 보리회 회원 14명이 2인 1조로 요일마다 ‘사서’를 맡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동절기 오후 4시)까지 운영한다. 보호자 신분증을 지참하면 초등학생부터 대출회원으로 가입해 2권을 2주까지 빌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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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 교육의 ‘심장’을 힘차게 뛰게 하라
아늑한 분위기, 충분한 장서보유량, 잘 다듬어진 관리체계 등 장점이 많은 길상사 도서관은 지역민에게도 인기가 높다. 도서관이 절에 오는 이유가 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상사 도서관의 존재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진 않은 실정이다. 사찰도서관이라는 개념이 아직은 생소한 이유가 크다. 최근 불교계에도 대중친화적인 북카페 형태의
사찰도서관이 늘어나고, 조계종에서 제도적 지원 노력을 시작한 일련의 흐름은 고무적이다.
‘도서관은 교육의 심장’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사찰도서관이 불교 교육의 ‘심장’으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 절에는 반드시 도서관이 있어야 한다는 사중의 의지다. 사찰도서관은 절의 기존 기능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책과의 만남이 책으로 끝나지 않게, 절과의 만남이 절 안의 제한된 경험에 그치지 않게 해준다. 서두에 이야기한 ‘절과 책의 결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둘째, 도서관에 생명력을 공급하는 에너지원인 운영진의 열정이다. 전공자가 아니어도 함께 연구하면서 책임감을 갖고 봉사하는 길상사 보리회가 좋은 예다. 대출과 열람이 이뤄지지 않는 책은 과감히 정리하는 등 끊임없이 도서관을 살아있는 공간으로 손질해 나가는 노력은 필수다. 그밖에 이용자의 관심도 빼놓을 수 없다. 훌륭한 도서관은 이용자와의 소통으로 완성된다.
“그 절에 도서관이 있었네?”라는 호기심 어린 물음표가 점차 감탄에 찬 느낌표가 되고, 나아가 당연한 사실이 되기를, 길상사 도서관에서 창밖의 겨울풍경을 바라보며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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