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암자에서 삶에 밑줄 긋다

해남 대흥사 일지암 ‘청 년출가, 암자 수행 30일’

2014-03-21     불광출판사



법인 스님은 말했었다. “출가수행자가 산사를 떠나 도심에서 살아가는 일은, 새가 숲을 떠나 낯선 세상에서 날갯짓하는 것과 같다.”라고, 스님은 이른바 ‘수도승首都僧’의 삶을 훌훌 털어버리고 산승山僧의 본분으로 돌아간 암자에서 도시의 청년들에게 초대장을 띄웠다. “문득 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좋은 암자를 나 혼자 누리기에는 너무 염치가 없다는 생각, 세상 사람들과 나누면 더없이 좋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밥 해 먹고 때때로 나무 하고 아침저녁으로 모여 앉아 책을 읽는 것이 일과의 전부인, 이름하야 ‘청년출가, 암자수행 30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거창할 것 없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가!
사실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렇다 할 수행 프로그램도 없다는데 과연 수행 기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결론은 ‘일단 가보자’였다. 암자를 향해 땅끝 해남으로 차를 달리던 중, 스님으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몇 시 도착인가요? 점심은 여기서 원하신다면 준비하겠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손님상을 받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내심 ‘암자밥’이 먹고 싶었다. 망설이다, 그러겠다고 했다. 두륜산 능선에 부드럽게 감싸 안긴 일지암에 도착하니 스님이 찬바람 마다않고 서서 객을 맞았다. 그 마음이 환한 미소만큼이나 따뜻하게 전해져 왔다.
저만치, 한 청년이 초의 선사의 다실로 잘 알려진 단칸 초방 아궁이에 군불을 때고 있었다. 수행기간 동안 하루씩 차례를 정해 초방에서 홀로 지내도록 하는데, 나무하고 불 때서 방을 덥히는 것 또한 각자의 몫이라고 했다. 한두 차례 순번이 돌아갔는지 이젠 불 때는 모습이 제법 능숙하다. 대중방 옆에 딸린 아담한 공양방으로 가니 청년들이 차려놓은 맛깔스런 점심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서 먼 길을 달려온 피로와 추위가 씻기는 참에 법인 스님이 넌지시 말을 건넸다.
“보다시피 거창한 것은 없어요. 그저 정답게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작은 일에 웃음을 나누는 거지요. 평소 누가 하는지도 모르는 밥을 사먹고 집에서 해주는 밥을 당연히 여기며 먹지요. 밥상에서 밥을 먹기까지의 과정에 참여도 안 해보고 생각도 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잖아요? 일상의 작은 가치가 소중하다는 것을 몸으로 부딪쳐 가면서 다시 생각해 보자는 겁니다. 뭐, 다른 건 없어요.”
20대 청년 일곱 명이 1월 5일부터 2월 3일까지 생활하게 될 일지암의 하루일과를 살펴보니, 역시 평범한 일상이다. 그런데 찬찬히 들여다보면 좀 달랐다. 보통 절에서 새벽 3시에 하는 도량석을 5시 반으로 옮겼다. 전통에 얽매이지 말자는 뜻이다. 7시까지 아침예불과 108배, 참선을 마치고 공양을 준비해서 8시에 함께 먹는다. 108배에는 화가 많은 사람이라면 ‘분노가 사라지기를….’ 자비심이 좀 부족한 사람이라면 ‘따뜻함이 깃들기를…’ 하는 식으로 자기만의 염원을 담는다. 2인 1조로 순번을 정해서 공양주 소임을 맡도록 하는데 음식하고 먹는 것이 번거로운 ‘일’이 되지 않도록 하루 두 번으로 줄였다. 아침과 저녁만 먹고 간단한 간식으로 보충하는 ‘1일 2식’을 실천하는 것이다.
“암자에 오면 풍경 좋지, 기름진 음식이나 술, 인터넷, 스마트폰 저절로 끊어지지, 거기서 오는 몸의 쾌적함이 있어요. 또 사람도 끊어지니 시비가 그쳐지죠. 여기에 반드시 맞아들이는 사람의 따뜻함이 녹아들어야 합니다. 산에 있는 모든 것을 정성스럽게 나누는 마음이 중요해요. 이것이 일상의 힘이에요. 부처님 당시, 재가신도들이 부처님을 존경한 이유가 뭔지 압니까? 경전에 보면 ‘얼굴이 빛나고 미소가 아름답고 걸음걸이에 위의가 있고 음식을 절제하며 옷이 단정하여 많은 이들이 따랐다.’는 내용이 나와요. 이런 사생활, 이것이 삶의 모습 그 자체 아니겠어요? 우리가 잘 아는 전법 선언 말미에 ‘청정한 수행의 삶을 보여주어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불교는 삶으로 이야기하는 거구나’ 하는 깨우침을 주는 대목입니다.”
거창할 것 없는 일상을 떠나서 따로 수행이란게 있겠는가 하는 말씀이다. 그 때, 한 청년이 간식 시간이라며 감자전을 만들었다고 어서 오라고 했다. 아무런 간을 하지 않고 오로지 감자만 들어갔다는데 그 맛이 훌륭하다. 둘러앉아 나눠먹으니 극락이 따로 없는 듯하다.










| 때로는 느슨하게 때로는 치열하게
오후 4시. 대중방에서는 청년들이 평온한 얼굴로 독서삼매에 빠져 있었다. 오전 책 읽기가 끝나고 난 뒤에 5시 저녁공양까지 주어지는 자유시간이다. 한가로이 낮잠을 청할 법도 한데 대부분 이렇게 책읽기를 즐긴다고 한다.
“저 친구들 저 모습 보면 꼭 강원의 학인들 같아요. 대중방에 앉아서 너나없이 공부함을 즐기는게 말이죠. 신통하고 이쁘지.”
스님은 ‘암자 수행 30일’의 묘미는 ‘느슨함’이라고 했다. 정해진 공부 시간 외엔 모두 선택에 맡기는 ‘느슨함’이 주어지니, 자기 공부거리를 알아서 찾더라는 것이다. 이 ‘느슨함’ 속에서 청년들은 각자 무엇을 찾아내고 있을까? 책 보던 청년 둘에게 차 한 잔 나눌 것을 청했다. 이곳에서 받은 법명이 흥인, 의현이라고 했다.
“자기 시간을 쓸 수 있어서 좋아요. 초방에서 하룻밤을 보낼 때 느낌은 ‘아, 혼자 있구나’였어요. 그런데 외롭진 않더라구요. 밤에 바람이 심하게 불었는데 폭풍우 치는 바다 위에서 상자 속에 들어있는 것 같았어요. 난생 처음 겪는 색다른 밤이었죠.”
“밖에서는 ‘해야 한다’는 생각에 끌려 다녔어요. 여기선 꽉 짜이지 않은 일정 속에서 자기 시간을 만들어 나가는 게 의미 있어요. 들어오면서 모두 지갑과 휴대폰을 스님께 맡겼는데 없으니까 답답하긴 하죠. 휴대폰 열어 검색해서 바로 답을 찾던 습관이 바뀌었어요. 모르면 옆사람에게 묻고, 스님께 묻고 해요. 음식 할 때도 의논해서 완성해가면서 솜씨가 많이 늘었어요.”
그 때 목발을 짚은 다른 청년이 방으로 들어왔다. 법명은 덕학.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암자생활요? 자연 속에서 그냥 하는 거예요. 어떤 목표를 ‘이루어라’가 아니라 도심을 떠난 시골 암자에서의 삶을 ‘겪어 보라’인 거죠. 수행법이라기보다 수행으로서의 프로그램이랄까요. 삶에서 부닥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수행이더라구요. 어쩌다가 무릎 인대가 파열됐는데 사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이지만 예정대로 지내기로 했어요. 아파보는 것도 수행, 음식 맛 잘 내는 것도 수행, 가족처럼 지내는 경험도 수행, 모두 수행 아닌 게 없네요. 제가 며칠 전 공군 장교로 전역하고 바로 여기로 왔는데, 동료 장병이 제게 물어요. 군 생활 실컷 했는데 왜 또 절 생활 하러 가느냐고. 좀 다르죠.(웃음)”
‘일지암 30일 수행’의 수행자 청규에는 용맹, 화합, 침묵, 예의, 자애, 몸생활, 성실, 일곱 가지 덕목이 적혀 있다. 스님은 느슨함이라 표현했지만 그것은 치열함이 배어들 여백이었다.









| 나만의 독법으로 세상을 읽어라
저녁 7시. 어둠이 내린 일지암에도 고전 낭독 소리가 새어나왔다. 시작은 박노해 시인의 시 ‘구도자의 밥’이었다. 스님은 시를 낭송하며 거기에 담긴 현실을 보자고 제안했다. 깊어가는 저녁, 청년들은 밥 한 그릇에서 전체 삶을 보는 시인의 자비심을 음미했다. 철학자 강신주의 칼럼을 함께 읽는 시간이 이어졌다. ‘편 가르기’를 주제로 한 글을 낭독하고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나눴다. 다음은 신영복 선생의 고전 강의서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차례. 특정한 고전 한 권이 아닌, 시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책 읽기가 이뤄지는 시간이었다.
“불교와 철학을 함께 가르치니 효과가 두 배가 돼요. 다양한 시선으로 보는 훈련이죠. 고전 읽기는 고전의 지혜를 우리 시대 문명 독법으로 소화하는 과정입니다. 저는 책 한 권을 100번 읽어요. 읽으면서 밑줄 긋고 그 밑줄을 10번 읽고 산책하며 또 그것을 사색하지요. 고전을 현재의 자기 문제를 보는 데 쓰는 겁니다. 책에 밑줄 긋기를 주저하면 안 돼요.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거든요.”
다음날 아침, 스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일 났네, 일 났어. 올스톱이에요.” 일지암에 물이 끊겼다. 기온은 영하 7.7도. 집수정에 물이 바닥나 얼어버린 것이다. 미처 예상 못했던 상황에 밥도 세수도 화장실도 그야말로 ‘올스톱’ 됐다. 스님은 이 난감한 상황에도 한 마디 유머를 던진다. “머리감을 때 물 많이 쓰나? 다 삭발할까?” 아침공양을 거른 채 예정에 없던 불편함까지 감당해야 하는 청년들은 뜻밖에 담담했다. 오전 경전 강독 시간 을 기다리는 대중방은 다시 책 읽기에 빠져들었
다. ‘꼬르륵’ 소리와 책장 넘어가는 소리가 비움과 채움으로 교차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여유와 진지함이란.
9시, 경전 강독시간. 팔리어 경전을 함께 읽다 질문이 나왔다. “무상은 괴로운 것입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괴로울 것 같은데요.” “한 소식 했네. 이제 곧 하산한다고 하는 거 아닌가?” 좌중에 웃음이 터졌다. 
“무장애라는 말이 있지요. 장애 없이 걸림 없이 이런 말을 많이 들어는 봤는데 정작 뜻을 물으면 몰라요. 당연히 알고 있다고 믿는 용어들의 새로운 해석이 필요합니다. 무장애란 상처 없이 마음에 잡히는 것 없이 한다는 뜻으로 보면 돼요. 상처없는 사람 없죠. 그런데 아픈 기억은 원래 있던 겁니까? 아닙니다. 이것이 공이지요. 아픈 기억은 만들어진 겁니까? 그렇지요. 이것이 연기입니다. 이 공과 연기를 동시에 보는 것, 그것이 중도입니다.”
굳은살 같던 불교 용어가 말랑한 삶의 언어로 다가왔다. 일지암에서, 청년들은 책에 밑줄을 긋듯 지금 이 순간 삶에 밑줄을 긋고 있었다. ‘청년 출가, 암자 수행 30일’의 한 갈피를 함께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누군가 내게 던진 농담이 내내 귓가에 맴돌았다. “부러우시죠?” 나처럼 그들이 부럽다면 암자의 문을 두드려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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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대흥사 일지암 061)533-4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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