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장서가의 서재 전 독립기념관장 김삼웅

2014-02-11     불광출판사
책!

장서가의 서재 전 독립기념관장 김삼웅

2013년 새해를 맞아 월간 「불광」은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생활 문화 트렌드’를 주제로 특집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생활 트렌드나 문화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런 트렌드를 통해 우리의 삶을 어떻게 하면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 고민하고자 합니다. 또 불교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나 접목시킬 수 있는 부분은 없는지도 같이 찾아볼 계획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인간의 역사는 책의 역사다. 책은 인류의 곁에서 수년의 시간을 함께 지내오며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고 다음 세대에게 생존의 방법을 일러주는 역할을 해왔다. 한 세대의 지식이 다음 세대로, 또 그 다음 세대에게까지 전달될 수 있는 건 인간이 유일하다. 그래서 책은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는 조건일 수밖에 없었다. 인류에게 도덕과 철학이 중요해질 즈음부터 책은 단순한 지식의 기록이 아닌 시대와 사상의 기록물이 됐다. 그즈음부터다. 책은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이와 손에 잡히지 않는 고결함마저 갖추기 시작했다. 세대를 이어가며 철학의 우물이 됐고 지난 시대의 기록을 보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게 하는 스승이 됐다. 그래서 책은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는 조건이다. 그동안 책은 무수히 많은 몸을 바꿔가며 다시 태어났다. 때로는 양피지의 몸을, 때로는 죽간의 몸을 빌었으며, 인류가 종이라는 하이테크놀로지를 발명한 이후론 줄곧 종이의 몸을 빌어 시대의 현자賢者가 됐다. 책이 진화해 갈 때마다 인류도 발전해왔다. 지금, 인류의 스승은 전자책이라는 몸으로 다시 태어나려 한다. 과연 인류는 또 다시 진화할 것인가. 아마도 책은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일 것이다.
그래서 책은 희망이다.




김삼웅 씨는 전 독립기념관장이다. 그의 집엔 2만 6천여 권의 책들이 있다. 모두 좋아서 사기 시작했고, 필요해서 찾아다녔으며, 눈에 들어와 품에 넣었던 것들이다. 하나둘씩 사 모은 책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해주는 진리와 진실은 그에게 한 줄 문장을 써나갈 토대가 된다. 해방 전 일제의 폭압과 해방 후 독재의 공갈에 사람들이 입을 닫았어도 책들은 말없이 진실을 품고 때를 기다려왔다. 지금, 그의 눈을 통해 드러난 그때의 진실들은 그의 손을 통해 한 사람의 독립운동가가 됐고, 한 사람의 민주화 운동가로 되살아났다. 그렇게 2만 6천여 권의 책들은 김삼웅 씨의 손을 거쳐 서른 명의 평전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2만 6천 권.
말로는 실감이 나지 않는 숫자다.
집이 무너질까 노심초사하고 있음을 털어 놓으면 그제서야 피부로 와닿는다.

철학, 종교, 사학, 미학, 문학 등 인문학과 관련된 모든 종류의 책이 곳곳에서 그의 곁을 지킨다. 눈 돌리면 그곳에 책이 있고, 손을 뻗으면 읽을거리가 넘친다. 그에게 책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인생길에, 가야 할 방향을 짚어주는 맹인의 지팡이였다. 그가 평생을 모아온 책들은 2011년 그를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선정한 장서가로 만들어 주었다.





스님의 서재 서울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아주 많지는 않다. 하지만, 책장을 메우고 있는 한 권 한 권의 제목은 하나같이 명저들이거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꼭 봐야 할 것들이고, 읽고 싶었던 것들이다. 그래서 서울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의 서재는 군더더기가 없다. 매주 두 권씩 일 년이면 150여 권. 모두가 시시각각 변해가는 사람들의 취향과 관심사를 파악할 수 있는 소통의 창이자, 공부하고자 하는 분야의 깊이를 더해주는 고마운 스승이다. 보경 스님에게 서재는 끊임없는 정진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지적 나침반이다.




주지 소임을 살면서 일주일에 두 권씩의 책을 소화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스님은 토막처럼 주어지는 시간을 책들에게 할애한다.
마음을 움직이는 눈 밝은 사람들의 지혜를 하나씩 스님의 노트에 옮겨두길 9년.
주옥 같은 문장들은 법문자료가 되고, 쓰고자 하는 글의 반석이 됐다.
그 노트의 이름은 ‘무설집無舌集’이다.




때로는 창틀 너머 햇살에 글자의 길목들이 일어나 잠든 마음을 일깨워 주었고,
때로는 늦은 밤 어두운 조명 아래 무거운 몸을 위로하는 자장가가 되어 주었다.
때로는 여행길을 함께 하는 벗이자 늘 깨어있기를 주문하는 죽비와도 같았다.
책을 놓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배우는 즐거움이 있기에 가끔은 고되게 느껴지는 목표여도 매주 새로 정할 수 있었다. 매번 책장을 덮으면 생각의 연못에 고요한 파문이 일어난다. 새로 얻어지고 배워가며 그 속에서 덜어내는 즐거움이 있으니 심심할 틈이 없다. 막 우려낸 녹차 한 잔이 정갈한 자세로 스님의 곁을 지켜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이다. 그래서 책이라는 지적 나침반을 따라가는 여행은 늘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