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불타관] 사람이 부처다

2014-03-21     조성택

불교의 중심은 ‘부처님’이다. 불교佛敎라고 하는 종명宗名 또한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요, 부처님에 의한 종교라는 의미에서다. 오랜 불교사를 통해 불교전통은 불타관, 즉 ‘부처님’을 이해하는 다양한 관점들을 발전시켜 왔다. 상좌부, 대승, 선불교, 정토교, 밀교 등 오늘날 불교가 전승하고 있는 다양한 지역불교 전통에도 사실은 그 근저에 ‘부처’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자리잡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불교인들이 신행하는 불교가 다양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부 불교인들은 마치 장님이 자신의 코끼리만이 진짜 코끼리라 우기듯이 자신의 ‘불교’만이 진짜 불교라고 주장한다. “간화선이 최상승이요, 간화선만이 진정한 부처님의 종지宗旨”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또 다른 쪽에서는 “간화선은 ‘불교’가 아니”라면서 아함경이나 팔리어 경전만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한다. 그런 가운데 여전히 대승과 소승이라는 낡은 패러다임으로 자신의 불교관을 보수保守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다.

 

| 불佛,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러한 혼란 상황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현대’라고 하는 환경이다. 한때는 이러한 혼란의 원인이 한국불교의 대표 종단인 조계종단의 무능력과 무기력함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종단에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혼란의 상황이 일차적으로는 교통의 발달과 지역간의 인적·물적인 활발한 소통에서 초래되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다양한 지역불교 전통들이 지역의 경계를 넘어 한국으로 유입되고, 또 전통으로 묻혀있던 불교경전들이 불교학의 이름으로 다시 오늘날의 언어로 번역 소개되는 등 시간적 격절과 공간적 경계가 무너진 현대사회에서 불가피하게 겪어야 할 불교사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게 볼 때 다양한 ‘불교들’이 공재共在하는 지금의 상황은 문제적 상황이 아니라 이해되어야 할 상황이다. 다시 말해서 지금의 상황은 서로가 ‘진짜불교’임을 주장하는 쟁투적 상황이 아니라 현대불교사의 한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두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다양한 불교의 근저에는 ‘부처님’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의 불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불타관을 네 가지 유형으로 정리해서 그 각각의 특징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 번째는 ‘불佛’을 석가모니부처님으로 이해하는 경우다. 불교의 교조이자 연원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고 따르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석가모니부처님의 삶과 가르침을 박물관의 유물처럼 박제화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정 경전에만 석가모니부처님의 삶과 가르침이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선 불교는 ‘말씀’의 종교가 아니라 분별에 기초한 ‘이해’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육성’은 반복되는 녹음테이프를 통해 재생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현장에서 나의 목소리를 통해 늘 새롭게 재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바라문 학도 암바타에게 “바라문들이 선인仙人들이 전해준 베다의 경전을 외운다고 해서 자신들이 선인仙人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나무라시는 것도 문자나 경전적 권위가 불교의 요체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불타관의 두 번째 유형은 ‘불佛’을 ‘깨달음의 세계’, 즉 진리로 이해하는 경우다. 이때의 불교는 곧 ‘진리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불’에 대한 이해를 역사적 존재인 석가모니부처님에 한정하지 않고 비인격적 실재인 ‘진리’의 개념으로 확장하는 것은 흔히 생각하듯 대승불교의 자의적인 해석이 아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자신의 깨달음을 독점적으로 전유하거나 특권화하지 않고 가르침을 통해 모든 사람의 깨달음으로 확장하였다. 다시 말해서 진리란 특정한 존재에 의해 일방적으로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세계라는 것이다. 대승경전, 특히 화엄이 대표하는 불교가 바로 이러한 불교다. 그런데 이러한 유형의 불타관이 문제가 되는 것은 ‘진리’, 혹은 ‘깨달음’이 가지고 있는 관념적 추상성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동아시아의 대승불교에서 중생구제의 보살행이 일상의 세계에서 실천되지 못하고 늘 관념적 세계관으로만 머물렀던 것은 바로 이 불타관의 한 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유형은 ‘불佛’을 구원자인 부처님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 유형에서 기대하는 부처님은 중생을 구제하는 절대적 능력을 가진 존재이며 중생들의 요청에 답하는 인격적 절대자다. 『법화경』의 ‘아버지 부처님’, 그리고 정토신앙의 아미타불 등이 이러한 유형의 대표적인 ‘부처님들’이다. 이러한 유형의 불타관은 근본적으로는 불교에서 강조하는 자비심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신행의 수동성과 기복성이다. 스스로 구원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 존재에게 구원과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을 정당화하고 심지어 장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네 번째 유형은 ‘불佛’을 ‘깨달음[覺]’ 혹은 ‘깨달은 자[覺者]’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두 번째 유형과 비슷한 측면이 있지만 깨달음에 대한 관념적 추상성이 배제되어 있다. 여기에서 ‘깨달음’이란 단지 ‘진리의 세계’가 아니다. ‘깨달음’이란 성취되어야 할 것이며 불교란 곧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를 의미하게 된다. 대승불교의 여래장이나 불성사상, 그리고 동아시아 전통의 선종이 대표하는 불교가 바로 이 네 번째 유형의 불교다. 이러한 유형의 불타관에서 비롯되는 폐단은 흔히 지적하듯이 ‘깨달음 지상주의’의 문제다. 확철대오의 깨달음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비의 실천 등 현실에서 당장 실천해야 할 여러 문제들을 간과하거나 미루게 된다는 점이다.

 

| 전통적 해석에서 당대의 문제의식으로

이상의 네 가지 유형별 분류는 한국불교를 이해하기 위한 분석틀일 뿐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불교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불교의 모습들은 두 가지 이상의 유형들이 혼재하고 있거나 때로는 아예 혼융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갈등을 빚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과 충돌은 진위의 판별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각각의 유형들에는 부처님의 삶과 가르침을 바라보는 각 시대의 문제의식이 녹아들어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전승된 불교전통이 다양하고 풍부한 것은 부처님의 삶과 가르침을 문자나 특정 경전으로 ‘화석화’하지 않고 당대의 문제의식으로 늘 새롭게 해석해온 결과다. 그렇게 볼 때 불교의 생명력은 부처님의 가르침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의 삶과 가르침을 특정 역사나 문자로 고정하지 않는 해석적 자유로움이 불교가 가진 생명력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불교에서 절실한 것은 ‘과거 전통’을 두고 진위를 판별하기 위한 논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다. 보다 절실한 것은 우리 시대에 필요한 불타관의 정립이다. 네 가지 유형들은 모두 과거전통에서 전승된 것들이다. 여전히 중요하고 또 유효한 측면이 있지만 시기적으로 보자면 석가모니부처님 이래 대략 천 이삼백 년 정도의 기간 동안 형성되었던 과거의 전통이다. 이제 우리의 문제의식으로 부처님의 삶과 가르침을 이해하는 새로운 불타관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우리 시대의 새로운 불타관을 모색하는 가운데 최근 주목할 만한 흐름이 등장하였다. 그것은 결사본부가 지난해부터 전개하고 있는 ‘부처로 살자’라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사실 무비 스님의 인불人佛사상이나 도법 스님의 생명평화운동 등과 맥이 닿아있으며 우리 시대의 문제의식을 잘 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인불사상이나 ‘부처로 살자’ 운동은 ‘내가 부처’라는 자각自覺을 강조하기 때문에 실천적 측면에서 장점은 있지만 일반적인 ‘불타관’으로 제시하기에는 다소 오해의 소지가 없지 않다.

그런 점에서 앞선 선지식들의 의도를 살리면서 보다 대중적인 의미를 확보할 수 있는 우리 시대의 불타관으로 다음과 같은 것은 어떨까? “사람이 부처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사람’을 부처님으로 모시는 일일 것이다.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 고려대 영문과 및 동국대 대학원을 졸업하고(석사, 인도철학), 미국 UC버클리대학원을 졸업했다(박사, 불교학). 미국 스토니부룩 뉴욕주립대 교수, 「불교평론」 주간, 학술진흥재단 인문학단장, ‘우리는선우’ 상임대표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철학연구’ 편집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와 논문으로는 『불교와 불교학』, 『퇴옹성철의 깨달음과 수행』, 「‘깨달음의 사회화’에 관련한 몇 가지 고찰」, 「초기불교사 ‘재구성’에 관한 검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