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도 생각해보자

푸른 목소리

2007-06-20     관리자

임병호 국제항공통신기구 한국지사 기술실장

 이런 생각을 해 볼 수도 있다.

 1990년 어느 가을 점심시간, 명동 거리에 진짜 미륵보살이 걸어 가고 있다면···, 그는 과연 무슨 복장에 무슨 직업을 갖고 있을까?

 도톰한 볼에 물결치는 드레스를 입고 한손엔 물병을 살짝 쥐고 걷는 아줌마일까? 아니면, 이태리 신사복과 무쓰로 넘긴 머리에 007가방을 든 젊은 핵 연구소의 물리학 박사의 신분일까?

 한국 불교계에선 또한 이 '진짜' 미륵을 알아볼 것인가. 아니면······. 오늘의 한국 불교인들은 그를 어떻게 알아보고 받아 들일지 과연 궁금한 일이다.

 이런 생각도 해본다. 2,000년 전 인도의 유명한 승려가 도력으로 시간여행을 하여 1990년 명동의 밤거리를 보았다면, 한여름 작열하는 고속도로의 아스팔트를 보았다면, 어떻게 묘사했겠는가. 또 미국 동부의 도박도시 아틀란틱 시티를 보았다면······.

 [법화경]의 [견보탑품]의 소위 장엄하고 지극히 찬란한 모습도 한번 뒤집어 생각해 보자. 우리는 어느 때 보다도 문명되고 또 한편으론 험악하고도 불확실하기 그지없는 한 시대의 말에 서 있다. 아직도 그 거대한 미합중국의 대통령 J.F.K와 Bobby Kenndy가 '진짜' 누구에 의해 '왜' 암살 당했는지도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미국보다 더 강하고 큰 조직과 세력이 지구를 뒤덮고 과학과 산업과 경제와 전쟁을 마치 화가가 캔버스에 장난하듯이 그려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세상에 미륵이 나타난다면 어떤 모습으로 어떤 언행을 하고 다닐까?

 이렇게도 한 번 생각 해보자.

 그 흔하고 모호한 불교 용어 한마디 안쓰고도 만인 앞에 불교를 전파 할 수 있겠는가? 2500년 전 고타마는 분명 그 시대의 보통 언어 프라크르티를 썼던 것이며 한자 사전, 불교용어 사전도 없었던 것이다. 한 가지 2500년전 인도에서나 현재의 한반도에서나 인간의 숙명은 변하지 않고 계속 종교에의 모티브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닷물을 한다미로 표현해서 짠맛이라면 인생은 쓴맛인 것이다. 유전공학이 발달하여 영원히 내가 갖고 있는 동일한 DNA로 거듭 태어난다해도, 또는 세포의 노화를 방지하여 한몸으로 영원히 산다해도 종교에의 모티브는 계속 꿈틀거릴 것 같다.

 밥먹다가 숟가락을 떨어뜨려도 소리는 나는 것이다. 이 불확실한 시대와 한반도라는 위치에서 불교인은 불교를 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가끔씩 빠듯한 사회생활에 쫓기다 산좋고 물좋고 한적한 산사에 도피할 때면, 일주문을 들어서며 사천왕의 눈동자를 볼 때면, 한가히 마당을 쓸고 있는 스님을 볼 때면 여러가지 상념들이 겹친다. 그나마 그런 안식처가 있음을 대행히 생각하여야할까.

 우리는 그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많은 국가의 표본이 되고 있는 자랑스런 땅에 살고 있고 또한, 수많은 아이들을 외국에 수출, 세계에서 1위를 하고 있는 땅에 수십배에 달할 것 같은 범죄율과 밤거리 사방팔방 눈에 띄는 붉은 십자가들과 전 인구의 오분의 일에 해당하는 불교인구를 갖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 조국이다. 사회에 특별히 존경스러운 학자나 정치인이나 '마쓰시타' 같은 기업인도 보기 어렵다. 이런 때에 미륵이 한국인이라면 어떤 모습으로 어떤 언행을 하고 다녀야 할 것인가? 지금 바로 당신이 미륵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허구한 날 명동 입구에서, 롯데백화점 옆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불전함을 앞에 놓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절을 하고 있는 '승려'들을 나는 매일 지나친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달라는건지 아리송하다. 차라리 지하도 계단에 얘기를 껴안고 누워있는 거지 여자의 바구니에 동전을 던진다.

 언젠가 방콕에 머물 때였다.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으로 가던 중 주홍색 승복을 입은 탁발승들이 거리의 시민들로부터 비닐봉지에 싸인 쌀밥 한 줌씩을 공양받는 것을 보았다. 참으로 신선하고 그림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치 그 때 그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이 보이는듯. 우리는 천편일률적으로 대승찬양 소승 '이기주의'식으로 아무런 여과없이 읽고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자기의 도 닦기에 바쁘지 않은가? 여태껏 읽어 본 많은 경전 중에서 불교를 알게 된 인연이 된 고 김달진 선생의 [법구경]만큼 감명을 준 책은 아마 티벹의 밀라레빠의 전기밖에 없는 것 같다. 허구한날 쉽게 풀어썼다는 각종 불교서적에 식상하고 구태의연한 한문과 전문용어에 파묻힌 현학적인 논문에 두 페이지를 못넘기고,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을 묻는 까닭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는가. 소승이 지나고 대승이 지나고 선문답이 다했다고 느껴지는 떄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은가. 티벹의 달라이라마가 유창한 영어를 하는 시대인 것이다.

 며칠이 지마면 곧 애기 아빠가 될 내게 '딸이길 원하느냐''아들이길원하느냐' 그리고 '무엇이 되길 원하느냐'는 자문타문(自問他問)이 많다. 그러나 무엇이 되길 원하느냐에는 분명한 답을 갖고 있다. 종교인, 학자, 의사, 음악가, 월급쟁이가 되기 이전에 좀 아둔하더라도 인간이 되길 원한다고······. 최소한 베에토벤의 9번 4악장이 넘어가기 전에 눈물을 죽죽 흘릴 수 있는 사람이면 되겠다고. 마구 때려 부수고 소리쳐보고 몸부림쳐서 도달하는 그 곳, 그 곳이 결국 어디인가 너무나도 가까운 곳이다. 그 곳을 확인하지 못하는 사람은 종교적인 모티브-초발심조차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행복한 왕자와 제비] 동화책을 꼭 읽히고 싶다. 누가 쓴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이렇게 쉬운 대승도 있는 것이다. 이 자본주의 시대에 쉽다고 굳이 표현하기엔 그렇지만······.

 이렇게도 생각해 본다. 미륵이란 무엇인가. 자비, 좁힌다면 형제애, 인류애, 생물애, 자연애 그런 것이 아닌가. 우리 모두가 다같이 실천해야 할 공업(共業)인 것이다. 언제나 편협한 개인주의, 지방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에 서로의 마음의 벽을, 이념의 벽을. 종교의 벽을 쌓고 있어야 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200년 전의 베에토벤은 쉴러의 환희의 송가를 통해 이러한 벽을 때려 부수자고 우리 모두 형제가 되자과 처절히 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대말 컴퓨터와 통신의 빠른 발전 또한 미륵 세계로의 접근을 한층 재촉이고 있다고도 본다. 너무나도 빠르게 발전하다보니 베를린 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무릎꿇고 그 다음은 무엇일까? 국경없는 지구일까?

 이미 컴퓨터와 통신의 세계에 국경과 비자는 거의 없어진 것이다. 미륵의 시대는 분명히 가깝게 느껴지지만 우리는 기술의 발전에 상응하는 만큼의 마음의 벽을 부수고 있는 것인가? 바빌론 탑이 무너지고 서로의 언어가 틀려졌다고 한다. 언어는 수 백 가지더라도 언젠가 곧 마음의 전 세계적 통일은 오고야 말것만 같다. 아니면 핵의 버섯구름을 보게 되던가. 왼손과 오른손의 엄지가 맞닿고, 마음과 머리의 조화 내지 통일도 우리 개개인에게 이루어지리라 본다.

 다시 나는 이 초여름 장마 속의 한반도에서 생각해 본다. 마음과 머리의 조화, 통일! 하루에도 몇번씩 우리는 마음과 머리의 분열의 고통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쉽게 생각해 보자. 지하철 계단옆 구석에, 수많은 행인의 구듯발 소리 옆에 머리 헝클어진 땟국물이 든 여인이 애기 두어 명을 끌어안고 있다. 자! 동전바구니가 눈에 안들어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순간 똑똑한 머리와 눈물겨운 '행복한 왕자'의 마음이 분열하기 시작한다. 행복한 왕자의 마음은 집에 데리고 가서 목욕기키고 따뜻한 식사를 주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차가운 머리는 동전 몇닢이 이들을 망치는 게 아닌가까지 계산하고 있다.

 미륵은, 한국의 불교인들은, 이 여인의 동전 바구니 옆을 어떻게 지나야 할 것인가. 마음도 머리도 컴퓨터의 0와 1의 이진법도, 음과 양의 원리도 모두 때려 부수도 도달하는 그 곳은 무엇인가? 미륵-자비, 형제애, 인간애, 자연애 그런 것이길 바란다. 이 시대 한반도, 그것도 반쪽인 땅에서 우리 불교인들 마저라도 미륵을 못알아 보고 저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그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도라도.

 미륵이란 우리 모두가 같이 이룩해야 하는 공동체적인 것일 수도 있다. 아녀자와 가축과 노인의 수많은 생명들을 바라보며, 홍해 앞에 선 모세의 간절한 기도를 우리 모두 올려보자.

 수없이 탑을 허물고 쌓아올리느라 허리와 온 몸에 멍과 터지고 뭉개진 종기로 가득찬 제자 밀라레빠를 보면서 더욱 가혹하게 몰아쳐야했던 스승 마르파의 뜨거운 눈물의 기도를 우리 모두 올려보자.  佛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