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을 토양 삼아 가능성의 씨앗을 키워요-부산 홍법사 어린이・청소년 문화강좌

특집 | 진리의 숲에 들다 | 절에서 배워요

2014-03-25     불광출판사
 
 
 
 
 
 
일요일 아침 9시, 부산 노포동 외곽에 자리 잡은 
홍법사(주지 심산 스님)를 찾았다. 
절집 한 편으로 넓게 펼쳐진 잔디밭이며 깔끔한 외관이 옅은 아침 안개 사이로 산책을 하기에 딱 좋은 풍경이다. 제 갈 길을 찾지 못했는지 여직 발길을 떼지 못하고 서성이는 안개의 흐릿함 너머로 악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휴일 아침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맑은 음색의 관악기 소리. 누굴까?
발길에 부딪히는 자갈들을 살살 걷어가며 다가가 문을 열었다. 그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 그 아이들의 손에 플루트가 들려있었다. 아이들은 지금 플루트 수업을 받고 있는 중이다.


| 일요일 아침이 신나는 아이들
“신경 쓰지 말고 계속 하세요. 그냥 보기만 할게요.” 순간 집중된 아이들의 시선이 자못 부담스러웠다. 방해가 된 건 아닌지 미안한 마음. 한 마디 툭 던져놓고 멀찌감치 자리를 잡고 지켜봤다. 아이들도 이내 다시 악기를 입에 가져갔다. 저 섬세한 악기를 과연 잘 다룰 수 있을까. 아이들의 나이는 많이 잡아봐야 10세 안팎, 개중에는 7~8세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연주가 수준급이다. 별 걱정 다한다는 듯. 오선지 위의 콩나물들을 읽어 내려가며 아이들의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였다. 전문 연주자들만큼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연주다.
“다른 곳도 보시겠어요?”
안내를 해주겠다며 젊은 보살님이 발길을 이끌었다. 그렇게 찾아 올라간 3층 칸에는 방금 전 아이들보다도 더 어린 아이들이 오선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자, 여기 선이 모두 몇 개예요? (다섯 개요.) 그쵸? 다섯 개죠? 그래서 오선지라고 불러요. 뭐라고? (오선지요.) 선이 모두 몇 개? (다섯 개~) 자 이제 직접 그려볼까?”
선생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은 책자 빈 구석에 죽 선 다섯 개를 뚝딱 그려냈다. 오선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선 “이제 꺼내봐요.” 소리에 맞춰 등장한 바이올린. 아하, 이 반은 바이올린 수업을 듣는구나. 그런데 요 천방지축 사내 녀석들에게는 바이올린 잡는 기본자세를 가르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왼쪽 턱 밑에 바이올린의 턱받침을 대라고 했더니 어떤 녀석은 오른쪽 턱 밑에 바이올린을 넣지를 않나, 어떤 녀석은 연신 이러지 저러지도 못하지를 않나. 지켜보는 사람은 그 모습이 귀여워서 피식피식 웃음이 터지는데, 선생님은 복장이 터진다. “내가 오늘처럼 힘든 날은 처음이다.” 선생님의 농담 반 진담 반의 앙탈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녀석들, 그저 신났다. 요리조리 쫓아다니며 자세를 교정해준 끝에 제법 그럴듯한 포즈가 나왔다. “이야~멋지다” 한마디에 헤벌쭉 웃어 보인다. 그런데 바이올린 선생님, 설명도 그렇고 포즈도 그렇고 범상치 않다 싶었더니 창원시립교향악단의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메소드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악장인 문수경 씨다. 문 씨는 이미 예전부터 홍법사에서 아이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있었단다. 힘들기는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재밌어서 계속 하고 있고 나름의 보람도 느끼고 있단다.


| 파격적인 수강료에 누리는 즐거움
“프로 연주자들 중에는 알고 보면 불자거나 혹은 종교가 없어도 집안이 불교인 사람들이 꽤 있어요. 워낙 음악인들 중에 이웃종교인들이 많다 보니 말을 못하고 있었던 거죠. 자기들도 자신의 재능을 이렇게 기부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고 해요. 그러다 우리 절이랑 인연이 닿으면서 함께하게 된 거죠.”
홍법사 청소년교육연구소의 김경숙(45) 소장의 말이다. 다른 절이나 종교시설과 달리 단순한 전공자나 음악학원 강사가 아닌 프로 연주자가 강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었던 건 그들에게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물론 직접 플루트를 가르치고 있는 김 소장의 개인 인맥도 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홍법사의 일요일 아침은 특별하다. 매주 일요일이면 어린이・청소년들을 위한 문화강좌가 열린다. 강좌의 종류도 플루트, 바이올린, 드럼, 가야금, 통기타, 사물놀이 등 다양하다. 심지어 수강료는 기본 1~2만 원선. 강좌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일반 학원과 비교했을 때 파격적일만큼 저렴하다. 단, 어린이 법회나 청소년 법회에 5회 이상 출석한 학생에 한해서다.
홍법사에 이런 강좌들이 생길 수 있었던 것은 주지 소임을 맡고 있는 심산 스님과 김 소장의 덕택이다. 심산 스님이 과거 통도사 부산포교원에 머물던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왔던 두 사람은 스님이 홍법사 주지 소임을 맡으면서 의미 있는 활동을 벌여보자며 의기투합했다. 2005년에 몇몇 아이들을 모아서 시작한 강좌는 입소문을 타고 점점 확대됐다. 그 결과 부산에서도 한적한 외곽이나 다름없는 이곳에 아이들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양산이나 저 멀리 부산 다대포에서 한 시간씩 걸려 홍법사를 찾는 사람들도 생겼다. 아이들이 절을 찾으면서 부모들도 함께 절을 찾게 되는 건 당연지사.
하긴, 이만큼 저렴한 가격에 아이들이 신나게 과외 활동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어디에 또 있을까. 불교는 잘 몰라도 아이들을 위해 절을 찾아오던 부모들은 끼리끼리 모여 불교공부와 수행을 시작하더니 어느새 참한 불자들이 되어 있었다. 각각의 강좌는 단순히 강좌로만 끝나지 않는다. 피아니스트 윤효관 씨를 초청해 협연을 하기도 하고, 봉사활동 차원에서 대외 활동도 벌인다. 용두산 공원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공연을 하거 나 군부대 위문 공연도 한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기억은 분명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강한 동기부여와 자신감은 아이들에게 큰 자산이 될 것이다.



| 절에서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을 찾아라
홍법사의 주지 심산 스님은 이런 활동이 줄 수 있는 파급효과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배우는 게 재밌으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꾸 오려고 할 겁니다. 요즘은 아이들조차도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시대인가요. 저는 즐겁게 배우면서 뛰어놀 수 있는 장을 열어줬을 뿐이에요. 사실 이 모든 건 김경숙 소장을 비롯한 다른 자모들이 함께 이루어낸 결과죠. 저는 이 아이들이 커서 인재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자기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이곳에서 찾는다는 건 그래서 아주 중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문화가 가진 힘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을 인재로 키우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홍법사의 아이들은 그렇게 즐거움을 토양 삼아 가능성의 씨앗을 키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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