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바른 기운과 영혼의 전달자

사계절출판사 대표 강맑실

2014-02-11     불광출판사
책 바른 기운과 영혼의 전달자

사계절출판사 대표 강맑실




‘출판사’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하나. 추운 겨울의 작은 사무실, 난로 위 주전자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젊은 여성 편집자가 원고 더미에 묻혀 교정을 보고 있다. 20여 년 전 방영된 드라마 ‘아들과 딸’의 한 장면이다. 책 만드는 사람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품고, 파주출판단지 사계절출판사 사옥에서 강맑실(57) 대표를 만났다. 어려운 출판 현실 속에서도 원칙과 뚝심으로 정도를 걸어온 그녀에게서, 꽃 향기보다 진한 책 향기가 전해진다.

| “책이라는 그릇에 시대정신을 담는다” 
: 출판사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사계절출판사는 1982년 남편(김영종)이 창업했어요. 독재정권 시절 학생운동을 한 사람으로서, 대중에게 사회의 진실을 알리는 일은 출판 외에 없다고 생각해 사회과학 서적을 출판하게 된 거죠. 저는 민중신학자 안병무 선생이 설립한 ‘한국신학연구소’에서 7년간 편집과 번역 일을 하다, 1987년 남편이 구속되면서 사계절출판사 편집부장으로 오게 됐어요.

: 현재 아동・청소년 분야 비중이 60%를 넘는데, 사회과학 전문출판사에서 영역을 확대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1980년대 후반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맑스주의 중심의 사회과학 이론이 힘을 잃었어요. 그때부터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분야를 교육으로 인식했어요. 학교나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진실을 알리고, 암기식 대학입시 위주에서 사고력 중심의 교육으로 인도하자는 취지로 아동・청소년 교양 분야에 뛰어들게 된 거죠. 『반갑다 논리야』 시리즈, 『교실 밖 국어여행』 등 ‘교실 밖 시리즈’가 대표적인 책입니다.
사회과학과 인문분야는 사계절출판사의 근간이라 그 분야의 끈은 계속 놓지 않고 이어가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역사를 어떤 형식으로 서술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역사신문』, 『한국생활사박물관』 같은 책을 냈고, 독보적인 책으로 평가받고 있어요. 그리고 20년 전만 해도 동화책이나 그림책의 문제가 심각했어요. 번역서조차 제대로 골라서 소개하는 능력이 부재하던 시절이었죠. 유통 문제도 심각해 전집류의 방문 판매가 휩쓸고 있었어요.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를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만들면서, 그림책을 단행본으로 내면 망한다는 속설을 깨게 됐지요.

: 사계절출판사의 창립정신이자 사훈이 “책이라는 그릇에 시대정신을 담는다”입니다. 여기서 ‘시대정신’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시대정신을 언급하는 것은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시대의 진실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는 것이고, 거기서 도출된 제대로 된 의식이 우리가 출판하는 책에 담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의식이 없는 출판은 죽은 출판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보통 자신의 건강, 가족의 안위와 행복, 직장의 안정성 등에만 집중적으로 관심 갖게 됩니다. 사회의 현장, 아픔의 현장, 마이너리티의 울부짖음 등을 의식적으로 찾아다니지 않으면, 의식은 자연히 내 관심 분야에서만 맴돌게 돼요.
쌍용자동차, 용산참사, 4대강 개발, 제주 4・3사건 등을 신문이나 책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들어보는 현장성이 필요합니다. 출판인으로서 시대의 흐름과 진실을 읽을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며, 진실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선 의식적인 훈련과 학습을 통해 현장성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죠. 책 만드는 사람이 현장성을 떠나면 껍데기만 남게 됩니다.

| ‘코란도 아줌마’의 종횡무진 활약상 
: 책의 주요한 기능으로 오락, 여가, 지식 습득, 감성 계발, 간접 경험 등을 들 수 있는데, 인터넷, 스마트폰, IPTV 등에 그 역할을 많은 부분 빼앗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여전히 살아남을 수 있는, 책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은 무엇일까요?
책의 고유한 영역이 없어지지 않을 거라 믿는 건, 책이 주는 물성物性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책을 만지고 훑어보고 밑줄치고 메모하는 그 느낌을 어떤 무엇이 대체할 수 있을까요. 물론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전자책과 다양한 형태의 멀티북도 병행해 만들고 있지만, 책의 물성을 뛰어넘지는 못하고 있어요. 출판사 입장에서 전자책은 수익성을 가져다주는 분야는 아니지만, 독자들의 선택 폭을 넓혀주는 출판사의 의무로 생각하고 있어요. 책의 특징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상상력과 사고력을 무한정 불러일으켜 어떤 영상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는 점입니다.

: 2011년 『마당을 나온 암탉』이 영화화되면서 연 매출 100억을 넘어섰습니다. 출판 시장의 어려움 속에서도 탄탄한 중견 출판사로 자리 잡게 된 비결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늘 한 번도 마음 편하게 출판한 적이 없어요. 그만큼 출판 산업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에요. 여러 노력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몇 가지 원칙들이 세워졌어요. 무엇보다도 출간 결정을 오랜 시간 신중하게 합니다. 1994년 대표가 된 이후 5년간은 경리직원까지 꼼꼼히 원고를 읽고, 전 직원 만장일치제로 꼭 내야 할 좋은 책만 선별해 출간했어요.
그리고 일단 출간이 결정 되면, 최고의 명품화 전략으로 갑니다. 같은 종류의 어떤 책이 나와도 선점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요. 책의 최초 독자는 책 만드는 사람인 편집자예요. 편집자가 독자의 마음이 돼서, 정말 마음에 들 때까지 비용과 시간을 아끼지 않고 만듭니다. 그 외에 수요에 맞는 공급 전략, 장기적인 홍보 전략 등에 노하우가 많이 쌓여 있는 편이에요. 이러한 원칙이 체화되어 책을 만들다보니, 베스트셀러는 적지만 대부분 책이 20년이 지나도 스테디셀러로서 라이프사이클이 깁니다. 반품률도 5% 이하로 떨어졌구요.

: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책 홍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사계절출판사의 장기적인 홍보 전략이 궁금합니다.
우선 홍보 책자를 통한 장기홍보 전략이 있습니다. 청소년 분야 책을 출간했을 때, 자체 내 홍보물 ‘1318 북리뷰’를 20년 가까이 발행해 소개하고 있어요. 그리고 아동・청소년 분야 책의 경우, 선생님・학부모님과의 네트워크가 굉장히 중요해요. 선생님은 책을 선정하고 권장해주며, 학부모님은 책을 사서 주기 때문이죠. 일회성 만남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장기적인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어요.
또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 하나의 콘텐츠로 여러 유형의 상품을 개발하는 것)’라는 책의 매체 특징을 살리는 홍보 전략이 있어요. ‘원화 전시회’ 프로그램이 있는데, 도서관이나 학교 등에서 신청하면 책에 실린 그림이나 사진으로 전시회를 열어줍니다. 단순히 전시만 하는 게 아니라 연극이나 이벤트와 연계해서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어요. 원화를 스캔 받아 액자에 넣어주고, 이젤까지 준비해 발송해줍니다. 이러한 전시회를 통해 수많은 책이 전국을 돌고 있으니 홍보 효과가 아주 좋습니다. 저자들의 강연 요청도 신청을 받아, 저자 강연이 전국 각지에서 상시적으로 열리고 있어요. 이 외에 ‘사계절 책 향기가 나는 집’이라는 북카페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오픈하고 있는데, 독자들간의 커뮤니티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어요. 시대의 변화에 따라 SNS를 적극 활용해 독자들과 소통하며, 사계절출판사만의 무료 어플도 개발했어요. 물론 홈페이지도 활성화 되어 있구요. 신문광고도 종종 합니다만, 비용이 커 지속적으로는 하지 못하고 초기에 단기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홍보는 언제 효과가 날까 싶은데, 꾸준히 하면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확 뜨는 순간이 옵니다. 마치 활주로를 달리는 비행기와 같아요. 욕심내거나 조급해 하면, 홍보는 할 게 못 됩니다.





사계절 출판사 사무실 내부. 원고와 자료 더미 속에서 강맑실 대표의 미소가 더욱 편안하다. 파주출판단지 내 사계절출판사 사옥 입구의 간판. 사옥 1층은 북카페 ‘사계절 책 향기가 나는 집’으로 운영되고 있다.

: 제작처 사람들에게 ‘코란도 아줌마’로 불린 적이 있었다던데, 힘든 시기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1987년 편집부장으로 들어왔는데, 그 당시 편집부장은 1인 몇 역인지 몰라요. 기획, 편집, 저자관리, 제작, 홍보 등 마케팅 영업만 빼고 다 해야 했죠. 오토바이 퀵도 없고 물류센터도 없던 시절이라, 직접 코란도 몰고 인쇄소로 제본소로 동분서주 뛰어다녔어요. 새벽에 인쇄 걸리면 아이들을 태우고 색깔 교정보러 다니기도 했어요. 그때 제작처에서 편집부장보다는 ‘코란도 아줌마’로 통하게 된 거죠. 판권에 이름도 새겨지지 않은 채, 현장에서 애써 주시는 제작처 분들이 없으면 좋은 책이 나올 수 없어요. 그분들과 얼마만큼 마음 나누고 생각을 공유하느냐에 따라서 책의 품질이 달라져요. 지금도 사계절출판사 책이라고 하면 조금 더 긴장해서 자부심을 갖고 만들어주세요.
함께 어울려 술자리도 자주 갖곤 했는데, 덕분에 건강이 안 좋아지기도 했어요. 아무리 포부와 의욕이 넘쳐나고 능력이 뛰어나도 건강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죠. 이후로 마라톤, 등산, 국선도 등을 하며 건강관리를 해오고 있어요. 2년 전만 해도 컨디션이 좋으면 풀코스를 달리곤 했죠.

| 좋은 책은 올바른 관계성에서 만들어진다 
: 직원 복지가 잘 되어 있어,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기 싫어하겠습니다.
10여 년 전부터 노사협의체를 통해 소통을 해왔고, 2012년 3월부터 노조가 생겼어요. 직원들이 가장 원하는 게 자녀들 교육비, 자신의 건강과 여가, 일하는 데 필요한 물품 및 교육 등이에요. 그런 요구들은 ‘카페테리아 제도(선택적 복지제도)’를 통해, 입사연차에 따라 책정된 복지금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어요. 2년 묶어놨다가 한 달간 해외연수를 갈 수도 있고요. 그리고 근무 햇수 7년째 되는 해, 한 달간 유급휴가가 있습니다. 직원들이 오랜 기간 같이 일해 팀워크는 좋은데, 직원 대부분의 간부화와 고령화 문제가 있긴 해요. 그런데 그 문제가 나쁜 것만은 아니고, 젊은 층이 해내지 못하는 각자의 노하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고급 인력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축적해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한 퇴직 후 어떤 식의 보장 제도를 갖춰야 할지가 과제라면 과제죠.

: 후배 편집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최고의 편집자가 되려면 사람과의 관계성에서 최고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또한 ‘어떤 생각을 갖고 책을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해 깊이 고민해봐야 합니다. 책은 단지 읽는 행위에서 그쳐지지 않아요. 독자들이 책을 읽으면 생각이 바뀌고, 가치관과 세계관이 바뀌며, 거기에 따라 행동도 바뀝니다. 책은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행동의 변화로까지 확대되는 매체입니다. 궁극적으로 공동체의 변화까지 초래할 수 있어요. 그러므로 편집자는 바른 기운과 영혼의 전달자가 되어야 해요. 저자, 디자이너, 제작처, 서점 등과의 관계성이 올바르지 않은 상태에서는 절대 제대로 된 책을 만들 수 없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보면 “그와 함께 있으면, 일은 포도주가 되고 여자가 되고 노래가 되어 인부들을 취하게 했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이 나랑 일을 했을 때, 일 자체가 술과 여자, 노래가 되어 흥겨움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경지까지 가야 하지 않을까요.
인간관계를 제대로 맺어야 제대로 된 책이 나옵니다. 그러기 위해선 엄청 겸손해져야 하고 자기가 얼마나 부족한지 스스로 뼈저리게 느껴야 해요. 자만하는 순간 그 관계는 깨지게 됩니다. 그리고 편집 실무 영역에서는 스토리텔링의 능력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어요. 예전 방식으론 독자들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똑같은 내용이더라도 표현의 기발함과 차별화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해요.

: 마지막으로,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베스트셀러라는 정보에 현혹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거기엔 정말 허상이 많거든요. 온라인이나 SNS에 책 관련 정보가 무궁무진합니다. 그 정보망을 충분히 활용해, 자신이 읽고 싶고 필요로 하는 책을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읽는 독자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강맑실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과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을 졸업하였다. 한국신학연구소에서 번역과 편집 일을 하다가 사계절출판사로 일터를 옮겨 편집부장을 거쳐 1995년부터 대표로 일하고 있다. 1982년 사회과학 전문출판사로 창립한 사계절출판사를 『역사신문』, 『한국근현대사신문』,『한국생활사박물관』, 『아틀라스시리즈』 등 역사대중화를 이끄는 출판사로, 또한 아동・청소년 문학과 교양서 전문출판사로 이끌어가고 있다.

강맑실 대표의 옆에 두고 있는 책

1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 열린책들
조르바, 그와 함께 있으면 일은 포도주가 되고 여자가 되고 노래가 되어 우리들을 취하게 한다. 조르바의 자유로운 영혼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삶의 열정을 다시 뜨겁게 불태워줄 것이다.
2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2』
오주석 | 솔
죽음이 가까이 온 걸 알고는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을 맞았던 저자 오주석. 그의 길지 않은 삶은 내내 우리 옛 그림과 함께했다. 우리에게 별 의미 없이 다가왔던 조선의 옛 그림들을 이처럼 깊이 있고 흥미진진하게 알려주는 책이 또 있을까.
3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
김성호 | 웅진지식하우스
큰오색딱따구리가 새끼를 낳기 위해 둥지를 짓는 일부터 시작해 새끼를 낳고 키워내기까지 50일 동안의 기록을 세계 최초로 담았다. 어떤 영상물이 이 기록의 감동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글이 갖는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책이다.
4 『궁궐의 우리 나무』
박상진 | 눌와
나무에 대해 이 책만큼 인문학적으로 잘 풀어낸 책을 본 적이 없다. 보호막이 두터웠던 궁궐의 나무는 전쟁과 자연재해를 피해 대부분 살아남았다. 이 책을 들고 서울 사대문 안 궁궐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나무사랑이 쑥 자라 있을 것이다.
5 『살아야 하는 이유』
강상중 | 사계절출판사
장성한 아들을 잃고 납을 삼키는 듯한 고통과 슬픔 속에서 일본 대지진 참사의 현장을 목도한 후,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기도의 말처럼 써내려간 책이다. 끝까지 고민한 뒤가 아니면 찾아낼 수 없는 이 소중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힘을 이 책은 키워주고 있다.




01, 02




03, 04




05