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동북아 영토분쟁의 내막

미국의 대중 경제전에 휘말린 동북아 정세

2014-02-12     불광출판사
요동치는 동북아 영토분쟁의 내막

미국의 대중 경제전에 휘말린 동북아 정세




4월 말쯤인 것 같다. 해외 정보에 밝은 인사와 대화 중 묘한 얘기를 들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해 판을 벌일 것 같다는 것이다. 과거 소련에 대해서 했던 것처럼 경제전을 시작할 태세라는 얘기다. 경제전이란 레이건 대통령 당시 미국의 보이지 않는 대소전략을 지칭한다. 당시 미국은 소련 경제를 마비시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예를 들어 사우디아라비아를 움직여 유가를 떨어뜨린다든가, 소련이 유럽과 연결하고자 했던 가스파이프 라인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방해를 놓는 등의 비밀 작전이다.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을 주 수입원으로 하던 소련의 재정을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 과거 소련을 붕괴시켰던 미국의 경제전
군비확대 경쟁을 통해 소련의 재정 파탄을 유도하는 방법도 사용했다. 그 대표적인 게 바로 스타워즈라고 불리던 SDI(전략방위구상)이다. 소련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우주공간에서 레이저를 쏘아 떨어뜨리겠다는 SDI는 그 자체가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올 법한 것이었지만, 무서운 전략적 함의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소련을 첨단 무기 개발 경쟁으로 끌어들여 재정 파탄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소련의 핵미사일을 우주에서 요격하는 게 가능해지면 소련의 미사일 전력은 있으나마나 한 게 되므로, 소련 역시 대응책 마련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소련의 과학기술력은 미국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에, 미국이 20억 달러를 개발비에 사용하면 소련은 약 80억 달러를 투입해야 한다. 80년대 후반 고르바초프의 탈냉전 시도는 바로 레이건 행정부의 경제전에 대한 항복 선언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데 실로 오랜만에 이 말이 다시 등장했다. 이번에는 상대가 소련이 아니라 중국으로 바뀌었을 뿐, 뭔가 동북아에서 파란이 일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의 다음 말이 흥미로웠다. 경제전의 징후로 든 게 바로 당시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의 센카쿠 열도 매입 움직임이었던 것이다. 미국을 방문한 이시하라 도지사가 4월 17일 워싱턴 시내에서의 강연에서 ‘일본의 국토를 지키기 위해 도쿄도가 센카쿠 제도의 일부를 구입할 것이다’라는 폭탄선언을 발표했다. 센카쿠제도의 조어도, 북소도, 남소도 등은 현재 개인 소유로 돼 있는데 일본 정부가 매년 2,450만 엔에 임차를 해왔다. 내년 3월 31일로 계약 기한이 끝나는데 이때 매입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미국의 대중 경제전과 무슨 관계란 말인가? 그의 말은 마치 무슨 수수께끼라도 되는 양 머리 속을 맴돌았고, 퍼즐을 풀기 위해 관련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1월 이래 본격화된 미국의 아시아 복귀 과정이 시야에 들어오게 됐고, 그 속에서도 특히 에어시배틀(AirSea Battle, 공해전) 전략이라는 미국의 신전략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해 11월 17일 호주를 방문한 오바마 미 대통령은 호주 의회 연설에서 지난 10년간 이라크와 아프간 등 중동에 치중하던 미국 안보전략의 방향을 바꾸어 앞으로 아시아를 중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금년 1월 5일 파네타 국방장관과 더불어 이에 입각한 새로운 국방전략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동안에도 미국은 입만 열면 아시아를 중시한다고 해왔다. 오바마의 아시아 중시 선언이 특별히 새로운 것이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자료를 계속 추적하던 중 뭔가 새로운 개념이 하나 툭 하고 등장한다. 바로 에어시 배틀 전략이었다.

| 미국을 궁지로 몰아넣은 중국의 미사일
이 전략을 만든 조직부터 이채로웠다. 국방성 산하 전략예산센터(CSBA:Center For Strategic and Budgetary)라고 하는데 이곳은 미 국방성의 독특한 전략가인 앤드류 마샬의 영향권 하에 있는 곳이다. 앤드류 마샬은 1973년부터 지금까지 국방성 총괄평가국장이란 자리에 있으면서 국방성의 새로운 전략전술 입안에 깊이 관여해온 인물. 부시 정권 당시 미군 혁신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도 그였다.
그런데 그의 손을 거쳐 간 이들을 중심으로 다시 오바마 정부 들어 새로운 전략에 손을 대고 있는 것이다. 전략예산센터가 에어시배틀 전략을 처음 공표한 것은 바로 2010년 5월로 알려졌다. 그런데 바로 그 2010년 5월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미국 재향군인회 연설에서 매우 중요한 말을 한다. ‘미군이 전례 없이 위험한 환경 하에 있어, 제2차 대전 이후 실시해온 항공모함을 주체로 한 전략으로는 더 이상 유효한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라며 전략의 수정을 강조한 점이다. 항공모함을 주체로 한 전략이란 바로 미국의 세계 제패 전략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라 해도

누군가 미국 대신 공격용 중거리 미사일을
가지고 미국과 한 몸으로 움직일 수 있으면
된다. 그게 바로 일본이다. 그런데 일본은
평화헌법에 묶여 집단적 자위권 발동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공격용 무기조차 갖지
못하게 되어 있다.
이걸 깨려면 일본의 안보를 끊임없이 흔들어
여론을 바꿔놓을 필요가 있다. 그러기에는
영토 분쟁만큼 좋은 게 없다.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 군사력의 주축은 5대양을 종횡무진 누비는 미국 항공모함 전력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그런데 항공모함을 주축으로 한 미국의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니, 그것은 무슨 소리인가.
바로 중국의 ‘동풍-21D’라는 미사일 때문이다. 이 동풍-21D가 첫 선을 보인 것은 2009년 4월 중국 인민해방군 창설 60주년 기념사열 때라고 한다. 보통 탄도 미사일은 엄청난 속도와 위력 때문에 주목을 받지만 정확도가 떨어져 움직이는 물체를 타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왔다. 그런데 동풍-21D는 세계 최초로 항공모함을 잡을 수 있는 탄도 미사일로 알려져 보통 ‘항공모함 킬러’라는 별칭으로 불려왔다. 동풍-21D가 무서운 것은 일단 발사를 하면 수직으로 대기권을 뚫고 날아올라갔다가 마하 10의 무서운 속도로 정확하게 항공모함을 향해 떨어지기 때문에 자체 방어력으로 막아낼 수가 없다는 점이다. 또한 다탄두 방식이라 미사일방어(MD) 체계로 요행히 몇 개를 막는다 해도 나머지 탄두가 갑판을 뚫고 들어가 격침을 시켜버리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게 바로 사정거리다. 사정거리가 최소 1,500km에서 2,700km에 이르기 때문에 중국 본토 내에 배치를 해도 18,000km에 이르는 중국 해안선 모두를 방어할 수 있는 위력적인 무기이다. 즉 중국의 해안에서 최소 1,500km 이내에 있는 어떤 목표물도 안전하지 않은 것이다. 당장 문제가 되는 게 바로 미 항공모함 전력이다. 미국 항공모함 탑재기의 항속거리는 약 500km 정도이다. 즉 유사시 미 항공모함은 중국 해안 500km 이내로 접근해야 함재기 공격이 가능하다. 그런데 접근 자체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미국 아시아 전력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일본 본토의 주일 미군기지와 오키나와 미군기지 역시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 미국 대신 중거리 미사일 확보에 나선 일본
결국 새로운 전략이 필요해진 것인데, 그게 바로 에어시배틀 전략인 셈이다. 에어시배틀의 개념은 간단하다. 일단 중국과 문제가 생기면 첫 단계로 미 항공모함과 일본 본토 및 오키나와의 미 주요전력은 동풍-21D 사정거리 밖에 있는 괌 인근으로 대피한다. 이 상황에서 미국은 잠수함전을 통해 중국 근해를 교란하는 한편, 중국 미사일의 목표식별 능력을 차단하기 위해 위성 미사일로 중국의 우주전력을 격파하며, 주로 스텔스 기 등을 통해 중국의 지휘관제 시스템을 격파하고 사이버 공격으로 통신 네트워크를 마비시킨다. 즉 과거와 양상이 다른 새로운 전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신무기 개발 수요가 엄청나다. 에어시배틀을 미국 군산복합체의 새로운 수요 창출 전략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양상은 과거 소련에 대한 SDI가 그러했듯이 중국을 새로운 무기개발 경쟁으로 끌어들일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로 중거리 미사일로 무장하면 되는 것 아닌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세계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미국은 중거리 미사일을 가질 수 없다. 즉 1987년 12월 8일 구 소련과 맺은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 따라 사거리 500km에서 5,500km인 지상발사형 중거리 탄도 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은 모두 폐기되었고 새로 가질 수도 없다.
그 대응책의 하나가 앞에서도 본 에어시배틀에 따른 신무기 체계 개발이라면, 또 하나는 누군가 미국 대신 공격용 중거리 미사일을 가지고 미국과 한 몸으로 움직일 수 있으면 된다. 그게 바로 일본이다. 그런데 일본은 평화헌법에 묶여 집단적 자위권 발동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공격용 무기조차 갖지 못하게 되어 있다. 이걸 깨려면 일본의 안보를 끊임없이 흔들어 여론을 바꿔놓을 필요가 있다. 그러기에는 영토 분쟁만큼 좋은 게 없다. 센카쿠 문제는 지난 4월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가 난데없이 국유화 문제를 들고 나온 이래 7월에는 일본 정부가 이어받아 직접 국유화 하겠다고 나섰고, 예상했던 바대로 중국의 거센 반발로 한때 일촉즉발의 위태로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지금은 다시 냉각기로 접어들었지만, 그 사이에 달라진 것이 있다. 이제 일본의 정치인들 누구나 자신이 차기 총리가 되면 집단적 자위권이 보장되는 형태로 헌법 개정을 밀어붙이겠다고 공공연하게 공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문희
한반도 문제를 전문적으로 취재해온 한반도 전문 대기자다. 「시사IN」에서 활약 중이며 과거 「시사저널」시절부터 한반도 문제와 관한한 자타공인 최고의 전문가 중 한 명으로 손꼽혔다. 「시사저널」 사태 이후 불의에 항거했던 후배들과 함께 「시사IN」을 창간한 뒤 2대 편집국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